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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하늘님)은 어떤 분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본문

하나님/하나님

하느님(=하늘님)은 어떤 분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柏道 2020. 8. 6. 04:36

하느님(=하늘님)은 어떤 분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송부웅 역사전문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16-08-23


하느님은 하늘님을 뜻한다. 국어문법상 하늘님의 ㄹ이 탈락되어 하느님이 된 것이다. 따라서 먼저 하늘에 관하여 알아야 하늘님을 알 수 있다. 우리민족의 3대 경전 중 치화경인 참전계경(叅佺戒經) 제 1훈 성리훈(誠理訓) 제 2조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하늘(=天천)에는 두 가지의 하늘로 기록되어 있다.

첫째는 인간이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하늘 즉, 해, 달, 별, 바람, 비, 우뢰 등으로서, 형상(形象)이 있는 하늘(天)이라 하였다. 이는 유형천(有形天)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의 소리말로는 한울, 뜻글인 한문으로는 우주(宇宙)라고 부르는 것이다.

둘째는 인간의 육안(肉眼)으로 볼 수 없는 하늘 즉, 만물을 보지 않음이 없고, 소리를 듣지 않음이 없는, 형상(形象)이 없는 하늘(天)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무형천(無形天)을 뜻하는 것으로, 유형천인 하늘의 하늘(天之天)이라 하였으니, 이는 천지신명으로 한얼, 또는 현대과학에서 말하는 우주심(宇宙心)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은 한울인 우주(宇宙)와 한얼인 우주심(宇宙心)을 합하여 부르는 명칭으로 하늘님 즉, 하느님은 우주심(宇宙心)인 한얼과 우주인 한울을 합하여 부르는 명칭인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바로 우주를 명칭한 것이다. 우주(宇宙)는 거대한 생명체로서 생명력을 가지고 운행되고 있다는 것을 과학자들은 증명하였고, 이 생명력을 우주심(宇宙心)이라고 했다. 따라서 우주심에 의하여 거대한 우주가 존재하고, 운행되고 있음을 부정할 현대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宇宙)와 우주심(宇宙心)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관계로서 우주심(宇宙心)인 한얼과 우주(宇宙)인 한울이 하느님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즉, 하느님은 한울과 한얼을 총합한 우주를 부르는 명칭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주 자체가, 대자연 자체가 바로 하늘이요, 하느님이신 것이다. 곧, 우주는 거대한 대 생명체로서 우리가 불러온 하느님인 것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사람이 유형(有形)의 몸과 무형(無形)의 영혼(정신)으로 구성되어 한 생명체로 존재하고 살아가듯이, 하느님은 유형의 한울인 우주와 무형의 한얼인 우주심으로 구성된 거대한 생명체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하느님을 닮아난 소우주라고 하는 것이며, 사람은 하느님을 닮은 자녀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요.

하느님은 사람의 부모이신 것이며, 사람을 낳으신 최초의 조상인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조상중의 조상이신 것이다. 또한 사람은 하느님을 닮은 소우주로, 사람의 몸은 소(小)울이며, 사람의 영혼(정신)은 소(小)얼인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내적인 소(小)얼이 하느님의 한얼과 통하도록 되어있고, 사람의 외적인 소(小)울은 하느님의 한울과 통하도록 되어 있다고 본다. 즉, 하느님과 사람은 내적, 외적으로, 마치 어머니와 복중의 아기가 탯줄로 연결되어 있듯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사람은 하느님 품안에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과 우주의 존재 및 운행의 원리는 곧, 하느님의 존재원리요, 운행의 원리인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는 것은 우주의 원리에 순응하는 것이다. 사람은 거대한 우주의 구성요소(構成要素)중 하나이듯이, 사람은 하느님의 구성요소이며, 분신체이다. 즉, 하느님의 구성요소인 하나의 세포와 같은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야한다는 종교적인 가르침도 알고 보면, 사람은 소(小)울과 소(小)얼을 넘어 한울과 한얼의 일부 즉, 한울과 한얼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소아(小我)에서 대아(大我)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함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따라서 사람이 사람을 해치고 미워함은 하느님을 해치고 미워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小)얼이 한얼과 통하는 길은, 사람을 사랑하고, 이웃을 도와주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조상을 숭배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또한 대 우주는 하느님의 몸과 같으니, 사람이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몸을 사랑하고 보존하는 것이다. 어찌 자연을 함부로 대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자연을 보고 기뻐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늘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고, 하늘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오른손이 왼손을 꼬집는다면, 손이 발을 때린다면, 손이 얼굴을 상하게 한다면 어찌될 것인가.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이나 자연에게 행한 대로, 바로 자기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어찌 사람들이 이러한 원리를 깨닫지 않을 것인가?

인과응보(因果應報)나 화복보응(禍福報應), 카르마 법칙이 모두 이를 뜻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므로 참전계경(叅佺戒經)에서 하느님을 공경하라, 그래야 하느님이 응대하신다고 한 것이다. 하느님이 응대하신다는 것은, 마치 풀이나 나무가, 비나 이슬, 서리와 눈을 받음과 같이, 인간도 하느님을 공경할 때, 하느님의 응대함 즉, 하느님의 사랑을 입게 된다고 한 뜻을 상고 (詳考)해야 한다.

하느님의 삼신일체(三神一體)란 무엇인가?

우리 조상들은 하느님을 인식할 때, 하느님은 삼신일체(三神一體)로 계시는 분으로 이해하고 설명하였다.

그러면 삼신일체(三神一體)란 무엇을 뜻하는가?

앞에서 잠간 논하였듯이 삼신일체(三神一體)란 하느님의 체(體)와 용(用)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다. 민족경전인 삼일신고(三一神誥)의 신훈(神訓)편에 하느님의 내성(內性)은 즉, 한얼은 대덕(大德)하고, 대혜(大慧)하며, 대력(大力)하다고 하였다. 이 때 하느님은 체(體)로는 하나이지만, 내성인 한얼은 대덕과 대혜와 대력하심으로, 외형인 한울에 대한 작용을 조화신(造化神), 교화신(敎化神), 치화신(治化神)인 삼신(三神)으로 설명하였다.

여기서의 신(神)은 귀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크신 능력의 맑고 밝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삼신(三神)이란 하느님의 내성인 한얼이 외형인 한울 속에서 하시는 일 즉, 용(用)에 대하여 표현하는 것으로,

첫째로 하느님(한얼)은 대덕(大德)하시며, 대덕(大德)하시므로 천지만물을 조화(造化)하셨다. 즉, 천지만물과 사람을 낳으셨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조화신(造化神), 또는 조화주(造化主)라 하며, 조화주(造化主)이신 하느님을 사람의 부모같이 모시고, 공경하는 대상으로 환인(桓因)이라 칭하였으니, 바꾸어 말하면, 환인(桓因)이란 말은 조화주(造化主)요, 조화신(造化神)이신 하느님이 부모와 같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둘째로 하느님(한얼)은 대혜(大慧)하시며, 대혜(大慧)하시므로 천지만물과 사람을 교화(敎化)하시어 인간(人間)과 만물(萬物)을 인물(人.物)되게 하신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교화신(敎化神) 또는 교화주(敎化主)라 하며, 교화주(敎化主)이신 하느님을 사람의 스승같이 모시고, 공경하는 대상으로 환웅(桓雄)이라 칭하였으니, 환웅(桓雄)이란 교화주(敎化主)요, 교화신(敎化神)이신 하느님이 스승과 같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셋째로 하느님(한얼)은 대력(大力)하시며, 대력(大力)하시므로 천지만물과 사람을 다스리시며, 천지만물과 사람을 다스리시므로 치화신(治化神)이요, 또는 치화주(治化主)라 하였다. 치화주(治化主)이신 하느님을 임금같이 모시고, 공경하는 대상으로 환검(桓儉)이라 칭하였으니, 바꾸어 말하면, 환검(桓儉)이란 치화주(治化主)요, 치화신(治化神)이신 하느님이 임금과 같다는 뜻이다.

따라서 삼신일체(三神一體)란, 하느님의 체(體)는 영(靈)으로서, 한얼로서 하나이지만, 하시는 일은 조화신(造化神), 교화신(敎化神), 치화신(治化神)으로서 사람과 만물 가운데 역사(役事)하시므로, 이를 삼신일체(三神一體)의 하느님이라고 하는 것이며, 따라서 하느님(한얼)의 삼신(三神)을 약칭하여, 환인(桓因), 환웅(桓雄), 환검(桓儉)이라 하는 것이다.
즉, 하느님은 천지만물과 사람의 부모이시며, 천지만물과 사람의 스승이시며, 천지만물과 사람의 임금이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지상에서 부모와 스승과 임금을 하느님처럼 여기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을 공경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를 사람으로 비유하여 설명하면, 사람은 삼종일체(三宗一體)라고 할 수 있다. 이 때의 삼종(三宗)은 사람도, 한 사람이 하는 일이나 자격을 논한다면, 삼종(三宗)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나는 한 사람으로써 남의 부모일 수도 있고, 남의 스승일 수도 있고, 많은 사람의 지도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첫째로 내가 자식을 낳아 부모가 되어 덕과 사랑으로 자식을 키웠다면, 자식으로부터 부모님이라는 칭호로 효(孝)를 받게 될 것이며, 둘째로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나 교수가 되어 지혜와 지식으로 학생들을 바르게 지도하였다면, 나는 스승으로써 학생들로부터 선생님이라는 칭호로 공경을 받게 될 것이며, 셋째로 내가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주가 되어 경륜과 경제력으로 회사를 투명하고 의롭게 잘 운영하였다면, 회사원으로부터 사장님이라는 칭호로 충성을 받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내가 세 가지의 자격으로 일을 할 때, 몸은 하나이지만 나를 아버지라 부르는 자식이 있고,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제자도 있고, 나를 사장님하고 부르는 사원도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몸은 하나이지만 하는 일이나 역할이 세 가지가 되듯이, 하느님도 체(體)로는 한 분이지만, 하는 일이나 역할 즉, 하느님의 용(用)을 설명할 때는 삼신(三神)이라 하고, 인간에 대하여는 삼종(三宗)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삼신(三神)과 삼종(三宗)은 그 뜻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민족의 조상인 역사적 인물의 삼성(三聖)

우리민족의 조상으로 나라를 세우고 백성들을 잘 다스려 추앙을 받는 역사적 인물인 환인천제(桓仁天帝) 환웅천왕(桓雄天王) 단군왕검황제(檀君王儉皇帝)를 우리는 삼성(三聖)으로, 또는 삼선(三仙)으로 모시고 공경하는 것이다.

첫째로 환인천제(桓仁天帝)는 69,096년 전 환국(桓國)을 다스리신 우두머리로 건국조(建國祖)이시며, 환국(桓國)은 나누면 12국이고, 합하면 한나라인 환국(桓國)으로써, 그 영토는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동서가 이만리(二萬里)요. 남북이 오만리(五萬里)로 오늘날의 아시아 전체를 뜻하고 있으며, 역세(歷世)는 7세(世)를 이어 갔으며, 역년(歷年)은 7세가 공히 3,301년, 또는 63,182년이 되었다고 하였으나, 아주 오랜 세월이라 자세히 알 수 없다고 하였다.

둘째로 환웅천왕(桓雄天王)은 환국(桓國)의 도읍지 우루국으로 부터 분국하여 현 중국 서안(西安)의 태백산(太白山)을 중심으로 하여 5,913년 전 신시(神市) 배달국(倍達國)을 개천(開天)하신 국조(國祖)이시며, 배달국의 대수(代數)는 18대로서, 역년(歷年)은 1,565년이었다.

셋째로 단군왕검황제(檀君王儉皇帝)는 배달국(倍達國)을 계승하여 4,349년 전 옛 조선(古朝鮮)을 일으킨 개국조(開國祖)이시며, 조선의 대수(代數)는 47대까지 계속되었으나, 44대 단군 구물황제 때 국호를 대부여 라고 바꾸었으며, 삼한을 삼조선이라고 한 후, 해모수가 세운 북부여에 흡수될 때까지 역년(歷年)은 2,096년간이었다.

그런데 하느님의 용(用)으로 표시된 삼신(三神)인 환인(桓因-조화신) 환웅(桓雄-교화신) 환검(桓儉-치화신)과 역사의 조상으로서의 삼성(三聖)인 환인천제와 환웅천왕과 단군왕검 황제를 명칭이 비슷하여 혼돈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에 대한 삼신(三神)일체의 신관(神觀)과 역사의 조상으로서의 삼성(三聖)에 관한 역사관이 바로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구분되고 정립되지 않고서는 옛 역사를 바르게 풀 수 없고, 바른 신앙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우리민족이 오랜 역사를 통하여 조상을 숭배하고 공경하는 정성이 하느님을 공경하듯 하니, 삼성의 거룩한 조상을 하느님이 이신화인(以神化人)하여 왔다고 하면서, 하느님처럼 신앙하였던 것이다. 결코 그 믿음과 정성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한 믿음과 정성은 지금도 많은 종교에서 그들의 교조(敎祖)를 하느님으로, 또는 하느님이 이신화인(以神化人)하여 오신, 살아 계신 신(神)으로 믿는 신앙이 얼마나 많은가?

기독교를 비롯하여 한국의 신흥종교에서 그들의 교주(敎主)나 교조(敎祖)를 하느님으로, 상제(上帝)님으로, 살아 계신 신(神)으로 믿고 모시는 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고 근본의 하느님과 인간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아직 유치원의 신앙에 머물 것이며, 신앙의 완성은 또한 요원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옛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루속히 민족 신앙을 하는 분이나 민족사학자들이 하느님에 대한 신관(神觀)을 바로 깨달아 옛 역사를 해석하고 또, 하느님을 공경하여 성통공완을 이룰 때, 우리민족은 비로서 새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baedalung@hanmail.net

*필자/송부웅. 한민족상고역사연구회 연수원장. 역사전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