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169사-合同(합동)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181
이원론의 시공세계에 사는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어려운 선택을 요구받게 된다.
명암이나 선악과 같은 경우면 그 선택이 어렵지 않지만 우선순위의 문제에 들어서면
만만치가 않다.
오래전에 청년들을 대상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화평과 정의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답이 나뉜다.
의견을 들어보면 나름 일리는 있지만 스스로도 자신을 하지 못한다.
화평을 중시하면 정의가 세워지기 어렵고, 정의를 강조하면 화평이 깨어지기 쉽다.
성경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고 권면한다. 그러면서 만일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상당히 엄격한 경고를 한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할까?
사랑과 공의... 이 두 축 사이에서 늘 고민하며 갈등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 것이고, 용서 못할 죄인이나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공의는 어떻게 세울 수 있는가?
반대로 매사에 공정하게 한치의 불의도 없이 정의를 세워나가게 되면 그 누가
그 기준에 맞출 수 있을까?
또 그렇다고 해서 어정쩡하게 이랬다, 저랬다 하고 기준이 왔다 갔다 한다면
사랑도, 공의도 다 잃는 결과가 된다.
이에 대한 우리의 이성은 답을 주지 못한다.
예로부터 이에 대한 답으로 '집기양단' 즉 양쪽 끝을 다 잡아야 하고,
'시중' 즉 그 상황과 때에 합당한 결정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답은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받을 수 있는 답이 아니다.
외형적 답 자체가 답이 아니라 그 답을 적용하는 사람의 의식수준에 그 답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그 답의 옳고 그름은 누가 판단하나?
第 169事 濟 3規 序 6模
(제 3규 서 6모) 合同(합동)
合同者(합동자)는
擧世也(거세야)라
擧世尙德意(거세상덕의)면
無物理(무물리)요
擧世尙物理(거세상물리)면
無德意(무덕의)라
是以哲人濟人(시이철인제인)에
相德物斟時(상덕물짐시)니라
합동(合同)이란
세상을 함께 세우는 것이니라
세상을 세우는데 덕의 뜻만 숭상하면
만물의 이치가 없어지고
세상을 세우는데 만물의 이치만 숭상하면
덕의 뜻이 없어지느니라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사람을 구제할시 덕과 물질을
함께 존중하되
시기를 잘 살펴야 하느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질로만 구성된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영적인 세계만도
아니다. 보이는 물질세계와 보이지 않는 정신, 영적인 세계가 공존을 하고 있다.
따라서 물질적인 것만 추구해도 안되고, 그렇다고 영적인 것만 중시하여 물질을
무시해서도 안된다.
이 둘이 동시에 세워져야 하는데 이론적으로는 간단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함을 경험한다.
본 교훈에서도 세상을 세우는데 있어서 덕과 물질이 함께 세워져야 함을 가르친다.
지나치게 물질적이어서도 안되고, 지나치게 덕만 강조해도 안된다는 것이다.
사람을 도울 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영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해도
굶주린 사람에게는 우선 먹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먹는 것을
우선시 하는 것도 옳다고만 할 수 없다. 사람의 관심이 그쪽으로 기울게 되면
정작 중요한 영적인 진리를 깨우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때로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영적인 것을 먼저 가르쳐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결국은 삶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와 통찰력으로 시기와 상황을 잘 살펴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잘된다는 보장도 없다. 나만 잘해도 상대방의 입장이나
수준이 또 맞지 않으면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절망하거나 염려할 것 까지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시행착오를 겪게 되겠지만 균형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신중하게
최선을 다하다 보면 비록 실수가 있어도 용납할 수 있고, 책임은 져야 하지만
반드시 격려가 뒤 따를 것이기에 두려워할 것까지는 없는 것이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늘 잊지 말고 기억하고 적용해야 할 중요한 원칙은 본문의
가르침처럼 두가지 모두를 존중하면서 시기를 잘 살펴 적용하는 것이다.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도 무지와 욕심이다.
명쾌한 답은 없지만 진지하게 최선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좋은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참전계경 제169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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