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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96사-애(愛)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96사-애(愛)

柏道 2019. 3. 20. 05:31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108 
 


11월 13일 주일 아침에  황송하게도 '사랑'에 대한 공부와 풀이의 특권이 허락되었다.
갑자기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눈에 어른 거리며 눈물이 흐른다.
참 꼴보기 싫었던 얼굴이다. 한 마디로 보기만 해도 밥맛이 떨어졌다.
몇 달전 성령의 감동으로 그 분을 위해 간절히 눈물의 기도를 드린 적은 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를 수치와 혼란으로 빠져들게 한 잘못에 대해서 자주 분노하고 미운 마음으로 그를 보았다. 지금도 잘못에 대한 관용의 마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로 한 행동에 대해서는 반드시 공의의 판결과 응분의 책임을 져야한다.
더 이상 국정운영의 동력과 주인된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였기에 마땅히 그 자리에서 속히 물러나야 한다. 그러면서도 나와 같은 한 인간, 같은 성정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그를 생각할 때 너무 불쌍하고 안됐다. 감히 일개 필부가 대통령을 보고 불쌍하다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나는 인간을 안다. 외부에서 주어지거나 획득한 지위나 권력은 남보기에는 대단한 것 같으나
홀로 자기를 대면하며 사는 인간은 그런 것들이 자기를 결코 보호할 수 없다.


대통령이든, 거지든 인간은 홀로 자신과의 독대에서 두려움과 불안, 외로움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싸움은 오히려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 대상일수록 더 힘겨운 싸움이다.
그의 인간적인 불안과 외로움, 슬픔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는 비난받아 마땅한 대통령이지만 그 또한 우리 민족이요, 우리의 누이이다.
그의 인간적 아픔과 외로움을 눈물로 함께 나누지 않고 감히 촛불을 들 수 없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버림 받음을 선포하기 전에 그 전날 밤을 새워 사울을 위해 부르짖은
후에 준엄한 심판을 선언했다.


모든 것에 앞서는 것이 긍휼이다. 오늘 아침 하염없는 눈물이 흐른다.
그의 모습 속에서 내 모습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얻었다.
우리 누이, 가련한 그녀에게도 주님의 긍휼이 임하여 위로를 받기를 기도한다.
그래야 용기를 내어서 그 자리에서 내려올 수도 있고, 징계와 형벌도 받을 수 있다.
그의 수치는 우리의 수치요, 그의 아픔은 우리 민족의 아픔이니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갈 각오를 해야 한다. 
 
제 96 事  제 3 강령 愛(애)  
 
愛者(애자)는
慈心之自然(자심지자연)이요
仁性之本質(인성지본질)이니
有六範四十三圍 (유육범사십삼위)니라 
 
'사랑이란 자비로운 마음의 저절로 흘러나옴이요
어진성품의 본 바탕이니 6가지 범주 아래 43가지 울타리가
있느니라' 
 
사랑은 자비심이 그 본질이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
이것이 없으면 긍휼없는 심판을 받는다고 성경은 말한다.
긍휼을 잊는다는 것은 두려움에 굴복한 것이기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긍휼함, 자비심을
잃어서는 안된다. 이런 면에 있어서 사랑이라 하지 않고 '자비'로 표현한 불교의 지혜가
기독교 보다 낫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모든 구원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데
오랜 기독교의 역사는 자비보다 공의를 강조함으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주역이 되어 왔다.
안타깝게도 지금도 눈물어린 얼굴보다 무서운 정죄의 피켓을 드는 것이 기독교의 실상이다.
아직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야기할 수준이 못된다.


어진 본성이 사랑의 본질이라 한다. 이 점에서는 또 유교의 탁월한 통찰이  칭찬을 받을만하다.
유교는 사랑을 '어짐'으로 표현한다. 어진 마음은 너그럽고 착한 마음이다.
또 슬기롭고 바르다는 의미도 들어있다.
인간의 본성이 어질다고 본 것은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얻는 지혜이다.
인간을 불순종으로 타락한 존재로 보는 것은 그를 토대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부각하기 위함이지 인간존재를 부정하고 악하게 보라고 나온 교리가 아니다.
그런데 무지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자꾸 타락과 죄를 강조한다.
그렇게 함으로 스스로의 무능과 게으름을 감추고 모든 탓을 하나님께로 돌리며
의존적인 존재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왜곡은
더 심해지고, 인간의 존재가치는 더 추락한다.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바른 경외며,
인간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되겠는가?
사랑을 '자비'와 '어진본성'으로 본 참전계경을 통하여 참된 진리의 빛을
새롭게 볼 때가 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풀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