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279사 - 明察(명찰)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291
나라가 너무 시끄럽다.
골치가 아프고 마음 병이 생길 지경이다.
연일 터지는 뉴스거리는 이제 충격의
과정을 지나 덤덤해지기까지 하는데
이는 더 무서운 현상이다.
속으로 골병이 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칼이나 바늘에 찔리게 되면
처음 찔리는 순간에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되지만 몸에 박혀 있게 되면
점점 그 통증을 못느끼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괜찮은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멀리 외국에 나와서 그나마 충격과
분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나도 이 정도인데 매일 듣고
보고 경험하는 본국의 시민들은
어떨까 싶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무분별하게
들쑤셔 놓는 바람에 이제는 통제불능의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웬 언론사는 그렇게 많고, 또 SNS나
팟 캐스트 등 마구 폭로하고 몰아치는
무분별한 소식통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이젠 무질서, 무법 천지 세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있는데 그 확산 속도가 조류독감이나
인플루엔자 보다 더 빠르고 그 피해는
훨씬 크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
같으나 속에서는 심각한 병이 시작되었고
곧 밖으로 증상이 나타날 것은 시간문제다.
이럴 때는 차라리 무지하고 무능한 것이
나을 수 있다.
알아서 화요, 들어서 병이며, 똑똑해서
스스로를 찌르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람은 자신의 정신건강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 무방비로 눈을 열어 놓고,
귀를 열어 두며, 마음을 개방하게 되면
들어오는 불순한 정보와 쓰레기성 루머,
심지어 독이 묻어있는 기사로 인해
소중한 몸과 마음을 더럽히고 손상을 받을
위험이 크다.
왜 사람들은 옛 성현의 지혜를 내팽개쳐
버렸을까?
만일 사람들이 오늘의 참전계경의
가르침만 제대로 알고 지켜도
제 얼굴과 남의 얼굴에 침을 뱉고,
제 살과 남의 몸을 찌르며,
자기 속과 형제의 마음 속에다 더러운
오물을 쏟아 붓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第 279事 福 6門 嚴 3戶
(복 6문 엄 3호) 明察(명찰)
明察者(명찰자)는
嚴而不明囂(엄이불명효)하며
嚴而不察散(엄이불찰산)하니
是以哲人(시이철인)은
無人之囂(무인지효)하며
無人之散(무인지산)이니라
명찰(明察)이란
엄하되 시끄럽게
일을 밝히려 하지 않고
엄하되 분산되도록
일을 살피려 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깨달은 이는
남과 시끄러운 일이 없으며
남과 갈라지는 일이 없느니라
엄하다고 해서 호통을 치고 주위를
시끄럽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오해다.
위엄은 무게와 냉정함이 그 특징인데
어떻게 경박한 시끄러움과 불티 날리는
소란을 피우겠는가?
특히 사람의 인격과 국가의 중대사를
밝히고 바로잡는 일에는 더더욱 이래서는
안될 것이다.
온 나라가 촛불과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서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놓고,
언론은 언론대로 자극성 기사를 찾아
올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며,
SNS를 활용하여 마구 퍼뜨리자는 식의
경박한 태도는 온 나라를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민족혼을 수치와 자괴감으로
위축시켜 그 생명의 빛을 흐리게 할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된 이유야 기강을 세우고,
공정한 사회를 유지할 책임이 있는 자들이
이미 그 권위와 위엄을 잃어버린데 있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 맡겨 놓을 수 없어서
국민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 사태를
바로 잡겠다고 나서고 있는데 거기에는
여러가지 제한과 한계로 인하여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그나마 특검이나 헌재, 국회 등 권위를
가진 기관들이 사태를 수습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사악한 무리의
마수가 너무 깊고 광범위하게 뻗어 있는
바람에 그들 조차 휘둘리고 있는 실정이다.
심각한 중병에 걸린 환자가 있으면
의사의 수가 많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힘있는 자가 의사를 다그쳐 꼭 살려
내라고 위협을 하거나 떼거지로 몰려와서
울부짖으며 시끄럽게 기도를 한다고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말 권위와 실력이 있는 의사 몇이
진지하게 파악하고 살펴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죽을 수도 있지만 그 상황에서
최선의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성과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현재 한국의 상황은 대혼란이
증폭되고 있다. 여기저기서 큰소리로
떠든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누군가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나라를 구할 것이라는 기대도
할 수 없다.
진리의 빛이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에
비추어 한사람씩 깨어나는 길 밖에
없다. 이런 참전계경과 같은 말씀으로
자신의 상태와 태도를 돌아보고 혹시
어리석음과 욕심에 미혹되어 난리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점검하고
정신을 차리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딸로 인하여 부모와 가족들이
슬피울고 부르짖을 때에 예수는 제자 셋과
그 부모들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사람들이 울고 통곡하자 예수는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그러자 비웃음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예수는 개의치 않고 아이의 손을
잡고 위엄있는 목소리로 '아이야 일어나라'
(달리다굼)고 명령했다.
그러자 그 아이의 영혼이 돌아와 일어났다.
상처받은 민족의 혼... 거의 가사상태에까지
이르고 소생의 희망이 가물가물해져 가는
이런 상황에 모두들 야단스럽게 떠들기만
하고 있는데...
누가 나서서 이런 역사를 베풀까?
풍랑이 심하게 일어나 모든 제자들이
두려워 떨면서 '선생님 일어나소서,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하고 야단법석을
부릴 때 배의 고물에서 주무시던 예수가
일어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고 꾸짖으신 후에 바람과
바다를 또한 꾸짖으니 잠잠하게 되었는데..
누가 이런 위엄과 능력으로 우리의
혼란스러운 민족의 혼을 평안케 할까?
예수가 우리 나라에 다시 나타나서
이러실 리도 없고... 아마 예수가 오셔도
교회가 맨 먼저 나서서 죽이려고 할 것이니
이 또한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가지 기대를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의 의식이 많이 높아져서 이제는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분석하고
비판하며 돌이킬 수준이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 다수는 깨어나지 못했지만
소수라도 깨어난 자들이 있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를 받는 그들의 의식에 기대를
걸어본다.
아마 그들은 쏟아지는 폭로와 혼란스러운
정보에 파묻혀 허우적대지 않고 냉정함과
위엄을 가지고 상황을 제대로 살핀 후에
민족 혼을 어지럽히고 말살하려는 악한
세력을 향하여 단호하면서도 준엄하게
선포를 할 것이다.
'모든 악한 역사는 당장 그 준동을
멈추고 물러갈지어다'
예수가 바람과 바다를 꾸짖은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 보라. 바람과 바다가
무엇이라고 그들을 꾸짖는가?
그러나 예수는 그들을 의지체로 보았고,
자신의 말을 들을 것도 알았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지만 깨어 있는 자에게는
이러한 예수의 행동이 결코 이상하지 않다.
도리어 위엄과 능력, 지혜가 어떻게 발휘
되어야 하는지를 가장 멋있게 보여준
사례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자기 자신에게도 바로
이런 능력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고 위엄을
갖춘 후 사악한 무리들을 향하여 당당하게
외칠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같이 한 번 해보자.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로 내가 명하노니,
내 가족과 민족을 해치고 괴롭히는
악한 세력과 궤계들은 당장 물러갈지어다'
[출처] 참전계경 제279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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