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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12) 본문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12)
박사논문
2015. 8. 25.
다석사상, 맹자, 없이 계시는 하느님, 유영모, 윤정현, 중용
성공회 수동교회 윤정현 신부의 논문 중 "하느님 이해"(12)
그러나 「맹자(孟子)」에 나오는 하늘의 뜻은 좀 다르게 변화된 개념이다. 맹자(孟子, 372~289 B.C.)에 의하면 하늘은 사람의 마음에 존재한다. 수신(修身)하여 자신의 마음과 본성을 깨우친 사람이나 앞에서 언급한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통하여 완전한 지(知)를 얻은 사람만이 천도(天道)를 안다. 천명(天命)의 내재적이고 자연적인 해석은 천명(天命)이 인간의 도(道)와 같은 천도(天道)로 이해될 때 가능하다.
유학자들은 인간사회의 천도(天道)란 하늘의 의지로 본래 천성(天性)적으로 타고난 도덕적인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삶의 관점에서 보면 이 천명(天命)은 인간 본성(本性)과 같은 의미이다. “자기 마음을 극진히 하는 사람은 자기 본성(本性)을 알 수 있으니, 자기의 본성을 알 수 있으면 천명(天命)을 알 수 있다. 자기 마음을 보존하여 자기 본성을 키워가는 것이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 라고 맹자(孟子)는 말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윤리의 법과 자연의 원리로서의 천(天)의 개념을 내재화 한 것이다. 공자는 천(天)을 인격적인 신으로서 초월적 존재로 말한 반면에, 맹자는 인격적인 신보다도 자연의 원리로서 천(天)의 개념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면에서 천의 개념이 초월적인 단일신론에서 내재적인 일원론으로 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유교를 인본적인 사상이나 윤리로 잘못 이해하게 만든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유교의 인간 본성(本性) 안에 내재하는 사상은「중용(中庸)」에서도 볼 수 있다.
유교에서 발달한 성(性)의 철학은 앞에서 설명한 천(天)의 학설에서 유래한다. 중용에서 천도(天道)는 신비주의적인 합일(合一) 사상을 나타내며 하늘과의 합일(合一)은 인간 안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 안에서 우주적인 조화(調和)로 특징지울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천도(天道)는 하늘과 인간의 완벽한 합일(合一)이라는 표현에서 더 잘 나타나는데, 이는 우주-도덕적 혹은 인간-사회적 차원의 사고를 통합(統合)한 것이라고 줄리아 칭은 해석한다. 「중용(中庸)」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문제 중의 하나는 하늘이 부여한 인간의 성(性)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또한 인간과 하늘의 합일(合一)은 마음의 평정(平靜)과 화합(和合)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말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성(性)에 의해 생성되고 존재한다는 의미이고, 인간의 삶의 목적은 이 본성(本性)과 조화롭게 사는 것을 뜻한다.
「중용(中庸)」의 머리말에서 “하늘이 명(命)한 것이 곧 성(性)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유영모는 인간의 성(性)을 영(靈)과 연결시켜 해석한다. 한자 ‘성(性)’이라는 말은 마음 ‘심’(心)자와 날 ‘생’(生)자로 구성되어 있다. 초기 유교인들은 성(性)을 정신적인 활동으로 해석하였지만, 성리학자들은 성(性)을 단순히 도덕적 규범과 형이상학적인 원리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석은 성리학자의 이러한 해석을 비판한다. 다석은 초기 유교의 신(神) 이해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이라는 관점에서 신(神)의 개념을 해석한다. 그리고 영(靈)이라는 관점에서, 유교의 천(天)의 개념을 해석하고, 영(靈)적인 하느님을 말한다. 다석은 ‘유교의 성(性), 그 자체는 하느님이 보낸 자다’라고 말한다. “요한 복음 6장 29절에 한아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한아님의 일이니라고 하였다. 이 성(性)을 찾아야 원혁명(元革命)을 할 수 있다” 고 다석은 생각하고 성(性)을 ‘하느님이 보낸 자’로 해석한다. 다석 유영모는 인간의 성(性)에 나타난 하느님의 현존을 바로 ‘성령’(聖靈)으로 이해한다. 이 인간의 성(性)을 깨달은 사람을 유교에서는 군자(君子)라고 말한다. 자기 수양을 통하여 자기를 실현(實現)하는 것이 군자(君子)가 이루어야 할 과제이다.
유교의 정신적인 자기 수양의 최종 목적은 성(誠)의 삶을 통하여 하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결국에 천도(天道)를 깨달아 성인(聖人)이 되는 것이다. 이 성(誠)은 유교의 윤리 교훈의 전체를 요약해 놓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성(誠)은 성인(聖人)의 마음의 상태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성(誠)이 군자(君子)가 자기 수양을 통하여 성취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이다.
진송첩(陈荣捷, Chan Wing-tsit)은 성(誠)이란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인간과 하늘이 동시에 ‘하나’가 되어 실천하는 힘이다라고 해석한다. 성(誠)이란 하늘의 도(道)이며, 정성되게 하는 것이 인간의 도(道)이다. 이 인간의 도(道)는 꼭 성취되어야 하는 것으로 「중용(中庸)」은 정의한다.
이와 같은 의미의 성(誠)은「맹자(孟子)」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성(誠)이란 하늘의 도(道)이며, 인간의 도(道)는 어떻게 해야 성실하게 되느냐를 생각하는 것이다.” 다석 유영모는 이러한 유교의 성(誠) 개념을 받아들이고, 성(誠)을 하느님의 말씀 또는 하늘의 진리로 나름대로 해석하였다
성(誠)이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유교에서 분명히 말하기를 참(誠)은 하늘이다. 이 참을 하려는 것이 사람의 길이다. 이 참을 얻는 것이 군자(君子)의 길이다.
성(誠)을 생각하는 것이 사는 길이다. 참(誠)을 그리워해야 한다. 참은 하늘의 길이고 참을 그리워하는 것이 참의 길이다. 유교의 성(誠)의 윤리가치관을 다석은 ‘매일 하느님께 헌신하는 삶’으로 적용하였다. 다석 유영모는 ‘참 나’(眞我)를 실현한 사람을 성인(聖人)으로 여겼다. 참사람을 깨달은 성인(聖人)이 곧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하느님의 아들인 성인은 자기 수양뿐만 아니라 지적, 윤리적, 영적 삶 등 모든 면에서 완덕(完德)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 영적 자기 수양의 기준은「대학(大學)」에 잘 나와 있다.
자기 마음과 본성(本性)을 다스리는 자기 수양의 중요성을 이해하려면「대학(大學)」을 공부하라고 하였다. 유영모는 무엇보다도 유교를 알려면 대학을 공부하여야 한다고 하였고, 군자(君子)나 진인(眞人)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대학의 말씀대로 마음을 수양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옛날부터 사람은 밝은 속알(明德)을 세상(天下)에 밝히려고 애썼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 명덕(明德)을 밝히려고 하는 이는 먼저 천하보다 제 나라를 다스릴 줄(治國)을 알아야 한다.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이는 무엇보다 먼저 제 집을 바르게(齊家) 할 줄 알아야 한다. 집을 바르게 하기 앞서 제 몸을 닦아야(修身) 한다. 몸을 닦기 앞서 마음을 바로 가져야(心正) 한다. 마음이 바르자면 뜻이 참되어야(意誠) 한다. 뜻을 참되게 하려면 무엇을 알아야(致知) 한다. 참 뜻인지 못된 뜻인지 알려면 만물의 성질을 알아야(格物) 한다. 곧 과학을 하여야 한다. 이것이 물유본말사유종시(物有本末, 事有終始)이다.”
유교의 신(神)의 문제는 이와 같은 하느님 이해와 하느님의 개념의 발전 과정을 통해서 흥미진지하게 전개되었다. 유교의 신(神)의 문제는 초기 유신론적인 믿음에서 하늘과 인간의 합일(合一)의 의미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本性) 안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범신론(汎神論)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다. 인간 본성(本性) 안에 내재하는 하늘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 수양과 자기의 훈련을 통하여 자신의 덕(德)과 영(靈)적인 마음을 닦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이렇게 마음을 닦고 사물의 이치(理致)를 깨닫는 것을 성(誠)이라고 한다.
대학의 자기수신(自己修身)은 다석의 경건한 종교생활과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장의 글에서 성리학에서 말하는 태극(太極)의 철학적인 의미를 살펴 본 후에, 태극(太極)을 재해석하고 재개념화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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