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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일본 제국이 한반도 식민화를 추진 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계기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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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일본 제국이 한반도 식민화를 추진 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계기는?

柏道 2019. 4. 21. 12:37


역사이야기

[역사]일본 제국이 한반도 식민화를 추진 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계기는?

 

"중세 일본은 전국 시대를 통일 한 후, 명나라를 점령하기 위한 부푼 욕망을 드러 낸다. 일본이 명나라를 치기 위해서는 지리적인 여건상 조선땅의 길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선 왕조 14대 왕 선조가 길을 쉽게 내주지 않자 일본의 전국 시대를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내친김에 조선을 점령하기로 마음을 먹고 1592년에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이것이 일본의 첫번째 한반도 침략이다. 1910년 일제강점은 일본의 두번째 한반도 침략이다. 그리고 세번째 한반도를 침략하기 위해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정한론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IM02 칼럼 중에서-

  

1910년, 일본 제국이 한반도를 지배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아는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다. 그리고 일본은 러일전쟁중에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해서 영국과 러시아의 승인도 받아낸다. 드디어 일본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 늑약,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을사보호조약을 일방적으로 체결한다. 그리고 1910년 8월 29일, 일본 제국은 한반도를 강제적으로 점령하게 된다.

 

일제병탄의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일본과 미국이 일방적으로 체결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대해서 알아본다.

 

가쓰라-태프트밀약의 핵심내용은 한반도는 일본이 지배하고, 필리핀은 미국이 지배한다라는 비밀 약속이다.

 

 

<가쓰라-태프트밀약>

 

(The Katsura-Taft Agreement)

 [출처]네이버 두산백과

 

 

1905년 7월 미국과 일본이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서로의 지배를 인정한 협약으로 일본이 제국주의 열강들의 승인 아래 한반도의 식민화를 노골적으로 추진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일시 :1905년 07월 29일

장소 :도쿄 

목적: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적 지위 인정 

가입국가 :미국·일본

 

1905년 7월 29일에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이자 임시외무대신이었던 가쓰라 다로[桂太郎]와 미국의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후에 미국의 제 27대 대통령이 됨) 사이에 맺어진 비밀 협약이다. 가쓰라-태프트 협정, 가쓰라-태프트 각서(Taft Katsura Memorandum)라고도 한다.

  

러일전쟁 중이던 1905년 7월 미국의 육군장관 태프트는 필리핀을 방문하던 도중에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의 특사로 일본을 방문했다. 1905년 7월 27일 도쿄에서 가쓰라 총리와 기밀 회의를 열어 동아시아 정세에 관한 주요 의제를 논의하였고, 7월 29일에 회의의 주요 내용을 담은 합의 각서를 작성했다. 태프트는 이 합의 각서의 내용을 곧바로 당시 국무장관이던 엘리후 루트(Elihu Root)에게 전보로 알렸고,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7월 31일 그 내용을 승인하였다. 필리핀 마닐라에 머물고 있던 태프트는 8월 7일 가쓰라 총리에게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승인 사실을 알렸다. 가쓰라 총리는 다음날 러시아와의 강화협상 전권대표로 미국 포츠머스(Portsmouth)로 가 있던 고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郎] 외상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이로써 일본과 미국의 합의 과정이 완료되었다.

  

이 밀약의 내용은 서명된 문서나 조약의 형태가 아니라 서로의 합의를 기록한 각서로만 존재하며, 그 내용도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다 1924년 미국의 외교사가인 타일러 데닛(Tyler Dennett)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문서들을 연구하다가 발견해 《커런트 히스토리(Current History)》 지에 발표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체결될 당시 일본은 러시아와 전쟁 중이었는데, 그해 5월 27일 대한해협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해군이 큰 전과를 거두면서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미 러시아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강화 권고를 받아들인 상황이었다. 따라서 가쓰라와 태프트의 기밀회의에서는 러일전쟁 이후의 동아시아 정세에 관한 안건들이 논의되었고, 두 나라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사항에 합의하였다.

 

 

첫째,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고, 일본은 필리핀을 침략할 의도를 갖지 않는다.

 

둘째, 극동의 평화 유지를 위해 미국·영국·일본은 동맹관계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인정한다.

 

 

특히 가쓰라 총리는 대한제국 정부가 러일전쟁의 직접 원인이었다고 주장하면서 한반도 문제의 폭넓은 해결이 러일전쟁의 논리적인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대한제국 정부가 단독으로 방치되면 다시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어 전쟁이 발발할 수 있으므로, 일본은 대한제국 정부가 임의로 다른 나라와 조약을 체결할 수 없게 막아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태프트 특사는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국(protectorate)으로 되는 것이 동아시아의 안정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동의했으며, 루스벨트 대통령도 자신과 같은 생각일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이 밀약은 일본과 미국이 한반도와 필리핀에 대한 서로의 지배권을 인정하고,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영국·일본의 동맹을 강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에게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은 일본은 1905년 8월 12일 제2차 영일동맹을 맺어 영국에게도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조약을 체결해 러시아에게도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이처럼 국제 사회에서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은 일본은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려는 야욕을 노골화하여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 보호국의 지위로 전락시켰으며, 1910년 8월 29일에는 주권을 완전히 빼앗았다. 이처럼 미국과 일본 사이에 이루어진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일본이 제국주의 열강의 동의를 얻어 한반도의 식민화를 노골적으로 추진해가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