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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5장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상민 본문
마5장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상민
2016. 7. 19. 22:07
마5장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상민 목사 2013-08-04
대구서문교회 http://www.seomoon.or.kr/
오늘도 예수님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눈물을 흘리는 자, 애통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웃음이 햇빛과 같은 축복이라면 눈물은 단비와 같은 축복이다. 이번에 실크로드를 가서 보니까 비가 오지 않으면 죽은 땅, 광야비가 오는 땅은 생명이 있는 땅이었다. 눈물은 영혼에 내리는 단비로 우리의 죽은 영혼을 살리고, 더러운 영혼을 정화시켜 주며, 화가 수그러들게 하고,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게 한다. 이렇게 눈물은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준다. 그리스도인들은 남자나 여자나 ‘울보남’, ‘울보녀’가 되어야 한다.
애통이라는 말은 눈물과 더불어 터져 나오는 “심한 아픔”이라는 말이다. ‘모원단장(母猿斷腸)’은 자식을 잃은 슬픔이 어미 원숭이의 창자를 끊어지게 만들었다는 뜻인데, 극심한 슬픔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성경의 위대한 신앙인들은 한결같이 눈물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잘못했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 눈물을 흘렸다.(시 6:6) 아브라함도 아내를 잃었을 때 울었다. 한나는 눈물로 기도할 때 이스라엘 민족을 살린 사무엘을 낳을 수 있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였다. 히스기야는 눈물의 기도로 생명을 15년이나 연장 받았다. 예수님도 나사로가 죽었을 때(요 11:35), 멸망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는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면서(눅 19:41),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히 5:7) 눈물 흘리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애통해야 하는가? ①나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주신 예수님의 희생, 사랑을 생각하고 애통해야 한다. 캐나다에 이민 갔던 남광진집사는 폭행으로 구속된 아들을 석방시켜주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 20만불을 지불했고, 그 사실을 안 아들은 회개하고 다시는 죄짓지 않았다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셨다. 날 위해 예수님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으셨다. 그 사실에 애통하자. ②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죄짓고 사는 무기력한 나의 모습 때문에 애통하자. 롬 7:19, 24절에 보면 바울은 구원 받은 자로서 자기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 것이 원통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 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애통했다. 베드로도 예수님께서 붙잡히시기 전에 다른 사람이 다 버려도 자신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다가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닭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며 울었다. 이 눈물은 베드로에게 있어서 대전환점이 되는 애통함이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부끄럽게 하며 사는 나의 무기력 때문에 흘리는 애통의 눈물이 있기를 바란다. ③다른 사람의 아픔과 죄를 보고 애통해야 한다.(마 11:16-17) 현대인은 감정을 잃어버렸습니다. 형제가 아파해도 그건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상처받고 아파하는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해서 더 힘들게 만든다.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다.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슬픔 가운데 있는 마리아 때문이다. 슬퍼하는 사람을 보자 예수님의 마음에도 슬픔이 밀려와서 애통하며 눈물을 흘리셨던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우셨다.(눅 19:41) 마음 아파하는 이웃을 생각하며 불쌍히 여겨 울어보았는가? 죄악과 불법이 만연된 세상이 안타까워 울어보았는가? 우리 교회에서 시각장애인 개안 수술 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바자회를 준비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애통하는 마음으로 참여하자. ④지옥불로 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바라보고 애통하자. 예수님께서는 멸망해 가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탄식하셨다. 아직도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불쌍한 마음에 애통해 보았는가? 오늘 멸망 길로 달려가는 90%의 이웃을 보고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자.
과연 나는 지금 어떤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잠시 있다가 사라질 부질없는 세상 것 때문에 싸구려 피 눈물을 흘리지는 않는가? 날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딸답게 살지 못하는 것이 분하고 원통해서, 불쌍한 이웃 때문에, 지옥불로 달려가는 세상 사람들 때문에 애통하자! 이렇게 애통하는 자에게는 진정한 위로가 하늘에서부터 내려온다고 했다. ‘위로’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파라칼레오’인데, 이 단어는 ‘곁에서 부르다’는 뜻으로 ‘성령’(파라클레토스)과 동일 어원이다. 곧 우리가 애통해 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오셔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함께 기도해 주시므로 우리의 애통이 평안으로, 근심이 성숙으로, 고난이 선으로 바뀌어 우리가 위로를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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