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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건국시조- 단군이야기 본문

천지인 공부/천부경

한민족의 건국시조- 단군이야기

柏道 2019. 8. 6. 18:28


한민족의 건국시조- 단군이야기

 

 

1.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역사는 인간과 인간이 속하는 자연의 모든 현상에서 과거에 일어난 사실이나, 그 사실에 관한 기술(記述)이다. 인간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따로따로 나뉘어 있는 것으로 알지만 역사란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고리로 이어져 있다.

 

역사를 살펴보라.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어떤 국가이든 어떤 철학이든 사상이든 그것이 진리이고 위대하기 때문에 알려지는 것이 아니다. 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남아 있거나 사라졌다. 오늘날의 역사는 힘의 역사였다. 힘 있는 사람과 국가가 역사를 기술하면서 힘없는 나라나 개인의 진실과 사실은 축소시키고 왜곡해버렸다.

 

1만년의 찬란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수많은 침탈 속에서 많은 역사가 소멸되거나 왜곡되었다. 역사를 잃어버리면 민족도 사라진다. 과거의 여진족은 강력한 국가를 만들었지만 역사를 잃어버려 이름만 남아 있을 뿐이고 몽고족도 역사를 잃고 크게 위축되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모두가 역사적인 인물이고 미래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오늘을 우리가 어떤 사고를 갖고 어떤 문화생활을 영위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느냐는 단순히 현재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의 가치관과 생활 습관과 주변국과의 정치, 외교 등으로 후손들의 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인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

 

오늘 날, 우리는 후손에게 대를 이어 상속할 만한 역사와 정신문화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

 

우리에겐 우리민족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이화세계 사상을 담고 있는 국학(國學)이 있다. 이 국학이 없다면 분열과 갈등으로 흔들리는 한민족의 중심을 잡을 수 없다. 따라서 남북통일도 힘들고 우리민족 앞날이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우리역사를 바르게 알 때 그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을 수 있고 자신과 민족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으며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다.

 

 

2. 왜곡된 우리 역사

 

고려 말 행촌 이암 선생(AD 1297~1364년)은 「단군세기」서문에서 “국유형(國猶形)하고 사유혼(史猶魂)”이라고 했다. 즉 인간에게 있어 “국가는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 뜻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잃는 것은 곧 민족의 혼을 잃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중국과 일본은 기회 있을 때 마다 우리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시행했다.

 

한인 한웅 단군시대로 이어져 오던 한민족의 최초 국가인 단군조선은 BC 238년 47대 고열가 단군의 폐관으로 없어지고 우리나라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삼국시대가 열리고 중국은 춘추 전국시대를 맞이한다. 단군조선이후 현 중국의 첫 왕조로 알려진 진시황(BC 259~210)도 막강한 힘을 휘둘러 주변의 6개국을 복속시켜 BC 221년에 진 나라를 세웠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한민족(韓民族)의 선도(仙道)역사를 감추려고 선도 관련 책을 불사르고 신선(神仙)의 도를 닦는 선도의 대가(大家) 460명을 생매장하는 분서갱유(焚書坑儒)의 만행을 저질렀다. 이때부터 중국은 우리역사를 말살하기 시작했다. 이 어찌 원통하고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지금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도 마찬가지다. 고구려 역사와 전통문화 등 우리 민족이 세운 국가를 중국변방 제후국(문화식민지)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래서 동북공정은 현대판 중국의 문화침략이고 제2의 분서갱유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동북공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간도와 북한 등에 대한 영토분쟁에 대비한 사전 정비작업으로 고구려를 중국사로 편입함으로써 유사시 북한 땅에 대한 중국 개입의 근거를 만들려는 것이다. 중국은 결코 역사왜곡을 위한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다. 동북공정이란 학술적인 작업과 함께 군사, 정치적으로 안정화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중국은 백두산에 이어 두만강 유역의 나진항을 북한으로부터 50년간 개발 사용권을 계약하고 개발 중에 있다. 또한 발해사에 이어 단군조선과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고 버젓이 고조선사화(古朝鮮史話), 부여사화(夫餘史話), 고구려사화(高句麗史話) 등의 날조(捏造)한 역사서적을 내 놓았다. 단군조선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한민족 조상들의 혈통 줄까지 통째로 빼앗고 있다.

 

고구려의 역사, 문화가 중국 것이 되면 단군 이전의 역사는 자연히 중국 역사로 편입되며 선도문화(仙道文化)의 뿌리는 중국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전통문화가 없는 중국의 선도문화 식민지일 뿐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한인 한웅 단군시대의 역사를 모르는 우리의 많은 학자들, 특히 식민사학자들은 이러한 중국의 동북공정을 보고 '악'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고대사와 문화의 뿌리를 중국과 북방민족에 귀속시키려는 일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뿐이랴! 일본은 또 어떤가? 일본은 백제유민 안만려가 AD 720년에 쓴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오는 일본의 건국일을 BC 660년으로 하였다.

 

안만려는 일본의 건국일을 BC 660년으로 하였던 것은 AD 663년에 백제 멸망 후 신라에 대한 패배감을 극복하고 주변국에 대한 ‘경쟁의식’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고구려의 건국은 BC 37년, 백제는 BC 18년, 신라는 BC 57년…. 이 삼국의 건국 연대보다는, 한층 오랜 역사를 뽐내야겠다는 후진 콤플렉스의 소산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일본서기는 자국의 존재가치를 높이기 위해 신라로부터 낙타와 물소를 조공으로 받았다는 것이 나온다. 그러나 신라에는 사막지대에 살고 있는 낙타와 아열대 지방에서 살고 있는 물소는 없다. 이처럼 일본서기에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허구에 찬 거짓이 포함되어 있다.

 

역사를 보면, 백제 멸망 후, 백제유민들은 혈맹국인 왜국의 군사 수만 명을 지원받아 백제 부흥운동을 일으킨다. 당시에 일본 37대 제명여왕(의장왕의 여동생)은 본국 백제를 되찾기 위해 군선(軍船)을 건조하고, 탐라국에 참전을 요구하고, 왜병을 사비성에 파견하지만 지도층의 내분으로 결국 실패하고 만다.

 

부여용(의자왕의 아들)은 망국의 깊은 한을 품고 유민을 거느리고 왜국에 건너 가서 38대 텐치(천지천황 AD 661-671년)왕이 되고, 국호를 왜(倭)에서 일본(日本 : 해 뜨는 본국)으로 고친다.(일본서기 천지왕조편 참조) 이것이 한국고대사(특히 백제 역사)에 속한 왜국 역사에서 새로운 나라 일본이 탄생한 사건이다.

 

일본 정사인 일본서기는 서기 8세기 초기에, 속일본기는 8세기 후기에 편찬이 완료된다. 이때는 의자왕 후손들(38대 이후)이 일본왕으로써 통치하던 때로, 일본은 멸망한 본국(백제국)에 속한 왜국에서 벗어나 자주국 일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때였기 때문에 일본 정통 역사서를 대부분 이때 편찬해 낸다. 그 목적은 일본의 초대왕 이후 모든 왕들을 하늘 신의 아들로 묘사하여 일본 왕에게 신성함을 부여해서 국민통치의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그 이후 50대 칸무(서기 781-806년)왕 때에는, 일본과 한민족은 같은 민족이라는 한일 동족론이 적힌 고문서(예 족보)를 모두 불태워 버린다. 칸무는 본국(백제)과 단절하는 정책을 편다. 그러나 그는 백제인을 고관요직에 많이 등용하고 기존의 백제문화 토대 위에서 ‘새로운 자주적인 나라, 일본을 만들어가는 정책’을 대부분 매듭짓는다. 옛 족보를 불태운 칸무는 ‘내 생모가 무령왕 후손’임을 자랑스레 밝히려 했지만 부계 조상(의자왕)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백제는 무령왕(25대)-성왕(26대)때 찬란했던 문화대국이었고 의장왕(31대) 멸망국 비운의 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쇼토큐(성덕) 태자는 일본인들이 백제 성군이었던 성왕의 화신이라고 생각하면서 고대 일본 문화의 꽃인 아스카 시대를 열었던 통치자이다.

 

무령왕 후손인 그의 통치(섭정) 시대를 열망해서일까 칸무는 서시 794년 헤이안(平安京, 현 교토)에 도읍지를 옮겨 헤이안 시대를 열어나간다.

 

신생국 일본은 8-19세기(1980년 대 메이지 이전)까지 1천 년간 헤이안이 사실상의 수도가 되어 왕도(王都)와 막부(幕府, 무사정치) 문화를 펼쳐 나간다. 일본은 헤이안 시대 초기(795년 -)부터 비로소 고대 백제사로부터 독립(이질화)된 일본다운 특유의 문화를 펼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칸무왕의 한일 동족론(문서)의 분서(焚書) 정책은 문화선생국인 본국(백제) 역사와의 단절을 통해 자주적 일본국으로 태어나서 소(小)백제 = 일본 문화국가의 탄생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백제 멸망 이후부터 서서히 고대 한국의 역사문화와 분리되어 독자적인 길을 걸은 일본국은 끊임없는 침략을 일삼으며 문화적 스승 부모국인 우리나라를 괴롭혀 왔다. 그러더니 조선말 1910년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모국인 우리나라의 국권마저 침탈함으로써 받은 은혜를 저버리고 뿌리를 배신하는 배은망덕(背恩忘德)의 대죄를 범하고 말았다.

 

허위의 일본서기는 1910년 이후 일본 식민지 근거가 된다. 그리고 우리민족의 근원을 진나라와 한나라의 교체기인 BC 108년를 한국 고대사를 시원으로 잡았다. 즉 BC 108년에 한나라가 위만 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漢-四郡 낙랑군, 임번군, 현도군, 진번군)을 설치한 것부터 역사를 기술하였다. 이는 우리민족은 BC 108년부터 중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건국일이 BC 660년으로 역사가 앞선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전개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후 우리나라가 항거하는 움직임이 크게 일어나자, 일제는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무력정치에서 문화말살정책으로 통치방식을 바꾸면서 신교육시책을 만들었다. 그 신교육시책으로 생겨난 것이 조선총독부 산하의 ‘조선사편수회(1925년)’이다.

 

그곳에서는 ‘고대에 환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라는 뜻의 삼국유사의 ‘석유환국(昔有桓國)’을 ‘고대에 환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라는 뜻의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바꿔 한국(桓園)이란 한 나라를 한 개인의 이야기로 만들어 버렸다.

 

1922년 사이토 총독의 교육시책 발표문과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무서운 저주을 보면 일본의 식민지화 의도를 여실히 알 수 있다.

 

 

1) 사이토 마코토 제2대 총독의 교육시책 발표문(1922년)

- 조선총독부 산하의 ‘조선사편수회(1925년)’ 설치 -

 

『총칼로 지배하는 것은 순간의 효과밖에 없다. 남을 지배하려면 철학, 종교, 교육, 문화를 앞장세워 정신을 지배해야 한다.

 

먼저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무능, 악행을 들추어내어 그것을 과장하여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인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조를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라. 그러면 조선인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게 될 것이며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때 일본의 서적, 일본의 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면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半)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2)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무서운 저주(1945년 9월 9일 오후 4시)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한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 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 같은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일본은 현대에도 ‘임나일본부’를 들먹이며 세계 여러 나라 지도에 독도를 ‘다케시마’(竹島), 동해를 ‘일본해’라고 바꿔 놓았다. 엄청나게도, 전 세계지도의 95%를 바꾸었다고 한다.

 

이렇듯 주변국에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와 학자들은 그동안 어떠한 대응을 해 왔는가?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정말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 우리나라 학자들은 우리나라 건국시원을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우리민족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삼국사기(서기 1145년)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역사책이다.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서기 1145년) 때 승(僧) 묘청의 자주파와의 대립에서 사대파인 김부식이 승리한 후 유교사관(儒敎史觀)에 의하여 저술되었다. 삼국사기라고 되어 있으나 신라를 위주로 기록하였고 고구려와 백제에 관한 기록은 소홀히 취급되었다. 그리고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는 기록이 없다. 조선시대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런 내용을 한탄하는 한편 한민족의 역사가 사라진 큰 사건을 ‘묘청의 난’으로 보고 이 사건을 ‘조선사 1천년 역사의 대사건’이라고 하였다.

 

삼국유사(서기 1276년)는 고려 충렬왕 때 승 일연(一然, 서기 1206〜1289년)이 저술하였다. 일연은『삼국유사』에서 왕의 명령에 따라 편찬된 정사인『삼국사기』의 이면에 가려져 있는 왕권 중심의 유교적 통치 이념과 그러한 김부식의 저술 태도를 비판하고, 민족의 주체성을 살리기 위해『삼국사기』에 빠진 고대 사료들을 발굴하고 정리하여 기록한 책이다.

 

『삼국유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뿐만 아니라『삼국사기』가 기록하지 않은 고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과 가락국 등의 역사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또한 단군 신화를 비롯한 우리의 신화와 설화들의 원형, 정형 시가의 가장 오래된 형태인, 향가 14수, 방대한 불교 자료와 민속 신앙, 일화 등이 실려 있어 국문학, 지리, 사상, 종교, 민속 등의 연구에도 소중한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육당 최남선 선생도 ‘만약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야 될 경우를 가정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후자를 택할 것’이라며『삼국유사』를 높이 평가하였다.

 

우리나라가 1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졌음에도 이를 기록한 많은 역사책이 전래되지 않은 이유는 외세의 영향도 크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중국 사대주의 사상에 물든 학자와 무지한 정치인들에 의한 영향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조선조 5백 년 역사는 한마디로 부끄러운 역사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한인, 한웅, 단군의 역사와 철학을 ‘사문난적斯門亂賊’으로 치부하여 억압했다. 사문난적이란 우리의 역사와 철학은 성리학(유교)의 교리를 어지럽힌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비난하는 말이다. 특히 세조는 단군시대와 그 이전의 찬란한 역사가 실린 고서古書인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와 조대기朝代記, 대변설大辯設, 지공기志公記, 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 삼성비기三聖秘記 안함로와 원동중의 삼성기三聖記, 도증기道證記, 통천록通天錄, 지화록地華錄 등 수많은 역사서를 읽지 못하도록 금서령禁書令을 내리고 책들을 거두어들였다.

 

하물며, 조선왕조 때 ‘사대주의’에 빠졌던 정부 관료들은 자신들이 죽으면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명나라의 속국 조선이라는 뜻)’ 정승판서 누구누구라고 돌비석에 자랑스럽게 새겨 놓았다. 그리고 제사 축문에는 유세차(維歲次) 모년 모월 모일이라고 한다. 이는 우리민족은 뿌리가 있는 민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유유히 흘러가는 세월 속에 생긴 뿌리 없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모르고 있는 일부 유학자들은 현재까지도 유세차를 제사 축문으로 쓰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조선말기에도 박은식, 신채호 선생 등, 민족사학자들이 저술한 한국사 서적들은 모두 금서가 되었다. 그리고 일제 36년 강점기를 통하여 식민지교육을 받은 식민사학자들의 역사서에 의하여 지금까지도 영향을 받고 있으니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 국사(國史) 교육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2009년 12월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을 발표하면서 고등학교에서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선정하여 국사교육을 대폭 약화시키고 말았다. 더욱이 뉴라이트 재단의 교과서포럼에서 만든 대안교과서인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서는 민족정신을 노골적으로 폄하하고 있다.

 

대부분의 강단사학자들은 사대주의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유교사관의 「삼국사기」와 불교사관의「삼국유사」, 일제 식민사학에 의해 왜곡 조작된 역사를 그대로 답습하여 가르치고 있다. 그로 인하여 우리 스스로 역사적인 피해의식 때문에 자신을 미개하고 무능한 민족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민족의 역사적인 현실이며,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우리 젊은이들의 역사관의 현주소이다.

 

우리는 이제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형성된 중국의 사대사관(事大史觀, 中毒)과 일제(日帝)가 만들어 놓은 식민사관(植民史觀, 倭毒), 미국의 실증사관(實證史觀, 洋毒)의 흉흉한 그림자를 걷어내고, 잃어버린 찬란한 천손의 역사와 문화, 고도의 정신문명을 되찾아야 한다.

 

조선 말 단재 신채호 선생은 애국의 원천은 역사이며 역사의식이 살아날 때 그 나라가 부흥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 비해 너무나 일천한 역사에 한이 맺혀있는 일본은 역사를 왜곡해서라도 번듯한 역사를 갖추고 싶어 했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역사의 진실을 왜곡시키면서까지 국민들에게 민족적 우월감과 자긍심을 고취시켜 단합시키기 위함이다.

 

역사는 단순히 흘러간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하였다. 역사가 있음으로써 현재의 우리가 있고, 현재의 우리에 의해 미래가 열려 나가는 것이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역사는 미래학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가적 차원에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규명하기는커녕 오히려 역사교육을 약화시키고 있다. 참으로 황당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는 문화경쟁의 시대이다. 1만년의 유구한 천손의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리고 무슨 힘으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겠는가? 이제 2천 년 동안 주변국들에 의해 잠들어 있던 민족혼을 깨우고, 미래의 주역인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서둘려야 할 때이다.

 

 

3. 단군 사화(史話)의 숨겨진 비밀

 

천손문화 2차 이동경로(①한국 – ②배달국 – ③단군조선 강역도)

 


 


단군조선 제38대 단제 ‘다물’ 시대                                                               고구려 최대 강역도 (4 ~ 6세기경)

강역도 (BC 590 ~ BC 545)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건국 시조를 단군왕검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단절시키려는 목적으로 일본은 1938년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하여 "단군신화(檀君神話)"라고 날조하였다.

 

일제가 단군을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닌 신화(神話)로 취급한 가장 중요한 단서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찾는다. 일본 사학자 및 우리나라 식민사학자들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의 출생에 관한 내용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여 신화적인 관점으로 해석해 왔다.

 

먼저 승(僧) 일연의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桓國)의 서자(庶子)인 환웅(桓雄)이 인간세상에 뜻을 두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신권(神權)의 상징인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인간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한웅은 재세낭군 3천명과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에 내려와 이곳에 신시(神市)를 개천(開天)하고,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 등 360여 인간사를 주관하여 나라를 다스려 교화시켰다. 이때 지상에는 곰 한 마리(웅녀 熊女)와 범 한 마리(호녀 虎女)가 같은 굴속에 살았는데 곰과 호랑이는 한웅을 찾아가서 "사람같이 살게 하여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에 한웅은 신령스러운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사람이 되리라.”고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쑥과 마늘을 먹으며 수련을 하였는데 호랑이는 성질이 급해서 중간에 도망쳐 나갔고 곰은 용맹정진(勇猛精進)하여 21일(삼칠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었다. 웅녀는 이 세상에는 그와 결혼할 상대가 없었으므로 항상 신단수(神檀樹) 아래에서 "신이시여! 아이를 낳게 해 주소서!"라고 빌었다. 이에 한웅이 반신반인으로 변하여 웅녀와 결혼하니 웅녀는 아이를 낳았다. 이를 단군 왕검이라 한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상에 내려와서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를 만들기 위하여 신시 개천의 사건을 주도했던 인물은 한웅이며 단군은 결과적인 인물로 나온 분이다. 그런데 왜 단군신화의 주체는 단군으로 알려 졌을까?

 

이러한 신화적 관점으로 알려져 온 단군사화(檀君史話)는 각자의 종교관이나 민족관 그리고 인생관에 따라 크게 3가지로 해석되어 왔다.

 

첫 번째는 일본의 역사학자와 일제하에서 교육을 받은 국내 식민지사학자 그리고 배타적이고 단군을 부정하는 편협한 종교관을 가진 일부 기독교 단체에 의한 해석이다.

이들은 배달국의 한웅천왕이 곰이 변한 여인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것을 문자대로 해석하여 믿고 있다.

 

삼국유사에서 일웅일호(一熊一虎)라고 표기한 것은 당시의 토템이즘 사상에 의하여 곰을 숭배하는 종족의 공주와 호랑이를 숭배한 종족의 공주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단군신화를 조작하기 위하여 일웅일호(一熊一虎)를 직역하여 한 마리 곰과 한 마리 호랑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웅녀(熊女)를 곰을 숭배하는 종족의 여인으로 보지 않고 직역하여 여자 곰이라고 하였다.

 

단군의 건국 시기는 중국의 요임금 25년(동국통람 편)이다. 중국의 요임금 시대에 주, 호, 웅, 비 등은 사람의 이름이며 부족국가의 대표 성(姓)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요임금 시대에 곰이 어떻게 사람으로 진화할 수 있었겠는가? 식민사관은 너무나 비과학적인 발상이며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단군이란 명칭은 그 당시 부족을 다스리는 최고의 통치자(현대에는 대통령의 개념)를 지칭하는 뜻으로서 초대 단군조선을 건국한 사람은 왕검이며 단군조선의 마지막 단군은 고열가이다. 단군 왕검에서 고열가까지 47대 단군이 2096년 통치하였다.

 

그런데 일본의 식민지사관은 단군을 한 분으로 축소하였다. 만약 단군이 한분이라면 어떻게 2천년 통치할 수 있었겠는가? 47대 단군께서 2천년을 통치한 것이다.

 

역사를 표기하는 실례를 들어보면 1960년대, 월남전에 우리나라 군대를 월남에 보내면서 맹호파월(猛虎派越)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직역하면 월남전에 호랑이를 파견한 것으로 된다. 여기서 맹호(猛虎)라는 것은 군부대의 강함을 상징적으로 사용한 것이지 호랑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현대인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들은 단군사화(檀君史話)를 그리스나 로마의 어느 신화(神話)처럼 비사실적이고 즐거운 이야기 정도로 치부하면서 우리 민족의 건국사를 왜곡하고 민족의 뿌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결국, 이들의 주장은 우리 민족의 상고사를 축소하고 왜곡함으로써 우리민족의 자주성과 정통성을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두 번째는 민족단체와 민족사학자들에 의한 해석이다.

 

이들은 중화사상(中華思想)․ 친일사상(親日思想)과 서양문물을 무조건 신봉하는 부류의 학자들에 비하여 축소되고 왜곡된 우리 민족의 상고사를 역사적인 사실을 고증하여 민족의 자주성과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문헌이나 고고학적인 증거를 내세워 단군의 위대함을 주장함으로써 민족의 자주성을 높인 것은 좋으나 소멸되고 축소 왜곡된 역사를 실증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동안 민족단체와 민족사학자들이 노력은 많이 했지만 지혜가 부족하여 일부 종교단체에서는 단군의 "단" 자나 홍익의 "홍" 자만 얘기해도 케케묵은 신화 같은 얘기를 한다며 식상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광복이 된지 60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이유도 통일된 사관(史觀)을 정립하지 못하고 대립과 혼란 속에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민족의 역사적인 시원을 말할 때, 짧게는 5천년의 역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길게는 1만년의 역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 번째는 선도(仙道) 연구가들의 해석이다.

 

이들은 단군사화(檀君史話)의 최고 가치를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정신에서 찾는다. 이것은 나와 민족과 인류를 살릴 수 있는 신성한 암호이며, 마고복본(원시반본)의 사명을 이룰 수 있는 열쇠라는 것이다.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개인완성을 이루고, 이화세계의 정신으로 전체(사회) 완성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위, 첫 번째와 두 번째에서 역사적 사실의 고증이나 학문적인 연구는 역사학자들의 사명으로 돌리더라도 선도연구가들은 단군사화(檀君史話)에서 은유적(隱喩的)으로 표현된 내용을 직역해서는 알 수 없는 3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현대에 맞게 해석하고 있다.

 

첫째, 한웅천왕이 강림하신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상징적 의미이다.

 

한웅이 인간 세상에 뜻을 품고 있을 때, 한인이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가치가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한웅은 한인의 허락을 받고 하늘에서 내려와 천손족(天孫族)으로 살았다.

 

그 당시 세상에는 인간성을 상실한 채 육체적인 본능에 의하여 살던 지손족(地孫族)이 있었다. 지손족의 대표로는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이었는데 웅족과 호족의 공주는 천손족인 한웅을 찾아가서 "사람같이 살게 하여 달라."고 간청하였다.

선도(仙道) 용어로 사람은 반신반수(半神半獸)라고 한다. 즉 사람은 반(半)은 신(神性)의 기질이 있고, 반(半)은 동물(獸性)의 기질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웅천황은 신성을 밝히고 천화의 법을 깨달은 천손(天孫) 족이었고, 웅족이나 호족은 삶의 목적을 오로지 세상적인 욕망에 두고 살아가는 지손족(地孫族)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성을 상실하면 사회적 동물, 정치적인 동물이 된다. 욕망과 성공을 위해 살게 된다.

 

현대 사회를 인간성 상실의 시대 또는 자아 상실의 시대라고 하듯이, 어쩌면 5천년 전에 한인께서 보았던 세상은 현대인들이 욕망과 감정으로 살아가는 모습과 똑같았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지구환경까지 파괴되어 가고 있으니 5천 년 전보다 더욱 시급함을 느낀다. 2005년 8월 30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전 세계 국가원수와 총리들이 모여서 지구환경에 대한 ‘정상회의’를 가졌다. 이날 노벨상 수상자 30명과 지구과학자 100여 명은 세계 국가원수들에게 "지구를 재앙으로부터 구원해 달라."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것만 보아도 현재의 지구문제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한웅천왕이 강림하신 시기는 아마 현재의 지구촌의 모습처럼 널리 이롭게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단군의 홍익인간 이화세계 정신이 오늘에 부활되어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현대적인 의미인 신인류(新人類), 뉴휴먼(New Human), 지구인이라고 할 수 있는 홍익인간이 되기 위한 의식적인 행위의 상징적 의미이다.

 

곰 한 마리(웅녀 熊女)와 범 한 마리(호녀 虎女)는 한웅에게 인간이 되기를 간청하고 굴속에 들어가 백일 동안 쑥과 마늘만을 취한다.

 

이것은 지손족의 웅녀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이고 천손족인 홍익인간으로 살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덕성과 건강을 다지기 위한 수련(의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연단(鍊丹) 해야 하는 통과의례이다.

 

연단(鍊丹)을 함에 있어 호랑이처럼 성질이 급하여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은 천추의 한(恨)을 남기게 된다는 것이며, 곰처럼 용맹정진하는 사람은 새로운 문명시대의 주인공으로서 새 역사를 창조한다는 뜻이 암시되어 있다.

 

현대 과학이 밝힌 쑥과 마늘의 효능을 보자. 쑥은 피를 맑게 해주며 몸을 덥게 하고 동굴 속의 냉기를 쫒고 습기를 제거해 주는 성분이 있다. 그래서 현대에는 쑥의 성분을 활용하여 쑥탕을 만들기도 하고 쑥떡을 해 먹기도 한다.

 

마늘은 비타민1 등 다양한 영양소가 함유돼 있어 피로회복과 체력증진효과와 함께 몸속의 세포를 재생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며 암 치료에도 효과적이다. 시중에는 건강식품으로 마고마늘환 등 마늘 제품이 많이 유통되고 있다.

 

동굴은 경쟁과 대립이 난무한 암흑시대 즉 부패한 사회상을 말한다. 부패한 사회에서 홍익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피를 맑게 하고 체력을 향상시키는 내단(內丹) 수련인 우리민족의 전통 심신수련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종교(宗敎)는 부처나 십자가 등 우상을 만들어 놓고 하늘 세계를 그리워하고 신앙(信仰) 하도록 하지만 원래 우리민족의 전통 문화는 주앙(主仰)주앙 짝짜꿍 문화를 알렸다. 주앙(主仰)주앙 짝짜꿍이란? 사람 안에 있는 주인(참 나, 참 하나님)을 만나면 좋다는 뜻이다. 이는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귀가 열리고 벙어리가 말을 하며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을 일으킨 예수가 환자에게 ‘내가 너를 고친 것이 아니라 너의 믿음이 너를 고쳤다.’고 한 말이나, 부처가 ‘네 몸 안에서 구해야지 몸 밖에서 구하면 수 천 년을 구해도 못 구한다.’고 한 말과 같은 뜻이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나 부처의 진정한 마음을 알아듣는 신앙인들이 드물어서 안타깝다.

 

또한 천부경(天符經)과 함께 한민족의 3대 경전 중의 하나인 ‘삼일신고(三一神誥)’ 중 ‘하느님에 대하여 가르침(神訓)’에는 ‘성기원도(聲氣願禱)하면 절친견(絶親見)이니 자성구자(自性求子)하라. 강재이뇌(降在爾腦)시리라 즉 언어나 생각을 통해 하느님을 찾는다고 해서 그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너의 진실한 마음을 통하여 찾아라. 그리하면 너희 머릿속에 이미 내려와 계시리라.’고 하였다.

 

이러한 한민족의 심신수련법을 이어받은 것이 현대단학이다. 단학은 선도를 현대인에게 맞게 바꾼 뇌호흡 수련을 통하여 사람들의 머리 속에 내려와 있는 자신의 참 나(신성神性, 본성, 본래 진면목)를 발견하고 완성하도록 하는 교육이다.

 

셋째, 신인합일(神人合一) 사상으로 만들어 가는 이화세계의 모습에 대한 상징적 의미이다.

 

웅녀는 이 세상에는 그와 결혼할 상대가 없으므로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원하는 기도를 드리는데, 반신반수(半神半獸)으로 온 한웅과 결혼하여 단군 왕검을 낳는다.

삼국유사에는 ‘웅내가화이혼지(雄乃假化而婚之)’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를 직역하면 ‘한웅이 인간으로 변하여 웅녀와 결혼하였다’가 된다.

 

반신반수(半神半獸)인 사람이 인간 내면의 신성(神性)을 밝혀 삶의 목적을 깨달고 홍익정신을 실천하는 사람을 도통군자라고 하며 홍익인간 또는 신인(神人)이라고도 한다. 사람의 내면의식 밝기를 룩스(Luxe)라고 하며, 20룩스에서 1000룩스까지 있다. 깨달은 신인(神人)의 내면의식은 600룩스 이상이다.

 

따라서 삼국유사에서 한웅이 가화(假化)라고 한 것은 한웅의 내면 의식을 신(神)의 상태로 표현하려고 하다보니까 문자적으로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현대에도 호주와 아메리카의 인디언 등, 원시인들을 사람으로 취급을 안 하는 경향이 있듯이 한웅이 세상에 내려왔을 때에도 지손족들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웅녀와 호녀는 한웅에게 찾아가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간청하였고, 한웅은 지구에 태어난 목적이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이루기 위함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원시인처럼 살아가는 지손족들에게 일정한 수련(교육)을 통하여 홍익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라고 본다.

 

 

4. 단군상 건립과 저항

 

1) 정부에서 주도한 단군상 건립 및 저항

 

대한민국 건국 이후 정부 주도로 단군을 민족의 구심으로 세우려는 노력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번번이 일부 광신도들의 결사반대운동으로 좌절되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는 정부 차원에서 경남 밀양에 단군 성전을 세우려 했으나 일부 광신도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었고, 박정희 대통령시절에도 서울 남산에 단군 동상을 건립키로 확정하고 이를 정부 대변인을 통해 발표했으나, 이 역시 일부 광신도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1985년에는 서울시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사직공원 안에 있는 낡고 작은 단군 성전을 사직단과 함께 확장·복원하기로 결정하자, 전국 교회에서 ‘단군성전 건립 결사반대’운동을 해서 무산되었다. 한국기독교총연합은 “서울 시민이 낸 세금으로 특정 종교가 섬기는 인물의 성전을 건립하는 것은 부당하며, 기독교계 중·고등학생을 참배케 할 경우 우상 숭배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계획 중단을 건의했다.

 

2) 시민단체인 한문화운동연합에서 주도한 단군상 건립 및 저항

 

정부 주도로 추진한 단군성전 건립과 단군상 건립은 결국 무산됐고 그 후 약 십 년 동안 잊혀졌다. 그러다가 1998년 남한은 IMF라는 경제적 위기를 맞았고 북한은 기아라는 민족적 위기를 맞이했다. 이에 행정자치부에 등록된 비영리민간단체인 ‘한문화운동연합’에서는 남북한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리의 뿌리와 맥을 되찾으며, 남북의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단군상 건립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1998년부터 1999년까지 회원들의 기금을 모아 전국 초·중·고등학교와 유명 공원 368개에 ‘통일기원 국조 단군상’을 기증하여 건립했다.

 

단군상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아리조나주 세도나에 1기가 건립되었고 총 369기가 세워졌다.

 

당시 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369기의 단군상을 건립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아무도 할 수 없었다. 민족정신을 회복하고 통일을 이루고자하는 한문화운동연합 회원들의 열정과 시민들의 호응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군상 건립사업의 기금은 한문화운동연합 회원과 순수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마련되었다. 작게는 일천 원에서 크게는 일천만 원에 이르는 성금을 기탁하여, 총 15억의 성금이 모아졌다. 특히 이름을 알리지 않고 성금을 보내주신 분이 400여 분이 넘었다. 또한 한문화운동연합 회원들은 모교의 어린 후배들이 민족에 대한 좋은 역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모교에 기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또 다시 전국 교회에서는 ‘통일기원 국조단군상 건립 결사반대’ 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국 교회에서는 새벽마다 단군상을 철거하기 위한 기도회를 가졌다.

 

한국기독교총연합에서는 기독교에서는 ‘단군을 신화로 본다’는 것과 ‘우상숭배’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엄밀히 말하면 기독교의 복음전파와 기독교 성시화聖市化운동에 큰 장애가 된다는 이유였다. 한국기독교총연합에서는 그 산하에 단군상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전국 교회에서는 단군상 철거운동을 확산하였다.(*이 단체는 현재에도 한기총 산하로 되어 있으며, 홍익동동체에 대한 안티조장 세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에 더해 일부 광신도들은 3년여에 걸쳐 주로 야밤에 전국에 설치된 ‘통일기원국조단군상’ 369기 중 84여 개의 단군상을 훼손하는 불법적 행위를 자행하였고, 이를 주도한 12명의 목사, 장로 등 광신도들은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다.

 

전국에 있는 단군상이 훼손되는 과정에서 홍익문화운동연합과 일부 광신도들과의 마찰은 방송과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사회적으로 핫이슈가 되었다. 단군상이 방송과 언론에 보도되면서, 시골에 사는 아이들까지도 단군상의 목을 자른 사람들은 광신도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게 되었다.

한기총에서는 단군상을 물리적으로 훼손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게 되었고 이후 물리적인 행동은 자체하였으나 인터넷 등을 통해 안티활동과 홍익공동체 활동을 저해하는 핍박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단군상 훼손 MBC 뉴스(2000년 7월)                                                      단군상 369기 중 84기 훼손

                                                      

전국 교회 단군상 결사반대 운동, 학교앞 시위 현장

 

한기총에서는 2003년 “단군을 믿으면 무서운 죄인이 된다.”는

통합공과(주일학교 교육용, 초등부용, 중고등부용, 청장년부용 4가지) 책을 출판함.

 

 

《홍익공동체에서 한 일》

 

민족정신회복 및 단학선원 명예회복을 위한 삭발식(1999. 10. 24.)

 

                       

                국학원 건립 (2004년)                                                                 한민족역사문화공원 건립 (2008년)

 

 


단월드 지도자들이 삭발을 했다는 말씀을 드리시고 일지 스승님은 한국 지도자들을 위로해 주시기 위해 미국에서 일시 귀국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지 스승님과 삭발한 제자들의 첫 만남은 아무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굴은 붉어 졌습니다. 그리고 3분 정도 적막이 흐른 후 어느 지도자가 사랑하는 이에게 노래를 조용히 불렸습니다. 그 노래 가락에 전체 지도자가 따라 부르며 어느 새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 사랑하는 이에게 - 김종환 ]

 


 

이렇게 당신을 사랑하게 될 줄은

난 정말 몰랐어요

당신을 사랑해요

 


지나간 시간이 너무나 아쉬워요

더 일찍 만나지 못했나요

하지만 참 다행이에요

 


우리는 남들처럼 이별하지 말아요

나혼자 지내봐서 알아요

혼자가 얼마나 외로운지

 


살면서 얻은 건 당신하나 뿐이죠

이제는 행복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우리는 남들처럼 이별하지 말아요

나혼자 지내봐서 알아요

혼자가 얼마나 외로운지

 


살면서 얻은건 당신하나 뿐이죠

이제는 행복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이제는 행복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Na)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아래는 삭발한 지도자들의 ‘사랑하는 이에게’ 노래를 들으시고 스승님께서 주신 강천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옛날 얘기를 할까 합니다.

어린 시절 고향에는 기찻길이 있었습니다.

그 기찻길은 학교와 집 사이에 가로 질러 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이었습니다.

그 기찻길 때문에 학교와 집 사이를

오고가는 것이 멀어졌다는 것이 원망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항상 그 기찻길을 원망하면서

학교에 빨리 가기 위해 위험한 기찻길을 건너가곤 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기찻길을 건너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늘 원망하고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이 기찻길만 없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서울에 갈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렇게 불평을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가서야 그 기찻길이 나에게

큰 이로움과 편리함을 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이로움과 편리함을 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깨우치고 부터는 기찻길을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민족과 인류를 위해 기찻길을 놓고 있습니다.

영원히 서울에 갈 일이 없는 사람들

안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기찻길을 계속 원망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늘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

원망하는 사람들 때문에 기찻길을 없애지는 못합니다.

원망하는 사람들 때문에 기찻길 놓은 것을 그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민족과 인류를 위해 더 많은 기찻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단군상을 훼손하는 사람들은 우리민족을 바르게 알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나는 이제 단군상을 설립을 그만 두고 우리 국민들에게 바른 역사교육을 할 수 있는 국학원을 건립하겠습니다. 우리민족의 국학교육은 국가에서 해야 하는 것이지만 국가에서 안하면 우리라도 해야 합니다.

 


 

< 이후 단군상 훼손사건을 통해 국민들에게 국학을 알리기 위해 2004년 국학원, 2008년 한민족역사문화 공원을 건립하였음.>

 

 

5. 단군사화의 현대적인 재조명 - 국학부흥 필요

 


 

우리민족에게는 위대한 꿈과 사명이 있다. 그러나 우리민족이 위대한 꿈을 갖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분명 꿈이 있는 민족이고, 그 꿈을 찾아야 할 이유가 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꿈(정신)은 우리나라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이화세계 정신을 완성하는 것이다.

 


 

홍익인간은 우리나라 교육이념이다. 그러나 그 홍익정신은 교과서 속에 이념으로만 존재할 뿐이지 어떻게 홍익정신이 생성되고 작용되는지의 구체적 방안과 교육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아마도 단군조선 폐관 이후, 2천년 동안 갖은 수난을 겪으면서 그 정신은 잃고 이름만 지녀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민족이 꿈을 이루고 혼란 속에 있는 민족과 인류를 살리기 위해서는 인류의 시원으로 되돌아가 봄으로서 문제점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홍익인간 이화세계 정신으로 지구촌의 행복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계인 모두가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정신과 철학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민족의 시원은 서양의 에덴동산에 못지않은 마고성麻姑城의 역사가 있다. 에덴동산에 대한 이야기는 ‘구약성경’ 창세기편에 기록되어 있고, 마고성의 이야기는 신라시대 박제상(서기 363~419년)이 지은 ‘부도지符都誌’1)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의 에덴동산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증명되지 않듯이 부도지의 마고성 이야기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고성 이야기에는 에덴동산의 이야기보다도 더 자세한 내용이 있다. 그럼에도 에덴동산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으나 우리역사인 마고성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오히려 마고성의 주인인 마고 이야기가 마귀할머니로 변질된, 한낱 전설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인류의 역사가 긴긴 세월 흘러내려오는 동안, 에덴동산의 이야기에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천주교 등 서양문화권이 나왔고, 마고성의 이야기에서는 한국의 신선도神仙道, 풍류도를 비롯하여 선교仙敎, 도교道敎, 불교佛敎, 유교儒敎 등 동양문화권이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동양문화권에 대해서는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서기 857년)선생의 ‘난랑비서문’이 이를 증명한다. ‘난랑비서문’에는 “우리나라에 고유한 도道가 있어 풍류도라 한다. 이 정신의 연원은 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으니, 본래 유불도儒佛道 삼교의 사상을 포함하고 있고 모든 생명을 접화하여 교화한다”라고 되어 있다.

 


도교나 불교, 유교의 시작은 대략 지금으로부터 2천 5백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고, 기독교의 시작은 약 2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홍익정신을 바탕으로 한 신선도, 선도의 역사는 최소 단군시대의 반만년에서부터 한웅, 한인 시대로 올라가면 1만년의 역사를 갖는다.

 


 

이를 바탕으로 역사의 큰 줄기를 잡아보면, 홍익정신이 환인, 환웅, 단군시대로 내려오는 동안 인도로 간 홍익정신은 석가모니로 하여금 인도식의 홍익정신인 자비를 통하여 3천년을 역사役事하였고, 중국으로 간 홍익정신은 공자로 하여금 중국식의 홍익정신인 인仁을 통하여 2천 5백년을 역사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로 간 홍익정신은 예수로 하여금 이스라엘식의 홍익정신인 사랑을 통하여 2천 년 간 역사하였다.

 


 

그 후 인도로 간 홍익정신은 삼국시대 때 불교라는 옷을 입고 역수입되었고, 중국으로 간 홍익정신은 조선시대 초기 때 유교라는 옷을 입고 역수입되었으며, 이스라엘로 간 홍익정신은 조선시대 말기 때 기독교라는 옷을 입고 미국과 태평양을 지나 한국으로 역수입되었다.

 


 

민족과 인류의 기원을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혼란한 현 시대를 시작과 근원을 바로잡아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할, 원시반본原始返本시대라고 한다. 수행하는 자들은 마고복본麻姑復本시대라 칭하고, 종교인들은 부활시대라고 말한다. 원시반본이나 마고복본, 또는 부활은 결국 같은 의미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로 저울질해서 해석하길 좋아한다. 이 또한 분쟁을 야기할 뿐이다.

 


 

마고시대는 신화神話시대라고 하더라도 환단고기桓檀古記2) 등 여러 고서古書에 비추어보면 마고성에서부터 이어져 나간 환인, 환웅, 단군 시대는 역사歷史시대이다. 홍익인간 이화세계 정신은 환인, 환웅, 단군시대의 통치이념이었으며, 단군시대에 와서 꽃을 피웠다.

 


 

그러나 단군시대의 마지막인 47대 고열가 단군 때의 홍익정신은 청동기 문화의 발달로 인하여 사람들이 경쟁과 지배의 욕구가 극심해 짐으로서 빛이 바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고열가 단군은 물질문명의 한계를 느낄 때 다시 정신문명의 시대를 부활하겠다고 약속하고 구월산으로 입산수도하여 신선이 되었다.

 


 

그런데 단군 폐관 이후 여러 갈래로 조각났던 인류의 역사가 지구 최악의 상태를 맞이하여 완성을 꿈꾸며 다시 어머니 품인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난 백여 년 동안 한반도에는 세계의 모든 문제가 다 들어와서 들끓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념의 대립, 종교 간의 갈등, 산업화의 문제들, 지역 간 대립과 이기주의 등등

 


또 다른 눈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의 모든 종교와 사상이 다 들어와 있는 종교와 사상의 백화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종교와 사상으로는 대통합을 이룰 수 없다. 민족과 인류가 함께할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 민족을 통합할 공통점은 홍익정신이고, 인류를 통합할 공통점은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뇌와 지구이다. 일지 스승님께서는 나와 민족과 인류를 살리는 방편으로 이미 30년 전부터 준비해 오셨다.

 



 


 

우리나라는 민족과 인류의 모든 대립과 충돌을 해결하고 새로운 정신과 문화를 잉태하기 위한 인류의 자궁子宮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자궁 속에서 한민족의 새로운 탄생과 지구를 경영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홍익정신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통일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렇게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보아라, 세계여! 마침내 우리가 하나 되었다!”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꿈을 우리가 이루었다.”

 


 

여기, 한민족의 꿈을 이루기 위해 국학원과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을 건설하였다. 한민족 역사문화공원은 한국인들의 국혼을 교육하는 장소이며, 예수, 석가 등 4대 성인聖人상까지 만들어 놓고 있어서, 국적을 초월한 인류평화 정신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모든 종교의 화합의 자리가 되고 있다.

 


 

한민족의 꿈은 기도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민족의 꿈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 먼저 시작을 해야 한다. 민족과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의식 있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유대인들은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과 역사만큼은 머리가 가장 맑은 오전에 가르친다고 한다. 왜 그렇겠는가?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학교에서 국사교육을 소홀히 하고 있다.

 


 

‘역사를 스스로 업신여기면 남의 종노릇만 한다’ 는 것이 세계사의 교훈이다. 그리고 세계화도 좋지만 세계와 나눌 진정한 우리 것이 있어야 세계화에 동참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시점에, 우리는 후손에게 대를 이어 상속할 만한 역사와 정신문화를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데 최근 기획재정부가 개천절을 국민 휴식권을 확대하고 내수서비스 산업을 활성화시킨다는 명분아래 10월 3일 날짜지정제에서 요일지정제로 바꾸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정부에서 주도하고 있다.

 


 

정부가 무능하면 국민들이 깨워주어야 한다. 개천절 요일지정제 반대 및 단기연호부활 100만 범국민서명운동을 통해 국혼이 부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여세를 몰아서 2012년 12월 19일 ‘신의 날’에 홍익대통령을 선출하여야 한다. 한민족의 꿈은 이루어 질 것이다.

 

 

마고성과 에덴동산의 비교

구 분

  

에 덴 동 산

배 경

한민족의 창세기

이스라엘 창세기

출 처

부도지

구약성경

주인공

마고

하나님

타락 계기

포도(오미의 변)

선악과

복본의 길

심신수련

참회, 神의 용서

기본정신

신인합일(神人合一) 

삼원론(三元論) 

천손(天孫)사상

신인분리(神人分離)

이원론(二元論)

선민(選民)사상

문화권 

형성

동양문화권

선도, 도교,

불교, 유교 등

서양문화권

유대교,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 한민족 국호 변천사

 

(부도지 역사 : 마고- 황궁- 유인)- 한인 桓(BC 7,179년 건국)- 한웅 배달국(BC 3,898년)- 단군 朝鮮(BC 2,333년) - 북부여(BC 3세기 후반경) - 신라(BC 57년), 고구려(BC 37년) - 백제(BC 18년) - 【예수탄생일(서기 원년)】 - 발해(AD 676년), 고려(AD 918년) - 조선(AD 1392년) - 일제강점시대(1910년) - 대한민국(1945년 8월 15일 광복)

 

○ 구약성경 창세기 가계

 

아담(하와)의 후손은 아브라함으로 이어지고, 아브라함과 본처인 사라와의 후손은 이삭과 예수로 이어져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기독교를 만들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여종인 하갈 사이에서 태어난 이스마엘이 마호메트로 이어져 아랍권의 이슬람교를 만들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브라함 가족의 비극은 수천 년 동안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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