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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계경 제274사 - 能忍(능인)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274사 - 能忍(능인)

柏道 2019. 4. 16. 07:20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286 
 
인내는 인간 완성의 경지이다.
(야고보서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여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사랑의 속성도 모두 참는 것
(고린도전서 13:4-7, 사랑은 오래참고..
모든 것을 참으며...모든 것을
견디느니라)이고, 믿음이나 소망도
사실은 다 인내하고 참음이
그 본질이다(히브리서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로마서 8: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예수의 아름다운 승리도 죽음과
부활을 가능케 한 인내이다.
(히브리서 12:3,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
하시더니...)
참전계경의 가르침을 통해 인내에
대한 지혜를 들어보자. 
 
第 274事 福 5門 寬 7戶
(복 5문 관 7호) 能忍(능인) 
 
忍有三(인유삼)하니
一曰因忍(일왈인인)이요
二曰强忍(이왈강인)이며
三曰能忍(삼왈능인)이라
因忍無主決(인인무주결)하고
强忍無主決而欲主決
(강인무주결이욕주결)하며
獨能忍定有主決
(독능인정유주결)하니
非寬不能(비관불능)이니라 
 
참는 것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원인이 있어 참는 것이요
둘째는, 억지로 참는 것이며
셋째는, 참을 능이 있어 참는 것이니라
원인이 있어 참는데는
스스로 주체적인 결단을 할 수 없고
억지로 참는데는
주체적 결단은 못하지만
주체적 결단을 하려는 욕망은 있으며
혼자 힘으로 참을 능이 있어 참는 것은
주체적인 결단이 서 있음으로 참는 것이니
이는 너그러움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니라 
 
참는 것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람이 참을 수 있는 근거가
어떤 것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 베드로전서
2장에 나오는 내용과 아주 맥이 통한다.
한 번 연결지어서 살펴보자.
첫째는, 원인이 있어 참는 것이다.
원인이 있다는 말은 불행이나 고통에
대한 원인을 자신이 제공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는 것을 말한다.
이를 베드로는 '죄가 있어서 매를
맞고 참는 것'으로 규정했다(20절).
아쉽게도 이런 경우에는 참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한다.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둘째로, 억지로 참는 것이다.
잘못이 없는데도 애매하게 오해를
받거나 피해를 당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복이 두렵거나, 힘이
약하여 자신의 분노를 억누르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런 경우를 '애매히 고난을
받는 경우'로 상정한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차원에서 참고
넘어가는 길을 택하는데 속에 후유증이
남는 것이 보통이다.
힘이 없어서 참거나, 복수가 두려워서,
혹은 불이익을 당할까봐 억지로 참게
되면 속이 많이 상하게 되고 병이 될
위험이 있다.
만일 이런 경우라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고 베드로는
충고한다(19절).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할 때라도 하나님의
공의를 생각함으로 참고 인내하면
울화병이 생기지 않고 오히려 좋은 인내의
훈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도 약하다.
셋째로, 참을 능이 있어서 참는 것이다.
이 말은 억누르기를 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생의 이치와 하늘의 뜻을 알고
인내의 훈련을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역량을 함양한 차원에서 취하는
적극적인 태도이다.
인생은 내가 잘한다고 다 좋은 결과가 오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한다고 풍성한 결실을
얻는 것도 아니다.  하늘도 때로는 가뭄과
홍수 등을 통하여 우리의 수고를
무산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 높은 의식을 가진 자들은
이 또한 너그러움을 받아들이고
거기서도 긍정적인 의미를 찾아낸다.
베드로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20절)고 하여
이런 경우는 오히려 축복의 기회라고
깨우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러한 훈련을 받기
위해 부르심을 입었다고까지 하며,
예수가 이런 삶의 본이라고 한다(21절).
물론 이 경지는 그야말로 죽음을 통과하는
고통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러나 지혜를 가진 자들은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이것이 바로 주체적으로 결단하는 성숙한
자의 삶의 모습이다.
사람은 자유의지로 자기가 주체가 되어서
결정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못하다.
그러나 무지하거나 연약하면 이러한
주체적 결단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지혜를 통하여 하늘의 뜻을 깨닫고
너그러움의 훈련을 하여 마음을 넓혀
놓은 자라야 그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인내할 수 있고, 하늘의 뜻에 따라 선한
결단을 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