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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31)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다석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31)

柏道 2021. 3. 3. 13:17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31)

 

박사논문

2015. 8. 25.

내재하는 하느님, 다석사상, 없이 계시는 하느님, 유영모, 윤정현, 종교체험

성공회 수동교회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31)

 

3.2.3. 내재하는 하느님
스테이스(W. T. Stace)는「신비주의와 철학」(Mysticism and Philosophy)에서 신비주의자들의 종교체험과 류형(類型)을 분석하였다. 하느님과 합일(合一)은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자들의 체험에서 나타난다.

힌두교의 신비주의자들은 자기 자신 안에서 ‘하나’됨으로 나타난다. 불교 신비주의자들은 ‘하느님’이나 ‘브라만’, ‘우주적 자아’(Universal Self, 大我)라는 말을 쓰지 않는 반면에 힌두교는 브라만(Brahman)이나 우주적 자아와 일치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불교 신비주의자들은 궁극적 실재의 개념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자신들의 체험을 해석하는 것으로 종교철학자 스테이스(W. T. Stace)는 분석하였다.

신비적 체험에서 같은 믿음을 말하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외형적으로는 체험의 양상(樣相)이 크게 차이가 있는 것으로 분석(分析)되었다. 따라서 스테이스(stace)는 일반적인 두 가지 다른 유형을 제시한다.

한 유형은 종교적 체험에는 유사성이 있고 외형적으로는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리스도교, 힌두교, 불교의 체험이 다르다는 것이다. 제이너(Zaehner) 교수는 그의 책, 「신비주의, 성과 속」(Mysticism, Sacred and Profane)에서 이 입장을 취한다. 또 다른 유형은 이들 종교체험(宗敎體驗)이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두 같다는 주장이다. 제임스(William James)는「종교체험의 제 유형」(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이라는 책에서 이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제임스(William James)는 이 두 유형에서 불교를 제외시킨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불교는 심미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절대자 같은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불교 신비주의자들이 절대자 개념을 갖지는 않지만, 그리스도교나 힌두교 신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종교체험을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임스는 간과하였다. 또한 스티븐 콜린스(Steven Collins)는 그의 책「무아의 인격」(Selfless Persons)에서 불교는 무아론(無我論, doctrine of non-self) 이외에 전능하고 영원한 궁극적 존재에 대한 어떠한 개념과 사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콜린스는 불교가 궁극적인 존재의 어떤 유형의 실존을 받아들이지만, 궁극적 실존이 인간과 상호작용하도록 하는 어떠한 결정적인 종교적 가치를 허용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콜린스의 주장은 궁극적인 존재가 없다는 극단적인 공론(空論)에 경도된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콜린스의 입장과는 약간 다르지만, 스즈끼(D. T. Suzuki)는 존재로서의 하느님과 깊숙이 관계하고 있는 에크하르트의 신성(Godhead) 개념을 이해한다. 존재이면서 동시에 비존재인 신성(神性)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는 불교의 절대무(絶對無)와 일치한다. 스즈끼는 더 나가서 에크하르트가 신성을 순수 무(無)라고 말할 때, 에크하르트의 신성 개념이 불교의 공성(空性)과 완전히 같은 개념이라고 말한다. 또한 스즈끼는 불교의 득도체험은 앞에서 말한 ‘있음’(is-ness)과 ‘그러함’(眞如, tathatā, suchness)의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종교체험 현상의 두 류형이 전적으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스테이스(Stace)는 이들 종교 체험은 비슷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단지 종교체험의 차이는 자신의 독특한 문화의 영향을 받은 종교체험을 다르게 해석하는 데서 온다고 본다.

이러한 주장은 다른 문화, 종교, 그리고 주관적인 해석 때문에 같은 종교체험을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신비적인 체험이 객관적이라거나 주관적이라고 내가 주장한다면 그것은 내 자신의 해석일뿐이라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