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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114사- 認懇(인간)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114사- 認懇(인간)

柏道 2019. 3. 22. 07:01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126  
 


남과 나를 나누고, 다른 것을 거부하고 비난하는 것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임을 안다.
그러면서도 두려움은 그것을 정당화하고, 더 그 벽을 높이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종교의 발생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발생했다는 것 자체로 태생적 문제가 있다.
두려움의 기원을 가진 것이 생명과 평안, 사랑으로 발전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따라서 아직 종교에 매여, 거기에 종사하고 종교의 교리를 전하는 자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인정해야 한다.


누구나 가진 두려움이기에 종교가 그들과 공감하고, 그들로 하여금 구원의 소망을 전하는

것까지는 할 수 있다.
적어도 종교의 근원이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면 이 수준 이상을 나갈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맞다.
거기에서 멈추고 스스로 생명의 길, 사랑에 근거한 우주를 관찰하고 진리를 깨닫도록

자유를 주어야 한다.
마치 부모가 어느정도 자식이 성장하면 자기의 삶을 살도록 내어 보내는 것과 같다.
그것이 사랑이고, 좋은 부모의 증거다.
어릴 때부터 끝까지 자기 곁에 두겠다며 위협과 회유로 내보내지 않고 그의 인생길을

막는다면 악한 부모로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종교여, 스스로 두려움에서 시작한 것을 알고 이제 자신의 역할을 제한하고 물러나라.
종교는 어차피 진리를 알 수 없다.


두려움이 사랑을 말할 수 없고, 증거할 수 없다.
계속 두려움으로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을 하려고 하면 사랑의 빛이 임하여
어둠을 제거해 버릴 날이 곧 임할 것이다.
어둠이 해야 하고, 할 수 밖에 없는 역할은 빛이 나타나면 얼른 사라져야 한다.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온전할 수 없다.
오직 진리와 사랑 그 자체가 구원을 선포하고, 구원을 성취한다. 
 
제 114 事  愛 3範 施 2圍
(애 3범 시 2위) 認懇(인간) 
 
認懇者(인간자)는
人之艱難(인지간난)을
認若己當也(인약기당야)라
人有急難(인유급난)이면
懇求方略(간구방략)이니
不在乎力(불재호력)이요
在乎愛人如己(재호애인여기)니라 
 
'인간(認懇)이란
다른 사람의 고통과 어려움을
내가 당한 것처럼 여기는
것을 말하느니라
남의 위급함을 보면
내일처럼 나서서 온갖 방도를
찾아 나서니
이는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남을 자기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니라' 
 
너무나 아름다운 말씀이다.
성경의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은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황금률이 이처럼 선명하게 나타나는데
내 종교의 경전이 아니고, 내가 싫어하고 거부하는 경전의 말이라고
물리치겠는가?


진리의 성령이 어떤 이해의 경계를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얼마나
편협하고 어리석은 것인지 빨리 깨달아야 한다.
이 말씀이 바로 성령의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아닌가?
하늘의 본성을 회복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말하고 있다.
당연히 남을 남으로 여기지 않고, 나 자신으로 여기며, 남이 당한 일을 나의 일로

여기게 되어 있다.
하나님 안에서 온 인류가 하나요, 한 형제임을 알기 때문에 이런 일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를 다시 율법으로 삼아 '남을 나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웃의 아픔과 어려움을 도와야 한다'는 식의 교훈으로 적용하면 다시 원위치다.
사랑을 알고, 사랑에 따라 살면 이런 일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는 의미다.
공연히 없는 것 만들어 위선을 하지 말고, 나는 왜 이런 삶이 자연스럽지 않은지를
돌아보라.


답은 간단하다. 내 안에 역사하는 주된 원리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면 억지로 행위를 꾸며 만들려고 할 것이 아니라 진리로 빛을 밝혀 내 안에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믿고 그에 집중하여 그 사랑이 자라나도록
시간을 주고 기회를 주라.
그리고 조금씩 도전을 하고 실천을 하라. 그러는 가운데 이러한 수준으로까지 성장하게
되는 것이 생명성장의 이치다.
옳다고 해서 하겠다고 마구 덤비는 것도 어리석음이요, 욕심이다.
나부터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을 나처럼 사랑할 수 있다.
나를 사랑하는 비결은 하나님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으시고 사랑하신다는 확신위에

서는 길 밖에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나를 용서하고 사랑하면 남을 나처럼 여기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