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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符都誌) 해설 11 본문

천지인 공부/부도지

부도지(符都誌) 해설 11

柏道 2019. 3. 14. 23:30


율려(律呂)의 창세기(創世記)를 풀다.
부도지(符都誌) 해설 11 
 
창세기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은 빛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창조사역을 진행하면서 반드시 그 순간마다 감정의 표현을 일으킨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4). 이러한 ‘좋았다’는 표현은 계속 반복된다(10, 12, 18, 21, 25, 31). 특히 마지막 인간을 창조한 후에는 ‘심히 좋았더라’고 하여 아주 감격하여 마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부도지의 창조주 마고는 전혀 감정의 표현이 없을 뿐 아니라 아예 그런 감정적 기능까지 없다고 한다. ‘기쁨과 분노’등이 감정이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麻姑生於朕世(마고생어짐세)하여 無喜怒之情(무희노지정)하니..’
마고는 선천과 후천 사이의 시기, 즉 ‘짐세’라는 특별한 시기에 출생하여 후천세계를 여는 창조주인데 2장을 보면 ‘律呂’가 마고와 마고성을 낳았다고
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들은 ‘만들어진 피조물’이 아니라 ‘낳아진 존재’들이다.
그런데 왜 마고는 여호와 하나님과는 달리 기쁨과 분노 등의 감정이 없을까?
바로 여기서 큰 흐름의 차이를 일으킨다. 기뻐하는 여호와는 동시에 슬퍼하고 분노하는 여호와의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미 나누어진 감정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호와는 이미 한 편으로 기운 존재가 된다. 이미 ‘선악’의 이원론이 그 안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그는 선한 쪽에 자신의 존재를 두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히브리어 ‘좋다’는 말은 ‘선하다’는 말과 같은 단어이다.
이미 창세기는 ‘악’을 전제하고 시작한다. 빛을 창조하는 것도 사실은 그 전에 어두움이 있기 때문이요, 모든 것을 나누고 구분하는 이유도 그 전에 ‘혼돈과 공허’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이러한 어둠과 무질서를 물리치고 빛과 질서를 가져오는 창조주로 나타나는데 안타깝게도 이미 그 이전에 절대적인 ‘악’이 존재하고 마는 문제가 발생한다.
오늘날 기독교를 비롯한 유일신 종교가 바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내는 곳이 바로 여기다. 악을 전제한 상황에서 하나님(여호와, 알라)은 그 악을 물리치고, 인간을 죄에서 건져내는 사역을 하는 선한 신인데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고맙고 감사하며 위대한 구원자는 될지 모르나 존재론적 차원에서 보면 이미 ‘악과 대립하는 존재’로서 스스로 한계를 나타내고 만다.
그래서 지금 현존하는 유일신 종교는 어쩔 수 없이 끊임없는 투쟁을 일으키는 속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선과 악을 나누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 전쟁은 중단할 수 없다. 이 상황을 중단할 수 있는 존재는 선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선과 악이 분화되기 이전의 존재여야 하고, 선과 악을 함께 주관하고 통치할 수 있는 그런 존재여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밀리게 된다.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속이 상할지 모르나 어쩌겠는가? 그렇게 나타나 있는 것을...
그래서 사실 기독교에서도 창조주 하나님 이전의 존재, 바로 이러한 이원론으로 분리되기 이전의 존재를 말하고 있는데 바로 그것이 ‘로고스’로 표현된 진리이다. 유대교에서도 카발라 전통에서는 창조주 위의 존재를 말하면서 ‘아인소프’로 알려진 ‘무한자’는 바로 이 양면성이 없다.
기독교가 유대교를 떠나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 여호와와 예수의 차이를 알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다. 예수를 볼 때 이원성을 초월한 ‘로고스’를 보지 못하면 여전히 헛일이다. 지금도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악을 정복하고 심판하는 승리자로 환호하고 있는데 그렇게 대우하는 것 자체가 예수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원수까지 사랑하고 용서한 것은 ‘가장 큰 선’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그에게는 선과 악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사람들은 선과 악을 나누어 놓고 예수를 자기 편에 끌어들이는 짓을 하고 있는데 그 자체가 이미 악이라는 것을 자신들은 모르고 있다.
지금 나라가 싸우고, 세상이 온통 두편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서로를 악이라고 하면서 싸우고 있는데 이 싸움은 여호와나 알라는 끝낼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예수도 마찬가지다. 예수의 참 모습, 그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보여준 선과 악을 초월하고, 둘 다 품고 사랑하는 ‘로고스’로서의 본질을 깨우치고 그의 의식과 연합된 자라야 세상을 하나로 연합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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