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18) 본문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18)
박사논문
2015. 8. 25.
다석사상, 신성, 없이 계시는 하느님, 유무, 유영모, 윤정현, 주희, 형이상, 형이하
성공회 수동교회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18)
다석은 태극(太極)이 하느님이라고 단언한다. 태극(太極)이 하느님이라고 다석은 재해석함으로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개념과 유교의 태극(太極)의 개념을 조화시키고 일치시키려고 하였다. 이러한 다석의 태극(太極) 해석은 궁극적 존재에 대한 타종교의 이해와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의 개념이 교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형이하(形而下)의 물건을 고유(固有)한 것과 같이 확실하다고 느끼는 것과 허공(하늘)은 허무하다고 느끼는 것과를 하나로 합하면 신이다. 그대로 신통하다. 우리가 고유하다고 또 허무 하다고 느끼는 그 자체가 신통(神通)하다. 그러면 지상은 상대(相對)로, 절대(絶對)는 하나로 느끼는 것이 왜 그러냐 하겠으나 신은 합해서 된 것이지 둘은 아니다. 절대가 상대화한 것으로 절대 따로 상대 따로 있는 것뿐이다. 우리 몸의 감각기관이 상대세계를 고유한 것으로 절대세계를 허무하게 착 각(錯覺)한 것뿐이다. ”
유영모는 유무(有無)를 초월하는 궁극적 존재가 유무(有無) 그 자체라고 본다. 또한 그 반대의 논리로도 설명할 수 있다. 궁극적 존재는 무(無)도 아니고 유(有)도 아니다. 그런데 유(有)이면서 무(無) 그 자체이다. 현상계의 궁극적 존재는 유(有)로서는 태극(太極)으로 나타나는 반면, 무(無)로서는 형상화되지 않는 궁극적 존재로, 즉 무극(無極)으로 나타난다.그러므로 다석 유영모의 태극(太極)은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 ‘신성’(Godhead)이고, 태공(太空) 안에서 관념적인 최고원리이다. 이와 같은 유영모의 궁극적 존재 이해는 음양(陰陽) 원리에서 기인하는 동양사고의 상호의존과 상호보완의 원리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다석 유영모에 있어 하느님, 그 자체는 정의될 수 없다. 신비주의자들의 절대자 체험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역설로서 하느님을 설명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다석 유영모는 태극, 무극에까지 가면 유교도 불교나 노자와 다른 게 없다고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 개념이나 진리는 결국에 가서는 서로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념론적인 이해에 기초하여 초기 유교의 천지(天地)로서의 하느님에 근거한 천주(天主), 즉 인격적인 신(神)의 개념과 절대적인 관점에서 우주(宇宙)와 상통하는 무(無)로서 우주적 실재인 궁극적 존재의 개념을 유영모는 조화시킨다. 존재이면서 비존재이며,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내재적 존재로서 하느님은 ‘하나’라는 다석의 해석은 유(有)로서 태극(太極)과 무(無)로서 무극(無極) 사이의 상호 의존과 상호보완에 근거하여 해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다석의 절대자 이해와 ‘하나’에 대한 해석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허무(虛無)는 무극이요, 고유(固有)는 태극이다. 태극, 무극은 하나다. 하나는 신이다. 유(有)의 태극을 생각하면 무(無)의 무극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는 다석 유영모의 하느님 이해는 존재(存在)와 비존재(非存在)로서 하느님, 무(無)와 유(有)로서 하느님의 개념을 상호보완하고 조화하려고 하였다. 절대자에 대한 다석의 이러한 해석은 불교와 유교, 도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본다.
'마스터와 가르침 > 다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20) (0) | 2021.03.03 |
---|---|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19) (0) | 2021.03.03 |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17) (0) | 2021.03.03 |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16) (0) | 2021.03.03 |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15) (0) | 2021.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