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사원소 본문
사원소
고대인들이 사원소, 즉 흙, 물, 공기, 불(地, 水, 風, 火)에 대해서 말할 때 그들이 이해하는 바, ‘원소’라는 단어는 오늘날 화학에서 말하는 그 뜻이 아님은 물론이다. 고대인들의 원소는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 열거된 원소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은 단지 모든 물질체를 구성하는 기본 질료이다. 연금술사들은 사원소를 고체, 액체, 기체, 화성체火性體, 이렇게 물질의 네 상태와 관련지어 정의한다.
모든 고체는 흙, 모든 액체는 물, 모든 기체는 공기, 열기와 빛을 지닌 모든 것을 불로 각각 분류한다. 따라서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물질은 불, 공기, 물, 흙의 다양한 비율로 구성된다. 또한 그들의 체계의 핵심적인 속성은 원소들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각 원소는 다른 원소로 변형 가능하다. 흙이 물로, 물이 공기로, 공기가 불로, 그리고 그 역으로도 변형된다. 불이 공기로, 공기가 물로, 물이 흙으로.
사원소는 우리의 본성과 구성에 영향을 미친다.
사원소 중 우세한 원소가 그 사람의 기질을 결정한다. 히포크라테스에 의해 정의된 네 가지 기질, 즉 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점액질은 사실상 사원소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오늘날 어떤 의사들은 이 고대의 분류로 돌아가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제껏 아무도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원소는 또한 인간의 복잡한 구조와도 관련된다. 흙은 인간의 육체에, 물은 아스트랄체에, 공기는 멘탈체에, 불은 영과 혼에 각각 상응한다. 불의 본성은 이중적이다. 불은 열과 빛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열은 가촉적이고 빛은 가시적이다. 열은 혼의 현현이고 빛은 영의 현현이다.
사원소는 모든 마기, 연금술사, 카발리스트들의 주요한 공부 주제이다. 사원소는 종종 상징적인 형태들로 표현되는데, 그 심벌들은 사원소와의 관련성을 통해 보지 않으면 이해 불가능하다. 십자가, 스핑크스, 황도궁 등은 모두 사원소와의 관련을 통해서만 해석될 수 있는 심벌들이다. 그러나 물질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원소는 단지 케테르 안에 뿌리를 둔 신성한 사원소의 속성들이 가장 농밀하게 응고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카발리스트들이 하이요트 하 카도쉬(성스러운 생물)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크리스천들이 세라핌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네 성스런 생물은 사자, 송아지, 독수리,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다. 여기서 인간은 단지 다른 생물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라핌이 사자의 턱, 송아지의 코 등을 가졌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단지 그들 사이의 정묘한 관계, 그리고 그들이 나타내는 물질의 상이한 상태들을 표현하는 상징적 방식일 뿐이다.
성스러운 네 생물은 황도궁에서도 발견된다. 사자궁, 금우궁, 보병궁, 천갈궁이 그것이다. 보병궁은 사람의 형상을 가지고 있으며 전갈은 독수리의 또 다른 표현이다. 어째서 오늘날은 독수리가 아니라 전갈로 표현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인간이 실락 했을 때 인간의 숭고한 성性 에너지를 상징하는 독수리가 통제되지 않는 성을 상징하는 전갈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성스러운 생물이 자주 기독교의 예술(드로잉, 그림, 프레스코, 사본, 조각 등)에 나타나지만 크리스천들은 그것을 적절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 네 형상 속에 담긴 풍부한 의미에 대해 아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솔로몬의 기도 속에 나오는 “아랄림이여, 행동하라. 오파님이여 회전하며 빛나라. 하이오트 하 카도쉬여, 소리치고 말하고 포효하고 울어라!”는 언구는 성스러운 네 생물에 대해 하는 말이다.
아랄림은 명령(포고)에 의해 지상을 지배하는 보좌들, 24장로들이다. 오파님은 끊임없이 회전하는 불의 바퀴, 케루빔이다. 하이요트 하 카도쉬는 네 성스러운 동물들, 세라핌이다. 솔로몬이 ‘소리치고 말하고 포효하고 울어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존재들을 향한 것이다. 소리치는 것은 독수리, 말하는 것은 인간, 포효하는 것은 사자, 우는 것은 송아지이다.
이 부름의 의미는 매우 심원하다. 그것은 이런 의미이다. “말하라, 내가 알 수 있도록. 소리치라, 내가 의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포효하라, 내가 용감하게 맞설 수 있도록. 울어라, 내가 침묵할 수 있도록.” 용감함은 사자에 속한다. 조용한 울음은 송아지한테 속한다. 높이 치솟아 오르려는 의지는 독수리에 속한다. 아는 것은 인간에게 속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알라, 의지를 발휘하라, 용감하게 맞서라, 침묵을 지켜라.’는 비전가들의 입술에 자주 오르내리는 계명으로 아주 오랜 고대의 것이다. 그것은 성스러운 네 생물의 덕성에 대한 이해로부터 나온 것이다.
성스러운 생물은 사원소의 천사들이다. 그것은 10번째 세피라 말쿠트에서 응고된 물질의 가장 높은 표현이다. 물질의 원천, 뿌리는 신에 가까운 위의 세계에 속한다. 왜냐하면 물질은 순수성과 정묘성의 차원에서 신성한 기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에 대한 지식,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과 하나이기 때문이다. 현대 물질과학의 발견들은 물질보다 정묘한 단계의 질료에 대해 인식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과학자들은 머지않아 에테르 물질의 구조와 운동을 관찰할 수 있는 기구를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물론 아스트랄 질료와 멘탈 질료를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설령 우리가 아스트랄과 멘탈 차원의 질료를 가지고 작업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며 어떤 기구로도 그것들을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우리는 모두 아스트랄 질료와 멘탈 질료를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 당신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의 생각과 감정들, 당신의 의식 상태들은 질료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너무도 정묘해서 당신이 발산하거나 이동시키는 질료의 운동이 감지되지 않는 것이다.
사원소의 천사들은 신의 하인들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이 우리의 영적인 일에서 우리를 돕도록 우리는 주님께 그것들을 우리에게 보내달라고 간구해야만 한다. 우리들 각자 안에는 악의 씨앗이 있다. 이 씨앗들은 항상 기회만 있으면 자라고 팽창하며 우리의 길을 방해하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제자가 진화의 과정에서 특정한 국면에 도달할 때 그의 잠재의식의 가장 후미진 곳 속으로 들어가는 시험을 받는 이유이다. 사원소의 천사들의 도움을 통해 그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악의 씨앗들을 묻고 익사시키고 흩고 불태워버리기 위해.
만일 우리가 사원소를 통해 이 작업을 하지 않으면 절대적인 순수는 결코 성취될 수 없다. 각 원소는 그 자신의 특별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공기는 물이나 불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주님께 사원소 천사들의 도움을 우리에게 주십사고 간구해야만 한다.
“오 주여, 전능의 신, 하늘과 땅의 창조주시여, 당신의 하인인 사원소의 천사들을 제게 보내주시기를 당신께 간구합니다. 흙의 천사는 나의 육체의 모든 찌꺼기들을 흡수하여 당신을 표현하고 당신의 의지가 나의 육체를 통해 현현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물의 천사는 내 심장으로부터 모든 때를 씻어내고 이타적인 사랑으로 가득 채워 나로 하여금 당신의 왕국과 당신의 의義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공기의 천사는 나의 지성을 지혜와 빛으로 순화시켜주어 당신의 왕국과 당신의 의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오, 주여 불의 천사를 제게 보내 주소서. 불의 천사는 나의 혼과 영을 성화시켜 당신의 진리가 그것들 속에 거하고 당신의 왕국과 당신의 의를 위해 제가 일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아멘. 아멘. 아멘.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거기에는 항상 적어도 사원소 중 하나 이상의 흔적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의 존재에 감사해야 한다. 그것들은 우리가 계속 살아가고 지속적인 활동을 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사원소 모두와 접촉하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식사할 때이다. 왜냐하면 물질의 네 가지 상태, 즉 고체, 액체, 기체, 화성체가 음식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식사시간이 사원소 천사들과의 유대를 강화시킬 수 있는, 그리고 사원소의 덕목과 교감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인 이유이다. 흙의 천사에게는 견고함과 안정성을 주도록 부탁하라. 왜냐하면 그것들의 바탕을 주는 것이 흙의 천사이기 때문이다. 흙의 천사가 없다면 어떤 것도 지탱할 수 없다. 물의 천사에게는 생명과 순수를 달라고 간구하라. 공기의 천사에게는 지성, 정묘성, 신속함을, 불의 천사에게는 신성한 사랑의 빛과 불을 달라고 간구하라.
신은 사원소를 우리의 처분에 맡기셨다. 우리는 반드시 그것들을 가능한 최대로 이용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왜냐하면 사대四大는 영적인 존재들이 살고 있는 강력한 원소들이기 때문이다. 불 속에 거주하고 있는 존재는 살라만더이다. 공기 속에 거주하고 있는 존재는 실프, 물의 영들은 님프 또는 운딘이다. 그리고 흙속에 거주하고 있는 존재는 노움 또는 브라우니이다. 마법사들은 종종 이 영들을 불러내 자신들의 일을 돕도록 시킨다. 예를 들어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사대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 영을 불러내는 예가 나온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런 방식으로 사대의 힘을 이용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 위험하다. 당신은 그들 존재를 인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내가 당신한테 주는 방법을 실천하라. 왜냐하면 사대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심지어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의 말들은 그들을 활동시키는 특정한 물질적 입자들의 매체라는 사실을 반드시 인식해야만 한다. 말 속에는 본질상 사대 중 하나는 최소한 존재한다. 우리가 말하고 표현하는 것에 옷을 입힐 기회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우리의 말들은 항상 우리가 목표로 정한 타깃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바랐던 결과의 사인sign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원소들의 행위에 감사하라. 우리의 말들은 항상 무엇인가를 성취한다.
때로는 우리로부터 아주 먼 어떤 곳, 다른 별에서까지도 말이다. 이것은 선과 악 양자에 공히 진리이다. 때로 우리는 착하게 삶을 살아왔는데도 어느 날 갑자기 돌풍을 맞는다. 그것은 우리의 말과 생각에 의해 파종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결코 생각지도 않던 장소에서 해를 입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대의 힘은 항상 존재하고 활동하며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비전가들은 말과 생각에 대해 극도로 주의를 기울인다. 말과 생각들은 씨앗이다. 그것들은 바람에 실려 날아가 머나먼 토양에 뿌리를 내린다. 비전가는 선한 씨앗을 만드는 데 심려를 기울인다. 신성한 영의 바람이 어디로 그것들을 데리고 갈 것인지는 그의 관심사항이 아니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씨앗의 질이다.
사대를 끊임없이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이것을 잊지 말라. 예를 들어 호흡할 때 우리는 공기를 흡수하였다가 내뱉는다. 우리가 숨을 내쉴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경우 우리가 내뱉은 숨에 의해 공기가 오염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자신을 진실로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면 오염의 정도는 약해질 것이다. 사악한 존재의 폐로부터 나오는 공기는 그것이 닿는 모든 것들을 오염시킨다. 공기든, 물이든, 음식이든 우리는 우리의 몸을 통과하는 원소들에 어떤 변화가 발생하는 지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다. 당신은 그 원소들의 본질을 변형시키고 재순환시킨다.
그러므로 만일 사대의 활동에 의식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어떤 유해한 사이킥 요소들에 의해 그것들이 오염되지 않게 만드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전승의 가르침에 의하면 어떤 성자들과 신비가들이 엑스타시 속에 있을 때 꽃의 향기가 그들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진실이다. 상념과 감정의 순수성이 실제로 향기로운 내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자하는 포인트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생활에 필요한 모든 원소들을 준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은 생활의 질에 의해서이다. 순수한 삶을 사는 제자는 모든 것의 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 심지어 몸의 분비물의 냄새조차도 변화시킨다. 그는 여름에 꽃들로부터 넥타르를 모으는 꿀벌과 같이 될 수 있다. 꿀벌은 그것을 변화시켜 우리에게 이로운 향기로운 꿀을 만드는 것이다! 벌은 제자들이 닮아야할 모델이다.
세브레, 1963. 12. 29.
당신은 사원소들 중에서 부동성의 특성을 지닌 유일한 원소가 흙이라는 사실에 주목해 본 적이 있는가? 다른 원소들, 즉 물, 공기, 불은 모두 유동성을 지닌다. 흙만이 부동성을 지니고 있다. 사실 흙은 다른 원소들, 특히 불에 의해 가차 없이 이겨지고 조형되는 물질을 구성한다. 하지만 흙을 조형하는 불은 일반적인 불이 아니라 태양의 불이다. 이 태양의 불은 모든 운동의 기원이 되는 불이다.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 모든 변화는 태양의 작용의 결과이다. 만일 태양이 없다면 공기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물은 정체될 것이고 흙은 무형상을 띨 것이다. 모든 운동에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불 원소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영의 작용에 의해 모든 물질의 운동이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물질은 그 자체로 불활성이며 무형이다. 물질의 생명과 운동은 영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다. 창세기의 서두에 모세가 표현하고 있는 것이 이것이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더라.' 일단 이것이 이해된다면 우리는 세계, 사회 그리고 개인들도 관념에 의해 지배받고 조형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의 존재에 힘을 가지길 원하는 자는 반드시 자신의 영에 보다 큰 표현의 자유를 주고 자신의 물질 위에 작용할 수 있게 해야만 한다. 위에 있는 것은 반드시 아래의 것을 지배하고 컨트롤해야만 한다. 모든 것은 위로부터 오고 아래에 반영된다.
이것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이미지는 지구에 미치는 태양의 작용이다. 지상에서의 생명과 죽음은 태양의 열과 빛의 효과에 의해 만들어진다. 유사하게, 우리의 육체와 물질생활의 전체는 우리의 영의 운동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핵심 포인트를 환기시켜 준다. 그것은 바로 주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태양은 지구 위에 직접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태양은 항상 공기와 물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작용한다. 마찬가지로 영이 육체 위에 작용하기 위해서는 중간 매개들을 필요로 한다. 인간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시스템에 의존한다면 이것은 다른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만일 존재계의 삼중 체계를 사용한다면 영이 혼(마음과 가슴)의 매개를 통해 육체를 지배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영체 시스템을 사용한다면 아트마체(영)가 붓디체, 코잘체, 멘탈체, 그리고 아스트랄체를 통해서 육체에 작용한다고 말 할 수 있다.
또 영과 육체 사이의 또 다른 매개로 신경체계(특히 태양신경총)를 사용하는 방식도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의식과 잠재의식 사이의 통신을 수립하는 데 성공한다면 태양신경총의 매개를 통해 육체를 지배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태양신경총에 작용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아스트랄체, 즉 느낌(감정)을 통해서이다. 상념(공기)은 우리의 느낌(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우리의 느낌(감정)을 통해서 거대한 생명 에너지의 저장소인 태양신경총에 영향을 미친다.
위로 불에서 아래로 흙까지, 원소들 사이의 체계적인 순서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순서체계를 무시하는 자는 자기 지배 즉 내면의 질서를 수립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항상 사건이나 환경에 좌우되게 된다. 만일 그가 물질계의 요소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다른 요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물질계에 묶인 채로 남아있게 된다. 그는 결코 고급한 계로 상승할 수 없다. 그리고 상황을 지배하기 위해 그 요소들을 이용할 수 없을 것이다. 사원소와 그 상하체계의 의미를 이해하는 자들만이 성공의 길을 걷고 지고한 이상을 성취할 수 있다. 오로지 그들만이 자신의 욕망과 자기 자신을 마스터할 수 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오래 전에 나는 이해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 당신은 결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만일 당신이 진정으로 이해하였다면 당신은 이미 위대한 조각가, 화가, 마법사가 되었을 것이다. 당신이 그것을 인식했다면 태양이 최초의 원인자이므로 당신은 당신의 모든 주의력을 태양에, 다시 말하면 당신의 영에 기울였을 것이다.
바람을 일으키고 대기의 흐름(당신의 상념)을 이 방향 저 방향으로 흐르게 만드는 것은 당신의 영이다. 바람은 물, 연못, 호수, 강, 바다, 즉 당신의 느낌, 감정, 정서 위에 불고 그것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리고 당신의 감정은 당신의 몸과 얼굴의 인상을 조각한다. 물이 흙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감정은 육체를 조형하고 형성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심령적(사이킥적) 조각이다. 만일 당신이 당신 자신을 조각하기 원한다면,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싶다면, 그것에 안정성을 주고 싶다면, 질병에 대한 저항 능력을 만들고 싶다면, 그것이 필요로 하는 표현 능력을 가지고 싶다면 당신은 반드시 영의 우선 법칙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것 없이는 우리 자신을 만들어갈 수 없다.
우리는 단지 흉한 꼴이 되고 우리 자신을 파괴하게 된다. 슬픈 사실은, 우리가 이것을 매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일그러지고, 자기를 파괴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영의 진정한 과학을 배우기 위해 신성한 학원으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평화와 전쟁, 부와 가난, 건강과 질병은 모두 관념, 상념에 의해 생겨난다. 칼 막스의 <자본론>에서 주어진 깊은 과학적 설명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인간 사회의 생명의 상태를 만들고 지배한다는 그의 말은 틀린 것이다. 경제 이면에 관념이 있다. 그것은 선하고 악한 상념들이다. 그것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자본의 분배를 결정짓는다. 그러나 우리는 관념을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들은 결코 자연의 내밀한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이 사대의 과학을 우리의 일상생활에, 우리자신의 상념과 감정에 적용할 수 있을까? 오로지 비전의 가르침만이 우리에게 해답을 줄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사람들에게 수년 동안 설명해 오고 있는 것이다. 먹고 말하고 행동하고 사랑하는 당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당신이 카발라, 연금술, 점성학을 실천하는 법에 대해 나는 말해 왔다.
매우 미묘한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서 누군가와 얘기해야만 한다고 생각해보자. 상대방을 만나기 전에 영에 집중하라. 그리고 그것에 당신의 상념을 맡겨라. 그러면 당신의 상념은 당신의 감정과 정서를 컨트롤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감정과 정서가 영의 인도를 따를 때 당신의 모든 몸짓, 목소리, 말 또한 순종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 만일 당신이 영에 우선권을 준다면 당신은 반드시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영의 스위치를 누르고 일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일단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그 밖의 모든 것은 제자리를 척척 찾아갈 것이고 당신의 일은 성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균형 잡히고 조화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영으로 하여금 당신의 상념과 감정을 책임 맡게 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어색한 말과 몸짓으로 인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것은 당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사대의 과학을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하나의 예이다. 그것은 당신이 하는 모든 일 하나하나에 적용된다. 먹는 것이든, 말하는 것이든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이든. 당신이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영을 불러내어 떠맡기도록 하라. 그러면 나머지 모든 것은 자체로 잘 되어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대하는 타인의 태도에 대해 내게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들의 아내, 자식, 형제자매, 부모, 장인장모, 이웃, 동료, 고용주 등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한테 잘 못 한다고 하소연한다. 아무도 자기들을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순종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 때로 매우 특별하다. 하지만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당신한테 말할 수 있다. 매우 중요한 사람, 예를 들어 왕이나 고관대작이 어떤 도시를 방문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정성들여 준비하고 안전을 체크한다. 깃발들을 꽂고 포스터들을 붙인다. 거리를 청소하고 장식한다. 그리고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지성적이고 가장 존경받는 시민들이 그를 영접하는데 선택된다. 왕이 도착할 무렵이 되면 그 장소는 너무도 달라져서 마치 다른 도시가 된 듯이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일 당신이 당신 자신에 대해 계속 작업하여 보다 고귀해지고 자신을 보다 완벽하게 마스터한다면 어디에 가든 당신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사물들은 당신의 영예 속에서 변형되어질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평범한 것 밖에 아무 것도 없다면 아무도 당신을 위해 사물과 환경을 개선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당신은 항상 다른 사람들로부터 불쾌함에 노출될 것이다. 그것은 모두 당신한테 달려 있다. 만일 당신이 계속적으로 빛과 사랑 속에서 성장한다면 당신의 모든 친구와 지인들, 당신의 아내, 자식 그리고 이웃들은 변화될 것이다.
당신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어떻게 그들이 변화될 수 있는가?” 물론 나는 그들의 내적인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당신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매우 진보된 존재들이 와서 당신의 가족 속에 그리고 당신의 친구와 이웃 속에 거주할 것이다. 당신은 또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내와 자식들은 실제로 변화되는가?” 외적으로는 아니다. 그들의 겉모습은 전과 똑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들 속에 당신을 사랑하고 도와줄 새로운 존재들이 거주하게 될 것이다. 당신한테 적대적인 존재들은 쫓겨나고 다른 존재들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당신이 영, 빛, 사랑, 지혜 등에 우선권을 주는 것을 배운다면 당신은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로운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자연히 당신을 향한 그들의 태도는 변화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하루아침에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의 어떤 노력도 낭비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항상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활동의 어떠한 측면도 - 심지어 당신의 내적, 영적, 신비적 삶도 - 이 매개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도는 매개를 통해서만, 위대한 천사 하이어라키의 채널을 통해서만 간다. 당신이 이런 말을 한다면 많은 종교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알고 놀랄 것이다. 그들은 신께 직접 말하기를 원한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하고 있으며 신이 자신들한테 응답한다고 확고히 믿고 있다. 때로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즉, 신이 그들한테 말하고 그들이 신께 대답한다고! 그들 중에는 크리스천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야곱의 사다리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야곱의 사다리는 영적인 하이어라키를 상징하는 사다리이다.
그 사다리는 위대한 마스터들로부터 세라핌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있다. 신의 피조물들은 이 사다리를 위아래로 오르내린다. 다른 방식으로 창조주에게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 속의 모든 것들은 사다리의 필요성을 지적해준다. 심지어 당신 집의 지붕 위에 올라가는 데도 사다리가 필요하다! 당신은 다른 방법도 있다고 말할 것이다. 맞다. 그러나 그것들 모두는 본질적으로 사다리와 동일한 기능을 하는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왕에게 직접 편지를 전하기를 원한다. 글쎄, 설령 우체국에 가지 않고 당신이 그것을 왕궁에 직접 가져간다 할지라도 편지는 왕한테 전달되기 전에 장관이나 각료 등 매개자의 손을 통해야만 한다. 이것이 하이어라키이다. 모든 곳에, 지상에서뿐만 아니라 천상에서도 하이어라키는 존재한다. 돌, 식물, 인간, 별, 세계들은 우리에게 하이어라키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부 몰지각한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신께 직접 올라가서 그를 손으로 쥐고 흔들 수 있다고 상상한다!
그러고 보니 수년 전 내게 자신이 예수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말하던 한 나이든 부인이 생각난다. 그녀는 자신이 영매라고 확고하게 믿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만날 때마다 그녀는 새로운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오늘 아침, 나는 아버지 하나님께 얘기를 했어요.”
“예? 하나님 아버지께요?”
“예. 예수님은 바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대신 오셔서 저와 얘기했어요.”
“뭐라고 하셨나요?”
“나는 그분께 오늘 시장에서 무엇을 사면 좋은지 물었어요. 그랬더니 말씀해 주시더군요.”
보다시피 이렇다. 이러니 하나님 아버지께서 바쁘시지 않겠는가. 사람들한테 무슨 야채를 사고 어떤 빗자루를 사고 어떤 가루비누를 사야할지 일일이 말해주시다니! 분명 그분은 매우 친절하시다. 당신이 그분의 조언을 청하기만 하면 그분이 그것을 주시니!
다시, 사원소 사이에 존재하는 이 하이어라키의 개념으로 돌아가 보자. 당신은 지구의 구조 속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바다와 대양들(물)이 대륙들(흙)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대기(공기)가 물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대기 위에 에테르(불)가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나무를 보라. 당신은 나무를 통해 그것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 한 그루의 나무의 구성은 흙, 물, 공기 순으로 성분이 조금씩 많아진다. 나무에서 가장 중요한 성분은 빛과 불이다. 한 그루의 나무를 태워보라.
그러면 이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무에서 많은 화염이 나오고 그보다 적은 양의 가스가 나오고 또 그보다 적은 양의 수증기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한 줌의 재가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사원소 사이의 하이어라키 관련 문제와 이 법칙의 구체적인 적용에 대해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은 흙을 떠받치고 자양분을 공급한다. 공기는 불을 떠받치고 불을 먹여 살린다. 비록 흙이 물보다 위에 있지만 물은 흙을 돌보는 보모이다. 공기와 불은 남성적이다. 흙과 물은 여성적이다. 불의 공기에 대한 작용은 새로운 다섯 번째 원소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유황이다. 불의 공기에 대한 작용은 유황을, 공기의 물에 대한 작용은 수은을, 물의 불에 대한 작용은 소금을 각각 만들어낸다. 연금술사가 유황, 수은, 소금을 가지고 작업하는 걸 배울 때 그는 철학자의 돌을 발견할 수 있다.
봉팽, 1960. 8. 18.
[출처]비전의 카발라 - 옴람 미카엘 아이반호프|작성자알카드
'천지인 공부 > 천부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혼불이(史魂不二)" (0) | 2019.08.08 |
---|---|
한민족의 건국시조- 단군이야기 (0) | 2019.08.06 |
천부경 도덕경 카발라 (0) | 2019.08.05 |
담아온 글 카발라와 천부경.. (0) | 2019.08.05 |
무한진인의 천부경 풀이 천부경 공부 (0) | 2019.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