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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계경 제95사 -無極(무극)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95사 -無極(무극)

柏道 2019. 3. 20. 05:21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107  


마침내 제 2 강령 '신의'의 마지막 부분에 도달했다. 이는 또한 '순환'에 대한 교훈의 마무리도 된다. 큰 장을 마무리하는 부분에서 위대한 용어 '무극'을 만나게 되니 감개가 무량하다.
아마 추측컨대 이 '무극'이라는 말을 이해하기는 커녕 용어 자체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무극, 태극, 황극...이러한 용어들은 극히 오묘하고 깊은 표현들이다.
의미와 깊이를 모르게 되면 무슨 황당한 말들인가 싶을 것이고, 말장난 같이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의미와 본질을 깨닫게 되면 바로 이 속에 어머어마한 지혜와 능력, 사랑이 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막연한 하나님 개념이 오히려 더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극은 표현될 수 없는 근원을 의미한다. 시작이라고 해서도 안되고, 어떤 존재를 말해서도 안된다.


우리가 흔히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인격적 존재는 이미 무극에서 발현된 존재이기 때문에 순서적으로 뒤진다. 서양인의 의식으로는 '처음'을 규명해야 하지만 동양에서는 그 처음조차 없는 상태까지 표현해 내었다.
바로 그 상태를 '무' '공' 혹은 이렇게 '무극'이라고 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이해하려면 여기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새 수나 인격에 갇힌 하나님을 대하게 되어 우리 머리속에서 이미 왜곡이 된다. 측량불가, 언어도단, 표현불능의 위치가 하나님의 위치인데 이미 '하나' '님'이라고 해 버리니 수와 인격에 갇혀버렸다고 말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쓸지라도
참 하나님을 이해하려면 이 모든 요소가 배제된 '무극'이 가장 적합한 용어라 생각된다. 
 
信 5團 循 4部 (신 5단 순 4부)
제 95사 無極(무극) 
 
無極者(무극자)는
周而復始之元氣也
(주이부시지원기야)라
如有止息(여유지식)이면
天理乃滅(천리내멸)이니
人之養信(인지양신)도
亦如無極元氣(역여무극원기)라
斷若容髮(단약용발)이면
人道廢焉(인도폐언)이니라 
 
'무극(無極)이란 두루 돌아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원기를 말하느니라
만일 잠시라도 그치게 되면 하늘의 이치가 소멸하고 마느니라
사람이 믿음을 함양하는 일도 마찬가지 무극의 원기와 같아서 만일 털끝만큼이라도 그치게 되면
사람의 도리가 무너지고 마느니라' 
 
원기는 근원적인 힘, 기운을 말한다. 사실 제대로 말하자면 '근원'이라는 표현조차 적용할 수 없는, 그리고 '기'라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 그런 상태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성이 파악할 수 있도록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것이 '근원' '원기' 등의 용어다. 어쨋든 이 근원은 우리의 머리로서는
파악도 이해도 불가능하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순환의 이치를 표현하려는 것이다.
나가서 다시 돌아 처음으로 돌아오는 원기를 무극이라고 정의를 했다.
그런데 어디서 나가서 어디로 돌아가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시작과 끝을 정의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무극이다. 그러나 존재한다. 존재하기 때문에 만물이 파생했고 지금도 만물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근원으로 돌아가는 기운이지만 그렇다고 없어지거나 소멸되는 기운이 아니다.

천부경에서 '석삼극 무진본'이라고 하여 셋으로 나누어져도 본질이 그대로 남는 것처럼 무극의 본질이 그러하다. 나가서 모든 만물을 존재케 하면서도 그 본질은 다하지 않는다. 또한 다시 돌아온다고 해서 없어지는 그런 것도 아니다. 없는 속에 존재하고, 존재하는 가운데 없다.
있다,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지금 우리의 현존을 볼 때 분명한 작용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안에 있는 믿음도 같은 성질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인정하든, 않든 신의는 생명의 본질로 활동하고 있고, 만물이 그 존재를 증거하고 있다.
따라서 원기와 같이 없어지지도 않고 다하지도 않을 것이 믿음이기에 그에 대해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믿어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이렇게 무극을 말할 수 있는 자체가 두려우면서도 영광스럽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 찬양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