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하나님의 나라 본문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物質(물질)의 나라가 아니고 靈(영)의 나라이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 저기의 어떤 除限(제한)된 공간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아니고 구태어 말한다면 사람의 心靈(심령)속의 속인 생각 속에 있다고 말씀을 하신 것이다.
( 念在神在 )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지만 분명하게 있는 것이 마음인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도 사람의 마음인 心靈처럼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分明(분명)하게 있다는 것을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다.
사람의 속의 속 心靈 가운데 하나님 聖靈의 씨가 심겨져 있으니 사람의 心靈 속이 곧 하나님의 至聖所(지성소)이기도 하고 또한 聖殿(성전)이며 하나님의 나라인 것인데 이 걸 모르고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묻는다는 것은 예수님 말씀을 전혀 못알아 듣는다는 것의 反證(반증)이 아닌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靈(영)인 聖靈(성령)이 이 無限宇宙虛空(무한우주허공)의 빔에 두루 꽉 차있어 하나님 나라가 아닌 곳이 없음이 太初以前(태초이전)부터의 絶對眞理(절대진리)임을 말씀 하시는데 바리새인들은 썩어질 몸뚱이란 物質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해야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인정하겠다는 쪼의 몸뚱아리 慾心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儒敎經典(유교경전)인 四書五經(사서오경)의 大學(대학)의 첫머리에 나오는 글에 大學之道(대학지도) 在明明德(재명명덕) 在親民(재친민) 在止於至善(재지어지선)이란 것이 나오는데 글자 그데로의 直譯(직역)은 대학의 도는 明德(명덕)을 밝힘에 있고 백성을 사랑함에 있고 善(선)에 이르러 그침에 있다지만 이 것을 뜻으로 풀면
사람이 배우는 것의 目的(목적)과 方法(방법)이 明德(명덕)을 오롯이 밝혀 드러냄이 그 첫번째이고
그 밝아진 明德(명덕)으로라야만 치우침이 없이 公平(공평)하고 公明正大(공명정대)하게 百姓(백성)을 사랑 할 수 있다는 것이 둘째이고 그렇게 되었을 때라야 지극한 善(선)의 境地(경지)에 이르고 머물러 그칠 수가 있다는 말인 것이다.
孔子(공자)님이 여기서 말한 明德(명덕)이란 것이 바로 하늘로부터 받아나온 天稟(천품)의 본성품인 조물주의 씨로써 사람의 심령 밭에 들어와 있는 속알성품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님 말씀의 聖靈(성령)과 붓다님 말씀의 佛性(불성)과 같은 말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孔子(공자)님의 이 말씀도 먼저 자신의 心靈(심령) 밭에 받아나온 명덕의 나인 참나를 밝혀 찾는 것이 사람의 가장 時急(시급)하고 重(중)한 工夫(공부)의 참목적이고 마지막 목적이란 것을 대학의 書頭(서두)에서 밝히신 것이라 할 것이다.
中庸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은 하늘의 마음이 내 안에 있다.
하늘의 마음을 알고 하늘의 마음으로 살고 있으면 하느님과 함께있는 사람이고
하느님과 함께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알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고 있으면
지상에서 천국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精神(정신)이 몸뚱이의 종이되어 사는 바리새인들에겐 예수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靈(영)의 귀가 열리질 않았듯이,
오늘날까지도 이런 部類(부류) 믿음의 段階(단계)를 넘어서질 못해 바른 깨달음으로 참된 믿음에 들질 못하고 있으면서도 헛된 傲慢(오만)과 我執(아집)과 驕慢(교만)으로 痼疾病(고질병)에 든줄도 모르고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그런 宗敎人들이 洪水(홍수)때에 狂暴(광포)하게 汎濫(범람)하는 물살처럼 넘쳐나는 것이 오늘날 宗敎人들의 信仰現實(신앙현실)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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