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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116사-公頒(공반)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116사-公頒(공반)

柏道 2019. 3. 22. 07:16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128 
 


경전은 과장이 많은 듯 보인다.
너무 크고 엄청난 용어들을 마구잡이로 사용하여 우리의 마음에
오히려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툭하면 영원하다느니, 먼지 하나에 우주가 들었다느니,
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라느니,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바다로 던질 수 있다느니...
이러한 말씀들을 들으면 우리의 이성은 반사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과 이치'에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허황된 과장이요, 지나친 표현으로 인식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경전에 대해서 좋은 말들도 많지만 엉터리 같은
말들이 너무 많아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비판하고 내던지는 것은 경솔하고 교만한 짓이다.
좀 더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를 취해야 하고, 판단을 유보하고 항상 주의깊게
연구하고 기다리는 인내의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러는 가운데 소위 과학분야에서 부터 혁명적인 이론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도무지 과학에서 할 수 없는 말들이 요즈음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양자물리학은 상식과 이성을 조롱하고 속히 다음 차원으로 넘어올 것을
손짓하고 있다.
 
제 116 事  愛 3範 施 4圍
(애 3범 시 4위) 公頒(공반) 
 
公頒者(공반자)는
普施天下也(보시천하야)라
布一善(포일선)하면
天下向善(천하향선)하고
矯不善(교불선)이면
天下改過(천하개과)니라
一夫之不善(일부지불선)이면
道家之過也(도가지과야)니라 
 
'공반(公頒)이란
천하에 널리 베푸는 것이니라
선을 한번 펴면
온 세상이 선을 향하게 되고
착하지 않음을 바로 잡으면
천하가 허물을 고치게 되느니라
한 사람이 악을 행하면
도가 전체의 허물이 되느니라' 
 
공연히 선을 장려하기 위해 과장법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이겠지만 그렇게 단정하고 그 수준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자기 손해다.
자기 의식수준에서 정체되어 결코 진리가 이끄는 더 높고 위대한 차원으로
나아갈 수 없다.
누구 다른 사람이나, 이론이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교만과 어리석음이
그 길을 막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고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겸손과 열린 마음이다.
이것이 없으면 무조건 자기 손해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지에 치여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방황하며 살게 되기 때문이다.
이 가르침이 정확하다. 한 사람이 선을 베풀면 온 세상이 다 선을 향하여 방향을 조정한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는 용어가 이미 십수년 전에 나와서 보편화 되었는데
'동경에서 일으킨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뉴욕에 태풍이 되어 도달한다'는 이론이다.


현재 가진 물리학적 상식으로는 말도 안되는 소리요, 이치에 전혀 맞지 않다.
그러나 한 차원 높인 영적인 원리를 이에 적용하면 이 이론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다만 그를 확인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부정하는 것이다.
확인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이야기가 절대로 황당한 말이 아니다.
이미 고대에 이 원리를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이 선을 베풀면 온세상이 선을 향하고,
한 사람이 불의에서 돌이키면 온 세상이 바뀐다.

반대로 한 사람이 소홀하여 나태하거나 악에 빠지면 그로 인해 도를 이룬 가문, 혹은 나라와 세상이라도 능히 어둠에 물들게 할 수 있다.
단순히 각자에게 말과 행동 하나를 조심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과장된 표현으로 자극하여 동기부여를 하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엄연한 사실이며, 정확한 공식이다.
이미 서서히 그 증거들이 드러나고 있다.
온 세상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가는 지금 아주 작은 하나의 움직임, 아니 생각이
이미 온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물질세계에서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와 비교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영적인 세계에서 위의 말씀 같은 일이
정확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겠는가?
단순히 조심해라, 선을 열심히 행하라는 도전의 차원을 넘어 우주적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데

도전만 받으면 금방 그 빛은 사그라 들어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를 우주적인 이치로 깨닫고 삶에 적용하게 되면, 말 그대로 믿음대로 이루어진다.
새로운 세상은 그렇게 다가오고 실현된다.
누구 위대한 메시야가 와서 세상을 바꾸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여전히 무지에 매여 있는 증거다.


먼저 이 우주적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믿음으로 생각과 말, 행동을 일으키면 그가 바로 나라와 세상을 구하는 자가 된다.
지금 시대는 촛불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미 그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수를 가지고 변화를 일으키려는 생각은 이미 구시대적인 발상이요, 별 효력을 기대할 수 없다.
각 자가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하는데 윤리적인 선악을 점검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미 바울이 선언했듯이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 죄'다.
윤리적인 문제로 논하는 것은 인간 세상에나 통하지 우주적 원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우주에 통용되는 유일한 원리는 '믿음'의 원리다. 이 믿음이 사랑의 창고를 열고,
변화의 빛을 발한다.
그러니까 촛불을 드는 사람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은 나의 이 한 행동이
우주의 원리를 알고 그에 합당한 믿음으로 하여 능히 나라와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는가를 돌아보라는 것이다.
오늘 가르침에 의하면 바로 그 한사람의 촛불이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