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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19) 본문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19)
박사논문
2015. 8. 25.
기, 다석사상, 성, 없이 계시는 하느님, 유영모, 윤정현, 이, 장횡거, 합일
성공회 수동교회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19)
2.3.4. 장횡거(張橫渠)의 인간과 우주이해
다석 유영모의 인간과 우주 원리의 이해는 주희보다 장횡거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장횡거의 우주에 대한 인식에 따르면, 우주현상은 기(氣)가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 속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기(氣)가 모여 사물이 형성되는데, 사물의 생성은 일정한 법칙을 따라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1) 모든 사물은 기(氣)의 취산공취(聚散攻取), 기(氣)가 모이고 흩어지는데서 생성되고, 결국 태허(太虛)로 돌아간다.
2) 한 사물은 반드시 그것과 대립하는 상반된 것이 존재한다. 어떤 고립(孤立)된 사물이 있다면, 그 사물은 그 사물이 될 수 없다.
3) 조화(調和)에 의해서 생성된 산물은 서로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4) 기(氣)가 흩어지면 다시 모이고, 모이면 다시 흩어진다. 기(氣)가 모이면 사물이 형성되고, 기(氣)가 흩어지면 사물은 소멸한다. 이와 같이 우주는 순환하여 쉬지 않는다.
다석 유영모는 다른 성리학자보다는 장횡거의 인간과 우주관을 받아들이고 그 개념을 발전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면, 유영모는 기(氣)의 수축과 팽창, 취산공취(聚散攻取)의 현상을 기(氣)의 자연스러운 활동으로 보고,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두 힘을 귀(鬼)와 신(神) 즉, 귀신(鬼神)으로 해석하였다. “유교에서 귀(鬼)는 귀(歸)이다. 신(神)은 신(伸)이다. 우리 앞에 나타난게 신(神)이고, 돌아 들어간 게 귀(鬼)다.” 사물이 생겨나면 기(氣)가 점점 모여 사물이 왕성하고, 사물의 생성이 절정에 달하면 기(氣)는 점점 되돌아가 흩어진다. 모이는 것이 신(神)이니 사물이 신장하기(伸) 때문이요, 되돌아 가는 것이 귀(鬼)이니 사물이 복귀하기(歸) 때문이다.
펴는(伸) 모양이기에 음양(陰陽)의 조화를 ‘신’(神) 같다고 하고, 반대로 모였던 기(氣)가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歸) 것이므로 ‘귀’(鬼)라고 한다. 신(神)은 펴는 것이므로 신(伸)이고, 귀(鬼)는 돌아가는 것이므로 귀(歸)이다. 그러므로 신(神)은 신(伸)이고, 귀(鬼)는 귀(歸)인 것이다. 사실, 귀신(鬼神)이라는 영적인 개념이 장횡거에 의해 이성적(理性的)인 개념으로 해석되었다.
진송첩(陈荣捷)은 장횡거의 기(氣)에 대한 해석을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라고 말한다. 기(氣)의 수축과 팽창하는 두 가지 면을 귀신(鬼神)이라고 한 것이다. 기(氣)의 부정적인 힘은 귀(鬼)로 나타나고, 긍정적인 힘은 신(神)으로 나타난다.
이어서 진송첩(陈荣捷)은 장횡거가 전통적인 영의 개념이나 죽은 사람의 혼의 개념을 이성적이고 자연적인 개념으로 해석하였고, 다른 성리학자들이 말하지 않았던 개념을 수립하였다고 주장한다.
다석은 이러한 장횡거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보완하여, 태극(太極)에 영의 개념을 적용하여 궁극적 실체인 태극(太極)을 하느님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장횡거가 유영모의 종교사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유영모는 장횡거의 사상을 어떻게 보완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본 장에서는 장횡거의 하늘 개념과 하늘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살피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장횡거의 정신 수양방법과 윤리사상은 노장사상(老莊思想)과 통하고, 우주관은 신비주의적 단일론을 보여주고 있다. 장횡거는 자아(自我)와 비아(非我) 사이의 한계를 제거하여 개체가 우주와 합일(合一)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장횡거는「정몽(正蒙)」대심편(大心篇)에서 다음과 같이 글을 썼다. “마음을 크게 하면, 천하의 사물을 두루 포괄할 수 있다. 마음에 포괄되지 않는 사물이 있다면 마음에는 바깥 경계가 있게 된다. 세상 사람의 마음은 감각의 좁은 한계 안에서 듣고 보고 하지만, 성인은 성(性)을 다하여 보고 듣고 하는 감각에 구속되지 않으므로 성인이 천하를 봄에 있어 하나의 사물도 나에게 속하지 않은 것이 없다. 맹자가 ‘마음을 다하면 성을 알고 하늘을 안다’ 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늘은 커서 바깥 경계가 없다. 그러므로 바깥 경계가 있는 마음은 하늘의 마음과 합일(合一)하기가 어렵다. 보고 들어 감각 기능으로 얻는 지식은 사물과 교류하여 얻는 지식이지, 덕성(德性)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덕성으로 알게 된 지식은 감각의 기능으로 보고 듣고 하는 지식과 다른 것이다.”
개체의 나를 ‘나’로 여기고 그밖의 것은 ‘나 아닌 것’으로 여기는 일이 ‘감각적 지식’으로 결국 자기의 마음을 얽어맨다(止於聞見之狹). 이와 대조적으로, 성인(聖人)은 그 얽어맴을 타파하여 천하의 사물과 자기를 일체로 여기는, 즉 ‘천하만물을 몸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이다. 성인이 천하의 한 사물이라도 ‘나 아닌 것’ 없다고 여기는 것은 나와 나 아닌 것의 한계를 넘어 나와 여타의 ‘나 아닌 것’을 하나로 여긴다.
따라서 성인은 우주 전체를 하나의 큰 나(大我)로 여긴다. 하늘은 커서 바깥이라는 한계가 없는데, 내가 마음을 닦아 그 경지에 이르면 내 마음과 하늘은 같다. 하늘은 모든 사물을 포함한다. 큰 마음(大我도 어떠한 것이나 다 받아 들인다. 그러므로 마음과 하늘은 하나이다. 사람이 수양을 하여 마음을 한없이 크게 하면 하늘과 합하여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인식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늘과 합일되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 참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참 지식은 보고 듣고하는 좁은 감각적인 지식, 견문(見聞)의 지식 속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고, 사물과 접촉하여 얻은 지식도 아니라고 장횡거는 말한다. “성명(誠明), 참된 지식과 명철을 통해서 얻은 지식은 타고난 덕성의 양지(良知)로서 감각적인 사소한 지식이 아니다.”
여기서 성(誠, sincerity)은 하늘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신비적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를 말한다. 명(明, enlightenment)은 사람이 하늘과 합일의 과정에서 가지는 지식인데, 이 지식은 ‘감각적인 사소한 가치’가 아닌 참 지식, 진지(眞知)를 말하며, 타고난 덕성(德性)으로서의 양지(良知, genuine knowledge)를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장횡거는 “성인은 하늘과 하나된 절대 성(誠)을 이룬 사람을 의미한다” 고 말한다. 더 나가서는 “인간의 성(性)과 천도(天道)가 조화롭게 하나가 될 때, 하늘과 사람은 성(誠) 안에 머물러 있고 성(誠)을 보전하게 된다” 고 해석한다. 장횡거에 있어 성(誠)이란 천도와 함께하는 인성(人性)이고, 즉 하늘과 신비적인 합일을 말하며, 실체와 하나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인간의 본성(本性)은 성(誠)이고, 하늘의 원리와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 지식, 진지(眞知)는 보고 듣는 감각적 지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합일(合一)의 체험을 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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