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244사-遠嫌(원혐)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256
지식의 시대에서 지성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한다.
한 때 영성이라는 말이 상당히 유행을 탔는데 그 애매모호함 때문에 개념부터
정립이 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신비한 것을 영성이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종교적인 것을 영성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산이나 동굴에 들어가서 참선이나 기도를 하면 영성이 높아
지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러한 현상은 여전히 성과 속, 혹은
영육이원론에 매인 의식에서 나온 분리된 생각이다.
오늘날 정보혁명, 의식혁명시대를 맞이하여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매우 높아졌다.
마침내 분리와 투쟁의 근거를 제공한 이원론을 극복하고 조화와 통일의
이원적일원론, 혹은 일원적이원론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쉽게 풀이하면 '육체는 보이는 영혼이요,
영혼은 보이지 않는 육체다'는 식의 이해이다. 따라서 영혼과 육체는 분리되어
생각될 수 없고, 둘을 나눌 수가 없다.
물론 구분은 되지만 나누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원론의 철학이나 교리는 이제 그 사명을 다하고 물러가고 있다.
수천년 인간의식을 지배해 와서 쉽게 결별하기 힘들겠지만 이제 보내야 하고
나와야 한다. 더 이상 둘로 나뉘어 싸우다가 결국 다같이 망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지식은 단순한 정보의 집합이라면, 지성은 그 정보들을 조화롭고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지식은 그 자체로 살아있지 못하나 지성은 살아있는 지식으로 진선미의
증거를 드러내는 생명성을 지닌다.
第 244事 福 2門 善 3戶
(복 2문 선 3호) 遠嫌(원혐)
遠嫌者(원혐자)는
無嫌隙也(무혐극야)라
哲人接物(철인접물)에
寧智疏短(영지소단)이언정
誠無不足(성무부족)하고
寧言訥焉(영언눌언)이언정
心無詐僞故(심무사위고)로
無嫌無隙(무혐무극)이니
不知其善者反不善
(부지기선자반불선)이니라
원혐(遠嫌)이란
싫어함에 틈을 주지 않음이라
지혜로운 이는 세상을 살 때
비록 지식은 짧고 모자라도
정성에는 부족함이 없고
비록 말은 어눌해도
마음에는 거짓과 꾸밈이 없으니
매사에 싫은 것도 없고 틈도 없느니라
이러한 선함을 알지 못하면
그것이 도리어 선하지 않음이라
마찬가지 같은 원리를 적용해 보자.
싫고 좋음의 구분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 한 때 분별을 위하여
필요하였을지는 모르지만 그 근원이 두려움에 기인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구분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지 않음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랑 안에는 '싫다'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필요에 따라 거리를 둘 뿐이다.
그리고 그 거리도 부정적인 차원, 즉 싫어서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는 차원에서 그 거리가 필요할 뿐 궁극적으로는 거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원혐' 즉 '싫어함을 멀리한다'는 말은 '싫어함으로 발생하는 틈을 없앤다'는
뜻이다. 이를 억지로 가까이 붙이는 것이 아니라 싫고 좋음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로 통일된다는 의미다.
이원론의 세상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은 미추를 구분하고, 선악, 상하, 빈부, 귀천
등을 나누지만 깨달은 자는 그러한 구분에 매이지 않는다.
배움이 짧다고 그 짦음에 대해 한탄하고 싫어하지 않고 정성으로 보완을 한다.
순수한 정성을 다하는 일에는 오히려 배움이 짧은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부족한 것을 탓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으로 인해 유리한 요소를
강화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언변이 어눌하고 말을 잘 못하면 그것 때문에 싫어함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단점으로 보이는 것이 순수함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지혜를 열고 보면 싫음도 꺼림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현실을 부정하고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라는 의미는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부족함이 있다고 그에 대해 싫음을
강화하여 틈을 더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말고, 지혜를 잘 사용하여 그 부족함이
제공하는 다른 장점과 기회를 잘 살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을 긍정할 수 있는 의식이 열리게 된다.
이러한 지혜로 모든 사람과 만물에서 선을 발견하지 못하면 바로 그것이 선하지 못한
것이라고 이 말씀이 우리를 깨우친다.
[출처] 참전계경 제244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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