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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십자 삼일신고(7)) 제7강좌. 하나님과 태극도(太極圖) 본문

천지인 공부/삼일신고

백십자 삼일신고(7)) 제7강좌. 하나님과 태극도(太極圖)

柏道 2019. 8. 29. 18:42


백십자 삼일신고(4) / 하나님과 태극도

|수요강좌/한민족 희망의편지

 권천문 |       

 

제7강좌. 하나님과 태극도(太極圖)

 

무한한 우주공간 가운데 떠있는 지구! 이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를 가리켜 삼라만상이라 일컫는다. 예부터 삼라만상 뿐 아니라 대우주 가운데 벌어지는 모든 자연 현상은 탐구의 대상이 되어왔다. 대우주공간에 떠 있는 해와 달과 별은 공간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어째서 떨어지지 않는 것일까? 왜 아침이면 밝은 태양이 떠오르고 밤이면 어두움이 깃드는 것인가? 왜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무성했다가 가을이면 열매맺고 겨울이면 얼어붙는 것일까? 해마다 봄이 되면 꽃은 다시 피고 잎은 다시 돋아나는데 왜 사람은 한번 가면 다시 못오는 것일까?

하루 이틀 세월이 가고 계절의 변화가 오고 인생의 고뇌가 뒤따르고 그러나 그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오묘하고 신비롭지 않은 것이 없으니 다만 감탄할 뿐이다. 그러나 계절의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현상을 조금만 관심있게 관찰해 보면 삼라만상이 무원칙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예외없이 일정한 법칙 아래 질서운동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삼라만상 뿐 아니라 대우주 공간을 떠도는 별들도 법칙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존재와 법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우주안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어떠한 것이든 법칙이 있어서 그 법칙대로 생겨나며 그 과정 또한 아무렇게나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법칙대로 움직이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주안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존재이유와 가치를 지니며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법칙적 운동을 하는 불가분의 유대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우주의 신비를 푸는데 있어 시한문화(視限文化) 즉 볼 수 있는 힘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불가시권(不可視圈)까지 꿰뚫어 보고자 하는 바이다. (최봉수 心 참고)

 

1. 하나님(宇宙本體論)의 사적고찰(史的考察)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존재의 시발과 더불어 공간과 시간이 한 덩어리가 되어 이루어진 세계가 우주의 현상계이다. 이와 같은 현상계가 최초에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그 누구도 자신 있는 답변을 할 수 없다. 그 무엇이 창조해 놓은 피조물이라면 그 무엇은 또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또한 그 무엇이라는 존재가 과연 무엇인지를 도저히 밝힐 길이 없다.

이와 같은 우주의 창조적 자연관을 뒤엎고, 그 무엇이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라고 내세울 만한 논리상으로나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어렵다. 그래서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성철(聖哲)들이 우주창조의 근본을 밝히는데 온갖 심혈을 기울여 왔으며 최근에는 과학자까지 동원되어 우주창조의 소원(素原)이 되는 최종 입자를 밝혀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설사 최종 입자를 밝혔다고 해도 그 입자로서 인간의 인식문제가 해결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입자를 보는 것과 입자가 생긴 원천적인 논리를 아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보는 데만 목적을 둘 것이 아니라 아는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주의 창조적 본체 측 「하나님」을 알아야 인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 우주 창조의 본질을 수(數)․물(物)․상(象)으로 설명

인류문화가 발생해서부터 고대인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연관을 거의 동일한 시각(視角)에서 같은 방법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창조적 본능과 지능에 따라 양면성을 띄고 태어났기 때문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취하는 본능으로 하여 먹기도 하고 갖기도 하며 주고도 싶으며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스스로 우러난다. 이와 같은 본능적 의식작용으로 인해 초지식적(超知識的)인 영역을 자각적 영능(靈能)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대부분 문자나 학문을 통한 학습(學習)으로서 아는 범위를 넓혀나가는 지능적 인식방법이 사회생활에 있어서 보편적이다. 전자인 본능작용은 자각․직감․직관․이해 등을 통하여 인식이 가능하며 후자인 지능작용은 관찰․지식․학구(學究)․분석 등으로 인식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인간의 인식문제를 음양상에 놓고 보면 본능적 인식은 정적음성(靜的陰性)에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불가시(不可視)의 영역인 내면 세계와 전체성에 따른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며 지능적 인식은 동적양성(動的陽性)에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역인 외향세계와 개체적 분석을 통하여 사물을 이해하게끔 인간의 의식구조가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주창조적 본질인 본체문제는 불가시인 전체성(全體性)을 띄고 있는 관계로 본능적으로 해결해야 할 분야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화의 시발과 더불어 인류는 이 같은 문제를 거론해 왔으며 6천여년 전부터 이미 성현들께서 각능(覺能)으로서 인간인식 문제를 소상히 밝혀 놓게된 것이다. 옛 성현들께서 밝혀놓은 탐구(探求)의 기본개념을 살펴보면 수적(數的)․물적(物的)․상적(象的)인 세 가지 개념(槪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주가 처음으로 생겨날 때 최초는 무엇인가 하나로부터 생겨났을 것이라고 하는 하나라는 수(數)적 개념과 어떠한 물질로부터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하는 물(物)적 개념과 수와 물로서만 확정지을 수 없는 형상일 것이라는 상(象)적 개념을 들어 세 가지로 설명한 것이다.

 

(2) 태호복희의 하도상수

동서양철학의 대두라 할 수 있는 배달국 제5대 태우의 천황의 열 둘째 아들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 BC 3500)는 하도상수(河圖象數)의 진리로서 창조적 본체를 변증하고 그 구성체마저 합리적으로 정립(定立)해 놓고 있다. 한국에서의 창조적 본체관을 집약해 보면 수적(數的)개념이 단연 우세하여 하나인 ∣의 사상으로 귀납(歸納)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하나」와 「첫째」라는 뜻을 민족의 주체사상으로 삼아 「한」이라는 관사(冠詞)를 붙여 한민족 또는 하나(Hana)민족이라고 불러온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인 ∣의 사상 즉 첫째 되신 분이 창조적 본체며 이의 대명사(代名詞)가 곧 하나님(한울님, 한얼님, 한알님)으로 부르고 있었다.

① 도(道)는 바로 우주법칙

만물의 창조적 시원(始源)을 하나로 보느냐 둘로 보느냐는 문제를 일원관(一元觀)이니 이원관이니 한다. 사물의 근원을 둘로 보는 이유는 사물을 외양으로 볼때는 둘로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져 있으므로 둘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이 최초 어떻게 생겨났느냐 하는 문제를 파고 들어가면 문제는 달라진다. 왜냐하면 인간의 창조적 시원을 각각 나누어 양원(兩元)적인 입장에서는 결코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의 창시적 본질을 하나로 보기 시작한 것이 동서가 거의 일치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하나를 찾기 위해 「하나」에 앞서 있는 그 무엇인가의 존재를 탐구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도(道)」「우주법칙」이라는 것이다.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라는 말이 있다. 이 뜻은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돌아갈 곳이 어디냐’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의 시원을 밝혀「하나」를 증명하자는 상대적인 이론의 출발이 곧 본체론의 시초인 동시에 동양의 철학사상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는 「근본 根本」을 말하는 것이다.

 

*․ 노자(老子 BC 634~ )

노자가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부음이포양충기위화(負陰而抱陽沖氣爲和)라 한 말은 도에서 하나가 비롯되었으며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으로 발전하며 셋에 이르러서는 음이 양을 부(負)하고 양음 음을 포(抱, 껴안다)하는 가운데서 기가 충돌하며 충기(화한 기운의발동을 뜻함)의 조화로서 만물이 생성된다는 말이다.

 

*․공자(孔子 BC 552~479)

공자는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 하여 한번 어두웠다 한번 밝아지는 것이 도라고 했으며 또한 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라 하여 나의 도는 「하나(一)」의 진리로서 통한다고 했다. 이는 곧 「도가 하나」며 「하나가 도」라는 뜻이다. 곧 도와 존재적 ∣은 별개의 것이 아니며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 ․석가(釋迦 BC 565~486)

석가는 항구적으로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우주본체를 진여(眞如)라고 했으며 진여는 여래장(如來藏)이라고 하여 참 실체란 피조물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고 멸하는 법칙과 연기(緣起)를 동반한 것(제법종연생 諸法終演生 제법종연멸 諸法終演滅)으로 그 전체가 오직 「하나」에 귀의해 있다는 진리를 설파(說破)했다. 그래서 전생(前生), 현세(現世), 내세(來世)인 삼세(三世)가 오직 「하나」로 통하며 (삼계유일심 三界唯一心) 존재의 구심체(求心體)를 일원상(一圓相)이니 또는 공(空)이니 하는 형상으로 상징해 그 실체를 설명하고 있다.

 

② 진리의 척도(尺度)는 신(神)

서양철학은 그 발상지인 그리스의 탈레스로부터 시작하여 자연계를 관철하거나 본체의 세계를 사유(思惟)해온 방법이 동양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동양은 본체의 세계를 인식수단으로 체계화한 법칙적 구성체가 논리정연하게 확립(陰陽, 八卦, 河圖洛書)되어 전통을 계승하였으나 서양은 이와는 약간 다른면을 보인다.

 

*․ 피타고라스(BC 570~500)

피타고라스가 만물은 수(數)라고 제창한 수의 진리가 동양과 같이 상수(象數)로서 사물의 내면까지 밝힌 진리적 척도로서의 수가 아니라 피상적으로 나타나는 물질만을 보고 내세운 관계로 철학의 전통적 체계를 정립하지 못했다. 이처럼 서양에선 철학적 상수로서 물상을 밝히지 못하고 다만 수를 평면적(平面的)인 계수(計數)로서만 발전시켰기 때문에 수를 응용한 도형(幾何學的 模型, 三角數, 長方數, 正分數)이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론에 영향을 주긴 했으나 수정(修正)과 부정을 면치 못한 사적(史的) 오류(誤謬)를 범하게 된 것이다.

 

* ․제논(BC 336~264)

제논은 스토아라는 학파를 만들어 범신론적 세계관으로 이를 변경시켜 전일(全一)로서의 우주는 완전히 이성적(理性的)이고 보편적 범칙에 합치하기 때문에 신(神)인 동시에 자연이며 섭리(攝理)인 동시에 운명이라고 그의 우주관을 밝혔다. 이후부터 이성론이 적극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본체의 세계를 이성의 법칙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 ․예수(BC 0~AD 30)

그리스도교가 생기면서부터 초민족적(超民族的)인 세계 종교로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신자는 물론 외부에서도 학문을 통한 지식과 교회를 통한 신앙 사이에 이론(異論)이 생겼다. 이를 합리적으로 교리내용에 수렴(收斂)시키고 인간이성(人間理性)의 요구에도 만족시키려는 의도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교부(敎父)철학이다. 예수가 깨달은 본체의 세계는 공자․노자․석가와 같이 길(道)이요 진리(眞理)요 생명(生命)이라고 한 것이다

이처럼 창조적 본체의 최고 해답으로 도(道)․진(眞)․명(命)의 3자를 벗어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대성철은 한결같이 도․진․명 세가지를 빼놓지 않고 언급한 것이다.

예수는「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다. 여기서「나」는 예수자신을 비롯한 세상 모든「생명을 가진 인간」을 포함하여 신앙대상 본체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석가의「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표현 또한 같은 뜻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토마스 아퀴나스는 스콜라 철학이 거성(巨星)으로서 이성(理性)은 철학에 그리고 신앙은 계시에 속한다고 이성과 신앙의 관계를 명확히 구분하였다. 그러나 양자의 정상(頂上)은 궁극적으로 일치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함으로서 창조적 본체를 신(神)으로 규정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를 논증(論證)하기 위하여 생성변화(生成變化)와 운동하고 있는 사실을 이성적 추리로 판단하여 제일원인을 우연성에 입각한 자존유(自存有)로부터 우연유(偶然有)로 보았다. 따라서 만유(萬有)가 갖고 있는 완전성을 사물의 합목적(合目的) 관계로부터 궁극적 목적인 최고예지자(最高叡智者)로 신을 논증하는 우주론적 증명을 내세웠다. 그러나 무한한 신의 본질은 유한(有限)한 인간이성을 초월했기 때문에 알 수 없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로서 창조적 본체를 신으로 규정한 셈이 되었다.

 

* ․스피노자(1632~1677)

스피노자는 유일한 실체를 신성(神性)으로 보아 우주의 구성체의 기본이 유일한 신이며, 신이 곧 자연의 법칙이라고 하여 신을 창조적 본체로 보았다.

 

③ 동서철학의 하나님관 비교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동서철학의 목적과 향방이 처음에는 동일했으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현격하게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역력히 알 수 있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동양은 하늘의 계시를 받았거나 또는 성현(도인, 철인哲人)들의 도통으로서 발견했거나 우주본체의 창조적 진리를 척도화한 하도와 낙서, 태극과 음양5행, 십천운(十天運), 십이지기(十二地氣)와 육십운기(六十運氣) 등 우주전체를 헤아릴 수 있는 상(象)과 수(數)가 곧바로 물(物)로 대체(對替)되는 변증의 척도를 완벽하게 정립(定立)하였다는 점이 서양과 다른 것이다.

그래서 후대사람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부정되거나 도전(挑戰)을 받은 일이 없이 일사분란하게 전통을 계승하여 철학적 체계가 정립되어 온 것이다. 그 증거는 천부경(天符經)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복희의 하도중 천일생임수(天一生壬水), 공자의 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 또는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노자의 도생일(道生一), 이생삼(二生三), 삼생만물, 석가의 일심이문(一心二門), 장자의 태허지중일기(太虛地中一氣), 주자(周子))의 일태극(一太極), 정자(桯子)의 일기(一氣), 정자의 천인일체본무이(天人一體本無二), 서경덕의 기일원(氣一元), 원효의 진속불이(眞俗不二), 퇴율(退栗)의 이기일원(理氣一元)등 6천년 전이나 6천년 후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창조적 본체인 1의 진리로부터 비롯된 상수철학적 변증의 척도가 시종일관 계승되어 오고 있다.

천부경을 위시하여 공맹(孔孟)철학의 역경과 중용, 대학과 논어, 노장(老莊)철학의 도덕경, 참동계(參同契)와 오진편(梧眞篇),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 주자(朱子)의 성리학, 원효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왕양명의 양명학, 이황(李滉)의 성학십도, 최제우의 동경대전(東京大典)등의 내용이 어느 하나 우주본체사상을 외면했거나 우주본체의 진리를 떠나서 엮어진 것이 없다는 사실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3) 우주창조적본체(宇宙創造的本體)의 비밀

우주본체론을 탐구해 온 동서양의 발자취를 각각 점검한 종합적 결론에 따르면 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미래의 세계나 불가시(不可視)의 영역을 인식할 수 있는 지력(知力)의 열쇠는 우주의 창조적 본체에 있으며 이를 파악하고 실용화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간 오직 하나이자 둘도 아닌 우주본체를 놓고 다양한 시각에서 구구하게 논한 주장을 하나로 집약하여, 누구나 더 이상 다른 이론(異論)을 개진할 수 없게끔 만인이 공인(公認)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명확한 우주본체의 정체를 밝혀 오랫동안 인류의 공동과제이자 철현(哲賢)들의 숙원으로 남아있던 우주창조적 본체문제를 이제 깨끗이 해결하고 종지부(終止符)를 찍는 역사적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① 무(無)와 유(有)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무와 유는 인간의 시각에서 보는 세계일 뿐 실제로는 무와 유는 별개가 아니라 전체적 전일(全一)인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우주전체나 또는 인간의 존재만 하더라도 무한한 공간을 무라고 보고 해와 달, 별과 지구와 같이 눈에 보이는 실체만을 유라고 규정하고 있다.

인간도 눈에 보이는 육체는 유적(有的) 존재로 규정하면서 볼 수는 없으나 엄연히 존재하는 마음을 어떻게 정의해야 옳을 것인지 주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을 볼 수 없다 해서 참으로 없다고 규정할 수 있겠는가, 이 때 없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 있는 마음을 무라고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있다고 규정한다면 있는 것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보여 줄 수 없으므로, 있다는 증거 또한 과학적으로 실증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엄연히 있는 것도 볼 수 없거나 실증할 수 없다고 하여 포기해야 하겠는가. 바로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학문이 철학이며 이를 철학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앞세우는 것이 우주본체론인 것이다.

이와 같이 무와 유와의 상대관계는 시각(視覺)의 구분일 뿐 전체적으로는 하나인 것이다. 전체적 하나 속에 무도 유도 있으며 전체적 하나는 무만도 아니요 유만도 아닌 유무를 전체 속에 포함한 하나의 체(體)인 것이다. 이것을 본질(本質)이라고 하며 영원히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우주의 본체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본체(本體)를 관념상으로는 하도(河圖) 중심부에 있는 일점(一點)이 상징적(象徵的)으로 입증해주고 있으며 물질적으로는 반도체의 작용(수정체에 전기를 가했을 때 1초 동안에 32768회 진동하는 것을 1회로 조절하는 작용을 반도체 물질이 한다)이 일부씩 확인해 주기에 이르렀다.

 

② 존재와 일(一)의 시원(始源)

눈으로도 볼 수 없으며 과학적으로도 실증할 수 없는 전체의 영역(領域)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전체의 근원적 소재(素材)인 근본이 무엇인가를 알면 마치 헝클어진 실타래에서 실마리를 찾아 풀어나가듯이 우주전체문제(宇宙全體)를 풀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철학의 사명은 실마리를 찾듯이 우주의 근본이 무엇이냐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최초의 과제인 것이다. 이것이 철학에서 흔히 주장해온 존재론이다. 무엇이 우주의 최초 존재인가를 아는 것이 존재론의 목적이었으나 해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서양철학은 장황한 이론에 그쳤을 뿐 아니라 과학적 분석에 자기영역을 모두 넘겨주고 만 것이다.

존재라고 하면 무에서 하나가 생긴 유를 뜻하며 그 무엇인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 보이며 아울러 하나라는 존재를 입증하는 물증이 명확히 나타나 있다. 그것이 하나(一)라는 존재이다. 이 하나를 수적인 하나로 만 생각하면 잘못이다. 물론 수적으로도 하나이지만 하나의 의미는 전체적 일(一)이며 개체적으로도 일(一)이다.

일(一)은 무(無)의 끝(末)이자 유(有)의 비롯인 동시에 유무를 연결하고 전체를 통일하는 구심체(求心體)이자 우(宇「∣」), 주(宙「―」)를 대표한 인식의 기본적 주체인 것이다. 그래서 일(一)에다 대자(大字)를 더한 것이 하늘(天)이며 하나(一) 크다(大)는 것은 곧 우주를 대표한 최고․최대 극치(極致), 무상(無上), 유일의 존재가 일(一)이란 뜻이다. 이를 한 또는 한님, 하나님 등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하며 부르는 존재의 지존적(至尊的)인 하나가 존재의 시 발이자 전체를 대표한 얼굴이다. 그러나 일(一)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것은 일(一)인 하나는 보이나 그 하나를 있게 한 바탕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는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그 존재가 일(一)을 있게 한 바탕이자 그 표시를 공(空)이다 무(無)다 또는 일원상(一圓相)이다 라는 등으로 상징하고 있다. 이처럼 무적(無的)인 공은 유적인 일(一)의 존재를 포용하고 있는 까닭에 무와 유인 공과 일(一)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근본은 하나인 것이다.

노자(老子)가 도생일(道生一)이라고 한 도는 무나 공과 같은 뜻을 가지 고 있는 것이며 일(一)은 무에서 유적인 존재로서의 일(一)이다.

 

③ 태극(太極)이란 용어

유와 무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본체는 유무를 포용한 전체적 하나다. 존재를 나타내는 인간인식의 시원이다. 존재상으로는 하나인 우주의 창조적 시원을 밝히려면 하나가 어떻게 생겼느냐는 과정과 또한 하나가 어디서부터 온 것이냐는 유래를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끔 설명이 되어야 한다. 존재의 시발인 하나를 설명하기 위하여 등장한 글이 태극설이다. 즉 태극은 존재의 시원을 인식수단으로 바꿔 놓은 도설(圖說)이다.

태극(太極)이란 용어에서 태(太)자는 크다 적다는 질량(質量)이나 또는 형태를 지극히 깊게 강조한 문자일 뿐 아니라, 여기서는 우주만물의 창조적 본체와 시원을 밝히는데 사용된 관사(冠詞)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초(太初), 태소(太素), 태미(太微), 태양(太陽) 등 태자를 붙인 숙어가 모두 사물의 궁극적인 극한점을 강조하고 있다. 극(極)자 역시 모든 사물의 최종적인 한계에서 극한점을 강조하여 지칭한 형용사다.

태극의 의미를 종합적으로 고찰하면 공간․시간․존재․극대․극소․극중(極中) 또는 시중말(始中末) 등을 총 집약한 우주 창조관의 극단적 표현이 태극이다.

 

④ 하나님과 태극

성경 창세기(창 1:1)에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다」는 짧고 명확한 한마디의 말은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시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삼일신고」에는 신재무상일위(神在無上一位) 생천주무수 세계조신신물(生天主無數 世界造兟兟物)이라하여 하나님은 그 위로는 아무도 없는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시는 분으로 하늘과 땅을 주관하시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하였다.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 하나님은 어떻게 창생 되셨을까? 우주가운데 어떻게 만물이 생겨났을까? 이에 대한 대답이 우리 민족의 태극(太極)사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태극론은 앞에서 논한 바와 같이 태초의 무(無)라는 공간에 유(有)라는 실존이 생겨난 시원을 설명하므로 창조논리를 실증하고 있다. 무(無空)과 유(實存)라는 상대적인 의문이 무(無)에서 어떻게 유(有)가 생겨났으며 공(空○)에서 어떻게 하나()가 생겼는가하는 「무 : 유」「공 : 일」이라는 원리를 설명하므로 상대적인 논리를 설립시켰다.

우주본체(우주본체의 도표, 자료 3-6-2)의 무(無○)와 유(有)를 도식으로 표시하면 하나는 허무라는 공(空○)이자 무(無)를 상징한 것이고 또 하나는 공(空○) 가운데 일()을 표시한 것이다. 이렇게 무(無○) 유(유)를 그린 내용이 곧 존재의 시원인 것이다. 즉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이다. 이는 곧 유(有)는 무(無)가 상대이고, 무(無)는 유(有)가 상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적 존재요 또한 유적 존재이다.

무(無○)가 유(有)를 상대로 시원한 가운데의 존재인 일(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와 같이 직선 一로서 존재의 시원을 이야기한다면 어딘가 미흡한 생각이 든다. 그것을 곧 ○의 상대에서 존재의 一을 표시하자면 ? 같은 태극의 도상이 자연스럽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존재의 一은 ◯의 상대로서 一인 까닭에 ◯을 따라 一을 그리면 ?태극의 도상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이처럼 한데 묶어서 무(無◯)를 무극이라 하고 유(一)적 존재의 시발을 태극?이라고 하며 한마디로 무극이 태극이라 한다. 무극이 태극이란 말은 무극이 곧 태극이요, 태극이 곧 무극이란 뜻인데 무극과 태극은 절대와 상대로 불가분의 일체가 된다.

 

㉠ 태극이 무극(太極而無極)

태극?이 무극◯이라 함은 곧 무적(無的)바탕이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유가 있으며, 또한 유적존재가 있다함은 무적상대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와 무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유의 본체인 무, 무의 상대인 유가 절대인 동시적인 상대를 이루며 최초로 출발한 모습이다. 즉 무극◯이 태극?인 것이다. 즉 유무상통인 것이다.

 

㉡ 무적◯ 및 유적?과 우주본체

一?은 「하나」이면서 존재의 시발이다. 그러나 一을 인식하게 되는 때는「하나」를 존재케 하는「바탕」이 있다는 사실과「하나」는 보이나 그「바탕」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하나」이전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과 무(無)가 하나의 상대적 본질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본질적인 무도 하나가 있으므로 해서 무적유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무적유라고 하는 무는 본질적인 본체로서 항구적으로 무한히 계승되고 유지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처 럼 무적◯은 유적 一?의 존재를 포용하고 있는 까닭에 무와 유인 ◯과 ?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본(本)은 하나인 것이다.

 

그래서 이를

*∙ 철학자들은 우주본체를 진(眞)이라고 하고

*∙ 노자는 도생일(道生一) 한도 천도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니 유심이라 했다.

*∙ 석가는 진여(眞如) 공◯일원상법성(一圓相法性)이라 한다.

창조에서의 하나님의 존재를 문화적 차원에서 인식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존재를 원상으로 표시하면 ◯과 같은 일원상으로 그릴 수 있다.

일 원상 ◯속에서는 유무가 전체 포함되어 있으며 일원상에서는 어디가 시작(始)이며 어디가 끝(終)인지 찾을 길 없다(無始無終). 다만 무한한 일대의 경지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대 우주 공간을 포용하는 거대한 하나님을 상징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노자는 도생일과 무위자연을 주장했다. 이는 도에서 일(一)이 생겨나서 세상 만물이 시작되었다고 도를 본체로 보았다. 장자 역시 도재 태극지(道在太極之)즉 통화(統和)한 도로서 본체를 삼았다. 석가는 일(一) 과 심(心)을 하나의 근본으로 삼아 일심이문(一心二門) 즉 진여문 생멸문(眞如門 生滅門)으로 우주의 시원을 一과 ◯에 핵심을 두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우주는 어디가 처음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르며 다만 무한한 공간일 뿐이며 이것을 우리는 우주라 한다. 우(宇∣)는 공간상으로 무한함을 말하고 주(宙 一)는 시간상으로 무한함을 말한다. 위 두 가지 표시를 합하면「+」가 성립된다. 즉 +는 무한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을 상징하는 무적인 유의 +무극이자〈우주창조의 본체〉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적◯인 +무극에서 무엇인가 처음 생기는 존재가 일 태극?이다. 일 태극으로 말미암아 십 무극도 동시에 존재성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좀더 쉽게 설명하면「흙」이 있으므로 해서 「종자」를 심을 수 있으며 그「종자」로 말미암아 새싹이 자라「열매」를 맺게된다.「열매」가 또다시「흙」으로 돌아갔다가 그 다음해에 다시 싹이 트고 돋아나서 자라고 꾳이 피며「열매」를 맺으므로 해서 항구적 계승이 보장되는 것이다. 이때「흙」은 우주적 본체이며 식물의 뿌리는 +무극 이며 새싹은 일 태극이 되는 것이다. 여하튼 식물의「종자」는「뿌리」,「새싹」,「꽃」,「열매」를 맺었다가 다시「흙」으로 돌아간다.

흙(土) 종자(種子) 새싹(植物)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도 없으면 무의미하여 이것들은 서로 빠질 수 없는 불가분의 상호관계 속에서 유지 되어지는 세계를 이루고 있다. 이것이 곧 삼위일체가 되는 것이다.

 

㉢ 일 태극

앞에서 ―? 은 우주최초의 존재로서의 ―?이라 밝혔다. ―?은 우주 전체를 대변한 시종일실 최고의 본체로 군림한 것이―?이다. 그래서 ―?은 우리 한민족의 최고사상이자 하나님 절신앙으로 계승되어 왔다. 한민족의 천부경에는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로 시작했는데 끝에는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이하 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계시이다. 「하나님」이라고 하는 일(一)의 비롯됨은 ◯에서 비롯됨이요, 일(一)의 마침 또한 ◯이라 함은「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자존자라는 뜻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진리인가. 천부경은 우주 대 창조의 원리를 이 두마디에 완전히 집약하여 설명해 놓았다. 우주는 태극으로 그 문을 열었으며 태극은 곧 無◯에서 有로, 有에서 無로 꼭거쳐야 하는 관문이자 우주창조의 열쇠이며 만유 존재의 기본척도로 군림한다. 태극의 진리를 이해하려면 무형(형이 상)과 유형(형이 하)인 우주 본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 이유는 無◯에서 有로, 무극이 태극으로 발전한 창조과정이 지엄한 범칙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므로 바로 이 법칙이 무엇이냐를 정확히 인식하게 되면 우주의 전체가 이해권 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설명한 무적◯이 무엇인가를 이해하였을 것으로 보며 이와 같은 무적◯이 최초로 유적 존재운동을 했을 때 ◯ 전체가 ◯의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면 ?이 된다.

이와 같이 중심부위에 구심체는 스스로 생기며 상하좌우가 동시에 움직여 한쪽은 내려가고 한쪽은 올라가며 똑같은 형태로 상대성을 이루며 一은 마침내 외권(外圈)을 따라 곡선을 그리며 태극도가 스스로 생기게 된다.

이것이 존재의 태초인 만유시원의 일(一)을 우리의 눈으로 직시할 수 있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존의 대상으로 숭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존재의 시원인 ?의 위대함을 태극의 진리를 통해서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면 하나(本)이요, 하나는

∙ 존재로서의 一이며

∙ 수(數)로서의 一이며

∙ 법(法)으로서의 一이며

∙ 물(物)로서의 一이며

∙ 운동(運動)으로서의 一이며

∙ 힘(力)으로서 一이며

∙ 전체(全體)로서의 一이며

∙ 개체(個體)로서의 一이며

∙ 사랑(愛)으로서 一이며

∙ 진리(眞理)로서의 一이며

∙ 도(道)로서의 一이며

∙ 영(靈)으로서의 一이며

∙ 빛(光)으로서 一이며

∙ 소리(音)으로서 一이며

∙ 말씀(言)으로서 一이며

∙ 생명(生命)으로서 一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태극의 一은 만유 존재로서 一인 까닭에 지존의 본체가 되는 것이다. 또한 존재로서의 태극은 一의 존재 ◯을 경계로 상대성이 성립된 음양과 이기(理氣)가 생겨났다. 이와 동시에 힘(力)의 발생으로 인력(引力)과 추력(推力)이 동시에 생겨 원(圓)의 회전운동이 이루어 졌으며 생명력과 물질이 완성되어 최초로 물(物)이 생겨났다.

이상과 같이 음성과 양성, 리(理)와 기(氣), 회전과 운동력의 발생(引力과 推力), 물대의 완성과 생명력의 발생이 무적 절대로부터 유적 상대를 이루면서 오늘의 세계가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의 천지창조 전개 순서이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 암이 깊은 음에서 빛(양성)이 있어 밤과 낮을 구분(창세기1:2-5)하고 회전과 운동력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고, 물과 뭍으로(창1:6-10) 나누어 많은 생물이 나게 하신 것이다. 이렇게 우주의 창조적 본체도「하나」요, 시원도 일태극(一?)의 진리인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주 창조관은 일태극의 진리로 수렴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은 태극기를 게양하고 〈하나님〉을 신앙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4장 2-3절의 요한이 본 하늘의 보좌는 태극이요, 한국을 장차 이루어질 무궁한 지상천국으로 본 것이라 하겠다.

{지금은 백십자 운동을 전개해야 할 때이다]

21세기는 물질문명의 바벨탑 시대는 막을 내리고, 우리 한의 정신문화(한얼)의 부흥이 오고 있다. 이러한 정신문화의 진수(眞髓)는 우리의 종교(宗敎)와 도덕(道德) 문화가 선도해 나갈 것이다.

21세기의 한국은 세계의 중심(世界中心)무대가 될 것이며, 우리나라는 세계의 중심국가로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힘과 무력, 돈과 자본 세력에서 무력이 아닌 도(道), 진(眞), 명(命) 의 원시반본 적인 차원 높은 정신적인 힘이 새로운 세기의 지도법칙(指導法則)으로 등장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민족으로부터 시원된 [하나님] 사상이 새로운 차원으로 발원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물질, 과학문명의 폐허를 한의 [하나님] 정신문화가 치유해 나갈 것이며 앞으로의 세계적 추세는 세계통일이 아니라 대화- 협력- 화해- 연합- 공동체 형성(共同體形成) 이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국민과 종교계 및 정치지도자들은 서로 화합하고 연합하여 새로운 천년을 향한 지상천국(地上天國) 낙원 건설을 위하여 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그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새로운 천년을 위해 지구촌, 인류가족, 세계 공동체를 형성함에 인류가 새로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바로 우리 조상들이 시행 하였던 [지상의 하나님 나라] 선경(仙境)을 이루는 일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천자중심(天子中心)의 종합 문명사회가 형성되어야 한다.

미래의 종합 문명사회는

(1) 하나님 중심의 아름다운 사회.

(2) 인격과 양심의 감미로운 사회.

(3) 경제적 안정과 풍요로운 사회에서

우리의 하나님 백십자를 세계화 하는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 사상은 천륜(天倫)과 인륜(人倫)에 합일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이다.

우리는 이를 세계화하기 위하여

 

첫째 : 위대한 하나님 사상으로 정신무장 해야 한다.

세계사의 급류 속에서 표류하지 않으려면 올바른 하나님사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세계 사상을 주도하는 주체적의 하나님 사상으로 천하를 호령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와 진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세게 문화를 주도했던 찬란한 고대 조상들의 발자취를 따라 세계를 주도할 능력을 갖추어 우리가 가야할 우리의 길이 무엇인가를 감지하고 세계의 길목을 지키며 우리의 길을 먼저 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2000년 전 배달한국(檀國)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우리의 고유사상은 기독교, 유교, 불교의 삼교일체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 : 하나님의 민족이 세계의 주역이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 사상으로 통일된 나라 (고토회복)을 새우기 위해서 이 땅의 정치지도자들은 하루속히 자폐증(自閉症 -Autism)적 현상에서 벗어나고, 자기만족적 환상(Self_gratifying Fantasy)에서 다시 태어나 서로 화합, 연합하여 우리 "하나님" 사상으로 새로운 천년을 향한 지상낙원 건설에 매진하여 세계3대 종교사상을 창시한 민족으로 만종교의 종주국(宗主國) 이라는 자부심으로 국가기강, 사회기강을 튼튼히 해야 한다.

 

셋째 : 우리의 지상과제는 세계 만 민족 하나님 사상으로 통합이다.

우리는 먼저 통일적 하나님사관을 확립, 정치적 경제적 근대화를 이룩하고 하나님의 신앙화로 정신무장 한 후 고토를 회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위대한 [우리의 하나님 사상]을 중심으로 천효건덕(천효건덕), 수법정심(수법정심), 천인일위(천인일위) 하는 것이 한문화공동체 완성 이다. 우리는 하나님 사상으로 명실상부한 세계적 지도국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한의 혁명이고, 정신적 혁명이고, 종교적 혁명이다.

 

넷째 ; 우리는 "하나님" 신앙으로 "하나님"사상을 이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상의 근원이요, 생명의 근원이요, 종교의 시원이다. 그리고 모든 사랑의 본원 이므로 세계 만 민족을 "하나님"신앙으로 묶음으로 세계는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개벽이요, 지상천국의 완성이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스스로 죄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모시 면 그가 곧 하나님의 아들딸이요 하나님의 친자(親子)임을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