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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란시아서의 주제와 핵심적 개념들 본문

천지인 공부/유란시아서

□ 유란시아서의 주제와 핵심적 개념들

柏道 2019. 3. 13. 15:30


□ 유란시아서의 주제와 핵심적 개념들 

나 자신이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답을 얻기 위해서는

"신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신의 창조를 믿지 않는다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와 살아가야 할 목적을

그리고 죽음 이후 살아가게 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답을 찾을 길이 없다.

신의 창조를 믿지 않는다면 

단지 과학적으로 발견된 사실만을 의지하여

오직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어왔다.

이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언제서부터인가 그렇다고 전승되어 왔기 때문이다.

누가 처음 그런 이야기를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여러 전승들에서 신의 창조는

신과 그들의 대리자들에 의해 계시되었다고 말한다.


신이 우주를 창조하셨다면,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셨다면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어떤 활동들을 하실 것이다.

당연히 신은 창조의 결과인 인간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어야만 하고,

자신의 왜 인간과 우주를 창조했는지에 대한  

창조 목적과 계획들, 그와 관련되어

현재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사실들을

알려주고자 할 것이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신은

여러번 계시를 통해 자신이 창조주임을 계시하였다.

그런 신의 계시가 오직 단 한번 뿐이라고 단정하거나

내가 믿고 있는 종교를 통해서만

진정한 계시가 주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독선과 왜곡을 정당화 하려는 

배타적인 태도일 뿐이다.


신의 계시는 인류 문명의 진보와

시대적 필요성에 따라서 추가되어야만 하며,

사실의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서

기존 종교는 필연적으로 변화를 피할 수 없으며

새로운 종교가 태동하고 발전하리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유란시아서 역시 진보된 시대적 필요성에 의해

그러한 의도로 인간에게 전달된

다섯 번째 계시서이다.

따라서 유란시아서는 기존 종교들의 연장선에 있으며

기존에 주어진 계시들을 위에 추가되는 계시이다.

유란시아서는 기존의 종교들과 계시들을

무시하거나 그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유란시아서는

기존의 종교와 계시들의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밝히고,

오해와 왜곡을 바로잡고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는 한편,

아직 어떤 인간도 들어보지 못한

창조주와 인간 그리고 우주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소상하게 알려주고자 한다.

​유란시아서 역시 창조주가 계심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리고 그 창조주가 어떤 존재인지 보다 소상하게 설명한다.

​시공의 우주와 인간들을 창조한

창조주의 목적이 무엇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알려주고자 한다.

창조주인 하나님과 인간이 어떤 관계인지 더 자세히 밝히고자 한다.


유란시아서는 현재 모든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단순한 책은 아니다.

아직 번역도 미흡하고 독자들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을 파악하는 수준도 낮다.

그러나 유란시아서를 계속하여 읽고

새로운 우주의 물리적 사실들과 영적 사실들을 접하므로

자신의 영적 깨달음이 더욱 확장되고 높아질 것이다.


나는 유란시아서를 읽으면서 핵심적인 단어는

체험(Experience-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유란시아서 전반적인 내용에서

가장 중요하게 밝히고자 거듭 밝히고자 하는 내용은

‘ 시공의 불완전한 우주에서

체험으로 완전함에 이르는 하나님과 인간.’ 이다.


우주는 왜 창조되었는가?

인간들이 거주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왜 창조되었는가?

불완전한 시공의 세계에서 살게하기 위해서이다.

당연히 시공의 우주와 인류는 완전하게 창조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우주와 인간들은

진화하도록 창조되었다.


즉, ​인간이라는 물질 몸을 가진 존재는 

완전하신 하나님이

가장 열등한 불완전 수준과 조건들 속에서

신의 완전한 수준을 달성하기 위한

첫 번째 물질 수단으로써 창조되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체험을 위해 창조된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일체화된 존재이며,

하나님과 함께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통합된 존재이다.

단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사람들은 단지 자신이 세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인간의 삶 속에서는 우주의 심오한 섭리,

곧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에 이르는

신의 ​우주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협력하여 선을 달성하고 있다.


인간이 불완전한 조건들 속에서 신의 완전함에 이르기 위하여 

진화하고 진보하는 존재이기에,

당연히 누구도 세상에서 아무런 고통과 역경없이

아무런 진화, 진보, 발전도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의 삶은 당연히 필연적으로 어렵고 힘겹다.

그런 목적으로 창조되었다.

이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인간에게는 주어진 유일한 하나님의 명령은 이것이다.

곧, "내가 완전한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라." 는 것이다.

이 명령은 유한한 인간의 삶에서는

결코 달성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명령 속에는 인간의 생명이

결코 이 세상의 삶으로, 곧 육체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삶은 죽음 이후,

분명하게 영원한 시간 속에서

계속 이어지도록 정해져 있으며,

이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믿고 받아들일지 말지는

이제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따라서 인간은

어떤 종교적 구원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인간의 자신의 죄 때문에 심판받고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그런 대상들이 결코 아니다.

인간의 죽음은 단지 물질 육체의 삶을 종결하고,

다음 생애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혼이 몸에서 벗어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다.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 선을 행하여야 하는가?"

제자들은 예수에게 물었다. 

제자들의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종교들도 그렇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예수는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다.

"인간이 선을 행하는 이유는

그가 이미 영원히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며,

이미 여러분이 소망하는

그런 구원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라고 가르쳤다.

인간은 선도 행하고 악도 행하지만,

선을 행하는 것은

그가 이미 영원한 삶을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란시아서는

인간에게 구원을 받으라고 권하거나 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구원을 받은 영원한 존재들이므로 

그에 걸맞도록 기쁜 마음으로

더욱 선한 삶을 살라고 권고한다.

그렇다고 유란시아서가

조건없이 모든 사람들이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완전함에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인간은 반드시 영적인 목표를 의식하고

각자에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 속에서

선을 실행하면서 영적으로 진보해야 한다.

고의적으로 악을 선택하고 계속하여 죄를 고집한다면

그런 사람에게 미래는 없으며 죽음으로 소멸된다.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처럼 되버린다.


유란시아서는

그동안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사랑과 자비가 충만한 존재라고 말하면서도 

얼마나 어이없는 왜곡된 믿음과 이해를 가지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주제와 관련된 유란시아서의 내용들을

단계적으로, 개념별로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본다.

 


1. 우주의 시작-스스로 계신 이


시공의 세계가 만들어 지기 전,

​그 태초의 창조 그 이전에,

​우주에 그 어떤 실체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 때, 

신조차 존재하기 이전이라고 가정하는 그 때,

그 영원한 시간 전에 오직 무한함만이 있었다.


그 무한함 속에, 그 무한한 수준에

잠재되어 있었던 어떤 신성한 의지가 있었다.

그 의지를 절대의지라고 한다.

그 절대의지는 무한 아래의 수준에서

스스로 계신 이로 나타나셨다.

이 ​스스로 계신 이에게는

일곱 존재성이 잠재되어 있었으며, 

그 존재성은 무한 아래의 수준에서 실존적으로,

​삼위일체인-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영 하나님,

우주의 물리적 중심인 파라다이스 섬,

잠재적 신성인-신 절대자, 우주 절대자, 무제한 절대자,

이렇게 일곱 절대자로

동시에 존재화 또는 기능화되었다.

사실 이러한 설명은 최초의 과정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가정하는 것이다.

일곱 절대자 모두는 시작이 없으며 영원하다. 

실체적 구분의 시간적 의미는 전혀 없다.  

기능적으로 분화된 일곱 절대자는 궁극적으로 하나이며,

영원, 무한, 절대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한 인간에게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가능하지 않으며 지극히 제한적이다.


2. 하나님의 실체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은 우주 보편적인 영 실체를 가진

성격을 가진 분명한 하나의 영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의 영이다.

하나님은 하나의 에너지-영 실체이다.

하나님은 성격을 가진 하나의 영 실체이다.

하나님은 추상적인 어떤 공간적 영향력이거나

우주에 깃든 어떤 무형의 기운-에너지가 결코 아니다.

무한함 속에 잠재되었던 신성의 절대의지가

무한 아래 수준에서 스스로 계신 이로 나타나고 

일곱 절대자로 기능적 분리를 이루었으나

인간에게 스스로 계신 이는 우주의 아버지,

곧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하나의 신성이 일곱 절대자로 기능적으로 분리되는 것은

무한 아래 수준에서

우주 창조와 유지 관리 및 통제를 위한

필연성과 필요성에 따른 것이다.

 

일곱 절대자 중에서

우주의 아버지, 영원한 아들, 무한한 영, 세 분은

삼위일체라 불리는 한 실체로 실존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일곱 절대자에 대한 이해와 함께 매우 제한적이며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


스스로 계신 이,

곧 아버지 하나님-우주의 아버지는

모든 우주의 중심에 위치한 파라다이스 섬에 

지금 실제로 계신다.


3. 파라다이스 섬과 하보나 중앙우주

삼위일체 하나님의 실현과 함께

하나님이 계시는 파라다이스 섬과 하보나 중앙우주가

동시에 실현되었다.

파라다이스 섬과 중앙우주는 시공의 세계가 아니며,

완전한 존재들이 거주하는 완전한 세계이다.


이 완전한 세계들은

오직 현재만 존재하는 영원한 세계이다.

무한하고, 영원하고, 완전한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불가능하다.

파라다이스 섬과 하보나 중앙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부분적이며 제한적이다.

이것은 신이 계시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진화와 진보가 아직 이해가 가능한 과학적, 영적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보나 중앙우주는 10억개의 행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행성마다 독특한 환경을 지니고 있으며,

다양한 생명의 원형들이 존재한다.

이 원형들은 시공의 우주 창조에서 복사 적용된다.

우리 인간의 원형 역시 하보나의 어느 행성에 실존한다.

시공의 우주는 하보나 중앙우주의 불완전한 복제품과 같다.


모든 우주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지금 실제로 계시는 

파라다이스 섬이 있으며,

그 둘레에 하보나 중앙우주가  있다.

그리고 그 바깥 둘레를 따라 시공의 세계인 일곱 초우주가 창조 되었다.

이것이 현존하는 대우주이다.


4. 시공의 우주 창조


완전한 하나님께서 완전한 세계 안에서만 존재하신다면,

완전한 세계에서의 완전이라는 제한에 갇힌다.

완전의 상대적 개념인 불완전은 존재하지 않으며,

불완전한 세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불완전함이 없을 때 완전함은 완전함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불완전함이 있을 때 비로소 완전함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그리고 불완전한 세계로부터 완전함을 달성되었을 때

그 완전함에 비로소 절대적 가치가 부여된다.

하나님은 불완전함이 없는

오직 완전함 만으로 둘러싸인 

근원적 제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불완전한 상대적인 환경 속에서

완전함을 달성하는 체험을 직접 하시기로 결정하셨다. 

​이것이 시공의 우주와 인간이 존재하게 된 근원적 이유이다.


시공의 우주는 불완전세계에서 완전함을 달성하려는

하나님의 목적와 필요성에 따라

창조 가능한 모든 방법과 모든 유형으로 만들어졌다.

가장 완전한 영적 단계에서 부터

가장 불완전한 물질 단계에 이르기까지 창조되었다.


시공의 우주는 일곱 초우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약 7조 개의 사람 사는 행성 창조가 계획되었으며,

그 창조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아직 시공의 우주는 완성되지 않았다.


우주에서 사람이 거주하는 행성들은

유란시아-지구와 동일하지 않으며,

각 행성의 지적생명체들 역시 인간과 동일하지 않다.

우주의 모든 행성들과 필사 인간들은 독특하다.


시공의 우주는 의도적으로 불완전하게 창조되었으며,

모든 조건에서 유한하며 제한적인 세계이다.

​영원하고 완전한 세계와 달리 분명하게

가장 열악한 시작과 물리적 완성이 있다.

때문에 시공의 우주는 진화하는 공간이며,

영적인 완전함과 물리적인 완성을 향해

필연적으로 진화하고 진보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시공의 우주에서 완전함에 이르고자 하는

하나님과 인간의 일체적 체험이 이루어진다.


현재 시공의 우주는 일곱 초우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초우주들 바깥으로

제1, 2, 3, 4 외계 공간의 창조가 발표되어 있다.

현재 계획된 시공의 우주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장구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우주 계획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을 뿐이며

우주는 더 확장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5. 체험의 필연성

하나님이 불완전한 세계를 직접 체험하고

완전함에 이르기 위한 분명한 목적에 따라

불완전한 시공의 우주가 창조되었다.

때문에 하나님의 체험은 불완전 세계 속에서

완전함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모든 시간과 공간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는

필연성과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우주의 모든 행성들이 독특하며

동일하지 않은 이유이다.

우주의 모든 존재들 역시 서로 동일하지 않다.

하나님은 실존 가능한 모든 우주 조건에서

실존 가능한 모든 우주 존재의 삶을 통해

불완전함을 경험하시고

진보와 진화를 통해 완전함에 이르셔야 하기 때문이다.


시공의 우주 전체는 하나님이  체험하시는 장소이다.

시공의 인간들은 하나님이 불완전함을 체험하기 위한 수단이다.

인간의 삶은 근본적인 목적은 살아보는 것, 경험해 보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삶 속에서 경험을 통해

완전함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진화하고 진보해야 한다.

6. 진화와 진보의 필연성


불완전한 시공의 우주에서 하나님의 체험은

수직적으로 모든 시간에 걸쳐,

수평적으로 동시에 모든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체험의 수단은

모든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필사자-인간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체험이 어느 시간에 국한되거나,

어떤 공간에 국한되거나,

어떤 유형의 인간들에게만 고정된다면,

그러한 삶의 체험은

한정된 조건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체험이 가능한 경우의 모든 체험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모든 시공의 우주는 물리적으로 진화하도록 창조된다. 

​반드시 물리적 시작이 있어야 하며,

완전하게 안정된 상태까지 진화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인간과 자연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끊임없는 변화가 일어난다.

그 모든 변화하는 환경과 조건 속에서

하나님의 체험이 이루어진다.

7. 하나님의 체험 목표


하나님은 불완전한 시공의 우주에서

​인간이라는 생명 수단을 이용하여 가능한 모든 체험을 하심으로,

체험적으로 진화하며 단계별로 계획된 목표를 달성한다.

그 단계별 목표가 완성됨에 따라

최상위 하나님, 궁극위 하나님, 절대자 하나님의

실체화되는 우주현상이 나타난다.

현재 구성되고 있는 일곱 초우주에서

진화하는 모든 인간 피조물들의 체험은 최상위 하나님의

체험적 완성을 달성하며,

미래의 어느 때, 최상위 하나님이

하나의 성격 존재로서 나타날 것이다.

현재 일곱 초우주 바깥에서 창조가 시작된

제1, 2, 3, 4 외계 공간들에서의

체험적 완성으로 궁극위 하나님이

하나의 성격 존재로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인 진화의 통합으로

절대자 하나님이 실현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최상위 하나님 이후의 진화 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우주의 공식 발표는 이루어지 않았다.

 

시공의 우주에서

최상위, 긍극위, 절대자 하나님이 나타나는 과정은

현재 계획된 시공의 우주에서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각 단계별 체험을 모두 달성하셨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며,

체험하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시공의 우주 공간에서

하나님이 최상위, 긍극위, 절대자 하나님을

실체적으로 실현하려는 이유와 과정에 대해서

인간의 이해는 매우 제한적이며,

유란시아서 계시자들인 하늘 존재들 역시 제한적임을 밝힌다. 


현재 일곱 초우주 속에서 한 인간의 진화는

최상위의 실현을 위한 극히 미세한 한 부분이며

나 자신의 삶은 최상위의 실현에 직접 기여한다.

일곱 초우주는 최상위 안에서 모두 하나로 통합되고 통일된다.


8. 체험의 제한적 조건


시공의 우주에서 하나님은

모든 시공간에서 불완전함을 체험하셔야 하고

그 안에서 완전함에 이르러야 한다.

따라서 다음의 조건들에 제한을 받는다.

1.-

하나님이 불완전세계에서 완전에 이르는 체험을 하기 위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체험은 처음부터 물리적 한계와 유한함에 제한을 받는다.

완전하고 무한하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본성 그대로

물리적 제한 없이 체험하실 수는 없다.

2.-

하나님은 하나의 무한 아래 수준에서 성격을 가진 존재이시므로,

유한한 시공의 우주 속에서

성격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체험을 하셔야 한다.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체험의 결과를 얻을 수 없다.

3.-

시공의 우주가 진화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체험은 진화하는 모든 시간을 통해,

그리고 모든 공간에서 체험이 이루어져야 한다.

9. 체험의 수단


시공의 우주는 영, 상물질, 물질의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세 단계는 의도적인 행위가 없다면 서로 반응하지 않는다.

​영은 물질을 보지 못하며, 물질은 영에 반응하지 않는다.

인간이 영적 존재들을 보거나 만지거나 인식할 수 없는 이유이다.


하나님은 순수한 영이시며

동시에 물질적 존재로 계실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이 직접 물질 인간으로서

물질 세상을 살아보거나 체험하실 수 없다.


때문에 물질 세계의 제한적 조건에 적합한

체험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은 자신의 체험을 위한 직접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필사자-인간의 창조를 계획하셨다.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하나님의 체험의 목적과 계획 때문이다.


하나님은 물질 몸을 가진 지적 생명체인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격을 그 인간에게 수여하신다.

그리고 인간에게 영에 반응할 수 있는 에너지 체계인

마음-지성을 수여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신의 분신인 하나님의 영을

인간의 마음-지성에 깃들게 하신다.


그 하나님의 영을 생각조절자라고 부르며

생각조절자가 인간의 지성에 깃드는 순간에

그 사람의 혼이 태어난다.

혼은 각 사람의 영적의지의 실체이며

혼은 자신을 태어나게 만든 하나님의 영과 소통하면서

진화하는 물질 지성을 활용하여 인간의 생각 속에

선한 의지와 생각을 일으킨다.


하나님은 이렇게 각 사람의 삶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체험이 이루어지는 섭리를 확정하셨다.

나 자신의 삶은 하나님이 같이 살아가는 삶이며,

나의 체험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체험이 된다.

따라서 나 자신과 하나님은 혼을 통해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죽음 이후 나의 혼은 하나님의 영과 하나로 융합된다.


이 결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수여하신 성격을 가진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들을 가진 ‘나’ 라는

하나의 독특한 성격을 가진 우주 존재가 창조된다.

궁극적으로 나와 하나님은 하나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모든 인간들은 서로 한 형제들이다.

이것은 우주에서 가장 놀랍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섭리이다.


10. 인간의 구원


모든 우주 행성들은 필사자-인간들이 살 수 있는

최악의 환경으로 만들어 졌으며,

필사자-인간들은 우주에서 가장 열등한 물질 몸으로

사는  삶에서 출발하여

시공의 우주 안에서 더 높은 세계로 상승하는

과정들을 겪으며 진보한다.

우주는 이런 인간들의 승천을 위하여 관리되고 통제된다.

정작 인간들은 이런 자신들의 삶이 하나님의 삶이며,

그 체험의 실체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한 인간의 삶은,

나 자신의 삶은, 

물질 몸의 죽음으로 모두 종결되지 않는다.

​나 자신의 생명은 죽음으로 결코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가 태어난 행성을 출발하여,

더 높은 영적 수준으로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해야 하며.

낮은 수준의 행성에서 더 높은 수준의 행성으로 하나씩 이동하면서, 

하나님이 계시는 우주의 중심인 파라다이스까지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완전하심 처럼 완전함에 이르러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인간에게 구원이라는 종교적 개념은 무의미하다.

인간은 구원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이미 구원을 받은 존재, 영원한 삶을 사는 존재이다.

이미 영원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구원의 조건이 필요할 리 없다. 

굳이 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자면,

사람의 물질적 육체가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

그 혼이 유한한 몸을 벗어나 영원한 생존에 들어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구원은 애당초 하나님의 계획에 있는 것이며,

새삼스럽게 구원을 받으라고 외칠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을 죄인이라고 정의하고, 구원을 받으라 말하는 것은

인간에게 본래부터 주어진 우주적 목표와

영원한 생애를 산다는 사실을 종교적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인류의 과학과 지성의 발전은 인간 스스로

기존 종교의 왜곡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인간의 시야가 우주 공간으로 확대 됨으로

미신적인 우주관과 구원의 논리에서 벗어나도록 작용하고 있다.


11. 수직적 시간의 체험


인간은

하나님이 불완전한 시공의 우주를 체험하기 위한 수단으로 창조되었다.

한 인간은 가장 불완전한 물질 인간의 삶에서 시작하여

죽음 이후 혼의 생존 과정을 거쳐

가장 완전한 영 존재가 되기까지

시간적 과정인 수직적인 체험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모든 시간에 걸친

체험을 하는 방법이다.


시공의 일곱 초우주가 진화를 시작하여

아득한 미래에 빛과 생명의 시대로 완성되기 까지

하나님은 이렇게 한 사람씩 

진화하는 과정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통해 나타나는

모든 시간적 과정을 체험하시고,

최상위 하나님의 실체화를 이루신다.


12. 수평적 공간의 체험


한 인간의 진보하는 삶은

힌 단위의 시간적 체험이다.

한 존재가 가장 불완전한 수준에서 출발하여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수직적 과정의 체험이다.


동시에 시공의 우주 모든 행성 세계에 거주하는

모든 필사자들의 체험은

하나님의 공간적 체험, 수평적 체험이 된다.

수평적 체험은 동시대에

모든 행성 세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필사자들의 체험이다.

이런 사실은 모든 인류,

더 나아가 전 우주에 있는

모든 행성의 필사자들이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임을 말한다.


13. 체험의 실제적인 모습 - 생각조절자와 인간의 혼

 

어떻게 수평적이고 수직적인 모든 인간의 체험이 하나님의 체험이 되는가?.

그 원리는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단편인 하나님의 영-생각조절자가 내재하심에 있다.

하나님은 하나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무한한 단편-실체로 분리될 수 있다.

생각조절자는 이렇게 분리된 하나님이며

이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매우 제한적이다.


하나님의 영인 생각조절자가 인간의 마음 속에 깃드는 순간,

인간의 몸 속에는 그 자신의 혼이 태어난다.

이 혼은 물질이 아니다. 초물질-상물질이다.

이 혼이 진정한 영적 자아-나이다.


인간의 몸은 부모로 부터 물려 받지만,

혼은 생각조절자가 깃드심으로 태어난다.

자신의 진정한 영적 아버지, 혼의 아버지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실제로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로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저 단순히 아버지라고 부르는 관계가 아니라

실제적인 영적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은

나 자신이 하나님이 계심을 의식함으로

하나님과 내가 아버지와 그 자녀임을 확신함으로

더욱 더 넓게, 더욱 더 깊이 확장된다.


생각조절자와 혼은 서로 직접 소통하면서

인간의 영적의식과 영적의지로 작용한다.

인간의 물질 몸과 지성은 영적의식과 영적의지로

동물적인 본능들을 극복하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도무지 하나님을 발견할 가능성이 없을 것 같은 인간의 삶에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 시작된다.


한 사람의 삶은 한 생각조절자의 삶이다.

생각조절자는 하나님의 분신이며 하나님 자신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체험은 하나님의 체험이다.

나 자신의 체험은 곧 하나님의 체험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의 체험은 하나님의 체험이 된다.


이런 이해가 가능해지면 나의 삶이 더 빠르게 변하게 된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시는 것처럼 살고자 하는 의지가 생긴다.

그리고 진정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체험이 이루어 진다.

이것이 유란시아서가 모든 종교를 초월하여

인간에게 알리고자 하는 참된 종교의 모습이다.


죽음 이후 궁극적으로 인간의 혼과 생각조절자는 하나로 융합한다.

그런 결과로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성격을 얻으며,

인간의 혼은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을 얻는다.

인간의 성격을 가진 하나님의 영이라는 특별한 존재의 실현을 통해서 

인간의 삶-체험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하나님의 체험이 된다.


이렇게 모든 필사자-인간의 체험이 하나님의 체험으로 모아지고

결국 시공의 우주에서 최상위 하나님의 실현을 달성한다.

이런 우주 섭리를 이해할 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 곧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된다.

14. 인간의 기능적 수준


인간의 삶은 우주에서 가장 불완전한 상황과 조건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겨우 동물보다 조금 나은 수준일 뿐이며,

영적으로 우주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현대 인간은 그나마 진보의 과정이 누적되어 나은 편에 속한다.


따라서 인간은 불완전하고 본질적으로 악하다.

인간의 삶에서는 선한 모습보다

​악하고 죄를 지으며 불의한 모습들이 더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스러운 모습들이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처음부터 완전하거나 선하지 않았다.


기존 종교에서는

이런 인간의 불완전함과 악한 수준을 죄로 단정하고,

그로 인한 결과로 인간이 죽음을 당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죄와 악에 대해서

신의 냉정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며,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과 불안을 부추기고

신이 선별적으로 구원을 베풀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런 종교적 구원론은 우주의 진정한 사실이 아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실제적인 관계를 모르는

배타적이고 무의미한 교리적 주장일 뿐이다.

이제 인간은 유란시아서를 통해

기존 종교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참된 영적 자유를 회복해야 한다.


15. 인간의 혼


인간의 몸은 기능적으로 

우주의 수준에서 가장 낮은 지적 생명체이다.

인간의 몸은 그 수명이 길지 않다.

인간은 뛰어나지 않으며, 완벽하지 않다.

인간이 알고 있는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며,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 조차도 수준이 제각각이며 상대적이다.

또 그 길지 않은 수명으로 인해 영원한 우주를 경험할 수도 없다.


그런 제한과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마음-지성 속에 깃들고

인간의 몸 안에 혼이 태어나는 방안이 계획되었다.

인간의 육체는 물질이며 유한하고 일시적이지만,

혼은 영원히 살 수 있는 불멸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자신의 혼이

자신의 몸을 통해 세상을 체험하는 것이다.


몸의 체험은 곧 혼의 체험이며,

몸의 죽음 이후, 혼이 영원히 살면서 영원한 우주를 체험한다.

그러나 혼에 대한 분명한 사실들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인간은 자신의 혼이 본질적인

나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혼에 대한 개념조차도 희미하다. 


인간은 자신의 몸을 자신으로 여기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막연하게 영원한 삶을 꿈꾸지만

이미 자신이 영원한 삶을 살고 있는 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16. 인간의 마음-지성


인간의 마음-지성은 몸을 움직이는 감정을 동반한 지능체계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내재하는 하나님의 영과 혼과 몸을

하나로 연결하는 통신 수단이며 전달 기능이다.

인간의 지성은 하나님의 영인 생각조절자가

혼을 통하여 자신의 영적 의지를 

인간의 생각을 일으키는 도구이며 활동하는 마당이다.


인간에게 마음-지성이 없다면

인간은 하나님과의 통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존재할 가치가 없어진다.

생각조절자와 혼은 지성을 통해 영적의식을 느끼게 하며

영적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 없이 스스로 선한 일을 행할 수 없고,

스스로 선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인간의 지성은 영적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자산이다.

그러나 생각조절자는

인간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스스로 깨닫고 선택하고 실천하게 만든다.

우주 전체에서 각 존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것이 

확고한 원칙이다.

우주의 어떤 존재도 다른 존재의 자유의지를

박탈할 수 없으며 강제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자유의지 때문에 인간은 갈등한다.

스스로 인식하고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의지 때문에 선과 악 사이에서 끊임없이

성공과 실패가 반복된다.

그러나 그것은 부정적인 사실이 아니며,

한 인간이 누구의 노예가 아니라는 사실과

주체적인 존재임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인간의 종교는 한 인간을 영적 노예로 종속시키고 충성을 강요한다.

이런 모습들이야 말로 역설적으로 가장 비종교적인 모습이다.

유란시아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참된 종교를 제시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하나님의 섭리이다.


17. 인간의 존재적 가치


하나님은 인간을 완전하게 창조하지 않으셨다.

아니 인간을 완전하게 창조하는 것은 본질적 목적이 아니다.

이 우주적 사실은 기존 종교의 가르침들과 다른 것이다.

처음부터 인간은 가장 불완전한 수준에서 진화하고 진보한다.

그런 인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체험이 달성된다.

인간은 죄로 인해 죽어야 할 운명적인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에게 인간은 형편없고 가치없는 존재가 절대 아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시공의 우주에서 체험을 하기 위한

하나님의 육체적 수단이며,

하나님의 영이 성격을 얻는 방법이다.

​하나님에게 인간은 매우 소중한 존재이며,

매우 높은 영적가치가 있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완전함과 부정함을 탓하지 않으신다.

그런 속성들은 본질적인 것이며

우주가 창조되는 시점부터 필연적이었다.

기존 종교에서는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신이 준 완전함이 파괴되고 죽음이 시작되었다 말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인간은 결코 처음부터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타락하고 퇴보하는 존재는 더욱 아니다.


인간이 죄로 사망에 이른다는 종교적 가르침은 잘못이다.

인간은 아주 사소하고 미약하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분명한 선행을 실행한다.

인간에게 선을 행하려는 방향성이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모습일지라도

대단히 높은 우주적 가치가 있음을 증거한다.

18. 인간의 체험 목표


체험이란 그냥 생각없이 본능적으로 살다 죽는

동물적 삶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체험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최선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최선의 길을 선택하고,

그 최선의 방안을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에게 그 최선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삶이다.

하나님이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함에 이르는 것이다.

악한-불완전한 조건에서

선을 구별하고, 선을 선택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시공의 우주 체험의 목표는 최상위 하나님의 실현이다.

최상위 하나님은 현재 파라다이스 삼위일체 안에 잠재적으로 실존하며,

일곱 초우주가 빛과 생명의 시대로 완성되는 어느 때

하나의 성격존재로 실현되는 시공의 하나님으로 솟아오르실 것이다.


한 인간의 삶의 목표는

우주에서 체험이 가능한 가장 낮은 동물적 수준에서

가장 높은 영적수준에 이르는 과정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하나님이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함에 이르는 것이다.

우주의 실체적 모습으로는

가장 불완전한 물질 인간이 가장 수준 높은 영인 최후자가 되는 것이다.


19. 선한 체험의 가치


인간으로서 선한 삶을 사는 것은,

우주에서 가장 열등한 존재의 선한 체험이다.

똑 같은 선행이라고 가정할 때,

높은 수준에 있는 영 존재의 선한 체험과 인간의 선한 체험 중

어떤 선행이 더 가치가 있고 빛나는 삶일까?.

당연히 인간의 선한 삶이 더욱 가치가 있고 소중하다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선한 체험은

인간의 우주에서 진보하고 성장하며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선행에서

가장 가치가 높고 아름답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선행을 추구할 것이며,

작은 선행을 통해 오히려 기쁨과 감사함이 충만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나의 삶을 같이 산다는 믿음은

자신의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물질 몸으로 사는 동안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역경들을

오히려 즐겁고 기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더 어려운 삶일 수록 그 가치가 높다는 사실은

더 의욕적으로 선한 삶을 살게 만든다.


유란시아서는 일상적인 삶을 강조한다.

어떤 특별하고 선한 목적을 의무적으로 부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자신의 일상적인 삶에서 사랑을 실천하라고 말한다.

그런 사랑은 사소한 일상에서 충분히 가능하다.

일례로 유란시아서는 목마른 자에게 한 잔의 물을 대접하는 일도

영원히 기록되는 선행이라고 말한다.


20. 인간의 죽음


인간의 삶은 하나님의 우주 창조 계획의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생각조절자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하여

인간의 혼과 함께 장구한 세월에 걸친 우주 생애를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한 인간의 혼과 생각조절자가 체험해 나가는

장구한 우주의 여정에서

인간의 삶은 지극히 짧은 한순간에 불과하다.


인간의 창조 계획과 목표에 따라

인간은 영원한 생존이 틀림없이 보장된  삶을

시작하고 살아가지만,

진화의 한 과정으로써 몸의 죽음이 일어난다.

그러나 죽음은 종결이 아니라

물질 몸의 체험을 마치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나의 죽음은 상물질 자아인 내 혼이 물질 몸에서 벗어나

초물질 세계로 상승하기 위한 필수적인 절차일 뿐이다.


그래서 인간의 죽음은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발전적이다.

정상적인 지성과 도덕적 의지를 가진 모든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의 영이 깃들고 혼이 태어났으며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었다.

단지 스스로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이러한 사실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한 ​인간의 무지 때문이다.

이런 인간의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계시를 주셨다.

유란시아서는 그런 하나님의 섭리로

현대 인류에게 주어진 다섯 번째의 계시이다.


21. 부활의 가능성


유란시아서에서 부활을 기존 종교의 구원론으로 확장하여

이해하려는 것은 왜곡된 오해를 만든다.

유란시아서에는 기존 종교의 구원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하나님이 의도하셨기 때문에 존재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한 인간이

영이 되기 위한 교육과 훈련 과정에 참여하고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몸이 죽는 것은

본질적인 나 자신이 죽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몸으로는 죽지만 혼과 영으로 영원히 산다.

혼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죽음 이후 다시 깨어난다.

모든 사람들은 부활할 가능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은

불완전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갈등한다.

그러나 그런 선악의 갈등을 극복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하나님이 한 인간의 삶을 통해

추구하고 체험하고자 하는 모습들이다.

사람의 혼은 자신의 불완전한 삶으로 인해 소멸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영원히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삶이 달라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


22. 유란시아서


유란시아서는 방대한 책이며,

여러 수준의 우주 존재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우주의 사실들을 기록한 책이다.


유란시아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밝힌다.

그 하나님과 인간은 어떤 관계인지 설명한다.

나 자신과 하나님은 어떤 관계인지,

나의 삶이 어떻게 하나님의 삶이 되는지 그 원리를 알려주고,

한 동물적인 인간이 죽음 이후 어떤 과정들을 거쳐

우주의 가장 높은 수준의 영인

신성한 최후자가 되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광대한 우주와

다양한 우주 존재들을 소개한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우주 존재들이 하나의 형제들임을 밝히며,

형제 정신을 바탕으로 서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연습하라고 권고한다.


유란시아서를 몇 페이지의 내용으로 요약하기는 불가능하다.

이 글은 유란시아서에서 체험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내용들을

간단하게 정리한 것에 불과하며,

더 깊은 이해와 지식의 확장을 위해서는 

직접 읽는 방법이외에 달리 대안이 없다.


반드시 꼭 유란시아서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유란시아서는 어떤 종파를 만들거나, 지도자를 세우거나,

유란시아서의 내용으로 교리나 신조를 만들지 말라고 권한다.

자신의 길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조절자가 이끌어 가시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영적 주권을 맡기는 것을 적극 반대한다.


누구나 자기의 자유의지로 자신의 영원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한 인간에게 주어진 책임이며 권리이다.

유란시아서는 각자가 읽고 이해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 글을 쓰는 것은 앞서 읽은 사람으로

나중에 읽는 분들이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이글 그대로 유란시아서를 이해하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 이 글은 제가 유란시아서를 이해하는 수준에서 정리한 글입니다.

제글은 수시로 제 이해가 넓어지는 대로 수정하고 있습니다.

제 능력과 이해의 한계가 분명하게 있음을 인정하며

읽는 분들의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유란시아서 읽는 남자 블로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