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242사-慷慨(강개)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254
지금은 멋과 아름다움이 대세다.
진리를 추구하고, 선을 부르짖던시기를 지나 '미'가 진리와 선의
증거로 드러날 것이다.
어느 신학자는 '이제 아름다움이 너를 구원할거야'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꿰뚫어 보았다.
유란시아서를 보면 이런 아름다운 문구가 나온다.
'모든 진리는 선하고 아름답다.
모든 선은 참되고 아름답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참되고 선하다' 기가 막힌 표현이다.
진리가 씨앗과 싹이라면, 선은 줄기와 잎, 꽃이요
미는 최종적으로 맺히는 열매이다.
열매를 보지 못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점검을 해야 하고, 분별을 해야한다.
싹이나고 줄기가 나타나도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 심지어 꽃이 피어나도
그 나무가 진정 좋은 나무인지 모른다.
얼마든지 악한 나무도 아름다와 보이는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열매가 맺히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그 열매가 나무를 증거하기 때문이다. 진리라고 주장하면서 위선으로 꾸미고,
추하고 비겁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진리가 될 수 없다.
오늘날 정치와 종교가 보여주는 모습 속에 바로 이 위선과 추함이 가득하다.
겉치레는 화려해 보일지 모르나 속은 회칠한 무덤 같은 모습이 두드러진다.
선을 말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름다움으로 열매맺지 않으면 그것은
속이는 선이요, 거짓이다.
오늘날 자선을 외치고, 남을 돕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기를 자랑하고,
출세의 방편으로 삼는 자들이 많다.
그런 선행은 결국 추함을 남기게 된다. 아름다워 보이는 꽃잎이 땅에 떨어져
사람들의 발에 밟히니 추하기 이를데 없다. 열매는 속일 수 없다.
그리고 진정한 아름다움과 멋은 그 열매에 있다.
열매는 생명을 머금고 있을 뿐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영양을 공급한다.
第 242事 福 2門 善 1戶
(복 2문 선 1호) 慷慨(강개)
慷慨者(강개자)는
善之義也(선지의야)라
瀑布之湍落地便流
(폭포지단낙지편류)하고
百鍊之鐵臨物便切
(백련지철임물편절)니라
其尙且快(기상차쾌)하나
人所不快不擇(인소불쾌불택)은
在己利害(재기이해)니라
강개(慷慨)란
선의 의로움이라
폭포의 급류가
땅에 떨어지면 쉽게 흐르고
백번 단련된 쇠는
물건에 대면 쉽게 자르느니라
이렇게 멋지고 통쾌함을
사람이 불쾌히 여겨
택하지 아니함은
자기의 이해관계 때문이니라
착하다는 것이 부드럽고 따뜻함만 가지는 것은 아니다.
비분강개한다는 말처럼 불의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단호하게 내치는 것도
선의 얼굴이다.
바로 이를 선의 의로움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의가 나타나면 멋과 아름다움이
그 찬란한 빛을 발한다. 그를 보는 자들로 하여금 상쾌하고 통쾌함까지 제공한다.
폭포수가 높은 절벽에서 떨어져 힘차게 흐르고, 잘 단련된 칼이 시원하게 물건을 자르듯
불의에 대해 단호하게 항거하고 의를 세우는 모습은 선이 가진 멋지고 시원한 속성이다.
이러한 시원하고 통쾌한 모습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높은 폭포에서 물이 떨어져야 하고, 백번을 풀무불에 단련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많은 시험과 유혹을 겪고 이겨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만큼 우리의 속을 시원하게 하는 이야기도 드물다.
그러나 다윗이 그러한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그 의식 속에 하나님에 대한 강한 사랑과 믿음을 키워야 했고, 그리고 그 사랑의 증거를 양들을 치면서 사자와 곰과 싸워 구하는 경험들을
해야만 했다.
단순한 의식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힘과 용맹만으로도 안된다.
폭포와 같은 용맹과 함께 풀무불의 믿음의 연단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럴 때 그는 두려움이나 비웃음등을 모두 극복하고 위대한 승리를 이루어 내었다.
지금 한국에서는 처벌을 받고 싶지 않고, 감옥에 가지 않으려고 온갖 추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자들이 있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 나라를 다스리던 자가 얄팍한 속임수와 버티기로 자기에게
돌아올 책임과 벌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하고 있고, 한 때 천재로 불리며,
부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들이 온 국민이 보고 있는 가운데서 치졸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과 변명으로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식들과 온 주위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저들에게서는 그 어떤 멋과 통쾌함, 아름다움도 볼 수 없다.
정말 치사하고 더러울 정도로 비굴하게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데 가련하기까지
할 정도이다.
천륜과 도덕을 내팽개치고 오직 눈 앞에 보이는 이익만 추구함으로 온 국민이 지금
하늘 앞에, 그리고 세계인들의 눈 앞에서 수치와 조롱을 당하고 있다.
불의 앞에 추호의 흔들림 없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리던 우리의 조상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분들이 지하에서 지금 우리 후손들의 상황을 보고 피눈물을 흘리실 것 같다.
어떻게 세우고, 어떻게 지켜온 나라인데 어쩜 이토록 수치스러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누가 이 치욕에서 우리 민족을 건져낼 것인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다시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경전으로 돌아와 잃어버린
하나님과 진리를 되찾아야 한다.
[출처] 참전계경 제242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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