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72사 -天敗(천패)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72사 -天敗(천패)

柏道 2019. 3. 19. 06:02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84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아는 것이
하나님과 약속관계로 진입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자기 생각과 욕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약속보다 얻을 이익에
눈이 가려서 스스로 파멸과 수치를
자초하게 된다.
따라서 억지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거나
그 앞으로 데려오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아무나 오라는 식의 전도는
무지함과 욕심에 기인한 어리석고
위험한 짓이다.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경홀하게 대하려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어디 있다고
그런 식의 선전과 장사를 하나?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스스로
자기꾀에 빠지게 함으로
경고의 본을 삼으신다.
하나님은 절대 경외함으로
가까이 할 분이시다.
새로운 지혜가 펼쳐진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인데
'하늘의 실패'를 말하는 대목이다.
제 72사 신의 2단 약 6부
天敗(천패)에 대해 살펴보자. 
 
信 2團 約 6部 (신 2단 약 6부)
제 72사  天敗(천패) 
 
天敗者(천패자)는
非人罷約(비인파약)이요
天敗約也(천패약야)라
由之天敗(유지천패)하여
約旣不完(약기불완)이면
聽諸天而已乎(청제천이이호)아?
告諸天而復乎(고제천이복호)아?
大約聽天(대약청천)하고
小約告天(소약고천)이니라 
 
'천패(天敗)란
사람이 약속을 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약속을 깨는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이 약속을 파함으로 인하여
이미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다면
이를 하늘의 뜻으로 여겨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하늘에 아뢰고
다시 할 것인가?
큰 약속은 하늘의 뜻을 따르고
작은 약속은 하늘에 고할 것이니라' 
 
하늘의 실패라...
어떻게 하늘이 실패할 수 있을까?
이는 두가지로 해석되어야 한다.
첫째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건이나
일로 인하여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천재지변이나 피치 못할 상황으로
인하여 그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이런 경우 하늘이 약속을 파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어떻게 우주를 다스리신다는 하나님이
그런 천재지변 같은 일로 약속이 허물어지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지금까지 심각한
의문으로 내려오고 있다.
이에 대한 답은 영원한 숙제다.
그 누구도 감히 이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따지거나 답을 내놓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분명 답은 있겠지만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을 발휘해야 우리의 성장과 발전은 보장된다.
섣불리 짧은 지혜로 답을 추구하다가
스스로 지쳐 불평과 원망에 이르게 되면
그 자체로 교만과 불신의 증거가 되고 만다.
둘째로, 이러한 일은 인류 의식의 성숙과
관련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긍정적이다.
그러니까 이전 약속은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그 기간이 지나면 파기되어야 하기에
하나님이 폐하신 것이다.
율법의 규례나 안식일 제도 등이
바로 그런 부류다.
하나님은 당시 율법과 안식일, 할례 등의
규례를 영원한 것으로 선포하셨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스스로 그를 폐하시고
다른 길, 즉 복음을 통한 새로운 구원의 길을
내셨다. 이런 경우 하늘이 약속을 파기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 근본은 파기한 것이 아니라
완성한 것이다.
예수가 이를 간파하고 증거했다.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만일 하나님이 약속을 폐하시거나 깨뜨리시면
거기에는 합당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
따라서 큰 경륜에서 이루시는 일에 대해서는
겸손하게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작은 약속...그러니까
하나님이 잊으신 듯하고,
버리신 듯한 그런 약속인 경우에는
다시 고하여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나님은 잊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그 약속을 진지하게 여기고
기억하고 있는지를 점검하시는 것이며,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테스트 하시기
위해 종종 약속을 잊으신 듯, 깨뜨리신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는 '이렇게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까?'하며
당당하게 고하여 요구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히스기야, 느헤미야,
엘리야, 다윗 등...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