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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한자는 하나님말씀으로 된 글자입니다. 본문

하나님/하나님

한자는 하나님말씀으로 된 글자입니다.

柏道 2020. 6. 22. 09:46

한자는 하나님말씀으로 된 글자입니다.

 

 

https://goandcoming.blog.me/90117187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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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관련하여 매우 유익한 책이 있어 소개합니다. 국민일보 410일자 23면에 소개된『그리스도와 한자』는 한자 중 일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합니다. , 성화(聖畵)와 같다는 것이죠. 저자는 성경, 성전, 성자, 성령, 복음, 교훈, 전도, , , , 예배, 경배, 제사, 영광, 축복, , , 육 등등 우리 기독교적 개념의 한자를 파자(破字)하여 오직 성경에 의거해 분석함으로써 한자에 숨겨진 의미를 영적 차원에서 해설합니다. 아울러 한자에 담긴 선인들의 사상을 소개하고 현대를 사는 신앙인의 관점에서 재해석합니다. 책에는 총 70글자의 한자가 분석됩니다. 어떻게 이런 류의 글자가 만들어졌는지에 관한 학문적 논란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동아시아인들이 사용하는 한자 중에 성화(聖畵) 같은 글자가 있다는 명백한 사실은 외래 종교로 치부되는 기독교에 대한 저들의 강한 거부감을 완화시키는 데 다소간 도움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복음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이니까요. 이러한 관점에서 특별히 중국을 비롯한 한자문화권의 선교에 사명을 가지신 분들은 물론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일독을 적극 권합니다.

내용 중 예를 하나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 +

 

1. (), 말하다, 인구, 어귀 등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2. (어진 사람 )은 특별히 (사람 )과 구별하여어진 사람을 뜻하는 글자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위의 파자식은()어진 사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잠시 출애굽기 3장과 4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고난 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기 위해,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떼를 이끌고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른 모세를 불러 애굽의 바로에게 보내고자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에 모세는 자기가 말에 능치 못함을 내세워 애굽으로 가기를 거부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형인 말 잘하는 아론이 모세의 입을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하게 될 것( 4:14~16)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재차 가기를 명하십니다.

또한 모세는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12:3)라는 말씀에서 보듯이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 11:29)라고 스스로 말씀하신 예수님 외에 성경에 이름이 명시되어 온유한 사람이라고 기록된 유일한 사람입니다. 물론온유란 말은마음이 부드럽고 너그러움을 뜻하므로마음이 너그럽고 도탑다라는 의미의어질다와 거의 같은 뜻으로서 동의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위의 파자식에 나타난 어진 사람을 의미하는 글자인 온유한 사람인 모세를 의미하는 글자로 본다면, 온유한 사람인 모세()()()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위에서 살펴본 출애굽기 4장의 말씀 곧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말 잘하는 모세의 아론이 모세을 대신하게 된 것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은 이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원으로 하는 글자임이 명백하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로써 온유한 모세이 된 모세의 () 아론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의 을 의미하는 글자로도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관련성구 ( 4:14~16)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 이상의 내용은 다락방서원(clc) 刊 『그리스도와 한자』에서 인용 --

 

물론 책에 소개된 글자는 이뿐 아니라 영, , , 구원, 성탄, 성경, 성자, 성전, 예배, 경배, 전도, 교훈, 선악, , 사도 등등 우리 기독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한자어들이 거의 다 망라됩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갓피플, 네이트 등 인터넷에서 『그리스도와 한자』를 검색해보세요. 신앙의 성장과 한자 문화권의 전도와 선교에 도움을 주는 참으로 유익한 책이라 생각됩니다. 샬롬

 

 

오직 아버지께 들은 진리를 말씀하시는 그리스도 -- ()

 

(성인 )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글자는 성인, 거룩하다, 천자, 지존하다 등의 자훈이 있으며, 용례로는 聖子(성자), 聖靈(성령), 聖殿(성전) 등이 있습니다.

 

= + +

 

1. (), , 말 끝내다(어조사) 등의 뜻이 있습니다.

2. ()과 인구, 어귀, 말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3. (임금 ), 왕 노릇하다, 임금 등의 뜻을 가집니다.

 

파자식에 의하면 (성인 )()()()으로 풀어집니다.

 

헌데 귀는 말을 듣는 데 사용( 29:11)하고, 입은 말을 하는 데 사용( 40:5)하는 기관이므로 들음, 말함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면, 결국 듣고() 말하는() ()성인()이다.’라는 의미의 글자가 됩니다.

한편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의 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 44:6)라고 하시고,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이니라 ~”( 18:37)라고 하시므로 하나님예수님께서 친히 ()이심을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8:40에서는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하시고, 요한복음 8:26~28에는 “~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 17:7~8에는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라고 비슷한 취지의 말씀을 재차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의 말씀들을 요약하면 이신 예수님은 아버지이자, 이스라엘의 이신 하나님께 들은 것세상에 다시 말씀하신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스스로 만들어 내시거나 새롭게 창조하신 말씀이 아니라 위에 계신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다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로 보면 위에 적시한 성경 말씀들의 의미와 의 제자적 의미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또한 의 아랫부분에 위치한 자는 말씀하시는 아버지 곧 이스라엘의 이신 하나님( 44:6), 아버지께 들은 진리의 말씀을 다시 세상에 말씀하시는 아들이시자, 이신 예수님( 18:37)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으로 이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10:30)라고 하심 같이 아버지와 아들이 본래 한 분이심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듣고() 말씀하시는()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 글자이며, 이로써 선인들은 그분의 속성이라 할 수 있는 성인, 거룩하다, 지존하다 등의 뜻을 나타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을 의미하는 글자인 은 세상 사람들이 이른바 성인이라고 하는 고대 그리스의 철인 소크라테스나 유교의 공자, 혹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하늘 위나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있다)이라고 외쳤다는 불교의 석가모니와 같은 분들을 뜻하는 글자가 아닙니다. , 에게서 들은 것이 아닌 자기의 생각에 따라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한 사람들을 표현하는 글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세상에 성인이라 일컫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있을지라도 자의 본질적 어의(語義)에 관한 한 유감스럽지만 그분들은 모두가 사이비일 뿐입니다. 진정 옛사람들이 자로서 본래 나타내고자 한 참된 성인은 오직 성경이 증거하시는 바 아버지께 들은 진리의 말씀을 다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위해 우리의 王으로 세상에 오신 거룩하시고, 지존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자의 발(한자의 아랫부분)에 쓰이는 王대신에 壬(클 임, 북방 임)이 쓰이기도 하지만 그 의미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북방은 하나님이 계신 곳( 37:22, 14:13)을 암시하며 하나님은 크신 분( 95:3, 37:23)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북방크다라는 의미를 갖는 壬(클 임, 북방 임)자로 王자를 대신한다 해도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관련성구 (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말씀을 맞이 합시다. ---()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의미하는 聖誕(성탄)(탄생할 )자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 +

(탄생할 ) = (말씀) + (맞이할)

 

(말씀 ) 말씀, 말하다, 높다, () 등의 뜻을 갖는 글자이며, ()은 끌다, 맞이하다, 이끌어 들이다, 지체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파자식에 의하면, 자는 말씀()맞이함() 혹은말씀()이끌어 들임()탄생()이다.’라는 의미의 글자임을 알게 됩니다.

 

한편 성경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1)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1:23)고 하셨으며, 요한복음 1:14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고, 갈라디아서 3:10에서는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또한 갈라디아서 4:4~5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들을 요약하면, ‘태초에 말씀(logos)이라 하시는 하나님이 계셨으며, 이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율법에 속하여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속량하시고 자기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 사람과 같이 육신을 입으시고 처녀의 몸을 통해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오셨다.’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 처녀의 몸을 통해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자, 말씀()이신 예수님을 맞이함() 곧 전우주적 사건인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을 한 글자로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것이 입니다. 그리고 선인들은 이로써 태어나다, 크다, 허탄하다 등의 의미를 표현하는 글자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한 이 자의 어원적 의미에 부합하는 탄생은 석가모니도, 공자도 동서고금의 다른 그 어떤 위대하다는 사람의 태어남도 아니고, 오직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뿐입니다. 따라서 말씀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으신 석가모니가 나신 날을 말씀 맞이함을 의미하는 자를 써서 석가탄신일이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외람되오나 석가탄신일(釋迦誕辰日)자는 ()자로 바꾸어 석가생신일(釋迦生辰日)로 바로 잡아야 하며, 역시 같은 이유로 공자탄신일(孔子誕辰日)도 공자생신일(孔子生辰日)로 바꾸는 것이 순리일 것으로 사료됩니다.

아무튼 그 외에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그가 말씀이 아닌 이상 그 태어난 날에 자를 써서 표현할 권리는 없습니다. 진실로 은 오로지 성육신(incarnation)하신 하나님, 말씀(logos)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만의 전유물, 아니 전유어(專有語)가 되어야 합니다. 고로 오늘날 오직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날 만을 성탄절(聖誕節)이라 일컫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 성탄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성신인(聖神人;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자 흠 없는 완전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으로 이 땅의 가장 낮고 천한 베들레헴 마굿간에 태어나신 날, 예수님께서 친히 “~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 18:37)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하늘로부터 세상에 오시는 말씀이신 예수님맞이하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의 복되고 복된 날! 만세로부터 감취었던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 1:26, 3:9)인 구원의 복음의 기이한 일을 때가 차매 이 땅에 가시적으로 이루시기 시작하신 가슴 벅찬 이 기쁨의 날에 우리 모두 여호와를 지극히 높여 찬양합시다. 호산나!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 工(공)

 

잠언 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듯이 인격을 형성해 가는 시기인 어린이와 청소년기에 있어 바른 인성교육과 정서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에는 교회에 출석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기독교의 교리를 가르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교회학교(주일학교)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규학교교육에서 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학교의 교육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기독교의 교리를 습득하고 성도로서의 바른 소양을 갖추게 할 뿐 아니라, 건전한 사회인으로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성경말씀에 의거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교육의 과정으로 교회학교에서는 예배를 드린 후 각 반별로 모여 공과공부(工課工夫)를 하게 됩니다. 공과공부란 말은 물론 공과를 공부함을 뜻합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학생들에게 공과를 지도하시는 선생님이나 심지어는 교역자들조차 공과라는 낱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지 잘 모르면서 공과를 지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 工課(공과)라는 한자어가 어떠한 뜻을 품고 있는지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工(일 공)자를 보면 일, 공교하다, 만들다, 장인 등의 자훈을 가지며, 용례로는 工課工夫(공과공부), 工巧(공교), 工事(공사), 工匠(공장) 등이 있습니다. 이를 파자하여 분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 +

 

1. (하나 )하나, 처음, 모두, 오로지 등의 의미가 있으며, 여기서는 위에 있는 하늘과 하늘에 계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슥 14:9)을 상징합니다.

2. (위 아래로 통할 )위아래로 통하다, 뚫다, 셈대를 세우다 등의 뜻을 가집니다.

3. (하나 )은 역시 하나, 처음, 첫째 등의 자훈을 갖는 글자이지만, 여기서는 글자의 아래에 위치하여 아래의 세상 땅에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시 115:16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사람에게 주셨도다)

 

파자식은()‘위의 하늘(一)아래의 땅(一)연결하여 통하게 함()임’을 보여줍니다.

, 하늘을 상징하는 위의 자와 땅을 상징하는 아래의 자 그리고 땅과 하늘을 연결하여 위와 아래가 통하게 함을 의미하는 자를 합하여 자를 이루었습니다.

성경은 예레미야 33:2에서 하나님은 을 행하시며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신다고 밝히 말씀합니다. 또한 요한복음 5:17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하시니 나도 한다 하시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는 무슨 을 하신다는 말씀일까요? 이는 다름 아니라 아담의 불순종에 의한 원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살 소망이 없게된 이 땅의 불쌍한 인생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구속하시므로 말미암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다시 이끄시는 구원사역하늘연결하여 통하게하는 바로 그 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요 4:34~35) 이는 위에서 풀이한 바와 같이 자의 제자적 의미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의 에 있는 인류(一)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의와 생명의 하늘에 계신 하나님(一)께로 이끄시는 , 창세로부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이신 구원사역(요 17:4)을 형상화하여 ‘하나님의 일을 뜻하는 자를 만들고 이로써 ‘또는 ‘일을 하다라는 의미의 글자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하늘+사다리+땅)

한편 창세기 28:12~14에 보면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밧단아람으로 가던 중 벧엘에 이르러 돌베게를 베고 잠들었을 때, 꿈에 에서 하늘사닥다리가 닿은 모습과 그 위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야곱과 그 자손에게 복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시며, 장차 야곱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꿈으로 예시하시는 장면입니다. 즉, 후일에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라반의 양떼 중 아롱진 양, 점 있는 양, 검은 양들을 자기의 소유로 삼아 그 떼를 이끌고 고향인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되는데(창세기 31:1~22), 야곱이 행할 이 일(工)이 바로 오순절에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이 흠과 점이 있는 죄인임을 드러내어 하나님께 고백하므로 하나님께 속하게 되는 자들 곧 성도의 모임인 교회를 성도의 본향인 하늘의 하나님께로 이끄실 성령 하나님의 하시는 일(工)을 예표하는 것임을 보이신 것(암 3:7)입니다. 자는 그때에 야곱이 꿈에 본 장면 그대로 땅(一)에서 하늘(一)사닥다리가 닿은()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약속하신 땅( 35:12)인 가나안 땅에 있는 갈릴리 호수와 사해 그리고 요단강, 이 셋은 귀가 둔한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엡 3:2)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친히 준비하신 다양한 역사지리학적 교재들 중 일부로서 하나님의 구원사역 곧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하시는 바 그 기이한 (사 29:14)을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쉽게 깨닫게 하기 위해 마련하신 것인데, 자는 이를 상징적으로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즉 의와 생명의 하늘을 상징하는 살아있는 물고기들이 가득한 갈릴리 호수자의 위쪽 로 표현하고, 죄와 사망의 땅을 상징하는 ‘아무 생명체도 살수 없는 죽음의 바다인 사해(死海)자의 아래쪽 로서 표현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백성 된 자들을 죄와 사망의 땅에서 의와 생명의 하늘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인 하나님의 말씀 곧 ‘하늘에서 흘러 내리는 생명수의 강을 상징하는 요단강자의 가운데 부분인 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실로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의 대부분을 갈릴리의 가버나움에 사시면서( 4:13) 주로 갈릴리 바다를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있는 도시와 마을의 회당 그리고 갈릴리의 해변과 인근의 들판에서 제자와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이적과 병고침 등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기는 일( 9:43)들을 행하시며 그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생명을 상징하는 갈릴리 바다를 중심으로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사망과 땅을 상징하는 염해(사해) 근처에는 가까이 가지 아니하셨는데, 이에는 예수님 자신은 하늘에 속한 분이시고, 그의 나라는 하늘에 있음(고전 15:47, 18:36)을 은연 중 암시하고자 하시는 의도가 있으셨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은 ‘치밀하고 교묘하다’라는 뜻의 ‘공교(工巧)하다라는 의미도 갖고 있는데, 이도 역시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시는 모든이 지극히 공교(工巧)한 것(욥 37:14)임을 말씀하시는 성경(사 28:29, 시 78:72)에서 유래한다 하겠습니다. 아울러 자는 예술부문이나 혹은 어떤 특별한 능력을 필요로 하는 전문분야에서의 일을 고도의 능숙한 솜씨로 공교하게 하는 이를 일컫는 장인(匠人)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은 인류구원이라는 공교한 일(工)을 전문으로 하는 최고의 장인같은 신(神)이시라 말할 수도 있겠는데, 자가 장인이라는 자훈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무튼 성경에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욥 37:14)라고 말씀하셨듯이 인류구원이라는 오묘하고 공교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창세로부터 모든 크고 비밀한 일(工)을 지어 성취하시기까지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시 121:4) 진실로 우리를 위해 측량할 길 없이 놀랍도록 공교하고 기이한 구원의 큰 일(욥 9:10)을 쉬지 않고 행하시는 광대한 능력의 자비하신 하나님을 인하여 우리 모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시 9:1~2) 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의 찬양을 올려 드립시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시다. --(영)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광이나 영화라는 단어를 유난히 즐겨 사용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榮華(영화)榮光(영광)이 하나님의 거룩하고 고귀한 형상 내지는 속성을 형용하는 데 가장 많이 쓰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단어 가운데 하나인 榮光(영광)이라는 글자 자체의 참된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영화 )자를 보면, 그 자훈에 영광, , 영화, 나타나다, , 꽃답다 등이 있으며, 용례로는 榮光(영광), 榮華(영화), 榮譽(영예) 등이 있습니다. 파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火火 + +

 

1. ()는 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형용한 글자로 , 불타다, 빛나다 등의 의미를 갖습니다.

2. (덮을 )어떤 사물을 덮어 씌우는 보자기나 휘장 같은 것의 형상을 본 뜬 것으로 덮다, 가리다, 덮는 것 의 뜻을 가지며, 부수로서의 명칭은 민갓머리입니다.

3. (나무 )은 나무를 본뜬 글자로 나무, 나무로 만든 기구, 널 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파자식에 의하면 (영화 )나무()뒤덮은() 불꽃의 형상(火火)을 표현한 글자로 나타납니다.

참고로 글자의 윗부분에 를 연이은 형상(火火)으로 붙여 쓴 것으로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표현합니다. 또한 덤불이나 잔 나뭇가지로 뒤덮인 모습의 관목(灌木) 곧 떨기나무를 표현함과 동시에 불꽃이 나무를 온통 에워싸고 있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한편 성경에는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3:1~4)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모세가 애굽 공주의 아들이라는 귀한 신분에서 졸지에 살인자의 오명을 쓰고 애굽 땅에서 황급히 도망하여 나온 후,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치기가 된 지 사십년 만의 일( 7:30)입니다. 그때에 모세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보게 된 그 놀라운 광경 곧 잔가지로 뒤덮인 모습()떨기나무()에워싸듯 휘감고() 활활 타오르는 불꽃(火火)의 형상을 문자로써 묘사해 보면 바로 그것이 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고로 자는 성경에 기록된 바, 호렙산에 이르른 모세에게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빛으로 나타나신 영화로운 모습의 여호와 하나님을 표현한 글자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선인들은 이로써 그때의 정경과 같은 영광, , 나타나다, 영화 등의 뜻을 표현하는 글자로 삼았던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은 불로서 자기의 사자를 삼으시고 ( 3:2, 104:4) 영화로운 빛으로 영광 중에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놀라운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불(the fire)과 그 빛(the light)은 우리가 세상에서 보는 삼차원의 물리적 불과 빛이 아닙니다. 그 불은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비롯한 모든 만물을 태울 수도 있지만(왕상 18:38, 대하 7:1), 호렙산의 떨기나무에 붙은 불 같이 아무것도 태우지 아니하면서도 타오를 수 있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초월적 차원의 기이한 불(참조; 9:48)입니다. 또한 그 빛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분의 주권적 섭리에 따라 우리 마음의 눈이나 심지어는 육안으로 볼 수도 있고 보지 못할 수도 있으며( 9:3~7), 어떠한 종류의 물체일지라도 그 물체의 투명도와 상관없이 투과할 수도 있고 투과하지 아니할 수도 있는 그야말로 자유자재의 경이로운 빛입니다. 진실로 이 초월적 차원의 그 불( 12:29)과 그 빛(요일 1:5)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이로써 사람에게 자기의 형상으로 나타내 보이시기도 하지만 사람의 이성과 지식으로는 허락하신 그 이상의 무엇을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이는 오로지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하심에 따라 영적으로만 우리의 마음에 체험(고후 4:6)되는 놀라운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망 가운데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기에 전혀 힘쓰고 낙망치 아니하면 어느 때엔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어 이러한 놀라운 초월적 차원의 그 불로 세례를 받거나,( 3:11, 3:16) 거룩한 그 빛의 비췸을 받는 등,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는 것( 6:4)입니다. 그리되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크고 담대한 믿음( 11:38)의 소유자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당한 모든 영적 전투에서 항상 승리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이 기이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불과 빛을 사모하며 늘 기도에 힘써야만 합니다.

 

관련성구 ( 7: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무덤 속의 죽은 자를 부르시는 주님 -- ()

 

성경의 주 무대인 팔레스틴은 암석지역이 많고, 대부부분의 암석지역이 석회암이나 백악암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김흔중 저 성서의 역사와 지리 P42) 따라서 지질의 특성상 자연적으로 형성된 천연동굴이 많을 뿐 아니라, 사람이 직접 암석을 파서 만든 인공의 굴도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에는 유난히 굴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소돔성에서 도망한 롯은 두 딸과 함께 굴에 거했으며( 19:30), 아브라함은 그 아내 사라를 장사하기 위해 에브론에게서 막벨라 굴( 23:16~19)을 매입했고, 다윗은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과 엔게디에 있는 굴에 은신(삼상 22:1)했었으며, 이세벨이 선지자들을 죽이려 할 때에 오바댜는 100명의 선지자를 굴에 숨겨 주었습니다.(왕상 18:4) 또한 굴은 흔히 무덤으로 사용( 11:38)되었으며, 도적의 거처가 되기도 했습니다.(7:11) 을 한자로 표기하면 ()이 되는데, 이 글자를 파자하면 그 의미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어떤 한 사건의 내용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 + +

 

1. (구멍 )구멍, , 등을 표현하는 글자입니다. 참고로 穴은 窟과 그 의미가 비슷하지만, 穴은 어원적으로는 ‘사람이 사는 움집’을 표현한 글자이며 窟보다는 대체로 규모가 작은 움이나 구멍 등을 의미합니다.

2. ()나오다, 나가다, 낳다 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3. (주검 )시체, 주검, 시동(尸童) 등을 뜻합니다.

 

파자식에 의하면()주검()나온() 구멍()으로 풀어집니다.

한편 성경에는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11:38~44)라는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 중 무덤이라라는 말씀은 죽은 나사로의 시신이 안치된 무덤이 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죽은 나사로의 시신나온 무덤이다.”라고 할 수 있는 바, 이는 놀랍게도 자의 제자적 의미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고로 이 자는 위의 말씀에서 볼 수 있는 굴의 개념을 하나의 그림 같은 문자로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며, 이로써 나사로가 장사되었던 무덤과 같이 산비탈이나 바위 등에 움푹 패여 들어간 곳을 일컫는 글자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의 무대인 팔레스틴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상호간 문화적 교류가 거의 없었을 동방의 옛사람들이 성경이 아니면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만치 매우 특수한 베다니에서의 이 놀라운 사건의 정황을 문자화하여 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한자어를 사용하는 모든 기독인들에게 상당히 흥미롭고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관련성구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참조성구 (삼상 24:1~19), ( 24:1~6)

 

위의 내용은 이병구 저, clc "그리스도와 한자"의 내용 중에서 인용하였습니다. 다음까페 북유모에서 펌..

[출처] 한자는 하나님말씀으로 된 글자입니다.|작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