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본문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한복음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태초’라 함은 ‘아주 아주 먼 옛날’이라는 뜻 보다는 ‘모든 것이 시작될 그때’라는 의미를 갖는다.
모든 만물은 창조자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신 분으로서 시작이 없는 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의 우리 인간의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 인간은 영원이라는 개념도 사실 정확하게 인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존재 자체가 영원이신 분, 영원 전부터 계신 이의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계셨으나 하나님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존재들은 각기 시작이 있는 존재들이다.
하늘의 세계도 땅의 세계도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서 시작된 시점이 있다.
그 시점은 아주 아주 먼 옛날이 되겠지만 아무리 아득한 먼 옛날이라 할지라도 분명 그 모든 것이 시작한 시점이 있는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모든 만물이 시작되던 그 시점에 말씀이 계셨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로고스께서 모든 만물의 시작 시점에 이미 계셨던 것이다.
즉 하나님의 로고스는 피조물, 즉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존재가 아닌 것이다.
로고스께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라면 그분도 역시 태초 이후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로고스께서는 태초의 시점에 이미 존재하셨다.
요한복음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로고스께서는 태초에 이미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로고스가 곧 하나님이시다.
요한복음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로고스의 존재는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나타나신 아들이시다.
하나님으로부터 나타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래서 나타나신 분을 아들이라 칭하고 그 존재의 근원을 아버지라 칭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내어놓으신 분이시고 아들은 그 아버지로부터 나타나신 분이시다.
이 사실을 마음 깊이 깨닫고 믿는 것이 우리 영혼에게 생명의 근원이 된다.
영혼을 살리는 생명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로고스이심을 믿는 것에서 시작한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로고스로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진심으로 깨닫고 믿는 것에서 시작된다.
말씀이신 예수님, 하나님의 로고스이신 예수님을 깨닫고 믿는 것, 이것은 우리 영혼의 심장과 같다 할 수 있다.
심장이 없는 육체는 살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로고스를 믿지 않는 영혼은 살 수 없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야말로 우리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다.
가장 근원적인 생명의 말씀이다.
(요한복음 강해 참고)
요한복음에는 로고스이신 예수님에 대한 많은 가르침이 담겨 있다.
요한복음을 많이 읽으면서 로고스이신 예수님, 말씀이신 예수님, 아버지로부터 나타나신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끊임없이 묵상하고 기도해야 한다.
신약성경 전체의 가르침도 사실 로고스이신 예수님에 대한 가르침이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로고스로서 깨닫고 믿기 위해서 신약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기도할 때 성령의 가르침에 따라 성경 전체의 뜻을 보다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고 예수님의 존재를 보다 선명하게 깨닫고 믿을 수 있게 된다.
아주 경치 좋은 절경을 보러 갔을 때 대부분은 산 높은 곳에 올라서야 비로소 그 놀라운 광경 전체를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산에 오르기 전에 평지에서 보아도 아름다운 경치가 보이겠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게 된다.
산을 조금 오른 다음에 산비탈 아래로 경치를 보게 되면 평지에서 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게 된다.
많은 수고와 고생 끝에 마침내 산 정상에 올라서 360도로 펼쳐진 절경을 한 눈에 담게 될 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과 감격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감동은 그 자리에 올라서서 자신의 눈으로 직접 그 광경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그 자리에서 직접 경험한 놀라운 경험을 전달할 수는 없다.
말씀에 대한 경험, 로고스에 대한 경험, 예수님의 존재에 대한 경험도 마찬가지이다.
성경 전체를 끊임없이 읽고 묵상하며 쉬지 않는 기도의 시간들을 무수히 보낼수록 점점 더 선명하게 점점 더 거대하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로고스이신 하나님의 독생자의 존재가 더 엄청나게 더 감격스럽게 경험되게 된다.
최고의 절경을 정말로 제대로 경험하려면 높은 산을 올라가는 수 밖에 없다.
힘들고 어려운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산을 한 발 한 발 올라가야 한다.
인내하고 인내하면서 멈추지 말고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고 올라가야 한다.
마침내 어느 순간 자신의 발 위로 아무 것도 없는 정상에 우뚝 서게 되는 순간 자신의 눈 앞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최고의 절경이 펼쳐지게 된다.
신약성경 전체를 꾸준히 읽어야 한다.
읽고 읽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기도해야 한다.
성령이여 도우소서! 성령이여 가르쳐 주소서!
끊임없이 간구해야 한다.
이러한 수고를 통해서 누구라도 마침내 생명이 충만한 영혼에 이를 수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거대하게 느껴지는 순간까지, 이 말씀이 마음의 눈에 선명하게 느껴지는 순간까지 경건의 수고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요한복음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출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작성자 손주성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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