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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171사- 壯健(장건)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171사- 壯健(장건)

柏道 2019. 3. 29. 00:09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183  
 


우리의 삶에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것이 절망으로 이끌까? 아니면 지혜와 진리로 이끌까? 이에 대한 답은 사람이 선택할 수 있다.
절망으로 이끈다고 믿을 수도 있고, 오히려 지혜와 진리로 이끈다고 답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 뜻대로 못하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분노와 좌절로 갈 것이다. 나아가 세상과 하늘을 원망하며 자신의 무능함에 대해 분노하고 끝없는 절망의 수렁으로 빠져들어갈 수도 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오히려 그러한 일들이 대해서 겸손하고 진지하게 높은 차원의 지혜와 하늘의 뜻을 알고자 노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 형통과 곤고를 섞어 두신다고 하는 구절이 나온다(전도서 7:14).
심지어는 완전히 불합리 한 일들도 발생한다고 한다. 의인이 화를 당하고 악인이 평안하게 장수하는 일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죄를 짓고 악을 밥먹듯이 해도 놀랍게 들키지도 않고 들켜도 벌도 안받고, 벌을 받아도 금방 나오며, 나중에 죽을 때도 고통 없이 죽는 자들이 많은 것이다.
반대로 의를 행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자들은 잊혀지고, 오해를 받으며, 심지어는 억울한 누명까지 쓰고 죽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이런 일에 대해 종교가 내리는 답은 간단하다. 불교식이면 업보라고 돌리고, 기독교에서는 최후의 심판을 내세운다.
과연 이러한 답으로 모든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될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第 171事 濟 3規 序 7模
(제 3규 서 7모) 壯健(장건) 
 
壯健者(장건자)가
遭天敗(조천패)하여
立絶地(입절지)니라
雖欲筋力井匏(수욕근력정포)라도
無繩濟之單恩(무승제지단은)이니
可警其復(가경기복)하나
不警復非恩(불경복비은)이니라 
 
장건(壯健:씩씩하고 건강함)한 자가
하늘의 은혜를 얻지 못하면
벼랑끝에 서게 되니
비록 우물물을 길어 올리려 해도
두레박 줄 구할 은혜조차 받지 못하고
깨닫고 돌이킬 수 있어도
깨닫지 못하고 은혜 아닌 것으로
돌아가느니라 
 
이상한 내용이다. 처음부터 말이 안된다.
'장건'이라는 말은 씩씩하고 건강하다는 말인데 어떻게 이를 풀이하면서
'하늘의 패배를 만나서 끊어진 땅에 서게 된다'고 하는가?
직역을 하면 이렇다.
나는 이를 좀 부드럽게 의역을 해서 '하늘의 은혜를 얻지 못하면 벼랑 끝에 서게 된다'고 번역을 했다. 분명히 이는 '장건'에 대한 의미풀이가 아니다. 그래서 곤란한 나머지 많은 번역들이
여기에다 무언가를 첨가하였다. '아무리 젊고 건강하더라도 하늘의 뜻에 따라 행하지 아니하면
하늘의 벌을 받아 곤경에 처하게 된다'는 식이다.
이렇게 풀지 않으면 말이 안된다고 판단하고 의역을 넘어 첨가를 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 첨가의역을 해도 좋은 교훈은 되니 해가 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해 버리면 경전에 대한 존중이나 권위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고, 자기 마음대로 경전의 가르침을 변경하고 해석할 위험이 있다.
정 뜻이 통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렇게라도 해야 하겠지만 섣불리 그런식으로 자기 입맛에 맞추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오늘날 성경도 풀이하는 것을 보면 너무 임의적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옮겨와서 입맛대로 풀이함으로 혼잡하게 하는 일들이 난무한다.
참전계경을 풀면서도 답답함을 넘어 분노가 일어날 때가 종종 있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너무 졸렬한 해석과 설명이 많다. 마음대로 바꾸고, 마음대로 푼다.
그러니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조롱까지 당하는 것이다.
일단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철칙이다. 마음대로 바꾸거나 적당하게 둘러대면 안된다.
만약에 정 풀기가 어려우면 그냥 두든지, 나중을 기약하면 된다.
일단 있는 그대로 한 번 해석을 해 보자. '씩씩하고 건강한 자가
하늘의 실패를 만나면 벼랑 끝에 서게 된다'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모든 씩씩하고 건강한 자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자들 중에 얼마는 이런 경우를 만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젊고 건강해도 불행한 사고나 병으로 요절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러한 경우를 꼭 그 사람의 죄나 잘못 때문에 하늘의 벌을 받았다고
하면 아주 곤란하다.
그런 해석은 모든 사람을 두려움과 불안으로 몰아가게 되어 하늘의 은혜를
왜곡하게 된다.
그냥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굳이 도덕적인 책임을 물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인격적인 신을 믿는 유신종교는 이런 경우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는 반면
인격신이 아닌 도나 법 등으로 이치를 밝히는 불교같은 무신론 종교는
이런 경우에 오히려 자유롭다.
전도서 저자가 심각한 허무와 회의 등에 빠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떻게 합리적이지 못한 일들이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지 관찰과 지혜를
발휘하면 할수록 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이다.
물론 마지막 결론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라'고 내리지만 최근
연구에 의하면 그 말은 다른 지혜자가 덧붙인 글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전도서 대부분을 기록한 저자는 12:8의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 하고 끝을 맺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시작도 이렇게 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2)
얼마나 허무하고 탄식스러웠으면 이렇게 다섯 번이나 '헛되다'고 외쳤을까?
쉽고 간단한 답에 만족하는 것은 어린아이들에게나 맞다.
인생은 그리 간단하지 않고, 쉽게 풀 수 없는 일들이 갈수록 많아진다.
공부를 할수록, 깊이 분석을 할수록 더 어려워지고 더 복잡해지는 것이
인생 뿐만 아니라 우주만물이 그렇다. 그럼 불합리하고 골치아프다고
확 내 던져 버릴 것인가?
적어도 가장 지혜로운 왕으로 손꼽히는 솔로몬(전도서의 저자)이  저렇게 허무를
느끼고, 절망까지 토로하고 있다면 오히려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도전이
되지 않을까?
도대체 하늘은 무엇이며, 하늘의 뜻과 이치는 무엇이란 말인가 하면서 더 깊이
파들어가 보고 도전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진리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반응은 바로 이런 것이라
믿는다. 솔로몬은 우리에게 도전을 한다.
자신의 지혜로 최대한 밝히려고 노력했지만 도무지 알 수 없어서 깊은
회의와 절망을 던지는 역할을 하고 바통을 넘기지만 우리 후학들에게
한 번 도전해 보라고 자극을 하는 것이다.
해 볼만 하다.
씩씩하고 건강한 자도 아무 이유없이 하늘의 은혜가 끊어져 낭패를 만나는 일이
발생한다. 물을 길어 마른 목을 축이고자 우물을 찾아도 두레박이 없는 수도 있다.
심지어 정신을 차리면 된다는 것을 알아도 정신이 도무지 차려지지 않고 실패로
끌려가는 일도 있다. 뻔히 알면서도 넘어지고, 실패한다.
안다고 그게 답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의 삶에서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당연히 답답하고 화가날만 하다.
맞다. 그래야 마땅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수는 없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그 다음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거기에도 답이 없으면 또 다음 차원으로... 그게 바로 하늘이 의도한 바일 수 있고,
영생의 본질일 수도 있다. 끊임없는 지혜의 탐구...찾을 수 없는 답을 찾아 떠나는 영적순례,
이 얼마나 멋진 인생이며 축복인가?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소리가 미친 개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