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유란시아서를 통해 새롭게 만난 예수-곽현영목사 본문
유란시아서를 통해 새롭게 만난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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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까지 내가 믿어 온 예수는 '구세주 예수'였다.
2.
따라서 그는 당연히 하나님이어야 했고,
죄없는 인간이어야 했다.
3.
죄가 유전으로 내려 온다고 믿어
동정녀 탄생으로 와야 했고,
4.
초자연적 기적을 자유자재로 행할 수 있어야 했다.
5.
또한 그는 초월적인 지혜와 능력,
죄인까지도 용납하는 사랑을 보여 주어야 했다.
6.
그래야 나의 구주, 세상의 구원자로 믿을 수 있었다.
7.
성경에 기록된 예수와 교회에서 가르치는 예수는
바로 이런 모든 조건에 부합했고
그렇게 그는 나의 구주가 되었다.
8.
그 후로 나는 '구주 예수'와
오랫동안 주종관계를 유지해 왔고,
늘 따르고 순종할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왔다.
9.
살아가는 동안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죄로 인한 자책이 생기면
주저없이 그가 달린 십자가 앞에 나아가
긍휼과 자비를 구했고, 눈물로 얻은 후련함은
봉사와 헌신의 다짐으로 이어졌다.
10.
때로 감격이 커지게 되면 사랑과 찬송을 올렸고,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그의 이름과 구원사역을
세상에 전하는 전도자로 나서기도 했다.
11.
그러나 늘 그에 대한 호칭은 '주님'이었고,
나 자신에 대한 의식은 '부족하고 연약한 죄인'이었다.
12.
그러니 사랑은 하면서도 늘 두렵고, 불안한 관계로 지내야 했다.
13.
특히 아무리 애를 쓰고 몸부림쳐도 습관적인 죄와 악을
도저히 벗어버릴 수 없는 나 자신을 보면서
엄청난 좌절을 맛보았고,
극심한 절망과 낙심, 자책의 깊은 수렁에 빠진
삶을 살아야 했다.
14.
그럴 때마다 용서를 구해야 했고,
십자가 앞에서 울어야 했다.
그런 일은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15.
그런데 부모도, 교회 지도자와 동료들도 보니
다 나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보다
하고 체념하기도 했다.
16.
몇 번 특별한 영적인 체험을 할 기회가 왔다.
소위 성령체험이다.
17.
그 때는 기쁨과 능력, 지혜가 왔고
담대함과 확신이 일어났다.
18.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놀랍고 엄청난 체험이었다.
19.
그러나 아쉽게도 오래가지 않았고,
얼마 못되어 다시 옛 모습이 그대로 나타났다.
20.
당황해서 다시금 그러한 체험과 능력을 구했지만
그 후로 아주 간혹 재생될 뿐
도무지 그 상태를 오래 붙들어 둘 수 없었다.
21.
한가지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존재와 영적 세계에 대한 의식이
분명해 졌다는 점, 그리고 삶의 관심과 초점이
그리로 기울어졌다는 점이다.
22.
그러나 오히려 그로 인해
더욱 심각한 고민과 갈등을 겪게 되었다.
23.
그러한 분명한 확신과 의지와는 반대로
죄의 소원과 습관이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을 보니
그 갈등과 좌절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24.
산 기도, 금식, 철야, 부흥회, 영적상담 등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 애를 써 보았지만
돌아오는 결론은 안된다는 것이다.
25.
남들을 보니 독하게 장기금식도 하고,
홀로 동굴이나 험한 산에 올라 기도도 하며,
강한 의지로 헤쳐 나가는 것 같아 보이니
좌절과 절망은 더 심해진다.
26.
고질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해결할 의지가 약한
자신을 보니 절망스러웠다.
27.
하나님은 멀리 무심한 듯 계시고,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나를 한심한 듯 바라보시며,
성령은 좀처럼 다시 찾아와서
새로운 힘과 기쁨을 주고 싶어하지 않으시는 듯 했다.
28.
만성병도 오래되면 적응을 한다고
수없는 죄와 회개의 삶,
몸부림의 노력을 반복하다 보니 그게 당연한 듯 싶었다.
29.
그래도 알고 있고 개선할 용의와 소원이 있으니
언젠가는 도움이 올 것이라 생각하고
꾸준하게 기도와 성경연구를 해 왔다.
30.
특히 목사 신분이 되고 교회를 맡아 봉사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떠밀린 일이 소위 '말씀 봉사'였다.
31.
다행히 성령체험을 하면서 성경과 깊은 인연을 맺은지라
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고 큰 즐거움과 보람이 되었다.
32.
그러나 교인들에게 더 급한 것은 현세적 문제였고,
이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33.
대부분의 교인들, 특히 이민지역의 교인들은
위로와 친목교제 이상을 바라지 않았고,
험한 세상에서의 생존과 번영이 모든 관심에 앞섰다.
당연히 이는 자식을 통한 대리성취의 형태를 띠게 되고...
34.
나름 열심히 설교하고, 성경공부를 이끌었지만
결국 그 일은 나를 위한 준비와 훈련의
기간이 되고 말았다.
35.
다행히 약 15년 정도를 매일 아침 강론과 설교,
성경공부 인도 등을 통해서
성경전체를 샅샅이 연구할 기회를 누린 것은
더 없이 큰 복이었고 행운이었다.
36.
그러는 중에 깨달음이 일어났고
그 확신은 무수한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37.
성경을 통해 확신하게 된 복음은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38.
의식을 현재에 매인상태로 두지 말고
진리와 성령의 인도로 초월해 버리게 되면
우리의 구원은 이미 완성되었다는 결론이 나왔고,
이를 삶 속에 끌어올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39.
이 때부터 애를 쓴 것이 나 자신,
그러니까 의식의 중심을 미래로 옮기는 것이었다.
40.
몸은 비록 여기에 있어도 의식을 초월상태에 두니
과거도,미래도 현재로 바뀌는 체험을 종종 할 수 있었다.
41.
그렇게 예수는 새로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고
그 때부터 십자가에 달린 예수보다
나와 함께 하늘에 앉은 예수로서 교제가 시작되었다.
42.
정죄와 심판도 다 사라지고 없고,
나의 연약과 잘못도 이젠
성화, 즉 성장과 변화의 과정일 뿐
그것에 연연하여 괴로워하고 자책하는 일도 줄어들게 되었다.
43.
또한 예수는 성령으로 내 안에 계시며
나의 일상에 동참하시는 분으로 친근해졌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뜻과 계획도
점점 확실해 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44.
그러나 여전히 예수는 나의 구주요, 주인이었으며
능력과 기적을 베푸시는 메시야의 모습으로
내 의식에 남아 있었다.
45.
동정녀 탄생, 대속적 죽음, 초자연적 기적,
육체적 부활, 재림 등의 근본교리 등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46.
돌아보니 알고 믿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배웠고, 그래야 할 것 같았으며,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니
당연히 고수해야 할 것으로 여긴 것이다.
47.
그러다가 올 초, 유란시아서를 번역하고 해설하기로
작정하게 되었는데 사실 이는
엄청난 모험이요,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48.
왜냐하면 약 15년 전, 이 책을 처음 만나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고 한 번 훑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 파격적이었다.
49.
일단 기존 교리와 모조리 상치되는 입장을 취한다.
50.
유란시아서의 예수는 삼위일체 중
제 2위 하나님도 아니요, 동정녀 탄생도,
대속적 죽음도, 육체적 부활도 다 부정하고 다른 입장을 낸다.
51.
그러니 온전한 정신으로
이 새로운 계시를 접하고 공부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52.
그러나 약 750페이지에 걸쳐 소개하는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의 내용은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자세하다.
53.
전혀 새로운 모습의 예수가 소개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강하게 끌렸다.
54.
일단 그의 가르침이 달랐고,
기적이나 초자연적 역사에 대한
그의 각오와 실행이 달랐다.
55.
무엇보다 나를 감동시킨 것은
그의 인격과 아버지에 대한 태도와 자세였다.
56.
유란시아서의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메시야 왕국이나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진입하는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57.
그가 전한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믿는 것'이요,
입성은 바로 그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58.
그러니까 하나님을 더 이상
진노하는 군주나 왕으로 대하지 않고
지극한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아버지로 믿는 순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59.
하나님이 참 아버지임을 깨닫고
부자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우선 심판과 형벌이 사라진다.
60.
그리고 진정한 경외와 함께
아버지에 대한 지식이 밝아지게 되고,
그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순수한 소원이 일어나게 된다.
61.
그럴 때 그는 아버지의 뜻이 다름 아닌
'자신의 완전함'에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르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62.
그러니까 자녀를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자신의 완전함에 이르도록 이끌고 도우시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63.
그러면 자녀들은 기쁨으로 그 길을 나서게 된다.
64.
당연히 그 길은 멀고 험하며
많은 시련과 연단, 고통이 예견된다.
그래야 성장하고 또 얻은 성과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65.
예수가 전한 진리와 그가 삶으로 보여준 일생은 모두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66.
예수는 자신을 메시야로 숭배하거나
구원자로 받들기를 원치 않았다.
67.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오해할 만한 기적이나
초자연적 역사를 최대한 행하지 않으려 했다.
68.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자신을 영웅과 메시야로 추앙하고 섬길까 우려했던 것이다.
69.
하지만 그는 원래 네바돈 우주의 창조자요,
영원한 아들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의 삶에서는
초자연적 기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70.
그러나 우려대로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삶 보다는
그런 능력과 기적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메시야와 왕으로 세우려는 유혹을 떨칠 수가 없었다.
71.
결국 그러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게 되었고
실망은 분노로, 분노는 배신과 거역으로 화하고 말았다.
72.
그러나 예수는 끝까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했고,
자신의 삶을 통해 어떻게 아버지와 교제하며,
그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지를 보여 주었다.
73.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인류의 죄를 대신하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74.
도리어 십자가를 통하여
자신이 얼마나 아버지를 사랑하며
모든 것에 순종하는지를 증거 하였고,
우리들에게 아버지는 그렇게까지 사랑하고 순종할만한
분이심을 보여준 것이다.
75.
따라서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가 받고 따를 것은
대속의 감격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다.
76.
그럴 때 우리의 삶에서도 예수가 보여주고 증거한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는 자녀의 모습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77.
예수 믿고 죄사함 받아 죽어 천국에 들어간다는 교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유효한 복음이다.
78.
하나님을 참 아버지로 알고 믿게 되면
죄, 심판, 형벌이라는 구조 자체가 무너지니
대속교리도 불필요해 지고 만다.
79.
특히 오직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고 천국간다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구원교리가 무너지게 된다.
80.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를 믿어서가 아니라
그가 가르친 '하나님은 바로 네 아버지요,
너희 모두는 형제다'는 진리를 믿음으로서이다.
81.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저절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82.
지금도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고,
이 진리를 거부하는 자들이 많다.
83.
여기에는 종교나 문화, 사상, 신분 등의 차이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84.
그 누구라도 이 간단하고 당연한 진리를
중심으로 받아 들이게 되면
그는 곧바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되고,
아버지와 생명의 교통을 시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85.
자기 종교만, 자기 교리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바로 이 '하나님의 모든 자들의 아버지 되심'을
부정하는 행위가 된다.
86.
바로 이것이 무지요, 교만이며,
어리석음이자 죄가 된다.
87.
하나님을 모든 사람의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로도 믿지 못한다.
88.
이처럼 끝까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믿지 않고
거부하게 되면 그는
진리를 거역하는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89.
바로 이런 자들이 받을 최후의 결과는 소멸이다.
90.
진리를 끝까지 거부하게 되면 마치 태어나지 않은 자처럼
그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만다.
91.
이 또한 어떤 심판이나 형벌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유로 선택한 결과일 뿐이다.
92.
예수는 자신의 가르침과 삶을 통하여
이 진리를 끊임없이 증거해 왔다.
93.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계시와 증인들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이 진리를 깨닫고
참된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94.
우리가 얻는 구원은 어떤 외적인 환경의 변화나
존재의 달라짐에 있지 않다.
95.
우리의 구원은 철저히 진리에 대한 반응이요,
믿음으로 체험되는 영적인 현상이다.
96.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믿는 수준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그 어떤 종교행위와 수고도 의미가 없어진다.
97.
아버지는 자녀에게 그런 요구를 하지 않으시며,
어떤 봉사와 희생을 원하시지도 않으신다.
98.
사랑하는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오직 한가지 뜻은
자녀들이 자신과 같이 되는 것이다.
99.
자신의 온전함에 자녀들이 이르러 그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싶어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시다.
100.
예수도, 성령도 같은 마음으로 이 아버지의 뜻이
우리에게서 성취되기를 원하시고 적극 돕고 계신다.
101.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요, 모든 사람은 형제다'
는 이 간단하고 명료한 복음을 위해서는
예수가 특별할 필요가 없다.
102.
동정녀에서 날 필요도 없고, 기적을 행해야 할 이유도 없다.
103.
십자가에 달려 대속하거나 재림할 이유도 사실은 없다.
104.
부활도 메시야의 증거로 제시될 필요도 없다.
105.
특히 자신을 믿어야 한다든지,
자신을 믿지 않고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식의 주장은
전혀 불필요하다.
106.
하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의 십자가나 부활 사건 등은 그러한 목적 외에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순종의 증거로,
또한 그의 자녀들의 합당한 태도와 운명에 대한
증거로 아름답고 귀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107.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놓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증거가 어디에 있겠는가?
108.
그런 차원에서 십자가는
우리의 삶에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며,
인간 정신의 위대함의 증거가 된다.
109.
이젠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원하시는 우리 인간 형제와 동료들을 위해
그렇게 십자가를 질 수 있으면
그것이 가장 분명한 사랑과
하나님의 자녀됨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110.
부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죽은 후 실제로 예수의 부활한 모습처럼
상물질 육체로 다시 살아나게 된다.
111.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지
무슨 특별한 보상이 아니다.
112.
예수의 가르침과 삶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각 자의 아버지 되신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기 시작하면
이미 구원은 시작된 것이요,
완성을 향해 힘찬 진보를 하게 될 것이다.
113.
예수는 바로 이런 모습을 보기를 원하신다.
누구를 힘입어 도움을 얻고,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됨을 깨달아
구원에 들어서고 완성해 나가는
자신과 같은 형제들을 찾고 기대하고 계신 것이다.
114.
그런 면에서 예수를 숭배하고, 추종하는 자들은
도리어 진리의 길을 방해하고 있다고 해야 맞다.
115.
그가 말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누가 내 모친이며 형제요 자매냐?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내 모친이요
형제요, 자매로다'
116.
예수는 숭배받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분이다.
물론 그 영광과 지위 때문에
모든 우주 만물이 찬양하고 경배하겠지만
그러한 숭배에 빠져 우쭐대는
그런 수준 낮은 분이 아니시다.
117.
그는 오직 사랑하는 우리 형제들이
속히 하나님을 아버지로 깨닫고,
그의 뜻을 따라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시고 그러한 자들을 돕기 원하신다.
118.
그래서 성령(-진리의 영)도 보내시고,
지금도 그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것이다.
119.
물론 그는 다시 오실 것이다.
그러나 고통에서 건져내고 악한 자를 심판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 아니다.
120.
도리어 사랑하는 형제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완전하심을 향해 진보하는 그 걸음을 돕고자,
또 도움이 된다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그렇게 하실 것이다.
다시오심은 바로 그 목적에 종속될 뿐이다.
뭘 더 기대하는가?
( 181006토, 푸른 오솔길 곽현영 목사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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