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254사-禮貌(예모)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266
사람의 행동을 일으키는 동인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내게 된다.
외부인가? 아니면 내면인가?
외부라면 남을 의식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거나 폐를 끼치기 싫어서 일으키는
행동인데 그러한 동인에 근거하여 살면
보통 '예의가 바르다'는 칭찬을 듣게 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좋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남의 눈치와 시선을 의식하여
만들어 내는 행위에 대해서 자신의
내면이 신랄하게 비판을 해 댈 것이기
때문이다.
'너 또 마음에도 없는 말 했지?
왜 그렇게 살아? 마음에 안들면 안든다고
하고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하지 왜 그렇게
눈치를 보고 사냔 말이야'
'너 솔직히 그 사람 싫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반가운 척 했어?'
남이 아닌 자기 속사람이 이런 비판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안 그래도 이런
행동 때문에 언짢은데 자기 속사람이
비판을 해대니 기분이 매우 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남들을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는
행위의 동인이 내면에 있는 경우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내면의 소리, 그러니까 자신이 발견한
우리 속 깊은 곳에 거하시는 성령의
음성은 깊고 본질적인 지혜로 우리를
일깨운다.
사람은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소중한 존재이기에 그를 존중하는
것이 같은 형상을 부여받은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요, 궁극적으로는 그
귀한 형상을 부여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임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다.
그로부터 나오는 예의바른 행동은
멋지고 아름답고, 강한 힘을 발한다.
第 254事 福 3門 順 3戶
(복 3문 순 3호) 禮貌(예모)
動有禮貌者(동유예모자)는
順人事也(순인사야)라
人有禮貌則(인유예모즉)는
不言而可解紛(불언이가해분)하여
頑悖不敢肆(완패불감사)하고
賢良自遠至(현량자원지)니라
행동에 예의가 바른 자는
인간의 도리에 잘 순응하는 것이니라
사람이 예의가 바르면
말을 하지 않아도
분란을 해결할 수 있고
완악하고 패역한 자도 감히
방자하게 굴지 못하며
지혜롭고 선한 이들이 멀리서
찾아오게 되느니라
위선으로 꾸민 예의도 어느 정도 숙달이
되면 상당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그럼으로 많은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게 되고, 유익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당사자는 불행하다.
남들의 인정을 받을 때 잠시 기쁨을
느끼나 혼자 있게 되면 피곤함과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마치 화려한 파티복을 입고 무도회에
나가 즐기고 나서 홀로 방안으로 돌아온
후에 느끼는 허무함 같은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러나 내면에서 우러난 예의, 진리를
깨달음으로부터 나오는 예의는 그런
후유증이 없다. 일부러 과도하게 꾸미지도
않을 것이며, 파티장에서도 남들을
의식하느라고 쉴새없이 억지 웃음을
웃고, 격식을 갖추느라 온 몸을 긴장시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리 피곤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파티를 즐기는 것도
억지가 아니라 진정 사람들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남에 대한 존경과
자신에 대한 자존감의 조화를 만끽할 수
있다. 춤을 잘 추지 못하거나, 사교성이
부족한 것 등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감사한 마음, 존중하는 마음 때문에
자신도 행복하고, 그를 보는 다른 사람들도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각광을 받지 못해도 괜찮고,
사람들이 상대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없기 때문에 홀로 있어도
괜찮고, 여럿이 있어도 좋다.
이런 사람은 은근한 매력을 풍기기 때문에
영적인 시각과 의식이 열린 사람은
저절로 가까이 다가오게 되어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경험한 신비한
체험이 바로 이런 일이었다.
예전의 나는 매우 남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어렵고,
또 주위에 사람이 없으면 소외감에
쉽게 빠지곤 했다.
대학시절을 돌아보면 정말 끔찍할 정도다.
그런데 경전연구에 몰입하여 복음의 빛을
받고 내면의 진리에 눈을 뜨게 되니
엄청난 변화를 체험하게 되었다.
물론 쉽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달라지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게 되었는데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났다.
편안하게 마음을 열고 그냥 흘러가는대로
두었더니 참 좋은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왔고 따뜻함과 존중을 많이 표현해 주었다.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나를 지켜봤다면서
목적지가 가까울 때 쯤 내게 다가와 말을
건 사람도 있었고, 전혀 대화가 없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걷기만 하다가 한순간
대화가 시작되어 몇 시간을 웃고 떠들고
교제를 나눈 사람들도 여럿이다.
아일랜드에서 온 캐롤이나, 캐나다에서
온 켄, 에스토니아 소녀 브리띳따, 프랑스
할머니 쟌느, 독일 할아버지 군터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지금 생각해도 행복한 순간이요, 소중한
사람들이다. 특히 오랫동안 팀을 이루어
즐겁게 지내온 브라질 의사 이소무라씨
부자와 일본인 교사 타카에, 한국청년
예비부부 윤제와 지희, 나와 비슷한
동년배이신 김문식, 최미혜씨 부부 등은
요즘도 종종 서로 안부를 주고 받고
지내며 다시 반갑게 만날 것을
계획하고 있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존중과 예의의 힘이
그렇게 강하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체험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도가 더 높아지면 오늘 가르침에서 말씀한
일들도 일어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문제가 해결이 되고,
완악하고 패역한 자가 감히 방자하게 굴지
못하며, 지혜롭고 선량한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게 되지 않겠는가?
솔직히 매일 아침 5시 경전공부 모임에
거의 10명 정도 되는 사람이 모인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놀라울 따름이다.
[출처] 참전계경 제254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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