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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201사-取人(취인)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201사-取人(취인)

柏道 2019. 3. 31. 22:34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213  
 


사람은 본능적으로 잘못한 것은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잘한 것은 자신의 공으로 돌리고 싶어한다.
이를 빗대어 나온 말이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탓'이란 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단순히 이를 악하고 나쁜 마음이라고 판단하고 그러면 안된다는 식의
교훈을 내리는 것은 너무 단순하고 수준이 낮다. 누누히 반복하지만 사람들은 잘잘못에 대한 판단은 누구나 잘 한다. 우리의 본성과 양심에 이런 분별기능이 장착되어 있기에 무의식 중에도
본능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타난 현상만 가지고 판단하고 경계하는 것은 효과가 거의 없다. 점점 인간의 집단의식이 성숙해져서 요즈음은 아이들 조차도 단순한 판단과 교훈을 받기를 거부한다.


왜 사람은 그토록 수치를 당하는 것을 싫어하고, 칭찬과 존경을 받고 싶어할까? 그 뿌리를 짚어보면 결코 부정적인 배경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명예심은 그 뿌리가 인간의 존엄성에 있다.
그러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명예와 영광을 받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연유든지 간에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잃었고, 그로 인해 심한 수치와 부끄러움을 체험하며 살게되었다. 그리고 본성은 어떻게든 이를 회복하고자 몸부림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문제는 그 명예와 영광이 회복의 길을 하늘이 분명하게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음과 두려움이 헛된 욕심을 일으켜 그릇된 방법을 취하려 하다가 더욱 심한 수치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명예심을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본성은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참된 회복의 길을 발견하고 그 길로 가도록 권면하고 이끄는 것이 맞다.
 
第 201事 禍 2條 奪 6目
(화 2조 탈 6목) 取人(취인) 
 
取人者(취인자)는
竊人之名也(절인지명야)라
人功爲己之功(인공위기지공)하고
人惠爲己之惠者
(인혜위기지혜자)는
非師之又非娟之
(비사지우비연지)라
乃偷利竊譽也(내투리절예야)니
虛功沒利(허공몰리)하며
虛惠無譽(허혜무예)니라 
 
'취인(取人)이란
남의 이름을 도둑질하는
것을 말하느니라
남의 공로를 자신의 공으로 삼고
남이 베푼 은혜를 자기가 베푼
것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본받을 바도 아니요
아름답지도 않느니라
이는 이익과 명예를 도둑질하는 것이니
공로가 없으니 이익이 없으며
은혜가 없으니 명예도 없느니라'
 
남의 이름을 도용하고, 그의 명예나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하는 것은 부정한 일이다.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어 보일지 모르나 결국에는 더욱 큰 수치를 맛보게 된다. 그러나 두려움과 욕심에 쫓기게 되면 멀리 내다보는 눈이 흐려져 당장 눈 앞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특히 하늘의 준엄한 공의에 대해 스스로 눈을 감고 의식을 닫음으로써 요행을 바라게 된다. 하늘의 눈을 속이고자 하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허무하고 비참하게 될 수 밖에 없다. 남의 공로와 명예를 도둑질한 이상으로 큰 수치와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 하늘의 이치다.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하는 것은 인간이 왜 명예를 추구하고, 존경을 받고자 하는지에 대해서이다


우리의 근본이 신성이요, 근원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명예와 영광을 바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어리석음이 정도를 찾지 못하고 잘못된 길을 추구함으로 더욱 추함과 수치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세상에서 보여주고 있는 두드러진 현상이다. 세계를 정복하고 높이 올라감으로 영웅이 되고자 하고, 남을 누르고 이김으로 명예를 얻는다는 생각은 이룰 수 없는 이상이요, 헛된 꿈이다. 사실 인간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이미 충분히 영광스럽고,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명예와 영광을 따로 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기독교 식으로 표현하면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명예와 영광은 회복되었다. 믿고 안믿고는 본인의 결정일 뿐이다. 복음은 이 사실을 믿고 자신의 삶에 그 회복된 명예와 영광을 적용하며 살라고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명예를 회복한 사람은 세상의 명예를 구하지 않고, 영광을 탐내지 않게 된다. 아주 당연한 이치로 세상의 명예를 탐내고 영광을 추구하는 자는 이 복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 외에 아무런 증거도 아니다.


도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사람은 한번도 영광에서 떨어진 적이 없고 그 존귀함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변함 없다는 것이 답이다. 그러니까 죄니 타락이니 하는 것은 이러한 영광을 깨닫고 발하도록 하는 배경 역할을 할 뿐 인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광스러운 존재라는 것이다.
어떤 입장을 취해도 결론은 같다. 지금 우리의 지위와 영광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겸손을 가장하여 이를 부정하고 스스로를 죄인이나 무가치한 자로 낮추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무시하는 것이요, 특히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십자가 공로를 무가치한 것으로 돌리는 가장 심각한
죄가 된다.


이 영광스러운 진리의 증거가 온 세상에 밝히 전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부와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고 사는 사람은 훌륭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미련하고 악한 자임을 증거하는 뿐이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우리는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는 명예를 지닌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더 이상 취할 것이 없는 영광을 이미 얻은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할 자들이다. 그러니 남의 이름을 도둑질하여 명예를 얻고자 하고, 이익과 영광을 가로채려 하는 짓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