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324사 -巨有(거유)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36
성경을 비롯한 모든 지혜의 경전은
사람으로 하여금 복을 받고 살게
하기 위하여 주어진 하늘의 선물이다.
하늘의 말씀은 바로 '복음'이며,
식물이 이슬과 비를 받아 살고 자라
나듯이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령한 젖과 양식으로 삼아 섭취함으로
영적으로 자라게 된다.
그리고 영적인 생명의 복됨과 영광을
알게 하기 위하여 맛보기로 육신의
감각적인 즐거움과 행복을 마련해
두신 것이다.
건강과 평안, 아름다움과 풍성함,
명예와 권세 등 우리가 감각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도
복이면서 동시에 더 크고 영광스러운
영적인 복으로 이끌어가는 것들이다.
문제는 보다 높고 큰 복을 향하여 올라
가도록 맛보기로 준 감각적인 복을
진짜로 잘못 알고 거기에 몰입되는
것을 하늘은 가장 염려한다.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것이 그처럼 좋은
이유는 맛보기가 좋아야 진짜를 찾게
되듯이 감각적 복도 그런 원리로 좋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늘은 그러한 복을 주면서도
경계를 내린다. 이것은 맛보기, 즉
에피타이저에 불과하니 주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입맛만 다시라고 주의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철이없고 의식 수준이 낮게 되면
그만 어리석음과 욕심에 빠져 맛보기로
배를 다 채워버리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맛보기에는 부정적인
요소를 마련해 두었다. 탈이 나게 해
둔 것이다. 많이 먹으면 체하거나
질리거나 심한 경우 바이러스까지 생기는
일을 통하여 거기에 심취하지 못하도록
배려를 해 두었다.
기다릴 줄 알고 고상한 기대를 가질 줄
알아야 음식을 차린 자도 기쁘게 된다.
지혜롭고 고상한 자는 주인의 뜻을 안다.
따라서 에피타이저는 정확하게 주인이
의도한 정도만 취하고 입을 뗄 줄
아는 것이다.
第 324事 應 1果 積 2形
(응 1과 적 2형) 巨有(거유)
巨有者(거유자)는
賦厚德(부후덕)하여
居素位(거소위)하고
廣有土地(광유토지)하며
貯有寶貨(저유보화)하니
絶憂愁(절우수)하고
塞悲慘(색비참)하니라
거유(巨有)라 함은
두터운 덕을 부여받아서
좋은 자리에 앉으며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보화를 쌓아두고 사나니
근심도 끊어지고
비참함도 막게 되느니라
사람이 지혜를 얻고, 선을 행하여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는 유일한 비결은
노력 이전에 은혜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절대로 노력이 먼저가 아니다.
노력을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받아서
노력을 하는 것이 하늘의 이치이다.
실제로도 다 그렇게 이루어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욕심과 무지로 인하여
이 원리를 잊어버리고 노력이 우선인줄
알고 생고생을 하는 것이 깨닫지 못한
자의 삶의 모습이다.
하늘은 먼저 은혜부터 내린다.
그런데 먼저 내리는 은혜가 영적인 것이다.
물질적인 것도 부모의 은혜를 통하여
주어지는 면도 있지만 노력의 요소가
크다. 무의식적으로 행해지지만 젖은
힘차게 빨아야 먹을 수 있다. 나면서부터
노력함으로 얻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주의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노력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은혜의 요소를 망각
하게 하는 위험이 있다.
태어나는 것도 그렇고, 젖을 먹는 것도
그렇다. 사실은 모든 것이 은혜와 사랑으로
거저 주어지는 생명이요, 젖이다.
그런데 힘들게 태어나고, 애써 젖을 빠는
것에 너무 비중을 두다가 보면 마치 모든
삶이 노력우선으로 여겨질 우려가 생긴다.
하지만 그것은 지혜가 깨어나지 않았을 때
감각이 체험하는 것일 뿐 실제로는 정
반대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공급하는 젖은
그야말로 은혜의 양식이요, 생명의 물줄기다.
따라서 감사함으로 받으면 자신의 노력에
의해 주어진다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하고
은혜로 거저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이 빠를 수록 그는 영적인
깨달음에 빨리 나아갈 수 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먹고 산다는 의식에
지나치게 사로잡히게 되면 그 인생이
고달파지는 것을 넘어 영적인 지혜가 막힐
위험이 크다.
하늘이 우리 사람에게 내린 보이지 않는
복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됨의 영광,
영원불멸하는 생명, 신성과 지혜 등이
먼저 주어졌다는 깨달음은 율법적 의무에
지나치게 매이지 않아야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자칫 율법적인 교훈으로 인하여 예의나
도덕, 법칙 등이 너무 지나치게 강조가
되면 그로 인한 부담 때문에 은혜의 요소가
약해질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하늘이 준 영광스러운 복과
은혜는 그만 제대로 꽃을 피울 여유가
없어진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율법의
의무 때문에 고달파 하고, 두려워하고
있는가? 그러다보니 정작 주어진 은혜는
열어볼 겨를도 없다.
진리의 깨우침을 듣고 먼저 영적 보화가
가득담긴 상자를 속히 열어야 한다.
그것이 경전의 지혜요, 계시이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보화가 얼마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지 그 감격 때문에
율법의 요구는 오히려 도전으로 여겨지고
즐거운 훈련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제대로 가닥이 잡힌다.
보화 가득한 영적인 보물상자를 연 사람은
율법이 요구하는 선과 의는 힘든 짐이
아니라 즐거움과 기쁨이 된다.
왜냐하면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예복을
입기 위해 몸이 그에 맞게 자라야 하고,
정신도 어울려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을 행하고 덕을 베풂으로 그
자질을 함양하게 되면 이미 주어진
영적인 영광이 비로소 이 땅에까지
흘러 나오게 된다.
그러한 자가 세상에서 존귀와 영광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더 고수가 있다. 그들은 누리는
것 보다 사랑을 통한 희생을 더 즐거워
하는 극히 높고 아름다운 의식을 가진
자들인데 그들은 이 세상에서 누리는
것에 대해 아무런 미련이 없다. 도리어
사랑으로 인해 당하는 수고와 고난을
더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기꺼이
그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예수가 충분히 이 땅에서 영광을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십자가의
길을 택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사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며 그를 따르기로
작정하는 동기는 바로 이것이어야 한다.
예수처럼 더 나은 것을 위하여 이 세상의
고난을 기꺼이 받고자 하는 선택이
바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의 본질이다.
[출처] 참전계경 제324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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