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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해석한 복음과 기적수업이 제시하는 구원의 동질성 본문
기적 수업
바울이 해석한 복음과 기적수업이 제시하는
구원의 동질성
인간의 구원이란 문제는 본질적으로 인간이란 누구 인가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이다.
기적수업에서 키워드로 등장하는 것이 분리와 에고이다. 분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가 되어 인간이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는 인식의 근원이다. 창세기에서 분리는 아담과 이브의 실락원으로 상징되고, 기독교 교리에서 이를 원죄라고 가르친다.
에고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이 스스로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는 믿음이 만들어낸 인간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에고는 살아남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나’라고 의식된 존재이다.
기적수업은 분리와 에고를 모두 실재로 일어나지도 존재하지도 않는 거짓된 관념으로 본다.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의 분리는 가능하지 않았고, 인간은 혼자서 스스로 지켜야 하는 그런 고독하고 불안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이란 문제는 본질적으로 인간이란 누구 인가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이다. 창세기가 가르치는 원죄는 인간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제멋대로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행복하고 영원하게 살 수 있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그 후 저주받은 땅에서 땀 흘리며 수고하며 살다가 흙으로 다시 돌아가는 존재로 인간을 정의한다.
한 마디로 창세기는 인간의 정체성을 추방된 자, 쫓겨난 자, 하나님을 거역한 죄인, 죽을 수밖에 없는 불행한 존재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창세기 관점에서 인간의 구원은 아담이 누렸던 에덴동산의 행복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다. 예수는 두 번째 아담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여, 원죄가 만들어낸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분리를 해결하셨다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 교리이다.
예수의 십자가 복음은 인간의 정체성을 죄인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변화시켜 준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놓여있던 죄라는 거대한 장애물이 제거하고,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누렸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회복시켜주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주는 구원의 실질적 내용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임을 믿으면, 인간이 모든 죄 사함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 사도 바울이 해석한 복음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의 복음은 정체성에 대한 인식론이다. 예수를 믿으면 죄인의 정체성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적수업은 분리와 에고라는 개념을 통해서 인간의 정체성을 가르친다. 기적수업도 창세기의 에덴동산 추방 이야기를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이 분리되었던 사건의 상징으로 본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다고 잘못 믿었던 것이지, 실재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기적수업은 창세기의 실낙원에서 기원하는 원죄라는 개념 자체가 올바른 해석이 아니라고 말한다. 원죄라는 용어는 성경이 직접 사용한 것이 아니고, 신학자들이 인간의 타락을 설명하기 위해 에덴동산의 실낙원 이야기에서 끌어낸 자의적이고 의도적인 용어이고 개념일 뿐이다.
기적수업이 원죄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분리는 실재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인간들이 스스로 분리되었다고 인식했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원죄라는 개념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불순종의 사건이 마치 실재로 일어난 사건 인양 표현하기 때문에 인간의 고통과 불행의 원인이 된 이 사건을 상쇄할 수 있는 다른 방책이나 수단을 찾게 만들게 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인간의 타락을 유도해서 벌하시는 무섭고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을 죄인으로 보고 하나님을 심판하시는 두려운 존재로 바라보는 것은 전형적인 에고의 사유체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으로서 자신의 분신과 같은 존재로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스스로 분리될 수 없으니, 원죄는 일어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이 스스로 자신이 죄를 지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다고 믿어 버림으로 인해서, 인간은 분리를 실재로 일어난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이를 실재로 경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인간의 영에게 부여하신 창조력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들고, 환상을 실재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분리에 대한 믿음은 실재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구원은 예수의 십자가 대속 같은 우주적 사건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들에게 원죄나 분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미 온전한 존재라는 정체성을 다시 기억하는데 있다고 기적수업은 가르친다.
기적수업이 제시하는 구원론은 너희 인간은 태초에 분리되거나 원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단지 너희가 죄를 지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니, 단순하게 그 잘못된 오해를 버리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의 전통에 따라서 원죄의 해결을 십자가의 예수의 희생 제사라는 신화적인 방식을 통해서 얻는 것으로 이해했다. 반면에 기적수업은 하나님과 성령의 지식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은 결코 하나님에게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은 단지 분리되었다는 잘못된 인식을 버리면 해결된다는 단순한 논리로 구원론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해석이나 기적수업의 결론은 동일한 방향을 향해 나가는데, 그것은 인간이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곧 구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2천년전 사도 바울이 선포한 복음의 교리가 틀린 것이 아니라 옳기도 한 이유는 구원은 죄인이라는 정체성을 벗어 던지고 하나님의 아들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에 그 본질이 이 있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바울의 해석은 하나님은 인간을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여긴다는 대 전제 아래에서 선포된 구원 이론이다. 예수의 대속을 믿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복음의 해석은 인간은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라는 부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적수업이 가르치는 구원은 바울의 복음 해석보다 더 보편적이고 그 내용이 더 분명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이 창조한 영원 불변한 인간의 정체성을 다시 회복하라는 단순하고도 보편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유대교가 하나님의 사랑을 유대인만을 위한 것으로 이해했고, 다시 기독교가 그 범위를 넓혀서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를 받아들이는 모든 이방인에게 넓혔다면, 기적수업은 하나님의 사랑을 종교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모든 인류에게 아무 조건없이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 기적수업 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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