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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碧巖錄)』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고대 비밀 가르침(密敎)

『벽암록(碧巖錄)』

柏道 2020. 7. 24. 22:27
벽암록

출판기획물의 세계사 2

벽암록은 중국 당나라 이후 불교 선승들이 전개한 대표적인 선문답을 가려 뽑아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은 설두중현 선사가 펴낸 ‘송고백칙’에 원오극근 선사가 내린 해석을 첨가한 것이다. 이 책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으뜸가는 선 수행서로 쓰였지만 한국에서는 그리 널리 읽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벽암록과 성격이 비슷한 『선문염송』이라는 책이 대중화되었고, 벽암록이 난해해서 학력이 높은 지식인 외에는 읽기 힘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벽암록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번역문과 해설서가 여러 종 나와 있다.

『벽암록』의 성립
『벽암록(碧巖錄)』은 중국 당나라 이후 불교 선승(禪僧)들이 전개한 대표적 선문답을 가려 뽑아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은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 선사가 펴낸 『송고백칙(頌古百則)』에 원오극근(圓悟克勤, 1063~1135) 선사가 또다시 문제 제기와 해석을 첨가한 것이다.

『송고백칙』에서 백칙은 선문답 100가지를 말하는데, 칙(則)이란 원래 본보기 또는 모범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따라서 『송고백칙』은 모범이 되는 선문답 100가지에 덧붙인 ‘송고’라는 의미가 된다. 송고(頌古)는 옛 선승들의 선문답이나 언행을 칭송한 시나 게송(偈頌)을 말한다. 말하자면, 불교의 선(禪)이 문학과 연계되어 ‘송고문학’이 탄생된 것인데, 그 시작은 중국 북송 시대 초기부터라고 한다.

설두중현의 작업 이전에도 당대 선승들의 선문답을 기록한 책은 이미 여럿 있었다. 예를 들면, 인도와 중국의 선승 이야기를 북송 시기에 기록한 『전등록(傳燈錄)』, 중국 선종의 하나인 운문종을 창시한 운문문언(雲門文偃) 선사의 어록인 『운문광록(雲門廣錄)』, 당나라의 선승인 조주선사의 어록인 『조주록(趙州錄)』 등인데, 설두중현이 이 책들에서 백칙을 뽑아낸 것이다.

선문답은 형식 논리를 뛰어넘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은 물론 수행자들도 그 의미를 알기 어렵다. 그래서 선사들은 여기에 다시 시나 노래를 덧붙여 그 의미를 깨닫게 하고 있다. 『송고백칙』이 바로 그 작업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수행자들은 이 역시 이해가 가지 않아 당시 유명한 선사이자 송나라 황제의 자문 역까지 맡았던 원오극근 선사에게 자세한 해설을 요청했다. 이에 원오극근 선사가 세세한 해설을 해 주었고, 제자들이 그 내용을 모아 책으로 엮어 낸 것이 바로 『벽암록』이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맨 앞에 100개의 선문답 각 칙(則)에 대한 원오극근의 문제 제기가 나온다. 수시(垂示)라고 하는데, 때로는 생략되기도 한다. 그다음, 설두중현이 가려 뽑은 각 선문답이 제시된다. 본칙(本則)이라 한다. 그리고 설두중현이 내놓은 게송 곧 ‘송고(頌古)’가 나온다. 그러고 나서 ‘본칙’과 ‘송고’에 대한 원오극근의 논평과 해설이 이어진다. 착어(着語)와 평창(評唱)이라고 한다.

『벽암록』의 엮은이 설두중현과 원오극근
『벽암록』을 엮은 설두중현과 원오극근은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자(송정숙, 2014).

설두중현은 중국 송대에 활동했던 운문종(雲門宗) 승려인데, 사천성 봉계현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는 대대로 전해 온 가학인 유학을 공부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20세 전후에 출가해 처음에는 경전 공부를 하다가 선 수행을 시작했다. 깨달음을 얻은 후 취봉의 영은사에 머물다가 1022년에 명주의 설두산 자성사로 옮겨 여기서 31년간 제자들을 가르쳤다. 남달리 시적인 감성이 풍부했고 문장력이 뛰어났던 그는 운문종을 크게 중흥시켰는데, 그의 법을 이어받은 제자가 무려 70여 명이나 되었다. 1052년 6월 10일 입적하자 조정에서는 명각대사(明覺大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원오극근은 사천성 숭녕현에서 1063년에 태어났으니, 설두중현이 입적하고 11년 후가 된다. 유학자의 가문에서 자랐는데, 어느 날 우연히 묘적사에서 불경 읽기를 반복하더니 감복해 이 절의 주지 자성스님에게 계를 받았고 이후에도 널리 선지식을 찾아 두루 공부했다. 그가 살았던 11~12세기는 정강(靖康)의 난이 일어나 송조가 한때 멸망해 남송의 고종이 송나라를 다시 정비하는 등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1102년 그는 성도의 소각사, 호남의 협산의 영천원, 상서의 도림사 등에 머물면서 앞서 말한 『송고백칙』을 강의했다. 송나라의 황제들도 원오극근 신사를 극진히 예우해, 북송의 휘종은 불과선사(佛果禪師)라는 호를, 남송의 고종은 진각선사(眞覺禪師)라는 호를 내렸다. 73세에 가부좌를 하고 앉은 채로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했다고 한다.

원오극근의 제자들은 스승의 강의를 1105년경부터 모아 기록하기 시작했으며, 1125년에는 이미 『벽암록』 필사본이 나왔다고 한다. 이 필사본은 강의 장소에 따라 내용이 상이한데, 성도본, 협산본, 도림본의 3종이 존재했다고 하니, 그 뜨거운 호응을 짐작할 수 있다. 수강생들에게 채록되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벽암록』의 간행은 1128년(남송 건염 2년) 원오극근의 제자 보조선사에 의해서였다. 이것이 바로 중국 선불교에서 으뜸으로 꼽는 책인 『벽암록』인데, 책의 제호는 『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圓悟禪師碧巖錄)』이다(신규탁, 2011).

보조선사는 『벽암록』의 가치와 편찬 과정 등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송정숙, 2014).

불과원오 스님께서 ‘벽암’에 계실 때 수행하는 이들이 잘 몰라 미혹을 깨우쳐 주실 것을 청하니, 깊은 이치를 드러내어 명백하게 가르쳐 주셨다. 백칙의 공안을 첫머리부터 하나로 꿰어 수많은 조사들을 차례차례 점검했다. 지극한 도는 실로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종사께서 자비를 베풀어 말로써 잘못을 고쳐 주셨다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벽암’은 원오극근이 거주했던 협산 영천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벽암록』이 선불교의 교과서로서 널리 읽힌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송대의 시대적인 분위기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선 수행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지식인과 관료에게까지도 퍼져 나갔다. 이른바 거사들에게 선불교의 교과서 형식의 자료를 제시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벽암록』이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정성본 역해, 2014).

『벽암록』을 불태우다
불교는 수많은 신을 신봉하는 힌두교의 전통이 강한 인도에서 출발했지만, 신의 존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종교다. 구원의 방식도 신의 은총에 의한 타력 구원이 아니라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한 자력 구원이다. 『벽암록』은 바로 그 깨달음의 스승들이 남겨 놓은 어록과 일화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선 수행자들은 소중한 교재로 활용하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이 널리 퍼지다 보니 실제 선 수행보다 그 책을 외워 마치 득도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수행자들도 다수 생겨났다. 또한 불교는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깨달음을 추구하기 때문에 “조사(袓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하는 극도의 과격한 언설까지 나오게 된다. 『벽암록』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운문문언 선사의 독설 또한 유명하다. “만약에 석가모니가 내 앞에서 다시 한 번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오만을 부린다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겠다”(윤기엽 · 심효섭, 2012). 그리고 어떤 것이 부처의 경지를 초월하느냐고 물으면 ‘호떡’ 하는 식의 엉뚱한 대답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런 배경 속에서 수행자들이 『벽암록』에 기대어 제각각 깨달았다고 자처하니, 현실은 없고 요설만 난무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을 바로잡겠다고 나선 이가 바로 원오극근의 수제자였던 대혜종고(大慧宗杲, 1088~1163) 선사였다. 그는 당시 수행자들이 『벽암록』의 선문답만 익히고, 실제 수행을 게을리하는 자가 많아지는 폐단이 생기는 것을 보고 근본 뜻을 다시 세우고자 대중 앞에서 이 책의 판목을 불태워 버렸다.

또한 수행승들이 혼자 공부해 꼭 깨달은 것과 같은 언사를 농하고 있어서 대혜선사가 정말로 깨달았는가 하고 시험해 보면 『벽암록』을 반복 암기한 데에 연유함을 알게 되자 참선 수행이 말장난에 그치고 말 것을 우려해 태워 버렸다는 기록도 나와 있다(김운학, 1999).

성스런 책은 우리의 영적 노력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방향을 가리킬 경우에만 유용하다. 그래서 선은 죽은 문자나 이론들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행동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D. T. Suzuki, 1955)
간단히 말하면, 선이란 언어 놀이가 아니라 생생한 삶의 현장이다. 그러나 언어 없이는 진리의 길에 도달할 수 없는 법. 결국 『벽암록』을 다시 복간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벽암록』이 1128년에 처음 간행된 후 대혜 선사가 죽은 해인 1163년 무렵 불태워졌다가 1300년에 중간되었으므로 처음 탄생 후 172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대혜 선사가 『벽암록』을 불태우고 장명원(張明遠)이 복간한 의미는 1305년 주치(周馳) 거사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송정숙, 2014).

“대혜가 원오의 『벽암록』을 불사른 것은 집착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부처가 출세간법을 말씀하셨으나 언어나 문자로써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그 언어 문자를 아주 없앨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지혜로운 이는 적고 우매한 이가 많고, 깨달은 이는 적고 앞으로 깨달아야 할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벽암록』의 내용
『벽암록』의 제1장은 달마대사의 일화로 시작한다. 중국 선불교 역시 인도에서 온 달마대사로부터 시작한다. 중국에 온 달마대사는 황제인 양(梁) 무제(武帝)를 만나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지만 양 무제의 세속적인 관심만을 확인하게 된다. ‘성스러운 진리가 무엇이냐’는 양 무제의 질문에 달마대사가 ‘없다’고 하니, 양 무제가 그럼 ‘당신은 누구냐’고 묻는다. 그러자 달마대사는 ‘나는 모르오(不識)’라는 대답을 남긴 채 소림사로 들어간다.

그는 그곳에서 9년 동안 면벽수도한 후 제자들을 키우고 후계자를 길러 선종의 계보를 이어 가게 한다. 달마의 첫 후계자가 2대 혜가고 이후 3대 승찬, 4대 도신, 5대 홍인, 6대 혜가로 이어지고 이후 수많은 지도자들이 등장하며 선종이 중국 불교의 큰 흐름을 형성한다.

『벽암록』은 바로 그러한 큰 흐름 속에서 중요한 선승들의 일화나 문답을 소개하고 있다. 『벽암록』에 달마대사 외에 140여 명이나 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분포는 다음과 같다(정성본, 2014).

130여 명이 당대의 선승과 거사인데,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無名)의 선승도 40여 명 포함되어 있다. 불교의 인격으로는 부처, 세존, 문수보살, 관음보살, 아라한, 염마대왕, 외도, 유마거사를 포함해서 9명에 불과하다. 중국의 선승으로 운문문언 선사가 16회로 가장 많이 등장하고, 다음에 조주종심 선사가 12회, 설두 스님도 13회나 등장하며, 부대사와 방거사, 유철마와 같은 비구니도 등장하고 있다.

『벽암록』에 있는 선문답 몇 가지만 다음에 소개한다.

운문 선사가 묻는다. “그대들의 15일 이후를 말해 보라.” 운문선사가 스스로 답변했다. “날마다 좋은 날이다.”(日日是好日)

(『벽암록』 제16칙)
어떤 스님이 동산 선사에게 묻는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대답: 삼(麻) 세 근이다.

(『벽암록』 제12칙)
양 무제가 부대사(傅大士)를 초청해 『금강경』을 강의하도록 했다. 부대사는 단상에 올라서 책상을 한번 후려치고는 곧바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양 무제는 깜짝 놀랐다. 지공화상이 양 무제에게 질문했다. ‘폐하께서는 아시겠습니까?’

무제는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지공화상이 말했다. ‘부대사의 강의는 끝났습니다.’

(『벽암록』 제67칙)
이 책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으뜸가는 선 수행서로 쓰였지만, 한국 불교에서는 그리 널리 읽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송정숙, 2014). 첫째, 『벽암록』과 성격이 비슷한 공안집인 『선문염송』이 대중화,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벽암록』을 불태웠던 대혜종고 선사의 뜻을 받들어 불자들이 가까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셋째, 책이 난해해서 학력이 높은 지식인 외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최근 『벽암록』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번역본과 해설서가 여럿 나와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참고문헌>6확장영역 접기
김운학(1999.). 『벽암록』의 가치. 안동림 역주(1999.). 『벽암록』. 서울: 현암사.
송정숙(2014.). 『불과원오선사벽암록』의 편찬과 수용. ≪서지학연구≫, 제60집.
신규탁(2011.). 중국 선종 역사 속에 드러난 화두의 생성, 강의, 참구에 관한 검토 - 『벽암록』 제1칙 『달마불식』번역을 사례로 삼아. ≪한국선학≫, 제30권.
윤기엽 · 심효섭(2012.). 『호거산 운문사』. 서울: 재단법인 대한불교진흥원.
정성본 역해(2014.). 『벽암록』. 서울: 한국선(禪)문화연구원.
Suzuki, D. T.(1955.). Studies in Zen. New York: A Delta 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