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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한국에서 시작되었다[8]
[한]민족의 원류
한민족은 지금부터 10,000년에서 15,000년 전 빙하기 말(氷河期末)에 건국한 환인(桓仁)의 환국(桓國)에 뿌리를 두고, 동서2만 리 남북 5만 리 신정정치(神政政治)의 대 상무기마민족(尙武騎馬民族)으로 일신 하나님을 신앙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종교적 국가형태의 세계종주권을 행사한 거대 강국이었다. (산해경, 대황북경, 진서, 사 이전, 후한서, 위지, 당지, 등 참조)
동방의 백두산 천지 (白頭山天池)에서 중국 서장성 서쪽 지방과 타슈캔트 동쪽에 누워있는 동서2,000km의 천산산맥을 넘어 메소포타미아(슈메루, 우루Ur) 지역까지 원래는 우리의 영토였다. 백두산 천지 (白頭山天池)에서 천산산맥 뽀개따평 중턱 해발 2,000m 상부에 천지(天山天池) 까지 동서 2만 리의 배달국 강토였다.
배달국은 BC3,897년 한웅 거발한 천황께서 개천(開天)하여 18대 거불단 천황까지 이르러 1,565년간이었다. 거불단 천황께서 웅국(熊國)의 여왕 웅녀(熊女)와 결혼하여 나라를 웅국(熊國)에 병합 시켰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한검(桓儉)이다.
한검이 웅국의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곧 다시 나라를 세우시니 초기의 국명은 단국(檀國: 지금의 요서遼西 적봉 赤峰지방)이며 여기에서 수도를 요동(遼東)의 아사달(奉天: 深陽/ 하루빈은 전방수도)으로 옮기면서 국명을 조선(朝鮮)이라 칭하였다.
단군 조선 초기에 홍수 (노아홍수당시)로 인하여 동서 2만 리 국토는 흩어지고 좁아지며 진, 한의 침탈로서 동북아 일부로 국토는 축소되었다. 단군 조선은 47대 고열가 왕까지 2,096년 간 이어 저 왔으나 해모수가 일어나 부여국을 세우는 등 군웅활거의 나라들이 이어갔다.
단군조선 본류의 후손들은 나라를 잃고 유랑민이 되어 남쪽으로 내려와 춘천(春川) 지역에서 다시 나라를 세워 예맥국(濊貊國) 이라 칭하였다. 결국은 또 동해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와 무주공산의 포항, 경주(浦港, 慶州) 일대에 터전을 이룬 것이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신라(新羅)이다.
박(桓, 朴)혁거세 또한 북에서 밀려 온 우리민족의 지류인 흉노족, 여진족(少昊金天族)의 김(金)씨들에게 군왕의 자리를 내어 주었다. 북쪽에는 해모수(夫餘國)의 후손 주몽(高朱夢)이 고구려를 세웠다. 신라 김(金)씨들은 신라(新羅) 멸망 후 북으로 올라가서 여진족과 합세하여 금(金)나라를 세우고 그 후손들이 청(靑)나라를 세웠다.
힘이 쇄약해진 우리 민족은 동북아시아 100만km 의 웅크린 영역에서도 고구려와 신라는 수(隨), 당(唐) 과 100년 전쟁을 치르면서 지칠 대로 지처 1,300년간의 길고도 긴 반도 민족으로 전략하였다. 이에 따라 민족기상과 민족문화 및 민족종교, 더 나아가 민족정신까지도 반 대륙적(半大陸的), 반 해양적(半海洋的) 이중구조를 갖는 반도 민족(半島民族)으로 변형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민족 고유의 신앙인 <하나님>을 잃어 버렸다.
그리하여 대륙세력의 남진정책과 해양세력의 대륙진출정책 사이에서 전쟁의 상처로 한민족 스스로 <엽전근성> <반도인> <구걸민족> 등의 소극적이고 패배적인 자폐적 민족 근성 론에 젖어 아세아적 정체성을 벗어 날 줄 몰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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