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4성제 -苦集滅道 본문
불교의 모든 것
4제
사성제, 四諦
괴로움에서 열반으로 가는 고 · 집 · 멸 · 도
붓다는 깨달음을 이룬 후, 사람들에게 설법하기를 주저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체득한 진리는 너무나 미묘해서 사람들에게 설한다고 해도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만 피곤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못에는 푸른 연꽃, 붉은 연꽃, 흰 연꽃이 있고, 그 중 어떤 것은 물속에 잠겨 있고, 어떤 것은 물에 뜨며, 또 어떤 것은 물 위에 솟아 있듯이 사람들의 근기가 다양하다는 것을 관찰하고는 설법하기로 했다. 그러면 누구에게 처음으로 설할 것인가?
붓다가 출가해서 처음으로 찾아간 수행자 알라라 칼라마를 떠올렸으나 그는 이미 죽었고, 다음으로 웃다카 라마풋타를 떠올렸으나 그도 죽고 없었다. 오랫동안 생각한 붓다는 예전에 함께 고행한 다섯 수행자에게 설하기로 결심하고, 그들이 있는 녹야원(鹿野苑)으로 향했다. 우루벨라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250킬로미터나 되는 먼 길이다. 붓다가 그들에게 처음으로 설한 가르침은 4제(諦)였다. 4제를 4성제(聖諦)라고도 하는데, 제는 ‘진리’를 뜻한다. 4제는 괴로움을 소멸시켜 열반(涅槃)에 이르게 하는 네 가지 진리로, 고제(苦諦) · 집제(集諦) · 멸제(滅諦) · 도제(道諦)를 말한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4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넷은 어떤 것인가?
괴로움이라는 진리(苦諦), 괴로움의 발생이라는 진리(集諦),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滅諦),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진리(道諦)이다.
어떤 것이 괴로움이라는 진리인가?
태어나는 괴로움, 늙는 괴로움, 병드는 괴로움, 죽는 괴로움, 근심하고 슬퍼하고 걱정하는 괴로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괴로움,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 구해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간단히 말해, 5음(陰)에 탐욕과 집착이 번성하므로 괴로움(五盛陰苦)이다. 이것이 괴로움이라는 진리이다.
어떤 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라는 진리인가?
느낌과 애욕을 끊임없이 일으켜 항상 탐내어 집착하는 것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라는 진리이다.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인가?
저 애욕을 남김없이 소멸시켜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이다.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진리인가?
8정도(正道)이니, 바르게 알기(正見) · 바르게 사유하기(正思惟) · 바르게 말하기(正語) · 바르게 행하기(正業) · 바르게 생활하기(正命) · 바르게 노력하기(正精進) · 바르게 알아차리기(正念) · 바르게 집중하기(正定)이다. 이것을 4제라고 한다.”
<增一阿含經 제14권, 高幢品 제5경>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 며칠 후 다섯 수행자 가운데 교진여(憍陳如)가 붓다의 가르침을 알아들었다. 붓다는 너무 기뻐 “교진여는 감로의 진리를 얻었다!”고 외쳤다. 그때의 기쁨을 "지신(地神)이 이 소리를 듣고 똑같이 외쳤고, 이 소리를 들은 4천왕(天王)이 또 외쳤고, 이 소리를 들은 33천(天)도 외쳤고, 33천의 소리를 들은 염천(艶天)도 외쳐서 도솔천에 이어 범천까지 이 소리를 들었다”주고 장엄하게 표현했다. 녹야원에서 이루어진 설법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하는데, ‘처음으로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다’라는 뜻이다. 이로써 인도 땅에 불교가 싹트게 되었다.
그때 세존께서 다섯 비구(比丘)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가운데 두 사람이 여기서 가르침을 받게 되면 나머지 세 사람이 걸식해와서 여섯이 나눠 먹도록 하자. 만약 세 사람이 가르침을 받게 되면 나머지 두 사람이 걸식해와서 여섯이 나눠 먹도록 하자.”
세존께서 가르치고 일깨우니, 다섯 비구는 생로병사가 없는 열반을 얻어 아라한(阿羅漢)이 되었다. 이제 삼천대천세계에는 붓다까지 합해 아라한이 모두 여섯이 되었다.
<增一阿含經 제14권, 高幢品 제5경>
붓다께서 “비구들아, 예나 지금이나 내가 가르치는 것은 단지 괴로움과 그 괴로움의 소멸일 뿐이다”주라고 했듯이, 불교는 괴로움에서 시작해서 그 괴로움의 소멸, 즉 열반에서 마친다. 괴로움에서 열반으로 나아가는 길이 바로 4제이다. 그래서 “모든 동물의 발자국이 다 코끼리 발자국 안에 들어오듯, 모든 가르침은 다 4제에 포함된다”주고 했다. 이 4제야말로 괴로움에서 열반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따라서 4제는 불교의 처음이자 끝이다.
고제 - 괴로움이라는 진리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의 무더기, 즉 몸(色) · 느낌(受) · 생각(想) · 의지(行) · 인식(識)을 5온(蘊)이라 하는데, 이 5온에 집착이 번성하므로 괴로움이고, 5온은 집착을 일으키는 근원이므로 괴로움이며, 또 5온에 집착하므로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비구들아, 괴로움이라는 진리가 있다.
태어남은 괴로움이고, 늙음은 괴로움이고, 병듦은 괴로움이고, 죽음은 괴로움이다. 근심 · 슬픔 · 불행은 괴로움이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은 괴로움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괴로움이고,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간단히 말하면, 5온에 집착이 있으므로 괴로움이다.”
<위나야 피타카 大品6, 初轉法輪>
“비구들아, 무엇이 괴로움이라는 진리인가?
태어남은 괴로움이고, 늙음은 괴로움이고, 병듦은 괴로움이고, 죽음은 괴로움이다. 근심 · 슬픔 · 통증 · 번민 · 절망은 괴로움이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간략히 말하면, 5온에 대한 집착이 괴로움이다.”
<디가 니카야 22, 大念處經>
집제 - 괴로움의 발생이라는 진리
위에서 말한 괴로움이 발생하는 원인을 밝혀준다. 집(集)이란 ‘발생’이라는 뜻이다. 괴로움은 어떤 원인과 조건이 성숙하고 결합해서 일어나는데, 그 원인은 갈애(渴愛), 즉 목이 말라 애타게 물을 찾듯이 몹시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애욕이다.
“비구들아, 괴로움의 발생이라는 진리가 있다.
과보를 일으키고, 희열과 탐욕을 동반하고, 모든 것에 집착하는 갈애이다.”
<위나야 피타카 大品6, 初轉法輪>
“비구들아, 무엇이 괴로움의 발생이라는 진리인가?
그것은 갈애이다. 재생(再生)을 초래하고, 희열과 탐욕을 동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니,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欲愛),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갈애(有愛),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애(無有愛)이다.”
<디가 니카야 22, 大念處經>
그래서 마음속에 갈애가 일어나면 곧바로 알아차리고 한 발짝 물러서서 내려놓기를 반복하는게 수행의 시작이다. 갈애가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반복해 나가면 갈애는 점점 약화되어 간다. 따라서 갈애가 일어나면 곧바로 알아차리는 것, 이것이 집제의 요점이다.
멸제 -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
5온의 작용에서 집착이 소멸되고, 또 그 5온에 집착하지 않아 갈애가 소멸된 상태이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의 번뇌가 소멸된 열반의 경지이다.
“비구들아,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가 있다.
갈애를 남김없이 소멸하고 버리고 벗어나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위나야 피타카 大品6, 初轉法輪>
도제 -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진리
8정도
“비구들아,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진리인가?
그것은 바로 8정도이니, 즉 바르게 알기 · 바르게 사유하기 · 바르게 말하기 · 바르게 행하기 · 바르게 생활하기 · 바르게 노력하기 · 바르게 알아차리기 · 바르게 집중하기이다.”
<디가 니카야 22, 大念處經>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여덟 가지 바른 길, 즉 8정도이다.
① 바르게 알기
붓다가 설한 4제를 아는 것이다. 바르게 알기의 반대는 12연기(緣起)의 무명(無明)이다.
“비구들아, 그러면 무엇이 바르게 알기인가?
괴로움(苦)에 대해 아는 것, 괴로움의 발생(集)에 대해 아는 것, 괴로움의 소멸(滅)에 대해 아는 것,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에 대해 아는 것, 이것이 바르게 알기이다.”
<디가 니카야 22, 大念處經>
“비구들아, 4성제를 꿰뚫어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와 너희들은 오랫동안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맛지마 니카야 141, 諦分別經>
② 바르게 사유하기
“비구들아, 그러면 무엇이 바르게 사유하기인가?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사유, 악의가 없는 사유, 남을 해치지 않는 사유, 이것이 바르게 사유하기이다.”
<디가 니카야 22, 大念處經>
“그러면 비구들아, 무엇이 바르게 사유하기인가?
그것은 번뇌에서 벗어난 사유, 분노가 없는 사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유이다.”
<맛지마 니카야 141, 諦分別經>
③ 바르게 말하기
“비구들아, 그러면 무엇이 바르게 말하기인가?
거짓말하지 않고, 이간질하지 않고, 거친 말을 하지 않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르게 말하기이다.”
<디가 니카야 22, 大念處經>
“거짓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짓지 못할 악이 없다.
그러므로 라훌라야, 장난으로도 거짓말을 하지 마라.”
<맛지마 니카야 61, 敎誡羅睺羅菴婆蘖林經>
인간의 입 속에는 도끼가 자라고 있어
어리석은 자들은
나쁜 말을 입 밖에 내뱉어
도끼로 자신을 자른다.
<상윳타 니카야 6 : 9, 都頭梵天>
무익한 천마디 말보다 들어서 마음이 가라앉는 유익한 한마디 말이 낫다.
<쿳다카 니카야, 法句經(dhammapada) 千品>
④ 바르게 행하기
“비구들아, 그러면 무엇이 바르게 행하기인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음란한 짓을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르게 행하기이다.”
<디가 니카야 22, 大念處經>
살생하고
거짓말하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술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뿌리를 파헤치는 자이다.
<쿳다카 니카야, 法句經 千品>
“라훌라야, 거울은 무엇을 위해 있느냐?”
“세존이시여, 비추어 보기 위해 있습니다.”
“라훌라야, 거듭 비추어 본 뒤에 행동하고, 거듭 비추어 본 뒤에 말하고, 거듭 비추어 본 뒤에 생각하라."
<맛지마 니카야 61, 敎誡羅睺羅菴婆蘖林經>
⑤ 바르게 생활하기
정당한 방법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생활을 말한다.
“비구들아, 그러면 무엇이 바르게 생활하기인가?
성스러운 제자는 그릇된 생계를 버리고 바른 생계로 생활한다. 이것이 바르게 생활하기이다.”
<디가 니카야 22, 大念處經>
⑥ 바르게 노력하기
4정근(正勤)을 닦는 것으로, 이미 생긴 악은 없애려고 노력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미리 방지하며,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은 생기도록 노력하고, 이미 생긴 선은 더욱 커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비구들아, 그러면 무엇이 바르게 노력하기인가?
비구가 아직 생기지 않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이 생기지 않도록 의욕을 가지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데 마음을 쏟고, 이미 생긴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끊으려는 의욕을 가지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데 마음을 쏟고, 아직 생기지 않은 건전한 것들이 생기도록 의욕을 가지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데 마음을 쏟고, 이미 생긴 건전한 것들을 유지하고 늘리고 계발하려는 의욕을 가지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데 마음을 쏟는 것, 이것이 바르게 노력하기이다.”
<디가 니카야 22, 大念處經>
악을 막고 없애고, 선을 증가시키고 유지하는 것.
이것이 붓다가 가르친 4정근이다.
이를 닦는 비구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른다.
<앙굿타라 니카야 4 : 行品11>
붓다의 제자 소나는 매우 열심히 수행했으나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했다. 붓다는 그의 생각을 간파하고 다가가서 물었다.
“소나야, 너는 집에 있을 때 비파를 잘 타지 않았더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비파 줄을 너무 강하게 죄면 소리가 잘 나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비파 줄을 아주 느슨하게 하면 소리가 잘 나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야, 그와 마찬가지로 노력도 너무 지나치면 마음이 동요하고, 너무 느슨하면 나태하게 된다. 그러므로 소나야,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소나는 세존의 가르침대로 행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앙굿타라 니카야 6 : 大品55>
⑦ 바르게 알아차리기
4염처(念處)를 닦는 것으로, 몸(身) · 느낌(受) · 마음(心) · 현상(法)을 매 순간 알아차려서 거기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멸을 끊임없이 통찰하는 수행이다.
“비구들아, 그러면 무엇이 바르게 알아차리기인가?
비구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세간에 대한 탐욕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게 분명한 앎과 알아차리기를 지니고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세간에 대한 탐욕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게 분명한 앎과 알아차리기를 지니고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세간에 대한 탐욕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게 분명한 앎과 알아차리기를 지니고 머문다.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세간에 대한 탐욕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게 분명한 앎과 알아차리기를 지니고 머문다. 이것이 바르게 알아차리기이다.”
<디가 니카야 22, 大念處經>
⑧ 바르게 집중하기
4선(禪)을 닦는 것으로, 수행자가 이르게 되는 네 단계의 선정이다. 초선은 애욕을 떠남으로써 기쁨과 안락이 있는 상태이고, 제2선은 마음이 고요하고 한곳에 집중됨으로써 기쁨과 안락이 있는 상태이다. 제3선은 평온과 알아차리기와 분명한 앎을 지니고 안락에 머무는 상태이고, 제4선은 평온과 알아차리기로 청정해진 상태이다.
“비구들아, 그러면 무엇이 바르게 집중하기인가?
비구가 애욕과 불건전한 것들을 떠나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고, (애욕 등을) 떠남으로써 기쁨과 안락이 있는 초선에 들어 머문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가라앉고, 마음이 고요하고 한곳에 집중됨으로써 기쁨과 안락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
기쁨을 버리고 평온에 머물며, 알아차리기와 분명한 앎을 지녀 몸으로 안락을 느낀다. 성자들이 ‘평온과 알아차리기를 지니고 안락에 머문다’ 고 한 제3선에 들어 머문다. 안락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며, 이전의 기쁨과 슬픔을 없애버렸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과 알아차리기로 청정해진 제4선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아, 이것이 바르게 집중하기이다.”
<디가 니카야 22, 大念處經>
《잡아함경》 제18권 제1경에 염부차(閻浮車)가 사리불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어떻게 하면 선법(善法)이 자라고, 3독(毒)이 소멸되고, 열반에 이르고, 번뇌가 소멸되고, 아라한에 이르고, 무명이 소멸되고, 괴로운 생존이 끝나고, 5온에 집착하지 않게 되고, 결박에서 벗어나고, 애욕이 소멸되고, 어떻게 하면 평온에 이르게 되는가 등이다. 각각의 질문에 사리불은 모두 8정도를 닦으라고 대답한다. 이 8정도가 곧 중도(中道)이다.
“비구들아, 그러면 무엇이 중도인가?
바로 8정도이니, 바르게 알기 · 바르게 사유하기 · 바르게 말하기 · 바르게 행하기 · 바르게 생활하기 · 바르게 노력하기 · 바르게 알아차리기 · 바르게 집중하기이다.
<상윳타 니카야 56 : 11, 如來所說(1)>
4제의 비유
4제는 다음과 같이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에 비유할 수 있다.
① 고제 - 괴로움 - 병
② 집제 - 괴로움의 발생 - 병의 원인
③ 멸제 - 괴로움의 소멸 - 병의 완치
④ 도제 -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방법 - 병의 치료법
어느 때 붓다께서 바라내국의 선인(仙人)이 살던 녹야원에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큰 의왕(醫王)이라 하나니, 의왕은 반드시 이 네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나는 병을 잘 아는 것이요, 둘은 병의 근원을 잘 아는 것이요, 셋은 병의 치료법을 잘 아는 것이요, 넷은 병을 치료하고 나서 재발하지 않게 하는 법을 잘 아는 것이다. (……)
여래 · 응공 · 등정각은 큰 의왕으로서 네 가지 덕을 성취하여 중생들의 병을 치료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 덕인가?
여래는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진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진실 그대로 알며,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진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안다.
비구들아, 저 세간의 양의(良醫)는 태어남에 대한 근본 치료법을 진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늙음 · 병듦 · 죽음 · 근심 · 슬픔 · 고뇌에 대한 근본 치료법을 진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러나 여래 · 응공 · 등정각은 큰 의왕으로서 태어남의 근원을 진실 그대로 알아 치료할 줄 알고, 늙음 · 병듦 · 죽음 · 근심 · 슬픔 · 고뇌의 근원을 진실 그대로 알아 치료할 줄 안다. 그래서 여래 · 응공 · 등정각을 큰 의왕이라 한다.”
<雜阿含經 제15권 제25경>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마라가야, 세계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영혼과 육체는 같은가, 다른가?
인간은 죽은 다음에도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이런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해도 인생의 괴로움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현재의 삶 속에서 괴로움을 소멸시켜야 한다.
마라가야, 내가 설하지 않은 것은 설하지 않은 대로, 설한 것은 설한 대로 받아들여라.
그러면 내가 설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나는 설했다.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이다’라고 나는 설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설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설했다.
나는 왜 그것을 설했는가? 그것은 열반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맛지마 니카야 63, 摩羅迦小經>
그때 수달장자가 붓다에게 나아가 그의 발에 머리를 대는 예를 표한 뒤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4성제를 점차로 통달하게 됩니까, 아니면 한꺼번에 통달하게 됩니까?”
“이 4성제는 점차로 통달하는 것이지 한꺼번에 통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네 계단을 거쳐 전당(殿堂)에 오르는 것과 같다. 만약 어떤 사람이 ‘첫 계단에 오르지 않고 둘째 · 셋째 · 넷째 계단을 거쳐 전당에 올랐다’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첫 계단에 오른 뒤에 둘째 · 셋째 · 넷째 계단을 차례로 거쳐야 전당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비구야,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통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괴로움의 발생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통달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雜阿含經 제16권 제29경~제30경>
언어 표기법
ⓢ 혹은 <산>은 산스크리트(sanskrit), ⓟ 혹은 <팔>은 팔리어(pāli語)를 가리킨다.
산스크리트와 팔리어의 한글 표기는 1986년 1월 7일에 문교부에서 고시한 ‘개정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된소리와 장음표기를 쓰지 않고, 동일 겹자음일 경우에 앞 자음은 받침으로 표기했다.
예) ⓟvipassanā ⇒ 위팟사나
음사(音寫)는 산스크리트 또는 팔리어를 한자로 옮길 때, 번역하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을 말한다.
예) 반야(般若, ⓢprajnā ⓟpannā) / 열반(涅槃, ⓢnirvāṇa ⓟnibbāna)
경전 표기법
전거에서, 예를 들어 <雜阿含經 제30권 제7경>은 《잡아함경》 제30권의 일곱 번째 경을 가리킨다.
《니카야(nikāya)》의 경우, <디가 니카야 22, 大念處經>과 <맛지마 니카야 54, 哺多利經>에서 22와 54는 경 번호이고, <상윳타 니카야 23 : 15, 苦(1)>에서 23은 분류(division) 번호이고, 15는 경 번호이다.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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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곽철환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를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불교 길라잡이』와 『시공 불교사전』이 있고, 옮긴 책으로 『핵심 아함경』이 있다.
출처 불교의 모든 것 |행성B잎새 전체목차
한 권으로 읽는 불교 입문서. 어느 순간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삶이 고달프고 가난한 사람뿐만 아니라, 남부럽지 않은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럴 때 ‘마음 공부’를 이유로 절을 찾고, 스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은 마음의 소음에 부대끼는 이들을 불교의 숲속으로 데려가 나무 하나하나를 쉽게 설명하고, 그 숲속에 편히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줄 것이다”라고 이 책을 쓴 이유를 말하고 있다.《불교의 모든 것》은 쉽게 다가가기 힘들었던 불교의 경전, 교리뿐 아니라 문화, 인물, 역사까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해주고 있다. 또한 풍부한 사진자료와 지도, 계보도 등은 독자들을 불교의 세계로 친절하게 인도할 것이다.불교의 문화, 경전, 교리, 역사, 인물을 총망라한 최고의 불교 입문서! 사람들은 흔히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
이전제1장. 침묵의 성자, 고타마 붓다
다음12연기 - 괴로움이 일어나고 소멸하는 열두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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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
육도(六道:지옥·아귀·축생·수라·하늘·인간세상의 여섯 가지 세상)의 중생을 구원한다는 보살. | 도리천(忉利天)에서 석가여래의 부촉을 받고 매일 아침 선정(禪定)에 들어 중생의 근기를 관찰하며, 석가여래가 입멸한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천상에서 지옥까지의 일체중생을 교화하는 대자대비의 보살이다. 지장보살에 관한 경전으로는 ≪지장십륜경 地藏十輪經≫과 ≪지장보살본원경 地藏菩薩本願經≫·≪점찰선악업보경 占察善惡業報經≫이 있다. 이들 경에 의하면 지장보살은 이미 여래의 경지를 증득하였고 무생법인(無生法印)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생들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모든 부처의 국토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지장보살에게는 다른 보살에게서 찾기 어려운 몇 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 자신의 성불(成佛)을 포기한 보살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이상은 성불이고 모든 중생의 성불은 부처가 보장하였지만 지장보살만은 예외이다. 그는 모든 중생, 특히 악도(惡道)에 떨어져서 헤매는 중생, 지옥의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는 중생들 모두가 빠짐없이 성불하기 전에는 자신도 결코 성불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 것이다.
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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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대승 불교의 경전. 특히 선종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중시하고 있다. 붓다와 제자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앞부분은 불교에 대한 이해가 높은 사람들, 뒷부분은 이해가 낮은 사람들을 위해 쓰여져 있다. 정신적인 깨달음을 중요시 한 경전이다. 한역본은 〈금강반야바라밀경〉·〈금강능단반야바라밀경〉·〈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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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재
사람이 죽은 지 49일째에 좋은 곳에 태어나길 기원하며 거행하는 불공 의식. 죽은 날을 1일로 하여 7일 마다 7번 불공 의식을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대승불교의 전승에서 이 기간 동안 죽은 자는 생전의 공덕을 심판받아 내세에 갈 곳이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죽은 자가 더 좋은 내세로 갈 수 있도록 불공을 드리는 의식으로, 유교의 장례 전통과는 완전히 다르다. 49재가 끝나면 내세로 떠났다고 보고 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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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공즉시색
『반야심경』에서 물질과 인연 또는 인연과 물질의 관계를 표현한 불교교리. | 물질적인 세계와 평등 무차별한 공(空)의 세계가 다르지 않음을 뜻함. 원문은 “색불이공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며, 이는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로 번역된다. 그리고 범어(梵語) 원문은 “이 세상에 있어 물질적 현상에는 실체가 없는 것이며, 실체가 없기 때문에 바로 물질적 현상이 있게 되는 것이다. 실체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물질적 현상을 떠나 있지는 않다. 또, 물질적 현상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부터 떠나서 물질적 현상인 것이 아니다. 이리하여 물질적 현상이란 실체가 없는 것이다. 대개 실체가 없다는 것은 물질적 현상인 것이다.”로 되어 있다. 이 긴 문장을 한역(漢譯)할 때 열여섯 글자로 간략히 요약한 것이다. 따라서, 색은 물질적 현상이며, 공은 실체가 없음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원래 불교에서는, 이원론적(二元論的)인 사고방식을 지양하고 이와 같이 평등한 불이(不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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