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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계경 제167사- 輕重(경중)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167사- 輕重(경중)

柏道 2019. 3. 28. 14:10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179  
 


곡성이라는 영화 때문에 '뭐시 그리 중한디?'하는 말이 유행을 탔다.
정말 그렇다. 무엇이 진정 중한지도 모르면서 다들 중요하다고 하며 바쁘게들 다닌다.
현대인들의 시간 개념은 이이상 날과 시간이 아니라 분과 초 단위다. 그야말로 분초를 다툰다고 말하며 분 단위로 일과를 짜고, 일초라도 시간을 단축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정작 무엇이 바쁘고,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시간을 쪼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개념이 없다. 어느 연구에 의하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 오히려 시급한 응답을 요구하고 우리의 시간을 소모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별 중요하지도 않는 전화가 오면 만사 제쳐놓고 전화를 받아야 하고,
약속도 없이 갑자기 누군가 찾아와도 냉정하게 돌려보내지 못하고 응대를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모임이나 경조사 등으로 인해서 상당한 시간과 경비를 지출하는데
그것을 줄이기는 어렵다.
반면에 정말 중요한 일들은 뒤로 밀리면서 점점 홀대를 당한다. 왜냐하면 즉시 피해가
오거나 욕을 먹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중한 것을 경시하다가는 나중에 돌이키지 못하고 뼈아픈 후회를
하는 경우가 많다. 꾸준한 운동이나 자기 발전을 위한 투자, 가족들을 위한 시간 배려,
영적인 성숙을 위한 경전연구와 명상 등 이러한 것들은 당장은 표가 나지 않지만
경시하게 되면 점점 더 멀어지게 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심각한 댓가를

요구하게 된다.
과연 무엇이 중요하고, 경한 것인지? 참전계경의 가르침을 들어보자.
 
第 167事 濟 3規 序 3模
(제 3규 서 3모)  輕重(경중) 
 
人之困厄有重有輕
(인지곤액유중유경)이라
必欲濟之(필욕제지)는
宜知重知輕(의지중지경)이니
重固時矣(중고시의)요
輕固日矣(경고일의)니
不時不日(불시불일)이면
無重無輕(무중무경)니라 
 
사람이 당하는 곤경과 재액은 중하고 경한 것이 있느니라
반드시 구제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중함과 경함을 알아야 하느니라
중한 것은 시간을 다투고 경한 것은 날짜를 다투니 시간과 날짜를 가지고
다투지 않는 것이라면 중하다 경하다 할 것이 없느니라 
 
조금 의아한 마음이 들게 한다. 시간을 다투면 중요한 것이고,
날짜를 다투는 정도면 경한 것이라니..
이런 분류는 너무 막연하고 단편적인 나눔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러나 큰 주제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고 합당한 기준이 됨을 알 수 있다.
그 큰 주제는 '남을 구제하는 일'이다.
앞에서 말한 내용들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일인 경우다.
그럴 때는 그 기준이나 판단이 달라진다.
그런데 남에 대해서는 우리가 져야할 책임이나 베풀 수 있는 도움의 범위가
제한된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 다 짐작하고 헤아려 오랜 시간을 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성의하게 말이나 성의없는 도움을 덜렁 던지고 갈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남을 꼭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경우에 아주 효율적이고 지혜로운
기준을 제시하는데 꼭 새겨둘만하다.
중한 것은 시간을 다툰다고 한다. 이 말은 꼭 시간단위로 따지라는 말이 아니라
즉시 도움의 손을 뻗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할 수 있는한 최대한 빨리 조처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시간을 다투는 정도일 때
그것을 중한 일로 보라는 것이다.
사고가 나든지, 갑작스런 심장발작이나 뇌출혈, 혹은 위급한 재난의 상황은 모두가
시간을 다툰다. 분초를 다툰다는 말도 이 시간 안에 다 들어간다.
그런데 시간을 다투는 문제가 아니고 하루 날을 넘길 정도의 일이라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빚을 꼭 갚아야 한다든지, 며칠 내에 무엇을 처리해야 한다든지,
병원 진료가 며칠 후라든지,아픈데 오늘은 견딜만 하다든지...등등
이러한 경우에는 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나친 시간할애나 배려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할 일이 따로 없거가 지속적으로 돌보아야 할 가족이라면
꾸준하게 보살펴야겠지만 그런차원이 아니라면 공연히 그런 일에 지나치게
개입하여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과 날짜를 다투는 문제가 아니라면 아예 크다 작다를 따질 대상도
안된다. 그런 일에는 관여도 하지 말고 도우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차라리
그런 경우에는 준비하는 것이 낫고, 자기 훈련을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오지랍이 넓어서 엉뚱한 남의 일에 끼어들어 나중에
큰 손해를 보게 되는 일을 겪는데 모두 지혜와 분별력이 없어서이다.
성경에서도 남의 일에 참견함으로 공연한 곤란을 당하지 않도록 교훈한다.
마지막 구절이 재미있다.
만일에 시간과 날짜를 다투지 않는 문제라면 그것은 경중을 따질 것도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어려움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우려고 하지 말라는
의미도 들어 있다.
날을 넘어 며칠이나 일주일 등 그렇게 넘어가는 일은 끼어들지 않는 것이 좋다.
예수도 이 점을 분명히 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고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고 해서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
자신의 일이든, 남의 일이든 날을 넘길 정도면 그것은 걱정도 하지 말고,
도우려고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돕는 일을 게을리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 여유가 있으면 자신을 돌아보고
급한데도 경시되기 쉬운 명상과 경전연구, 운동, 가족과의 시간 등에 시간을 쓰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