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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54사 忘形(망형)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54사 忘形(망형)

柏道 2019. 3. 13. 18:46

푸른 오솔길 블로그에서 스크랩해오다 .

너무나 귀하고 귀한 말씀들이고 감사합니다.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62
 
문자에만 매이지 않는 비결은
오직 성령의 조명하심 뿐이다.
전체를 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 주셔야
말씀의 적절한 풀이와 적용이 가능하다.
경전을 존중한다고 해서
문자에 매이는 것은 오히려 그 자체로
자아에 매인 것으로 어두움이 드러난다.
신약의 빛 아래서 구약이 해석되어야
하는 이치와 같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이제 효도에 대한 마지막 말씀이다.
제 54事 誠의 6체 大孝(대효) 중
마지막 일곱번째 쓰임(6체 7용)
忘形(망형)으로 넘어간다.
 
誠 6體 7用 (성 6체 7용)
제 54사 忘形(망형) 
 
忘形者(망형자)는
忘身形也(망신형야)라
子事父母(자사부모)는
不敢有基身者(불감유기신자)로
重報父母之恩也(중보부모지은야)라
只認之不敢有基身(지인지불감유기신)해도
無忘自己之身形者(무망자기지신형자)는
還有基身也(환유기신야)라
大孝者(대효자)는
父母在世(부모재세)는
頓忘基身(돈망기신)하고
父母歿後(부모몰후)에야
始覺有基身(시각유기신)이라 
 
'망형이란 자기 몸의 모습을 잊는 것이라
자식이 부모를 모시면서
감히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은
부모의 은혜에 깊이 보답함이라
단 이를 알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몸을 잊지 않는
사람은 도리어 자신의 몸을 돌보는
사람이 되느니라
큰 효자는 부모가 살아계실 때에는
자기를 돌보지 않고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자기 몸을 깨닫기 시작하느니라' 
 
멋진 역설이 또 등장한다.
살려고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그런 종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효도뿐 아니라 봉사, 신앙 등
인생에 있어서 가치있는 일을 할 때 모두
적용되는 진리다.
본문에서는 '몸'과 '몸의 모습'을 구분하고 있다.
몸을 돌보는 것과 몸의 모습을 자각하는 것은 다르다.
몸은 우리 물질 몸 전체를 말한다면
몸의 모습(형태)은 외형적인 꾸미는 것을 의미한다.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할 때
우리는 나타나는 외형을 그리 중시하지 않는다.
몸에서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은
모두가 좋게 보지 않는다.
콧물이든, 눈물이든, 땀이든, 침이든, 오줌이든...
신속하게 처리하고 없애야 한다.
그러나 무언가에 열중하여
땀을 뻘뻘 흘리고 있으면서도
처리하지 않아 옷을 적셔도
그 일이 보람된 일일 때에는 모두가 칭찬을 한다.
콧물이 흘러도 좋다.
이것이 바로 몸을 온전히 헌신함으로
몸의 형태를 살피지 않는 것이다.
반면 화장이 지워질까봐,
남이 보면 흉을 볼까봐 몸의 형태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모습은 그 진실성이
의심받게 된다.
결국은 남의 눈을 의식해서 꾸며내는
위선적인 행위임을 드러내고 만다는 것이다.
흙묻은 손을 덥석 잡는다든지,
옷을 버릴 수 있음에도 작업현장에
덜렁 뛰어 든다든지,
심지어 해충이나 독풀의 위험이 있음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행동을 일으키는 모습은 
사랑에 입각한 용기있는 행위이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양로원을 방문했을 때이다.
교인 중 오랫동안 지내는 사람이
있었는데 제대로 씻지를 못해서 머리에
비듬이 가득하고 얼굴에까지 잔뜩 묻어 있었다.
그 때 연세드신 여전도사님이
개의치 않으시고 그 분의 머리와 얼굴에 묻은
비듬을 맨 손으로 닦아 주시는 모습을 보았다.
참 아름답게 보였고, 진정한 사랑의 마음이 느껴졌다.
교회 공사를 할 때에도 어두운 지하실에 내려가
옷을 더럽히고, 얼굴에 온통 흙을 묻히는
청년들을 볼 때 얼마나 감동을 했는지 모른다.
나도 궂은 일을 그리 피하는 편은 아닌데도
목사라는 타이틀 내세우고 피한 적도 있다.
반면에 어떤 교인은 궂은 일에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잘 도망다니는 교인들도 있다.
그런 모습에서는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아
신뢰가 가지 않는다.


얼마 전 화재사실을 알리기 위해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방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눌러 사람들을 대피 시키다가
그만 질식해 죽은 의인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보았다.
교통사고 당한 사람을 도와주려 하다가
이차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은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한 자들을 의인이라고 한다.
예수 믿기만 하면 천국간다고 하면서
지나치게 자기 몸 사리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하다.
그러면서도 쉽게 이런 말을 한다.
'아무리 그래도 예수 안믿으면 천국 못가'
그들은 예수의 이런 말씀은 기억이 안나나 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아니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한 사람은
예수를 안믿는다고 지옥을 가고,
입만 가지고 예수 믿는다면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자리에는 철저히
빠지는 사람은 천국을 들어간다면
도대체 그 천국은 어떤 나라일까?
몸을 사리고, 몸을 아끼는 일은 평상시
다른 중요하거나 위급한 일이 없을 때 하는 일이다.
심지어 아무리 한가하고 할 일이 없어도
얼굴을 꾸미고, 몸을 단장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한심한 자들이다.
특히 여자들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일부러
성경은 권면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아랑곳 않고
몸단장에만 몇시간씩 쓰고,
몸에 걸치는 옷이니 명품가방이니 하면서
그런 것들로 대화의 주제를 삼고 있다.
스스로 유치하고 게으른 자임을
드러내고 있음을 모르는 것이다.
부모에게 정성을 다하든,
하나님께 경배를 올리든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일이다.
그렇게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 감동을 받아
오히려 그를 존중해 주어 진정한 몸의 가치를
드러내게 된다.
전쟁터에서는 이상하게 몸을 사리는 자에게
총알이 날아오고, 몸을 사리지 않는 용감한 자는
피해간다는 말이 있다.
몸의 모습까지 잊어버리고 몰입한 일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진정 주를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한다면
몸을 아껴 이것 저것 따지고 핑계를 대는 일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몸을 아끼고, 다칠까봐,
죽을까봐 재고 사는 사람은 진리도, 하나님도
모르는 사람이요, 그런 자들은 효도를 하기 보다
부모를 갖다 버리는 일을 계획한다.
심지어는 유산 때문에, 혹 돈을 안준다고 부모를 끔찍하게
죽이는 자식들도 요즈음 심심찮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계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해 진다'는 말씀이 떠오른다.
말씀이 없으면, 진리의 말씀에 온전히
헌신하지 않으면 몸을 위한 것 같으나
몸과 영혼까지 함께 망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