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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16)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다석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16)

柏道 2021. 3. 3. 12:12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16)

 

박사논문

2015. 8. 25.

다석사상, 없이 계시는 하느님, 유영모, 윤정현, 주희, 태극도설

성공회 수동교회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16)

그러나 니담(Joshep Needham)은 주희의 이기론(理氣論)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 개념과 비교하는 것을 반대한다. ‘형상’은 유기체가 하나가 되도록 하고 목적이 되게하는 개체 요소라는 점에서는 리(理)이다. 그러나 몸(body)의 형상이 영혼일 때는 중국 철학전통에서는 영혼이라는 문제를 다루지 않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형상이란 사물의 본질과 연관되어 있으나 기(氣)는 리(理)에 의해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장(Chang)은 단지 리(理)는 논리적으로 기(氣)보다 앞서 있을 뿐이지 어떤 면에서는 기(氣)는 리(理)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여 형상은 사물의 본질이며 원초적인 본체이지만 리(理)는 그 자체가 본질적인 것이 아니고 기(氣)의 형상도 아니다. 그러므로 리(理)는 엄격한 의미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계의 모든 차원에 존재하는 에너지이거나 눈으로 볼 수 없는 유기체적인 현상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순수 형상과 순수 현상은 하느님을 일컫는다. 그러나 장(Chang)은 리(理)와 기(氣)의 현상에서는 그러한 존재 개념이 없다고 말한다. 이미 비교연구학에서 서로 다른 사상을 비교하는 그 자체가 일반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듯이, 리(理)와 기(氣)를 형상과 질료에 비교한다는 것 자체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유의할 점은 주희는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아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사고의 속성과 생각의 차이로 인하여 서양사상의 성격을 동양철학에 정확하게 적용될 수 없다고 본다. ‘이것이면서 저것인’ 논리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논리에 의한 상호화합과 상호보완의 정신을 말하는 동양의 사고의 속성 때문이라고 본다.

니담(Needham)이 주희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와는 달리 본질적으로 유기체적인 사고라고 말한 것은 정확한 지적이다. 진송첩(陈荣捷)은 주희의 철학에서 리(理)는 논리적으로 선재(先在)하는 것으로서, 물체의 형상(form) 이전에 존재하고, 존재의 원리의 자체이기 때문에 형상 없이도 존재하는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리(理)는 존재의 원리로 기(氣) 안으로 전해주는 것이기에 기(氣) 밖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진송첩(陈荣捷)은 주희의 리(理)의 개념은 내재적이며 초월적인 원리이기 때문에 기(氣)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진송첩(陈荣捷)은 주희는 단일론자도 이원론자도 아니고 단일론자이면서 이원론자이다고 주장한다. 현상론적인 관점에서는 이원론자이지만 궁극적인 실체라는 관점에서는 주희는 단일론자이다. 다시 말하여 진송첩(陈荣捷)은 단일론이나 이원론을 대비하여 주희의 철학에 적용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다석 유영모는 주희의 개념은 이원적인 사고를 보인다고 주장하며, 주희의 태극도설(太極圖說) 해석을 강하게 비판한다. 태극이 하나인데 양의(兩儀)를 낳았다고 하고, 하나가 둘로 나뉘어졌다고 하면 이것을 무조건 인정해서는 안된다.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았다면 대단히 믿지 못할 말이다. 이것은 유교에서 대단히 잘못한 일의 하나이다. 태극이라 하면 하나인데 음양이 하나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에서 음양이 나왔다면 모르겠으나 그러한 하나 하고 둘 하면 말이 달라진다. 혼돈(우주)은 언제나 하나인데, 음양이 둘이다 하고 나온데서부터는 유교가 아주 병에 걸려버렸다. 이것을 말하여 태극의 대가리와 몸뚱이를 잘라버린 것이 된다. 대가리를 잘라서 어떻게 태극이 살 수 있는가.

다석 유영모는 주희(周熹)의 ‘무극(無極)이 곧 태극(太極)이다’라고 해석한 것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주희는 ‘무극! 그리고 태극!’이라는 부분을 ‘무극은 태극이다’ 라고 잘못 해석했다고 유영모는 지적한다.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나오는 ‘無極而太極’이라는 말에서 주희는 ‘而’를 ‘같다’(等)로 해석하고 태극과 무극을 하나로 묶어 도즉리(道卽理)의 세계, 형이상(形而上)의 세계로 보았던 것이다. 주희가 태극이 무극이라고 해석한 이유는 태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모양도 형상도 없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태극(太極)은 볼 수도 없고 형상이나 모양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주희는 태극(太極)을 무극(無極)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면에서 주희가 태극(太極)과 무극(無極)의 개념에 관하여 혼돈하게 되었다고 다석 유영모는 지적하였다. 유영모는 주희의 해석보다는 오히려 주렴계의 태극도(太極圖)의 본 개념에 더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유영모는 주렴계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의 무극(無極) 개념을 높이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