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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214사-必圖(필도)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214사-必圖(필도)

柏道 2019. 4. 9. 15:41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226  
 
모든 악의 근원은 두려움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무지에서 나온다.
또 두려움은 약함의 증거이기도 하다. 따라서 무지한 자는 두려움에 빠지고,
두려워하는 자는 그 태생적 약함 때문에 반드시 집착과 욕심을 부리게 되어 있다.
외형적으로 강한 형태를 띠고, 폭력을 행사한다고 그것을 강한 것으로 보면
그 또한 두려움에 매여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알지 못함을 증거한다.
대개 두려움이 발휘하는 에너지를 보면 한번에 모아서 쏟아내는 종류이다.
화를 내거나, 남을 때리거나 도구를 사용하여 해치거나 죽이는 행위 모두가

일시적인 에너지의 집중발현이다.
도망을 치거나 숨거나, 거짓으로 숨기거나 하는 도피반응도 마찬가지다.
순간적 에너지를 모아서 발휘한다. 그렇게 함으로 자신이 두려워하는
대상이나 현상을 속히 눈 앞에서 제거하거나 피해 버리려고 하는
하나의 방어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무엇도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여 죽였다. 그 행위는 대상을 제거하여 눈 앞에
보이지 않게 하고, 자신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경쟁의 대상을 없애는
행위였다.
일단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계산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어리석게 인간의 생명이 육신에 국한된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세기 4:10)
죽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저가 죽었으니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브리서 11:4)
마찬가지로 죽지 않았으며 더 강한 힘으로 하나님께 호소하며, 땅에게
증거한다고 한다.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육신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는
생각 자체가 무지한 것이고, 그것이 두려움을 낳고 비굴함과 악함, 그리고
죄를 짓게 한다.
무지의 어둠이 진리의 빛에 의해 물러가지 않는 한 그 어떤 가르침도
의미가 없다. 두려움에 입각한 꾀만 늘게 만든다. 
 
第 214事 禍 4條 傷 5目
(화 4조 상 5목)  必圖(필도) 
 
必圖者(필도자)는
刻意圖之也(각의도지야)라
於誠有必守(어성유필수)하고
於信有必踐(어신유필천)하며
於愛有必恕(어애유필서)하고
於濟有必智(어제유필지)하니
此人之天性也(차인지천성야)라
反此於黴嫌(반차어미혐)에
有必圖傷人之心
(유필도상인지심)하여
覓謀尋險(멱모심험)하여
不傷不忘(불상불망)하니
天性滅矣(천성멸의)라
開戶視之黑雲滿天
(개호시지흑운만천)이니라 
 
필도(必圖)란
남을 해치려는 의도를
마음에 새겨둠을 말하느니라
정성에는 반드시 수칙이 있고
믿음에는 반드시 실천이 있으며
사랑에는 반드시 용서가 있고
구제에는 반드시 지혜가 있으니
이는 사람에게 있는 하늘의 본성이라
이와 반대로 조그마한 의심에도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
꾀와 음흉함으로 해칠 기회를
엿본다면 결국 해치지도 못하고
그런 마음을 버리지도 못하니
하늘이 준 본성이 소멸되고 마느니라
이는 문을 열고 보매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함과 같으니라 
 
남을 의심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품는 그 자체가 두려움의 증거이다.
따라서 그 자체에 대한 분석과 처리로 들어가야지 그러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을
억눌러 보아야 소용이 없다. 진리는 근원적인 해결을 시도하지 임시방편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리를 만나는 것이 괴롭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답이 없기 때문에 다른 길을 찾으면 그만큼 시간과 에너지 낭비가 된다.
여기서 다시금 정성과 믿음, 사랑, 구제의 4가지 강령이 등장하는 것은 이것들이
근원적인 해결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진리이며, 진리의 증거들이다. 정성에는 지킬 수칙이 있고, 믿음에는 실천이 따르며,
사랑에는 용서가 있고, 구제에는 지혜가 있는데 바로 이것이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준 천성이다.
그런데 의심이나 미움, 해치려는 마음, 음흉한 꾀, 악한 의도 등은 그 천성을 깨닫지 못한 무지와 두려움의 소산들이다. 이러한 두려움에 매여서 그 마음에 악을 계속 품고 있게 되면 에너지는
점점 약해지게 된다. 분노로 일시 힘을 모아 행사하지 못하고 속으로 품고 있게 되면 그나마 에너지가 분산되어 실행도 못하고, 그 마음도 버리지 못하게 된다.
'두고보자... 언젠가는 반드시 복수하리라' 는 식의 각오는 갈수록 약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두고보자는 사람은 사람을 해칠 수 없다. 악함이 응집되어 순간 상해를 하는 자는 몸을 해칠 위험이 있지만 그 또한 정신이나 영혼까지 해칠 수는 없다.
따라서 그러한 자도 사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가장 불쌍하고 비참한 것은 이러한 악한 마음을 계속 품고 있게 되면 그나마 남아있던
생명에너지 마저도 신속하게 고갈되며, 희미한 빛이라도 밝히던 하늘의 지혜는
오래지 않아 완전 소멸해 버린다.
그렇게 되면 그의 생각과 마음, 영혼은 온통 어두움으로 뒤덮이게 되고 살아 있어도
산것이 아니며, 죽은 후에도 어두움을 고통속에서 헤매게 된다.
이러한 자들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은 진리의 빛으로 그 안에 심겨져 있는 신성을
일깨우는 일이다. 그를 위해서 눈을 밝히 뜬 지혜롭고 강한 자들이 정성의 수칙과
믿음의 실천, 사랑의 용서, 그리고 구제의 지혜를 발휘해야 그나마 그에게 구원의
소망이 있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깨달음이 어디서 오겠는가? 진리와 선조의 지혜가 담겨있는
경전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
남의 구원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도 어렵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