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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43) 본문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43)
박사논문
2015. 8. 25.
다석사상, 무아, 없이 계시는 하느님, 용수, 유영모, 윤정현, 중도론, 텅빈 충만함
성공회 수동교회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43)
3.2.3.4. 텅빈 충만함(Vacuum-plenum)
유영모의 무아(無我) 이해는「신비주의와 철학」(Mysticism and Philosophy) 이라는 책에서 스테이스(Stace)가 분류하고 설명한 텅빈충만함(vacuum-plenum)의 역설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텅빈 충만함(vacuum-plenum) 역설이 동서양 양측의 신비주의 안에서 그리고 긍정적인 면와 부정적인 두 측면에서 가장 생생하게 그리고 쉽게 이해되고 일치한다고 스테이스(Stace)는 언급한다. 왜냐하면 텅빈 충만함(vacuum-plenum)의 역설(逆說)은 서양의 유신론(有神論) 적 종교의 신비주의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텅빈 충만함은 신비주의 현상이 있는 모든 종교와 철학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현상에는 세 가지 일반적인 유형이 있다고 스테이스(Stace)는 말한다. 예를 들면, 시적 표현과 은유적인 언어의 긍정적인 표현으로는 ‘빛’ 또는 ‘소리’로, 부정적인 표현으로는 ‘어둠’과 ‘고요’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유로 뤼이스브로엨이 언급한 ‘어두운 침묵’ (dark silence)이라는 표현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을 잃어버리는 상태와 같은 것으로 부정적인 측면을 언급한 반면에, 수소(Suso)의 ‘빛나는 어둠’ (dazzling obscurity) 이라는 말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스테이스(Stace)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다석 유영모의 우주적 자아(自我)나 대아(大我) 개념은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 양면에서 나타난다. ‘없음’이라는 차원에서는 무(無)로, ‘있음’ 이라는 차원에서는 ‘영(靈)으로 충만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 말은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무(無), ‘vacuum’으로, 긍정적인 면에서는 ‘영으로 충만 함’, ‘plenum’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용수(龍樹, Nāgārjuna)의 중도론(中道論)에서 보았듯이, 다석 유영모의 하느님으로서의 대아(大我) 개념은 인격적이면서 비인격적이고, 또한 인격적인 것도 아니고 비인격적인 것도 아니다. 다석의 이러한 하느님 이해는 스테이스(Stace)가 말한 텅빈 충만함 역설을 잘 보여준다. 또한 유영모의 대아(大我) 개념은 정적(靜的)이면서 역동적(力動的)이고, 또한 정적인 것도 역동적인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일단 하느님을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하느님의 전체적인 의미를 다 설명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무어라고 이름 붙일 수가 없다고 표현한 다석의 말에서 보듯이, 대아(大我)로서 하느님 개념은 인간의 상상이나 묘사를 넘어서 있는 개념으로서 말로 정의되거나 논리나 상상으로 묘사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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