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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위대한 대화. 예수님과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과의 대화 마무리 편 본문
예수님과 위대한 대화
예수님과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과의 대화 마무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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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작가
2020. 9. 6. 9:06
예수님과 위대한 대화 4: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요한복음 4장 1~42)
요약:
사마리아 여인은 자의든 타의 던 간에 한두 번도 아닌 다섯 번이나 버림을 받은 여인이었다. 그 인생이 얼마나 공허했을까? 그 인생의 상실감과 좌절감은 또 얼마나 컸었을까?
이렇게 공허하고 상실감과 좌절감으로 지쳐있는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되신 예수님이 직접 찾아오셨다.
여인은 죄인임을 지적 당하고 나서는 예배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으로 보아 죄를 깨닫는 것과 예배와는 상관이 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의 초자연적 지식에 놀라 이제 겨우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았다. 그 여자는 중심에 있어서 이제부터 종교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인간은 초자연(하나님)을 접촉하기 전에는 진정한 종교심과 영적 사색을 가져보지 못한다. 그 여자는 이제부터 정상적으로 예수님에게 돌아오기 시작한다.
예수님이 단지 지나가는 유대인이 아니라 선지자 같은 사람임을 알고는 선지자라고 고백한다.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고 평소에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질문한다.
죄를 깨닫는 자는 예배를 사모하게 되어 있다.
사마리아인들은 조상들의 행한 것을 선례로 택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했다. 비록 이 여자는 그때까지 자기 백성의 전통을 따라 행했으나 그것으로 만족이 없었다. 여기서 예배란 아무런 종류의 예배를 다 포함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예배란 제사와 관련된 예배로서 공적으로 엄숙하게 표현하는 신앙의 행위를 가리킨다.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았기 때문에 평소에 해결하지 못하고 나오던 중대한 문제를 묻기로 하였다. 그것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참 예배가 되겠는가 하는 문제였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사마리아인들은 주전 400년경에 사마리아 그리 심산에 다 성전을 세우고 거기서 예배를 드려야 정당하다고 주장하였으며, 성경을 모세 오경만 믿었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본래부터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려야 정당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여자는 참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리심산에서 예배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한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이렇게 예배에 대해 무지하게 된 것은 사마리아인 들은 오직 모세 오경만을 인정하고 역사서나 선지서 등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구약의 제사가 그림자와 의식적인데 비하여 그것들의 실체요 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사드리게 될 것을 가리킨다. 또 이 진정이라는 말은 헬라 원어로 알레데이아인데 진리라는 말이다. 즉 진리로 예배드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성도의 영이 성령을 힘입어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그리스도와 영적 교통을 하며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말씀에 복종하며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러한 예배가 영적 예배요, 성도의 영이 사는 예배이다. 하나님을 영으로 섬기려면 먼저 기도를 많이 하여 중생한 영이 하나님과 교통하고 영의 세계를 찾아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그 다음에는 바른 진리를 찾고 좀 더 깊은 진리를 계속 찾아서 들어가야 한다.
참 예배자는 예수님이 참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아는 자이다. 진리로 드리는 예배란 예수님을 통한 예배를 말한다.
사마리아 여자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자였다.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것을 알게 해 주고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것을 믿었다.
아마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이러한 마음이 있는 것을 아시고 구원하기 위하여 그 동네로 가신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의 심리가 이제 진정한 종교로 바로 움직이는 것을 보시고 그 기회를 타서 자기가 메시아이신 것을 알려 주신다.
이렇게 사모하여 고대하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심령을 열어 주시고 당신을 밝히 알도록 해 주신다.
결론:
예수님은 사마리아 지방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어떤 이유로 이 여인을 택하였을까? 아마도 이 여인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이 없었고 또 이런 사람도 생수 되신 예수님만 만나면 얼마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그를 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대부분 사람들 중에 아무리 어렵고 힘든 산전수전을 겪었거나 아니면 지금 말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이 여인보다 더 어려운 인생을 산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자의든 타의 든 간에 한두 번도 아닌 다섯 번이나 버림을 받은 여인이었다.
그 인생이 얼마나 공허했을까? 그 인생의 상실감과 좌절감은 또 얼마나 컸을까?
이렇게 공허하고 상실감과 좌절감으로 지쳐있는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되신 예수님이 직접 찾아오셨다.
혹시 목이 마르고 갈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 있다면 생수 되신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 좌절하고 지쳐서 이젠 완전 목이 말라버린 분이 있다면 예수님을 찾으시길 기도한다. 그리고 그 예수님만 붙들면 우리의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항상 흘러넘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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