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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 신부의 "다석의 하느님"(6) 본문
윤정현 신부의 "다석의 하느님"(6)
박사논문
2015. 8. 25.
긍정신학, 다석사상, 부정신학, 없이 계시는 하느님, 유영모, 윤정현, 토마스 머튼
성공회 청주 수동성당 윤정현 신부의 "다석의 하느님"(6)
의식과 사건이 객관적으로 서로 직면하지 않는 즉, 무의식과 작용하고 있는 의식이 일치되는 곳, 주관과 객관이 구분이 되지 않거나 분리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주객의 일치가 다석 유영모의 사고의 궁극점이다. 유영모는 그의 전 삶을 통하여 실체와 일치, 즉 ‘하나에로 귀일 (歸一)’ 하려고 했다. 유영모의 사상에서 ‘하나’는 궁극적 실재로서 하느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유기체적인 사고에서는 유(有)로부터 분리되는 무(無)는 순수한 무(無)가 아니다. 모든 것에서 분리된 ‘하나’는 순수한 ‘하나’가 아니고, 차별에서 분리된 ‘동등성’은 순수한 ‘동등성’이 아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느님도 존재하지 않는다. 불교의 기본적인 사고인 이 순수한 무(無)는 정통 그리스도교 사상과는 다른 부정신학(否定 神學)의 전통에서 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하느님을 아는 길은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하나는 하느님이 누구인지 개념의 정의를 통해서 아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否定)의 언어를 사용하여 개념을 넘어 있는 하느님을 아는 방법이다. 전자를 긍정적인 방법(kataphatic way) 이라고 하고, 후자를 부정적인 방법(apophatic) 이라고 말한다. 그리스어 ‘카타파시스’ (kataphasis)는 ‘긍정’(肯定)을, ‘아포파시스’ (apophasis)는 ‘부정’(否定) 또는 ‘부인’(否認)을 뜻한다. 카타파틱 방법은 ‘긍정’을 통해서 하느님을 이해하는 전통이라면, 아파파틱 방법은 ‘부정’을 통해서 하느님을 이해하는 전통을 말한다.
『내적 체험』(Inner Experience)을 쓴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긍정적인 방법으로 하느님을 아는 전통을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부정적 (否定的)인 방법을 통해서 하느님을 인식하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점차로 ‘부재하는’ 하느님에 익숙해 있다. 말하자면 모든 인간 경험에서 ‘없이 계시는’ 하느님에 익숙해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둠’(darkness), 즉 모든 이름과 형상을 넘어 설명되는 아포파틱 빛(apophatic light)으로 파고 들어가서 하느님 개념을 이해하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머튼은 모든 생각, 욕구, 희망, 공포, 형상 그리고 모든 야망 등 이 모든 것들은 망각의 구름 아래서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머튼의 “잊어라, 잊어라, 잊어라 … ”라는 말은 십자가의 성 요한의 “무(無), 무(無), 무(無)”라는 말을 생각케 한다.
우리가 하느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하느님은 알려진다고 머튼은 말한다. 우리가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은 발견된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번쩍이는 어둠’으로써, 가장 ‘황홀한 밝은 밤’으로써 체험된다. 이 역설적(逆說的)인 표현은 다석 유영모의 사상에서도 보인다. 본 논문에서 이러한 역설적인 면을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모든 것과 무(無)’
Todo y Nada. 이 스페인어는 ‘모든 것과 무’를 뜻한다. 여기에서 토도(Todo) 즉, ‘모든 것’은 ‘하느님’을 의미한다. 이 하느님은 모든 것의 완전성 안에 포함된다. 하느님과 ‘무’(無)가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서구사회에서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한다. 하나는 하느님께서 ‘무’ (無)에서 세상을 창조하셨다(creatio ex nihilo)는 뜻에서의 ‘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 것도 없는 ‘무’ 즉, 허무적인 의미(nihilistic sense)에서의 ‘무’이다.
이러한 주장은 인간에게 의미를 주고, 완성을 약속하는 하느님 이라는 신학에서는 상호 모순적이다. 서구세계에서 이해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무(無)와는 대조적으로 사용하는 서구의 부정신학(apophatic tradition) 의 전통에서의 무(無)는 동양 사상의 무(無)나 공(空)과 상통(相通)하는 개념 이다.
유영모는 허공(虛空)에서 절대 존재를 찾는다. 오로지 부정(否定)이나 무(無) 와 직면하는 차원에서 절대를 말한다. 유영모의 하느님 이해는 불교사상과 서구의 부정신학의 전통에서 말하는 개념과 매우 가깝다. 다석 유영모의 절대 존재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논리로 인식되지 않고 ‘이것이면서 저것도’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논리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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