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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계경 (參佺戒經) 제70사 -排忙(배망)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參佺戒經) 제70사 -排忙(배망)

柏道 2019. 3. 16. 08:47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82 
 
어려울수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
세태에 흔들리고
불안해 하는 모습은 자신과
남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생명과 지혜의 에너지를
더 떨어뜨릴 뿐이다.
사실 옛날에 좋았던 적은 없고
미래에는 지금을 좋았다 할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흐름이 아니라
불안에 사로잡힌 인간 마음의
작용일 뿐이다.
여기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크고 넓게, 그리고 깊이 보는
안목과 지혜를 기르는 길 밖에 없다.
'큰 바위 얼굴'(메시야)을 기다리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보다 자기 자신이
그 얼굴이 되어야 함을 인식하고
노력하는 것이 더 지혜롭고 효과적이다.
경전을 보면 거기에 내가 취할
마음과 태도가 잘 기록되어 있다.
기가 막힌 진리로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하자.
이제 70사 신의 2단 약 4부
排忙(배망)으로 들어간다. 
 
信 2團 約 4部 (신 2단 약 4부)
제 70사 排忙(배망) 
 
排忙者(배망자)는
排擱奔忙而(배각분망이)하고
超然趁約也(초연진약야)라
人以信守性則(인이신수성즉)
事有倫次(사유윤차)하고
理無違背(이무위배)하여
自無由紛忙而失約
(자무유분망이실약)하고
或想襮有障則(혹상박유장즉)
如月穿行雲(여월천행운)하여
少信者困後成之
(소신자곤후성지)니라 
 
'배망이란
바쁜 일도 물리치고 초연히
약속을 따르는 것을 말하느니라
사람이 믿음으로 본성을 지키면
일에 질서가 있고
이치에 어긋남이 없으니
자신이 바쁘다는 이유로
약속을 어기는 일이 없느니라
혹 약속을 생각해 내는데
장애가 있어 보여도
달이 구름을 헤치고 나가듯
그 장애를 뚫어내느니라
그러나 믿음이 어린 사람은
어려움을 당한 후라야 비로소
약속을 지키게 되느니라' 
 
바쁘다는 핑계로 약속을 어기는 것은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모르는 무지함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바쁜 일을 급히 해결하려는 마음은
두려움과 불안에서 나오는 것이요,
바빠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용기와 지혜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바쁘다는 말은 '급하다'는 뜻이니
이는 다른 말로 '불안하다'는 의미다.
그 일을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내게 돌아올
불이익이 두렵고, 내가 얻어야 할 이익이
사라질까 불안하기 때문에
바쁨이 온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따라서 이미 바쁘고 급한 마음이 생긴 것은
중심이 흔들린 것이다.
우리의 삶에 바쁜 일이란 없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서 사람이 날아갈 수 없는 일이요
두가지 일을 동시에 생각하고 행할 수 없다.
그저 불안한 마음이 바쁜 생각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판단을 흐리게 한다.
남들이 빨리 가고,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서 불안해 할 것 없다.
그들의 빠름은 그들의 훈련과 수행의 결과이니
그들이 얻고 누릴 혜택이다.
그렇다고 그 빠름이 인생을 행복하게 해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와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다.
옛날 걸어다니는 시절의 사람보다
오늘날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가는
현대인들이 더 행복하고 더 지혜롭다고 할
근거가 없다.
오히려 바쁨에 쫓기게 되면 본성을 잃을 위험이 크다.


우리가 늘 생각해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이다.
다른 말로 자기 자신, 즉 본성과의 약속이다.
우리의 약속은 '의'를 이룸이지
'성공'이 아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의 약속이지 남보다 빨리, 더 많이,
더 높아지고 커지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에 속아서, 무지와 두려움에 불안하여
바쁨의 굴레를 스스로에게 씌운 것이
남이 아닌 자신이다.
속히 하나님과의 약속을 되새겨
의로, 본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약속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함을
우리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장 소중하고 귀한
아들과의 약속을 자주 어기는 부모에 대해
비난을 퍼 부으면서도 정작 자신도
무언가에 쫓겨 달리고 있음을 보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현대인의 안타까움이다.
본성을 회복하겠다는 약속을 염두에 두고
이를 삶 속에 실천해 나가는 사람은
바쁨 속에 감추어진 궤계를 안다.


느림의 미학이 다시 일어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느린 것은 악한 것이나 게으른 것이 아니다.
본성의 회복은 빨리 이루어질 수 없고,
바쁘게 이루려고 하는 것 자체가 반칙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하다가
다 잃고 나서 후회하는 자들이 여전히 많다.
그나마 그 때부터라도 제자리를 찾으면
다행이다. 믿음은 적어도 소망이 있는데
믿음이 없는 사람은 깨닫지를 못하니
돌이킬 소망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