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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 동서양의 철학과 역을 이용한 주해 /전병훈 본문
천부경 : 동서양의 철학과 역을 이용한 주해 /전병훈
<천부경철학연구>에 부록으로 수록되었는 데 내용이 깊이가 있어 올린다.
천부 이 두 글자는 황제의 소문에 나타나 있다.
대개 오행이 운행하여 하늘의 조화하여 한 가지가 되는 것을 천부라 하니,
이는 곧 사람이 겸성하여 천도와 합하게 된 까닭이다.
일시무시
하늘과 땅은 허무한 가운데서 생기고,
하늘과 땅보다 앞에 있었던 것은 단지 ‘혼돈의 기’ 하나였다.
공허하고 광막하여 아무 조짐도 볼 수 없으므로 무시란 한다.
무시는 곧 무극이니 무극이고서 태극이다.
태극이 동하면 양을 생하고, 정하면 음을 생한다. 하늘과 땅이 처음 성립되므로 자축지회이다.
일은 무시에서 시작되고, 일은 태극의 일이니 원신이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일석삼
태극의 일은 이미 천일을 낳아 삼으로 나누어진다.
즉 『하도경』에서 일이 삼을 포함한다는 이치이다.
삼은 천지인 세 가지로 이루어져 만물을 생성한다.
노자도 또한 ‘일은 삼을 낳고 삼은 만물을 낳는다.’고 말하고 있다.
극무진
끝이 없는 무극은 태극이니, 태극은 천 지 인을 생하고,
만물을 낳는 근본 원리이며 능동력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 만물이 비록 마치고 다하는 때가 있으나
태극의 생리와 원신은 궁극적으로 다하는 시기가 없다.
본천일일
하늘은 태극의 일로써 근본을 삼아 제일 먼저 개벽하였다.
그리고 천일은 물을 낳는 까닭에 천일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일이
땅 역시 태극의 일로써 근본을 삼으며,
하늘은 땅의 외면을 감싸고 땅은 하늘의 가운데 있다.
그리고 지이(地二)는 불을 낳는 까닭에 지일이라고 말한다.
인일삼
사람 역시 태극의 일로써 근본으로 삼는다.
천일과 지이의 물과 불이 이미 생한 즉 해와 달이 운행하고
감(坎)과 리(離)가 성립되어 기화하여 사람을 낳는다.
사람이 삼재가 되므로 ‘인일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일적십거
천일의 일부터 일삼의 일까지 쌓여서 십을 이룬다.
또 그 사상의 십을 살펴보면 가운데 오를 얻어 십오를 이루어 조화가 구비된다.
북일은 서구를 얻어서 십을 이루며, 서사는 북륙(六)을 얻어서 십을 이루고,
동삼과 남칠 또한 그러하다. 그 수가 널리 퍼져서 생성됨은 크다고 하겠으며, 거는 크다는 뜻이다.
무궤화삼
천지의 수가 십오로 이루어지니 그 큰 덕화가 널리 퍼져서 그치지 않는다.
삼을 포함한 생물들의 화육됨이 어느 때나 궁핍함을 받지 않으므로 모자라는 때가 없다.
작게는 하루에서 한 달, 일 년까지를 말하고, 크게는 원, 회, 운, 세 등
조화가 널리 퍼져 어찌 궁핍할 때가 있겠는가? 궤(匱)는 궁핍이다.
천이삼
앞에서 개벽을 말한 고로 천일일이라 하였다.
여기에서는 음양이 교구하는 수를 거론했다.
그러므로 이삼이라 말한다. 이는 음수이고, 삼은 양수이며 천의 수가 오이다.
하늘 가운데 음과 양을 갗춘 까닭에 이르므로, 이음삼양(이음삼양)이라 말한 것이다.
공자도 『주역』 <설괘전>에 ‘천은 삼으로 하고, 지는 이로 하여 숫자를 붙이고’라 하였는데
이것은 대개 양수를 먼저 말한 까닭이다.
지이삼
이도 역시 음양의 수를 말한 것이니 앞 장과 같다.
주역에 이르기를 지의 수가 오이다.
지의 가운데에 또한 음과 양이 다 갖추어져 있으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인이삼대삼합육
사람과 하늘 땅은 더불어 품부 받은 바가 같다.
그러한 까닭으로 여기에 와서 ‘대삼합육’이라 말한 것이니,
곧 삼양과 육음이 서로 합함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삼재가 서로 만나서 생화하는 이치를 이룸이 이와 같이 명백한 것이다.
대체로 하늘과 땅이 일 년에 한 번씩 서로 만나고, 해와 달은 한달에 한 번씩 서로 만나니 제일 처음 있는 바는 기화이고 사람을 낳고 계속해서 형화로써 생에 생을 거듭하여 다함이 없다.
그러한즉 세계인들의 삶이 비록 그 지역은 다르다 하여도
다 고루 평등한 동포라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생칠팔구
삼재가 서로 만난 다음 감육의 수가 생겼고, 또 수는 동팔의 목을 낳고,
다시 목은 남칠의 화를 낳고, 화는 중앙의 토를 낳았으며, 토는 서구의 금을 낳았다.
사상과 오행이 만물을 낳는 도가 완전히 생성되어 리기가 세워지고,
리기가 오직 사람의 오장에만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으니
신장의 수는 지가 되고 심장의 화는 예가 되는데 아래에서 상세히 설명한다.
여기도 하도나 낙서와 함께 오행의 순행과 역행의 순서도 그 응용됨이 동일하다.
그러나 마땅히 신역의 법을 운용함에 의거하여 해석해야 안으로 유익함이 있다.
이른바 수화의 교구와 금목의 회합을 말한다.
사람에게는 영명과 지각이 있으므로 스스로 떳떳한 행동과 법칙을 시행하고 겸해서
능히 성명을 닦고 양성하면 고인들처럼 타고난 능력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운삼사성환
사람의 몸 가운데 삼목의 일과 사금의 월을 활용한 것은
바로 도가에서 오행을 거꾸로 이용하는 방법이다.
삼목은 화를 낳고 화는 리(離)괘가 되며, 리화의 중효로는 수이니 이것을 진수(眞水)라고 한다.
이른바 용이 화안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또 사금은 수를 낳으며, 수는 감괘가 되고, 감수의 중효는 화이니 이것을 진화라고 한다.
-호는 수 가운데서 생긴다는 것이다.
이 진화진수가 마음 따라 오르고 내리는데
-뒤로 오르고 앞으로 내리는 것을 자오승강이라고 한다.
오래오래 반복하면 단을 이루고 선을 이룬다. 그러한 까닭으로 운삼사라고 한다.
대개 -좌측으로 올라가 우측으로 내려가고, 우측으로 올라가 좌측으로 내려가는 것을
묘서운용(卯西運用)이라고 한다.
운이라는 뜻은 운행의 참뜻이며 환은 곧 단의 형상이며 끝이 없으므로 성환이라 한다.
그러나 이 환의 가운데가 곧 현관(玄關)임을 알아야 한다.
오칠일묘연
오는 곧 토의 생수요, 칠은 화의 성수가 되며, 일은 수의 생수이니 도가에서
삼가(三家)가 서로 본다는 것이 이것이다.
묘는 곧 신묘의 작용이 응결하는 뜻이니 그 참뜻은 -토가 생하여
화칠과 수일을 운용하여 수화가 오르고 내림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되어서 도를 이루고 나아가서는 출신하여 자손을 낳으니 나의 신기가 천지에 가득 차고
위아래 천지와 더불어 같이 유동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아! 겸성과 극철의 대도여! 신으로써 현빈에 정기를 운용함이 진신과 신통의 묘를 이루고
황제의 겸성과 더불어 동일하게 하늘에 근원을 두며
성명이 엉키어 머무르는 정신에 관한 전문적인 학문이다.
이 경은 하늘이 팔면의 영롱함을 안은 것과 같으니
사람들의 인을 발견함과 지(智)를 발견함이 비록 다르다 하여도
운삼사부터 묘연에 이르고 보면 참으로 신역을 잘 운용하고 신선을 이루는 법이 될 것이니
배우는 사람들은 깊이 깨닫고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왕만래
이미 묘연을 이루고 참 나를 발견하여 성선하면 신화하여 하늘과 하나로 합치되고,
만겁을 왕래해도 나는 그대로 여여할 것이다.
또 나의 양신도 종횡이나 상하 어디를 가도 두루 미치지 못할 데가 없고 우주가 손 안에 있을 것이다.
날마다 사용하는 사람의 일에 이르기까지 만 가지 기틀이 왕래해도 다함이 없이 무궁하지만
능히 주재자가 있는 것이다.
용변부동본
모든 일이 변화가 오니 내가 그 변화를 도와서 이용할 수 있으려면 마음의 저울이 필요하다.
저울은 사물의 경중을 저울질하는 것이며, 변화에 따라 합당하게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에
‘용변’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으로써 만물의 이치를 열어 사무(事務)를 완성하고,
백성을 사랑하여 이롭게 활용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제할 수 있다면
그 어디를 가든 교화에 움직이지 않을 수 없고
모든 만 가지의 변화에 대응하더라도 근본 마음만은 동요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위의 정치가 이루어지고 지덕의 세상이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니,
이렇게까지 되려면 겸성(兼聖)과 극철(極哲)이 아니면 그 누가 능히 할 수 있겠는가?
본심본태양앙명
사람의 본심은 곧 태극 건금이며,
태양의 신기가 두뇌 속에 응결되어 영명한 것이다.
상지인 겸성은 본래 스스로 이와 같으나 오직 배우는 사람들은
또한 욕심으로 인하여 인도에 들어가고
그 욕심을 제거하여 물욕의 어두움이 없게 되면 곧 심체가 밝아져서 본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또한 도가 밝아지고 덕이 충만하여 마치 태양처럼 사사로움과 가리움이 없이 공명해지고,
그렇게 된 다음 그 밝음이 우주를 밝게 비추고 만 가지 변화를 조성하여
천지와 더불어 동참하게 될 것이다.
마음의 근본을 실물과 흡사하게 실파한 것이 어찌 일찍이 이와 같이 있었던가?
오직 도가에서는 리괘로서 심을 삼는다 했고, 주역에서는 거듭 밝은 것이 리괘라 한다.
대인은 거듭 밝은 것을 이어 사방에 비춘다고 했다.
불교와 서양 철학에서도 모두 다 삼계가 오직 마음이라 한다.
지금 이 장에서 마음의 근본을 증명하고 있으니
어찌 우주 안에서 새로운 서광이 나오지 않는다 하겠는가?
뇌신이 마음이 되는 이치가 더욱 정확하고 더욱 밝으니 심학은 개산조라 하지 않겠는가?
아! 지극 한 덕을 갖춘 사람은 민중들이 추대하여 임금으로 삼고, 그 정치가 태양과 같이 밝으니
이 또한 어찌 민주 세계를 통일시키는 좋은 법이 아니겠는가?
인중천지일일종
하늘과 땅의 가운데가 열리고 사람이 그 가운데 자리를 잡아 참가하기 때문에 삼재가 된다.
이른바 사람이란 천지의 마음으로써 만물이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중화의 극진한 공을 이루어 천지가 서게 되고 만물이 화육되어 자라며,
사람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하니 진실로 천지는 대아이며,
참 나는 태극의 한 분자인 소아인 것이다.
이와 같이 자아를 완성하는 자는 능히 천지의 가운데에 서게 되니,
아! 역시 지극하다 하겠다. 하물며 지금 우주의 안이 두루 통하여 오대양 육대주가
일가가 되어 태평세상을 이룰 수 있으려면 반드시 태선과 겸성의 천수에 달려 있지 않겠는가?
-장차 통일 세계의 원수 되는 자는 상선과 겸성으로 천지의 가운데에 서는 자가 아니겠는가?
사람은 천지와 더불어 하나하나 시종을 같이 하고 있다.
장차 술해(戌亥)의 시기가 오면, 곧 천지와 더불어 인물이 종식하는 기회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일일종’이라고 한다.
무종일
무종일이라 함은 술해의 시기에 일기가 크게 숨을 쉬어 바다와 우주에 변동이 일어나고
산이 뽑히고 강이 메워지며 사람과 물체가 다 없어지고 천지가 다시 혼돈을 이룬다.
그러나 태극의 일은 끝까지 종식하는 이치가 없다.
재차 자축(子丑)의 시기가 오면 다시 행동이 시작되니 ‘무종일’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천지의 운행이 그쳤다가 다시 시작되고, 태극의 일이 조용해졌다가 다시 동하며,
동하다가 다시 조용하고, 구슬과 같이 끝없이 순환됨을 믿을 수 있으니 지극하다고 하겠다.
우리의 지극히 신령하신 겸성의 경이시여!
[출처] 천부경 : 동서양의 철학과 역을 이용한 주해 /전병훈 |작성자 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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