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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계경 제115사-矜發(긍발)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115사-矜發(긍발)

柏道 2019. 3. 22. 07:09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127  
 


사랑은 자비요, 긍휼이다.
특히 불쌍한 자, 고통을 당하는 자를 볼 때 일어나는 본능적인 마음의 반응은
도와주고 싶고, 건져주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조건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이 일어나는 반응으로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늘의 본성이다.
두려움 때문에 일어나는 본능적 반응을 잘 관찰하고 통제하여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긍휼과 자비심의 근원을 살펴보고 그 통로를 확장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인생의 지혜요, 참된 본성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참으로 놀라운 존재다.
아무리 밉고 증오하는 원수라도 그가 고통하고 괴로와하는 것을 보게 되면 한동안은

증오심이 그를 통쾌하게 여기게 할지 모르나 곧 바뀌게 되어 있다.
무언가 보다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자비심의 발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제 115 事  愛 3範 施 3圍
(애 3범 시 3위) 矜發(긍발) 
 
矜發者(긍발자)는
慈心無親疏(자심무친소)하며
又無善惡(우무선악)하여
但見矜則發(단견긍즉발)하니
是以猛獸依人(시이맹수의인)하면
猶且救之(유차구지)니라 
 
'긍발(矜發:긍휼의 발현)이란
자비로운 마음이
친함과 친하지 않음을 가리지 않고,
또한 선과 악도 구별하지 않고
불쌍한 것을 보는 즉시
저절로 우러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맹수라 할지라도
사람에 의지하면
이를 구해주어야 하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명상을 늘 해야 한다.
생각을 멈추고, 깊은 본성을 들여다 보는 훈련을 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가 본능이라고 부르는 위험상황에서의 flee or fight (도망 혹은 투쟁) 반응도 사실은
우리의 깊은 본성이 아니다.
우리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반응을 탓할 수도 없고,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런 반응으로서는 우리의 참된 정체성을 찾을 수도 없거니와 참된 본성에서 나오는 반응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보는 눈을 길러야 하고, 실체에 가까이 들어가는 훈련을 반드시 해야 한다. 껍데기 위선을 벗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위선 안에 드러나는 두려움에 기초한 본능도 우리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하고 과감하게 그를 극복해 내어야 한다.
두려움의 반응이 일어날 때 고요하게 앉아서 의식을 가다듬고 그 두려움의 실체를 직면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고통이 오면 본능적으로 피하려는 마음이 일어나고, 수치나 어려움을 벗어버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마음은 우리를 속이는 자아요, 허상이다.
두려움을 직면하고, 고통을 지켜보게 되면 한동안은 견딜 수 없는 상황을 경험하게 되겠지만 그 기간만 넘기면 비로소 우리의 참된 본성이 활동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본성은 위대한 사랑에 근거하며, 전능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능히 두려움을 벗겨낼 수 있다.
그리고 기적같은 행동을 일으키는데 자기의 목숨을 내어 놓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사랑의 희생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너무 힘들어서 아예 시도도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식은 가지고 있어야 하며, 조금씩이라도 도전을 하고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는 가운데 앞선 자들, 성숙한 자들이 참된 본성에서 나오는 사랑의 능력을
발휘하는 사례들이 점점 많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를 볼 때 서서히 내 안에 있는 사랑의 본성도 깨어나게 되고, 어느 시점에 이르면
내게서도 그런 증거들이 나오게 될 것이다.
지금 인류가 바로 이 시점에 와 있다.
나라와 세계적인 대혼란은 자기의 운명을 아는 두려움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그 힘을 다하고 지혜와 사랑의 물결이 밀려와 자신을 축출해 버릴 것을
알고 마지막으로 그 힘을 다해보는 것이다.


눈이 열린 자들은 두려움이 물러간 이후의 사랑과 긍휼의 세계를 보고 있다.
그리고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랑의 나라가 임하도록 주도권을
가지고 앞장서고 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베드로후서 3:13)


신천지 같은 사이비 교단의 새 하늘과 새 땅이 아니다.
그들의 분파적인 말과 행위는 두려움에 기초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천국을 말하고, 하늘나라를 말하지만 뿌리가 두려움에 있으면 헛 짚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