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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239사-自謙(자겸)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239사-自謙(자겸)

柏道 2019. 4. 13. 12:45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251  
 
도교 사상의 핵심은 '무위자연'이다.
억지로 꾸미거나 만들려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선과 지혜를 참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말이 아니다. 원리와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저절로 숙이듯이
사람도 도가 깊어 성숙해지면
모든 선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성숙에 이르지 못한 자가
남들에게 보일양으로 '그런척 꾸미는 것'이
바로 '작위'가 되고 '위선'이 된다.
모든 악과 추함, 불의는 바로 이 위선에서
나오게 되는데 예수도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위선과 외식에 대해 아주
심각하게 비판했다.
자신이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드러내어야 거기서부터
변화와 성숙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데
거짓으로 자신을 감추고 아는 척, 강한
척하니 갈수록 더 추해지고 악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도 스스로 의롭다고 하고,
잘난체 하는 자들에 대해서 단호하게 거부하고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세리나 창기,
죄인들을 오히려 더 높이 평가한 것이다.
진리는 스스로 안다고 여기고 높다고
자랑하는 자와는 함께 하지 않는다.
 
第 239事 福 1門 仁 6戶
(복 1문 인 6호) 自謙(자겸) 
 
自謙者(자겸자)는
雖有才德(수유재덕)이나
不自長也(부자장야)라
衆人有微才薄德
(중인유미재박덕)하나
自色焉唆揚焉(자색언사양언)하여
惟恐單晷不徹宇內
(유공단귀불철우내)니라
健者之才潛而不泳
(건자지재잠이불영)하며
健者之德熱而不炎
(건자지덕열이불염)이니라 
 
자겸(自謙)이란
비록 재주와 덕이 있어도
스스로 장점을 드러내지 않음이라
뭇사람은 적은 재주와
얄팍한 덕만 있어도 얼굴에 나타내며
입으로 드러내어
잠시라도 세상이 몰라줄까
두려워 하느니라
그러나 군자의 재주는
물에 잠겨있어도 허우적거리지 않고
군자의 덕은 뜨거운 열은 있어도
불꽃이 보이지 아니함 같으니라 
 
사람이 스스로를 낮추어 겸손하기 위해서는
일단 높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
낮은 자는 내려갈 데가 없으니 겸손할
기회가 아예 주어지지 않는다.
낮은 위치에 있으면 자신의 부족함이나
낮음을 말해도 사실일 뿐 겸손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겸손에 대한 가르침은 낮은데
있는 사람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높은 위치에 있어야 자신을 낮추는 만큼
덕이되고 빛이난다.
그리고 그 높은 위치는 어정쩡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어정쩡한 위치에
있다보면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이
그대로 있게 때문에 모든 것이 올라가는
것을 위한 수단과 도구가 된다.
그러니까 어정쩡한 사람의 겸손은
결국은 더 올라가기 위한 수단이 될
뿐이기에 진정한 겸손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 마음에는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존경을
바라는 욕심이 자리잡고 있기에 아무리
겸손한척 해도 참된 겸손이 아니다. 
따라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정해야
한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간 사람,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는 사람은 어렵지
않게 내려올 수 있다.
그리고 내려오는 것이 계산이 들어가지
않는다. 거짓 겸손을 부릴 필요도 없고,
무언가 올라가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필요도 없다.
최고로 올라갔으니 내려가는 것이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재미있게 된다.
또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 보았으니
미련도 없고, 기꺼이 내려가는 길을
택하니 빼앗길 두려움도 없다.
자기가 자발적으로 내어 놓는데 빼앗기는
것이 무엇이 두렵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위치가 어정쩡하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최고로 올라갔다고 생각하지
않고, 동시에 아무도 자신이 제일 밑바닥에
처하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얄팍한 덕만 있어도 자랑하려
하고, 조그만 재주만 있어도 그것으로
가지고 자기를 드러내려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교훈은 아무에게도 적용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사람이 자신의 위치와 상태를 자신의 
느낌이나 세상의 평가에 두게 되면 항상
부족함과 결핍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진리의 선언에 자신의 위치를 두게
되면 완전히 상황이 달라진다.
물론 단순한 이해나 선언으로 순식간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속적인 의식훈련과
믿음의 성장이 필요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답은 거기에 있다.
아주 간단하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요, 영광스러우며
최고 높은 자리에 앉힌 바 된 자라는 의식을
고양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진리는 이것을 선언한다. 성경도 그렇고
특히 천부경에서는 우리의 근원이 하나님이요
우리 인간은 하늘과 땅과 마찬가지로
한 근원, 즉 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존재임을
강력하게 증거한다.
이 진리의 선언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의식의 훈련을 통하여 굳게 자리를 잡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확신의 수준에 이르게 되면
경전의 가르침대로 겸손의 미덕을 나타내게
되어 있다.
일부러 겸손하려고 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겸손이 이루어지며, 아무리 숨기려 해도
빛이 나게 되어 있다.
불꽃이 없어도 열을 내고, 물 속에 있으면서도
일부러 표를 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