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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있는 삼일신고(三一神誥) 본문

천지인 공부/삼일신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있는 삼일신고(三一神誥)

柏道 2019. 7. 28. 21:37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있는


삼일신고(三一神誥)

 

이 책은 366자의 한자로 쓰여졌으며, 「천훈(天訓)」·「신훈(神訓)」·「천궁훈(天宮訓)」·「세계훈(世界訓)」·「진리훈(眞理訓)」의 오훈(五訓)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훈(天訓)」에서는, ‘천(天)’에 대한 무가명성(無可名性)·무형질성(無形質性)·무시종성(無始終性)·무위치성(無位置性) 등 무한성(無限性)을 전제함으로써 천체의 지대(至大)함과 천리(天理)의 지명(之明)함, 천도(天道)의 무궁함을 36자로 가르치고 있다.

 

종교적인 우주관과 절대성의 개념이 명백하게 밝혀져 있어, 신도(神道)의 달통무애(達通無碍)함을 설명하는 바탕이 된다.

 

「신훈(神訓)」에서는 무상위(無上位)인 ‘신(神)’이 대덕(大德)·대혜(大慧)·대력(大力)이라는 삼대권능(三大權能)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림에 조금도 허술하거나 빠짐이 없으며, 인간이 진성(眞性)으로 구하면 머리 속에 항상 내려와 자리한다는 내용이다.

 

유일무이하고 전지전능한 절대신임을 밝혔고, 동시에 신인합일(神人合一)이라는 달통무애함이 인간의 신앙적 가능성을 열어주는 의의를 가지게 한다.

 

 

「천궁훈(天宮訓)」에서는 신교(神敎)에 따라 성통공완, 즉 반망귀진(返妄歸眞:헛된 마음을 돌이켜 참된 성품으로 돌아옴)하는 수행을 쌓아 진성(眞性)과 통하고, 366가지의 모든 인간사(人間事)에 공덕(功德)을 이룬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 천궁(天宮)이다. 여기는 한배검이 여러 신장(神將)과 철인(嚞人:嚞은 哲의 古字)을 거느리고 있는 곳이며, 길상(吉祥)과 광명과 아울러 영원한 쾌락이 있는 곳이다.

 

인생이 마지막 찾아야 할 희망처가 천궁이며, 신교가 단순한 기복형(祈福型)의 신앙이 아니고 힘든 수도를 전제로 한 구도형(求道型)의 신앙이 바탕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성통공완이란 반드시 죽음을 통하여 이룩하는 것이 아니요 현세적으로도 가능하며, 뿐만 아니라 이것이 더욱 바람직한 것이다.

 

실제로 천궁훈의 주해에, “천궁은 천상(天上)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상에도 있는 것이니 태백산(지금의 백두산) 남북이 신국(神國)이며, 산상(山上)의 신강처(神降處)가 천궁이다. 또한 사람에게도 있으니 몸이 신국이요, 뇌(腦)가 천궁이다. 그래서 삼천궁(三天宮)은 하나이다.”라고 하여, 신인합일적이요 삼이일적(三而一的)인 천궁설(天宮說)을 설명하고 있어, 단순한 내세관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세계훈(世界訓)」에서는 우주창조의 과정을 설명한다. 우주전체에 관한 내용과 지구 자체에 관한 내용으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 즉, “눈앞에 보이는 별들은 무수히 많고 크기와 밝기와 고락이 같지 않다. 신(神)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고 일세계(日世界)를 맡은 사자(使者)를 시켜 700세계를 다스리게 하였다.”는 내용과 “지구가 큰 듯하지만 하나의 둥근 덩어리이며, 땅 속의 불[中火]이 울려서 바다가 육지로 되었다. 신이 기(氣)를 불어 둘러싸고 태양의 빛과 더움으로 동식물을 비롯한 만물을 번식하게 하였다.”는 내용인데, 뒤의 부분은 현대과학적인 안목으로도 설득력이 있어 관심을 끌게 한다.

 

「진리훈(眞理訓)」에서는, 사람이 수행하여 반망귀진하고 성통공완에 이르는 가르침이 주요 내용으로 되어 있어 신앙적인 면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천부경』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사람은 삼망(三妄)인 심(心)·기(氣)·신(身)에서 벗어나 본래적인 삼진(三眞)인 성(性)·명(命)·정(精)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여기에는 신교(神敎)에 따른 수행이 필요하다.

 

즉, 심의 감(感)을 지감(止感)하고, 기의 식(息)을 조식(調息)하고, 신의 촉(觸)을 금촉(禁觸)하는 삼법(三法)을 힘써 익혀야 한다.

 

이상이 그 내용인데, 여기서 지감은 불가(佛家)의 명심견성(明心見性)으로, 조식은 선가(仙家)의 양기연성(養氣鍊性)으로, 금촉은 유가(儒家)의 수신솔성(修身率性)으로 비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