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309사 - 有加(유가)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21
예수는 어마어마한 독설가였다.
'비판하지 말라'고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은 비판을 넘어, 비난과 정죄
그리고 심판까지 주저없이 선언했다.
요즘 툭하면 털어 먼지 안나는 사람이
어디 있나 하면서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는 말씀을 자주 인용하는
사람들을 보는데 같은 말씀을 하신
예수가 기득권자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독설과 심판을 선언한
것은 왜 간과하는지 모르겠다.
예수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기득권자들에게 대해서는 무시무시한
심판을 선언했고, 고통당하고 착취받는
자들에 대해서는 과감한 구원을 선포
했다.
그러면 아주 쉽고 간단하지 않은가?
나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면 답이
나온다. 욕을 먹을 자리인지, 아니면
위로와 긍휼을 얻을 자리인지....
변명이 필요없다.
내가 특권층에 있고, 남들보다 많은
혜택을 누리는 자리에 있다면 곧바로
예수와 적이되고, 예수는 나의 적이
될 것이다.
반대로 착취와 억압을 받는 자리에
있다면 그는 나의 친구가 될 것이며,
나를 위로하고 도와 줄 것이다.
일부러 가난하고 착취를 당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는 정직하고
참되게 살려고 하면 반드시 고통과
비난, 억압과 착취를 당하게 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누가 정직하게,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행하면서 부자가 되어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미안하지만 그는 부자가 될
수가 없을 뿐 아니라, 부자가 되어
있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가진 것을
나누기 바빠서 자기 창고에 넉넉하게
보관하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득권자들은 스스로 속이고, 남을
속이기에 바쁘다. 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잘 되었다고
자랑하고, 많이 가지고 높은 자리에
오르면 큰 일을 하고 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것이라고 떠든다.
그런데 그들의 지금 삶을 돌아보면
더 가지려고, 더 높아지려고 안달이
나 있다. 그런 자들은 예수를 이용하는
데는 탁월할지 모르나 예수를 따라가는
일은 절대로 하려하지 않는다.
아니 제일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이
예수일 것임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보자 마자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아' 혹은 '이 독사의
새끼들아'하는 무시무시한 독설이
퍼부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第 309事 報 4階 盈 3及
(보 4계 영 3급) 有加(유가)
有加者(유가자)는
加惡也(가악야)라
鰐不呑細泳(악불탄세영)하고
狼不暳殘走(랑불혜잔주)하니
惡輕則止(악경즉지)하고
惡重則行(악중즉지)하면
加惡也(가악야)니
可領其禍(가령기화)니라
유가(有加)란
악을 더하는 것이니라
악어는 작은 물고기를 삼키지 않고
이리는 연약한 짐승에게
눈길을 주지 않느니라
가벼운 악은 그치면서
큰 악은 행하여 악을 늘려가면
가히 그 재앙을 받게 되느니라
'가벼운 악은 그치면서 큰 악은 행하여
악을 더한다...'
예수가 이를 기가막힌 비유로 표현한
내용이 성경에 나온다.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마태복음 23:24)
물론 상황은 반대다.
악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선에 대한
것인데 본질적인 의미는 같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편하고 자신이
드러나는 것들은 부지런히 하고
어렵고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소홀히 했다.
이에 대해서 예수는 그런 간사한
태도를 보고 이렇게 신랄하게 비판을
한 것이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킨다'
악에 대해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사소한 악은 그치면서도 큰 악은
주저없이 행하는 것이다.
사소한 악을 그치는 이유는 위험보다
돌아올 이익이 크지 않기 때문에 모험을
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악이 싫고 나빠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악을 행함으로 돌아올
불이익과 위험이 크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악을 행함으로 얻을 이익이
크게 되면 주저없이 악을 행하며,
악에 악을 더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은 지혜가 아니라 치사함과
간교함의 극치다.
소위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을 들을
행태이다. 악어는 그래도 체면이 있는
지라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는다.
이리나 맹수들도 배가 고프지 않으면
사냥을 하지 않고, 치사하게 어리고
약한 짐승을 노리지 않는다.
그런데 악한 인간은 손쉬운 먹이를
노려 강탈하고, 강한 상대에 대해서는
비굴하게 아첨을 떨어 생명을 보존하고
자기의 유익을 취하려고 한다.
이런 짓을 한다고 해서 그들을 보고
속상할 것 없다.
왜냐하면 하늘이 주신 본성과 양심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고 정죄를 받은 것이다.
비록 외적형태는 여전히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나 이미 속은 썩었고,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악에 악을 더하는 삶을 살고, 악을
떠나기를 거부하면 자신의 본성과
양심이 날카롭게 영혼을 찌르고
몸과 정신의 생기를 서서히 거두어
갈 것이다.
[출처] 참전계경 제309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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