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306사 - (보 4계 영) 盈(영)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18
이제 4번째 계단으로 올라간다.
'갚음'에 대한 강령은 총 6개의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의 세 계단은 선과
복에 대한 내용으로 되어 있고, 뒤의
세 계단은 악과 재앙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앞의 세 계단에서는 최고의
복에서, 버금가는 복을 말한 후 계속해서
마지막 구절에 '가령기복'을 붙여
왔음을 보았다.
이제부터는 '가득참' '큼' '작음'의 세
계단을 통하여 악과 그에 대한 재앙에
대해 최상의 재앙과 큰 재앙(대화),
그리고 '가령기화'가 계속 마지막
구절에 붙게 된다.
이렇게 악과 재앙에 대해 깨우침과
교훈을 하는 이유는 선의 결핍이
악이며, 악의 반대가 선이기 때문에
대조적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악한 자를 찾아내어 벌을
주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 이러한
악에는 준엄한 벌과 재앙이 따르니
경계하여 악에서 벗어나도록 일깨우는
것이 그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 지나친 두려움에 움츠려
들지 않도록 먼저 복에 대한 교훈을
충분하게 한 후 어두운 부분인 악에
대한 공부를 시킨다.
무지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게 되면
교훈의 정신은 잊고 나타난 문자에
집착하여 오히려 생명력이 약화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충분히 앞에서 공부한 선에
대한 교훈과 실행을 통해 마음의 기초를
든든하게 다진 다음 악의 도전에 응해야
한다. 준비가 안된 자에게는 악의 도전은
두려움과 위험이지만, 잘 준비가 된
사람에게는 악은 스파링 상태가 되어
오히려 선을 강화하고 복돋우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악은 그 자체로 악이 아니라
나의 수준에 따라 악도 될 수 있고,
반대로 선과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하나님에게는
악이 존재할 수 없다.
악은 무지하고 약한 자에게만 존재하는
어떤 현상일 뿐 실체는 없다고 해야
맞다. 지혜롭고 능한 자는 악도 바꾸어
선으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느니라'
(디모데전서 4:4)
악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고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 지혜와
능력을 함양한 자는 악까지도 활용하여
선의 열매를 얻고 만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가장 대표적인
증거로 여전히 그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第 306事 報 4階 盈
(보 4계 영) 盈(영)
盈十數也(영십수야)라
窮惡盈九(궁악영구)니
惡於當世(악어당세)하고
極惡盈十(극악영십)이니
亦惡於前世也(역악어전세야)라
惡盈無餘(악영무여)하면
可領上禍(가령상화)니라
영(盈)이란
10수를 말함이라
악은 다하면 9수에 차게 되니
이는 당세에서의 악함이나
악이 극에 달하면 10수에 차니
역시 전세의 있어서의 악이니라
악이 가득하면 여지가 없으니
가장 큰 재앙을 당하게 되느니라
천부경의 '一積十鉅(일적십거)''를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 등장한다.
10수는 가득찬 수를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가 현세에게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수는 9다.
'大三合六生七八九'에서 나타나듯이
현상세계의 최고 수는 '9'다.
왜 9를 최고 높은 수라고 정하는가
하면 우리의 경험세상, 즉 물질세상은
상대적인 세상이기 때문에 그 무엇도
절대화 시킬 수 없다.
따라서 절대적인 수 10은 현상세계에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9수는 그래도 여지가 하나 남아 있다.
아무리 악해도 의식이 있는 한 하늘의
지혜와 깨우침을 받아들여 변화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선하다 해도 여지가
남아있는 것이 더 나은 선으로 나아가야
하고, 방심하면 1의 여지가 이제껏
쌓아온 선을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에
경계하고 조심할 것을 교훈하는 것이다.
그런데 악이 극에 달하면 10수에 찬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전세'의 악이라
한다.
여기서 '前世'는 언제를 말할까?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은 '부모세대'가
될 수 있겠으나 이어 나오는 가르침을
보면 이에 대한 설명이 따로 나오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전세'는 '전생'을
말하든지, 아니면 근원으로 풀 수 밖에 없다.
윤회 전생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거나
이교의 가르침이라고 틀린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스스로 판단할 문제이고
경전을 객관적으로 풀려고 하면 그런
생각까지도 내려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진리를 자신의 잣대로 재단
하게 되는 오류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이미 진리의 품에서 이탈한 것이 되고
만다.
윤회 전생에 대한 교리는 상당히 어려운
교리에 속한다. 기독교의 예정교리와 같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 자칫하면 운명론이나
방심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어설픈
지식이나 호기심으로 대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충분하게 연구해 보지도 않고
맞니, 틀리니 하는 판단을 하는 것도
합당치 않다.
일단 전생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 보자.
전생에 악을 행한 자는 이생에 많은 한계와
고통을 타고 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현생의 고통이나 한계를 전생의
업임을 깨우치게 되면 속히 돌이키고
조심하여 선을 행하기를 힘써야 하는 것이
당연한 반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옛 습관을 따라
악을 계속 이어간다면 가속도가 붙어서
더 악한 자로 전락하게 된다.
그럼으로 전생의 악에 현생의 악을 더하여
10수에 이르게 되면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예수는 전생으로 이를 풀지 않고 '근원'으로
해석을 했다. 그러니까 악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대 놓고 '너희들의 아비는 마귀다'라고
하여 아예 근원이 '마귀'이기 때문에 선의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요 8:44)
가룟유다에 대해서도 예수는 대 놓고
'너희 중 한 사람은 마귀니라'(요 6:70)
이라고 선언하여 아예 소망이 없음을
증거했다.
이러한 설명은 현상을 두고 그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자칫 이를 교리화하거나 부적절한 상황에
적용하게 되면 엄청난 혼란과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모든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의 신성을 부여 받았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또 마귀를 근원으로
한 자가 있다고 하고, 근본부터 악한 자가
있다고 하니 서로 모순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혼동은 진리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에서 나오는 것일 뿐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을 제한된 인간의
언어와 논리로 다 설명을 할 수 있겠는가?
일단 이해가 잘 안되면 유보를 하고
주시는 메시지, 내가 받을만한 내용만
취하면 될 일이다.
[출처] 참전계경 제306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천지인 공부 > 참전계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전계경 제308사 -連續(연속) (0) | 2019.04.18 |
---|---|
참전계경 제307사 - 襲犯(습범) (0) | 2019.04.18 |
참전계경 제305사 - 欲及(욕급) (0) | 2019.04.18 |
참전계경 제304사 -不倦(불권) (0) | 2019.04.18 |
참전계경 제303사 -自修(자수) (0) | 2019.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