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蘧然覺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복음16:24> 본문
蘧然覺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복음16:24>
허당010ㅡ4327ㅡ2481
2008. 9. 10. 13:42
이게 무슨 말인가? 자기를 버리라니?
자기를 버리란 말은 貪.瞋.癡(탐.진.치)로불타고있는 몸뚱이의마음을 克己復禮(극기복례)하란 말이다.
하나님을 알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따르고 싶으면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의 짐승성질인 육신의 貪(탐)하고 血氣(혈기)부리고 淫心(음심)을 일으키는 貪.瞋.癡(탐.진.치)의 三毒(삼독)을 다스리고 이기라는 말이다.
여자를 만나러 가더라도 최소한 머리감고 세수하고 간소하나마 향내나는 화장품이라도 찍어바르고 손톱도 다듬고 거울앞에서서 이리보고 저리보며 행여 옷에 무슨 더러운 티검지라도 묻었나 싶어 털어보고 구두도 닦아신고 자기자신의 겉모습이나마 최대한 정갈하게 꾸미고 준비하고 나서듯이 구습에 젖어 있던 어제의 껍질을 벗고 새롭고 깔끔한 모습으로 다듬으면서 하물며 하나님을 알고싶고 사랑하고 싶고 따르고 싶다면서 구습에 젖어있는 옛사람을 말끔히 설거지로 준비하는 예의의 마음가짐인 마음의 결단이 필요치 않겠는가.
해서 자기를 버리란 말은 구습에 찌들어진 자신과 싸워서 그 구습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이겨서 새 마음의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거듭나란 말이다.
두렵고 떨리는 종의 마음으로 낮아지고 낮아져서 자기 자신 속에 내가 어쩌고 하는 그 나란 놈이 완전히 죽어지도록 낮아지란 말이다.
져야할 제 십자가가 바로 이놈의 짐승성질인 오욕칠정의 貪心(탐심)과 瞋恚(진애)와 癡憂(치우)를 말한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 다면서 남을 시샘하고 투기하고 미워하며 헐뜯으며 싸울것이 아니라 먼저 자기자신과 死生決斷(사생결단)의 싸움을 하여 자기를 끊어내 죽이고 자기 자신이 새롭게 솟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믿는다는 것은 곧 자기와의 처절하고 냉혹한 싸움을 하라는 말로 알아들어야 한다.
나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남을 이기면 뭘하나.
남을 이기는 것은 이김이 아니고 나와 남을 종당에는 다 죽이는 것에 지나지 않음이다.
『우파니샤드』중에 이런 기도가 있다.
"나를 거짓에서 진리로 인도 하시고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불멸로 인도하소서"
이는 거짓이요 어둠(無明무명)이요 죽음인 自我(자아)의 나에게 眞理(진리)요 光明(광명)의 빛이신 永生(영생)의 얼의 나로 솟나고 싶다는 간절한 祈禱(기도)요 念佛(염불)이다 自我(자아)란 것은 본디 없던것이 부모들의 인연으로 하여 어쩌다 생겨나서 살다가 때가 다하면 물거품처럼 꺼져 버릴 존재이기 때문에 참이 아닌 것짓존재요 탐.진.치의 삼독인 짐승성질에 갇혀 있기에 無明(무명)인 어둠이며 때가 되면 죽어 흩어질 거짓존재이므로 빛이신 하나님을 그리워 죽도록 사모하여 찾고 부르며 올라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진리는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다.
진리의 눈이 떠진자만이 진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돼지에겐 금덩이나 다이아몬드를 던져줘도 소용이 없고 아방궁의 금침보다 똥, 오줌으로 질척거리는 자기우리를 더 좋아하며 사람들이 더러워 피하는 구린내 나는 똥이 개에게는 좋은 먹거리 쵸콜릿이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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