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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기도의 비밀 1700년 -두 번째 비밀 - 2 본문

영성수행 비전/명상과 기도

절대 기도의 비밀 1700년 -두 번째 비밀 - 2

柏道 2020. 2. 18. 16:49


절대 기도의 비밀 1700년

두 번째 비밀 - 2

  

healing - 두 번째 비밀 - 2

균형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반의 자연주의자 R.N. 엘리엇은 자연이 도표와 숫자로 예측되는 패턴을 따른다고 생각했다.

인구의 증감에서부터 기후의 순환을 아우르는 그의 연구들은 자연이 추구하는 것이 균형이라고 결론지었다.

엘리엇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면서

주식 시장에서 돈을 쓰는 행태를 포함한 인간의 삶 역시 자연의 패턴을 따르며, 그 패턴은 모델과 도표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엘리엇은 자신의 이론을 경제 주기에 적용하는데 성공했는데,

그의 연구를 토대로 훗날 엘리엇 웨이브 이론이라 알려진, 주식 시장을 예측하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도구가 만들어졌다.

돈을 쓰는 습관 등 인간의 모든 행태를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는 주장은 그다지 파격적인 생각은 아니다. 숫자는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커피 잔 속의 우유 소용돌이까지 모든 것을 나타내는 만국 공통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자연계를 설명하는 이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감성의 세계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프랙탈 기하학

fractal geometry의 원리다.

프랙탈 기하학은

세상을 설명하는 혁신적인 방법으로

최근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수학인데,

수학에 예술을 가미해서 방정식이 함축한 의미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번개나 눈송이처럼 부분과 전체가 똑같은 자기유사성을 갖는 모양이 계속 나타나는 구조인 프랙탈 기하학을 이용하면 비쭉비쭉한 산봉우리에서 혈관까지,

해안선에서 실오라기까지 눈에 보이는 자연계의 많은 것들을 모델로 만들 수 있다.

덕분에 가끔씩 무미건조하고 삭막한 숫자의 세계를 벗어나서 언어로써 세상을 묘사하는 아름답고 신비한 숫자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프랙탈 패턴은

만델브로 방정식 혹은 만델브로 집합이다.

수학자인 베누와 만델브로가 1970년대에 창안한

"살아 있는" 방정식이 컴퓨터에서 작동하기 시작하면,

곡선과 나선과 레이스 모양이 짧은 시간 안에 모습을 바꿔가면서 아름다운 패턴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자연의 균형과 혼란 사이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춤을 추는 것이다.

컴퓨터 화면 속에서 여러 가지 색깔과 패턴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마치 삶 속에서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감성의 파노라마를 대변하는 것만 같다.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그 패턴들은

우리네 삶을 수놓는 수많은 관계와 사건과 그 속에 녹아 있는 희로애락을 대변한다.

모든 패턴이 각자의 자리에 있을 때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우리도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을 때 가장 큰 선물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가장 큰 시련을 겪게 된다. 이 이미지들은 주고 받음, 수축과 팽창, 상처와 치유라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상반된 요소의 춤을 상징하며,

항상 완벽한 균형을 이루었다가 기울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컴퓨터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이미지들을 보면 우리네 삶을 떠올리게 된다.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알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어 그 "영혼의 도구상자 spiritual toolbox" 로 자신을 치유할 때만이 비로소 사랑과 일과 인맥을 자신에게 끌어당겨 그것에 우리가 배운 것들을 적용할 수 있다.

도구가 없다면 절대 그런 경험을 할 수 없다!

삶이 우리를 할퀴고 실망시키고 우리의 것을 빼앗고 배반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그 난관을 헤쳐나가는데 필요한 것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균형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변화를 일으키는 촉매로 여기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것은 현실에서든 프랙탈 이미지에서든 마찬가지다. 패턴은 컴퓨터 화면 속에서 완벽한 균형을 찾고 나서야, 즉 패턴들은 균형을 이루고 나서야 분해되기 시작하면서 더 큰 균형을 지닌, 한층 더 새로워진 패턴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우리네 삶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프랙탈 이미지가 짧은 시간 내에 균형을 이루는데 반해서 우리가 영적 도구들을 축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정해진 기간이 없는 것 같다. 디지탈 영상은 해체되었다가 다시 모이는데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우리 내부에서 특정 주기가 완성되려면 몇 달 내지는 몇 년, 수십 년, 때로는 평생이 걸리기도 한다.

흔히 우리는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비슷한 부류의 직장을 옮겨 다니고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사귀고 비슷한 이성을 만나 연애를 하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는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깨달음을 얻고는 "아하!" 하며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이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동료와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하지만 이름까지 바꾸고 새로운 곳에서 새출발을 했는데 지난번 직장을 그만두고 떠났을 때와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여기서 당신이 반복하는 패턴은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없다.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생각해 보자. 새로운 환경에서 예전의 익숙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그것을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기회로 삼아라. 자기가 처한 상황을 바라보고 깨달음을 얻으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시련을 겪어야만 깨달음을 얻는다. 이 원칙을 알든 모르든, 인생이 우리에게 어떤 시련을 주든,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이미 문제를 해결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시련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